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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탕 한 병의 절실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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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쌍화탕 한 병의 절실함에 대하여

[벼랑 끝 31년, 희망 없는 강의실 ⑮]

"아니 정말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들이 '교원'이 아니란 말이에요?"

작년 1월로 기억됩니다. 당시 저는 부천지역에서 부천학부모연대 활동을 하면서 부천민중연대 상임의장의 역할을 맡고 있었고, 임해규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비정규직교수노조의 교원법적지위쟁취를 17대 국회에서 법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1인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바삐 걸어가고 있었는데 칠십이 다되신 할머니 한 분이 걷던 길을 멈추시고 시위를 하던 저를 유심히 살피시다가 다가오셔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당신의 자식이 외국유학까지 갔다 와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밝히시면서 그러지 않아도 "이제 자리 잡았으니 결혼하라"고 재촉해도 "아직 여유가 없어요"라고 말해 답답했는데 알고 보니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말씀과 함께 거듭 한숨을 내쉬면서 저의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이렇게 추운 날씨에 고생한다면서 근처 약국에서 따뜻한 쌍화탕 한 병을 사 가지고 오셔서 "추운 날 고생하시는데 꼭 국회에서 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하시면서 어두운 얼굴로 떠나시는 모습이 무척이나 안타까왔습니다.

그러면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은 얼마나 비정규직 교수들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 지 반문해 보았습니다. 사실 제 처도 전업은 아니지만 시간강사로 대학에 나가는데 수업하고 나서 받는 강의료가 일반적인 강사료보다 생각보다 너무 적어서 의아해했던 기억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소위 지식사회에 진입해서 우리 사회의 지성으로 일컫는 분들이 1년 중 8개월동안 강의하는 시급으로 계산하여 연봉 1000만 원 정도이고, 서울과 수도권은 강사경쟁이 치열해 강의시간이 부족해서 연500만 원정도를 받고 강의를 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 앞에 너무나 어이가 없었습니다. 어렸을 적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면 사회에서 큰 출세를 한 것으로 인식이 되어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말입니다. 심지어 전국 강사수가 7만 명으로 대학강의의 40~70%를 담당하고 있는 분들이 4대보험의 적용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최저임금 정도의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고용불안에 학교 측이나 전임교수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 앞에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올해 2월 말에는 교수임용의 비리와 비정규직 교수의 불안정한 신분을 비관하여 자신의 모교인 미국 텍사스대학에 가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고 한경선 비정규직 교수의 소식을 KBS의 <추적 60분>을 통해 접하면서 우리사회의 암울한 미래가 걱정되었습니다. 과연 열악한 생활고와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 어떻게 비정규직 교수들이 보다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연구 활동을 할 수가 있겠고, 대학생들에게 어떻게 자신들의 전문적인 지식을 잘 전달할 수가 있겠는 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사무실의 임해규 국회의원도 이전에 부평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대학원을 진학해서 국회의원을 하기 전 부천시 의원을 하면서 박사학위를 취득해서 성공회대 겸임교수로 출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정규직 교수들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임해규의원은 사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투쟁에 함께 참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국회 교육위 간사를 맡으면서 비정규직 교수들의 교원법적 지위를 가로막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고 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벌써 한국비정규직 교수노조가 국회 앞 국민은행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460일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한해를 넘기고도 백일이 자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장기적인 투쟁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고 지칠까?"라는 걱정과는 달리 꿋꿋이 투쟁하고 있는 김동애 교원법적지위챙취특별위원회 위원장님과 부부로써 천막을 사수하고 있는 김영곤선생님을 보면 감동과 함께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국회 앞이라 경찰, 구청에서 수시로 와서 협박하고, 천막을 걷으라고 강요하지만 전혀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경찰들을 이해시키는 당당한 모습, 그리고 기륭전자, 강남성모병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안타깝게 걱정하며 지원하고 연대하는 아름다운 마음, 그리고 천주교시국회의에서 주관하는 촛불시국미사(6월부터 매주 토요일에 진행)에 항상 함께 참여하는 모습 등등 보기에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 국회 앞 천막이 안팎으로 철거 위협에 시달리면서 버틴 지가 곧 500일이 된다 ⓒ이광수

성서에 보면 예수가 포도밭의 비유를 들어 노동의 가치에 대해 강조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포도밭의 주인이 아침에 와서 일한 사람이나 점심에 와서 일한 사람이나 오후에 와서 일한 사람이나 모두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임금을 나누어 주니까 아침에 온 사람이 왜 똑같이 주느냐고 항의를 합니다. 그러자 포도밭 주인이 임금을 주는 것은 주인 마음이라고 하면서 노동의 가치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댓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노동의 가치로 계산되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대학들은 어떤 모습입니까? 대학의 80%를 사립대학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사립대학 재정상태는 155개 사립대학의 누적적립금이 2006년 현재 6조8503억 원이라고 합니다. 평균적으로 한 학교당 441억 원이고 지난 4년간 누적적립금 증가율이 31.9%나 된다고 합니다. 심지어 대학에 대한 국고지원은 매년 한국학술진흥재단, 누리사업, BK21 명목으로 1조5000억 원을 지원합니다.
▲ "노동이 아름다운 사회에서 살고 싶다." ⓒ이광수

이러한 대학들이 노동의 가치는 고사하고 노동의 댓가만큼이라도 제대로 비정규직 교수들의 임금을 주고 있는 지요? 그러면서도 재정이 어렵다고 한편으로는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인상하고 있는 실정을 보면서 도대체 현 정부가 생각하는 교육정책은 누구를 위한 교육정책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국회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에 대해 처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안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정부나 국회가 교육정책에 대해 고압적이고 편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모습은 새삼 얘기해 봐야 입만 아프고, 오히려 이러한 모습을 갖게 한 점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이 협조했다는 점에 대해 먼저 자성해야 문제가 풀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사실 18대 국회구성을 보면 한나라당이 압도적으로 당선됨으로써 현 정부와 같은 코드를 가지고 교육정책을 풀어가게 만들었던 선거결과에 대해 다시 한 번 각성을 하고, 지금부터라도 국회를 압박하여 18대 국회에서는 대학에서의 올바른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처리하게끔 우리 국민, 특히 학부모들이 나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따라서 비정규직교수들의 교원지위회복은 비정규직교수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사회의 미래를 위해 걱정하는 모든 국민들의 과제임을 절감해야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됩니다.

저 또한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로써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취업을 위한 학원 같은 분위기의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낄 수 있을까, 70%에 달하는 비정규직교수들의 비인간적인 열악한 처우와 조건을 보면서 가짜 대학생 같은 비애 속에서 대학을 마치지는 않을까 우려됩니다.

한 사람이 꾸는 꿈은 희망이 되지만 열 사람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꿈이 아니라 깸이 희망을 만들어 간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힘들고 외롭게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교수노조와 함께 연대하여 희망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 "한 사람이 꾸는 꿈은 희망이 되지만 열 사람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이광수

대학비정규교수들의 권익운동만이 아니라, 학부모의 수업권 문제를 뛰어 넘어 고등교육에 대한 질을 높이기 위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교원법적지위를 회복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의 의미를 알리고 국회교육위원회 의원들뿐만 아니라 18대 국회 전체 국회의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큰 물결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 이 연재는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의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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