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분명한 기획성 기사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정중동 행보' 또는 '물밑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기사다. 친박계 의원들 외에도 친이계 또는 중립 성향의 의원들을 '조용히' 만나고 있다는 기사다.
근데 어찌 된 일일까? 이 기획성 기사가 여러 신문에 실렸다. <경향신문> <조선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 등이 오늘 일제히 보도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스킨십'을 강화하면서 '외연 확대'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당사자가 '정중동 행보' '물밑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니 스스로 소문을 낸 것 같지는 않다. 언론플레이를 했을 리 만무하다.
알아봤더니 특별한 배경은 없다. <연합뉴스>가 기사거리가 별로 없는 일요일 오전의 특성을 살려 기획성 기사를 실었고, 각 신문이 역시 기사거리가 별로 없는 월요일자 신문에 맞춰 적당히 개작해 보도한 것일 뿐이다. 이른바 '땜질용' 기사였던 것이다.
이렇게 덮고 넘기려고 하는데 왠지 켕긴다. 아무리 '땜질용'이라도 가치를 따지는 법이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기사를 마구잡이로 싣지는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나경원 의원이 OBS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단다. "박근혜 전 대표 쪽으로 사람들이 모인다"고 했단다. 한나라당 안에서 세력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는 뜻으로 듣기에 부족함이 없는 말이다.
맞아떨어진다. <연합뉴스>의 기사는 나경원 의원의 말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다. 나경원 의원이 세운 뼈대에 살을 붙이는 기사다. '땜질용'으로만 볼 게 아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는 격일까? 아니면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격일까? 어떤 것이든 좋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둘러보자.
나경원 의원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잘 나가는 의원이다. 한나라당의 제6정책조정위원장을 맡아 '맹활약' 중이고 한나라당의 각종 이벤트에 빠지지 않고 얼굴을 내미는, 각광 받는 정치인이다. 주류 중에서도 주목 받는 정치인인 셈이다.
그런 나경원 의원이 주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주류가 주목하고 있다. 한나라당 안에서 세력 재편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바라보고 있다.
헌데 부인한다. 박근혜 전 대표쪽 사람들은 한사코 부인한다. 주류의 '세불리기' 의심과 언론의 '외연확대' 진단을 극구 부정한다. 그건 확대해석일 뿐이라고 한다.
어떤 것일까? 주류의 의심과 언론의 진단이 사실일까? 아니면 박근혜 전 대표쪽 사람들의 손사래가 진실이 될까?
덧없다. 규명할 가치가 없다.
그건 숙명이다. 대권을 열망하는 정치인에게 '외연확대'는 일상이다. 그걸 특별하게 볼 일이 아니다. 주류에겐 심상치 않은 일일지 몰라도 국민이 보기엔 그냥 그런 일일 뿐이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외연확대'에 나섰다고 해서,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 미치는 영향이 없다.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는 말 그대로 '정중동'이다. 안으로는 부산한지 몰라도 밖으로는 일체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정치적인 발언도 하지 않는다. 정부의 국정에 대해, 한나라당의 의정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저 '원 오브 뎀'으로, 172분의 1의 발언권을 가진 평의원으로 '조용히' 지내고 있을 뿐이다.
박근혜 전 대표 쪽 사람들은 이런 행보를 '겸양'이라고 자평한다. 당직도, 정부직도 맡지 않은 박근혜 전 대표가 정치 현안마다 나서면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에게 누가 될 것이란 생각에 조용히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럴싸한 말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궁색하다.
공천 때 그랬고 복당 때 그랬다. 박근혜 전 대표 쪽 사람들이 화를 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를 '국정의 동반자' '정치 파트너'로 대우하겠다고 하더니 이게 뭐냐고 따져 물었다. 말 했으면 지키라는 투였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면 자진해서 그에 걸맞는 행동을 보여줘야 했지만 박근혜 전 대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동반'한 적도 없고 '파트너십'을 발휘한 적도 없다.
박근혜 전 대표의 측근들이 그랬다. 박근혜 전 대표가 친이계와 중립 성향 의원들을 만나고 젊은 교수들을 초빙해 복지분야 공부를 하는 것을 두고 "중진 의원으로서의 최소한의 활동일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중진 의원으로서 활동을 방기하고 있다. 후배 의원들에게 밥을 사주는 것만 '중진 의원의 활동'으로 여기고 당무와 정무에 참여하는 것은 '중진 의원의 활동'으로 여기지 않는다. 정치 현안마다 나서는 것은 둘째 치고 한나라당의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 딱 한 번, 첫 번째 회의에 얼굴을 내민 게 전부였기에 하는 말이다.
몸을 사린다고 보는 게 옳다. 정치 현안마다 나서 정부와 '다른' 얘기를 하면 권력의 견제를 받을 것이고 정부와 '같은' 얘기를 하면 국민으로부터 도매금 취급을 받을지 모르기에 뒤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발밑 다지기에 골몰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덧없다. 규명할 가치가 없다. 박근혜 전 대표의 '외연확대'는 그 진실성 여부를 떠나 생산성이 없다. 지금 현재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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