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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를 부인하는 이유는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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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를 부인하는 이유는 뭔가

[김상수 칼럼] 광복절 오늘, 역사의 호곡(號哭)을 들을 수 있어야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족과 생이별하고 낯선 이국 땅에서 산천을 떠돌며 피를 흘렸지만 안타깝게도 일제의 패망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호국영령(護國英靈)들. 일제가 밀정(密偵)을 풀어 암살하려고 혈안이었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사해 해방된 조국에 즉시 돌아와 항복한 일본의 무장 해제를 광복군이 맡아야 한다는 김구 임시정부 주석의 일념은 미군정에 의해 결국 무산되고, 해방 후 3개월이나 지나서야 겨우 주한미군 사령관 하지가 보낸 C47 수송기에 실려 정부 수반이 아닌 개인자격으로 조국에 돌아왔다. 그 김구 선생은 안타깝게도 1949년 악독한 일제의 경찰이나 헌병이 아닌, 해방된 조국의 국군의 총에 맞아 돌아가신다.

역사에 가정(假定)이나 가상(假想)은 있을 수 없지만, 1598년 이순신이 노량진 앞바다에서 죽지 않고 임진란 직후, 민중과 힘을 합해 나라를 토탄에 빠트린 무기력한 임금인 선조를 때려잡을 수만 있었다면,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를 당시 점령군이었던 미군사령관 하지가 아닌, 2차 대전 직후 아이젠하워가 프랑스의 망명 지도자 드골에게 대했던 처우만큼만 했더라면, 오늘날 한국 역사를 패퇴시키고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는 이명박 집단이 과연 세상에나 존재할 수 있었을까?

815 광복 오늘, 마음과 몸이 아프다. 돌아가신 선열들의 절절한 외침인 민족, 자주, 민주주의, 통일은 완성의 걸음을 향해 제대로 딛지도 못하고 기우뚱거린다.

생업을 접다시피 하고 경찰의 폭력에 맨몸으로 맞서는 시민의 '촛불'은 아랑곳하지 않고 야당 대표라는 자가 한껏 차려입고 골프장에서 휴가를 즐기는 영상이 어제 KBS 뉴스를 탔다. 임시정부 자체를 부인하는 8.15는 건국절로 둔갑되려하는 이 참담한 현실에서, 오늘 우리의 적은 어디에 무엇으로 존재할까? 우리들 삶을 피폐하게 하고, 비정규직 기륭전자 직원들의 목숨을 건 노동권리의 사투는 허공에 맴돌게 하고, 친일이 더 큰 소리를 치고, 일류(日流)가 한국인들 일상의 삶에 넘치는 현실에서 8.15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역대 대통령 중 대통령직을 가장 잘 수행했는가를 묻는 질문엔 응답자의 56.0%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시민을 억압한 박정희를 꼽았고, 이명박의 지지율이 31%가 됐다는 여론 조사를 정녕 믿어야 하는 건가?

오늘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정신이나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공권력을 동원한 폭력이 일상적 다반사고 시민들과 민주주의 언론이 공권력의 폭력에 희생당하고 있는 것을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폭력이 용인되다시피 하는 이 사회적 분위기는 무엇으로 답할 수 있는가?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의 광범위한 실현이야말로 사회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실제적인 가치이고 시민의 연대를 향한 길만이 개인의 존엄성을 추구하고 존중하는 길인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사회 구성원들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가?

탈법과 비리, 공공연한 국가폭력, 워낙 이런 일에 면역이 되어서일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일이기 때문일까. '나만 잘 살면 그만'이고 '나만 당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집단적 무의식에 대한민국은 계속 절단 나고 있는 것이다.

광복 오늘, 역사의 호곡(號哭)과 피울음을 들어야 하는 '슬픔'에 가슴이 미어진다.

국군장교 안두희에게 피살되기 이태 전인 1947년에 백범 김구는 <백범일지> 말미에 '나의 소원'이란 제목으로 대한민국 사회 국가 공동체의 이상을 정연하게 펼쳤다. 김구의 정치철학과 사상을 밝힌 이 글에서 김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끝에 붙인 '나의 소원' 한 편은 내가 우리 민족에게 하고 싶은 말의 요령을 적은 것이다. 무릇 한 나라가 서서 한 민족이 국민생활을 하랴면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국민의 사상이 통일이 되지 못하야 더러는 이 나라의 철학에 쏠리고 더러는 저 민족의 철학에 끌리어 사상의 독립, 정신의 독립을 유지하지 못하고 남을 의뢰하고 저희끼리는 추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현상으로 보면, 더러는 로크의 철학을 믿으니 이는 워싱턴을 서울로 옮기는 자들이요, 또 더러는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의 철학을 믿으니 이들은 모스크바를 우리의 서울로 삼자는 사람들이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우리의 서울은 될 수 없는 것이요, 또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만일 그것을 주장하는 자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예전 동경을 우리 서울로 하자는 자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하여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나의 소원'은 이러한 동기, 이러한 의미에서 실린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품은, 내가 믿는 우리 민족 철학의 대강령을 적어본 것이다. 그러므로 동포 여러분은 이 한 편을 주의하여 읽어 주셔서 저마다의 민족 철학을 찾아 세우는데 참고를 삼고 자극을 삼아 주시기를 바라는 바이다."


김구가 특별히 이 논문을 <백범일지> 말미에 붙인 것은, 간행 당시 친미파, 친소파가 대립하면서 극도의 사상적 혼미 가운데, 동포들이 통일 독립의 민주국가 건설의 자주적 민족철학과 사상을 정립하는데 참고와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1947년 11월 유엔 감시 아래 남북선거에 의한 정부 수립 결의안을 지지하며 이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은 '민족국가', '정치 이념',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각 세 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정작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이상적인 사회 국가 공동체의 전형은 어디에 어떤 모습일까? 박정희 이명박 식의 무차별 경쟁으로 무조건 '잘 사는 것'에 있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여기, 김구가 정리한 우리 사회 국가 공동체에 대한 글을 다시 읽는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 백범 김구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한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한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 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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