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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이승만의 전철을 밟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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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이승만의 전철을 밟는가"

[김상수 칼럼]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 눈에 최루탄이 박힌 소년의 시체가 발견됐다. 이 소년은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이었다. 3월 15일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가했다가 실종된 후 발견된 소년의 주검은 3만여 명의 분노한 시민으로 하여금 경찰서와 시청을 습격해 파괴하게끔 했다. 부당한 공권력에 대한 직접적인 국민 저항이었다.
  
  시위 군중은 갈수록 늘어나 15만 명에 이르렀고, 단순한 부정선거 규탄을 넘어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는 시위로 확산됐다. 이승만 정권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촛불 집회를 놓고 그랬듯이 시위의 배후에 공산주의자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1960년과 2008년의 공통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시위의 시작은 대학생이 아닌 고등학생이었다. 4월 18일 서울에서 처음으로 고려대학교 학생 3000여 명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로 나왔다. 오후 7시경 조직 깡패를 동원한 이승만 정권은 시위대를 습격해 학생 수십 명이 큰 부상을 입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음날 이 사태가 신문에 보도되자 대학생은 물론이고 중고생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4월 19일 서울의 시위 군중은 10만 명을 넘는다. 주로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다. 다급해진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한다. 이 날만 21명이 시위 현장에서 사망하고 172명이 부상을 입는 등 시위 현장은 전쟁터가 된다.
  
  이를 본 시민들이 시위에 가담하기 시작해, 곧 시위대는 20만 명을 넘는다. 이날 오후 3시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에 계엄령이 선포된다.
  
  다음 날, 이승만은 "나는 부정선거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면서 국무위원과 자유당 당무위원의 사표로 사태를 덮으려 했다. 또 자유당은 "시위대의 투석, 경찰 구타, 파출소 습격, 청사 파괴 등으로 하는 수없이 발포를 했다"고 변명하면서 시민 학살을 인정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격분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이번 시위는 장면 부통령과 천주교 노기남 주교의 공작"이라면서 전혀 책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강경하게 버텼다. 바로 그때 교수들이 나섰다. 4월 25일 서울 지역 대학 교수들이 성명서를 발표한 후 시위에 나섰고, 26일에는 다시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민주주의와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이승만은 이번엔 경찰에서 군대까지 동원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어린 초등학생까지 시위에 나섰다. "대한민국 국군은 부모 형제에게 총을 쏘지 말라"면서 어린이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바로 그 날, 1960년 4월 26일 오전 10시 30분,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1, 2, 3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라디오를 통해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 직을 사임한다"는 하야 성명을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하고 물러난다. 4월 19일부터 26일까지 시민의 희생자는 사망 186명, 부상 6259명이었다.
  
  대한민국은 이승만 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아도 정녕 국민 일반에게 폭넓은 지지와 존경을 받는 대통령다운 대통령은 배출하지 못했다. 너무 냉정한 재단일까? 아니다. 심지어 오랫동안 대통령은 우리들 삶의 문제를 해결해 온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도리어 국민에 무거운 짐이 되어왔다.
  
  20년 전, 민주화 시대의 시작부터 이 땅에 요청되는 대통령상이란 '정의로운 정치, 정의로운 경제를 통해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를 착근시키며 현실 정치의 당파 싸움 같은 작은 정치에 매몰되지 않고 한국 사회의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장기적 국가 전략 지침'을 가지고,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다.
  
  대통령은 새롭게 일하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즉 노동의 가치에 대한 정당한 가치 매김을 통해 성숙한 사회로 문화적 삶을 가꾸는 더 나은 사회 환경을 만들고 그것의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들을 진행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개인과 공공이 양립하는 새로운 공공성의 창출에 대해서 사회 인문적인 좌표를 설정해야 한다. 그는 국가나 정부의 역할을 재조정하고고 국가, 기업, 지역의 존재 방식의 변화를 이끌어내야만 한다.
  
  대통령은 도전적인 낙관주의와 실제적인 상상력으로 시야를 넓혀 다음 세기의 한국을 전망하도록 비전을 말하고, 비전은 또 국민들에게 들리고 보여야만 한다. 막연히 시장에 맡기자는 식이 아닌, 시장주의의 폐해와 위험성에 대해서 대책을 정책으로 제시하고, 국민의 입장에서, 그들이 겪고 있는 나날의 삶의 어려움, 힘겨운 일상의 싸움을 낱낱이 알고 있어야만 한다.
  
  대통령은 진실로 자기 자신을 태워서 이 나라에 빛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자를 선택할 수 있었어야만 한다. 대통령은 도대체 우리 국가는 언제 한번 국민인 우리들에게 희망이나 힘이 되어 주는가 하는 절망에 구체적인 대안을 통해 이 시대가 요청하는 시대정신인 공정성의 원칙을 일으켜 세워 사회통합의 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대통령이 있었다면, 한국도 '창조적 한국'을 위한 21세기 지적 자산 체계를 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국가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는 나라를 진짜 제대로 혁신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대통령을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정치꾼은 있었지만 '위대한 정치가'로의 대통령은 없었다.
  
  지금 새로 대통령으로 뽑힌 자의 지난 6개월이 과연 이 물음과 역할에 부응하고 있는가는 일대 회의를 넘어 거의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불행하게도 이명박이란 자는 이러한 시대의 요청을 제대로 읽는 대통령이 전혀 아닌 것으로 점점 판명이 나고 있다. 이제 본질은 시간의 싸움이 됐다.
  
  며칠 전에 있었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 결과를 보고 대통령이란 자는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이 나라에 대통령이 맞는가?
  
  새 교육감 당선자는 강남. 서초. 송파 3개구의 유권자들의 몰표로 겨우 당선됐다. 서울시 25개 선거구 가운데 무려 17개 구에서는 패배했다. 이처럼 초라한 성적이 어떻게 "새 정부의 국민적 지지 확인"이라고 침소봉대할 수 있는가? 무지한 건가?
  
  그가 알고 있는 '국민'이란 서울 강남에 사는 일부 구민들이 '국민'들이다. 이게 그가 국민을 가리는 눈이니, 그 눈은 너무 옹졸하기도 하고 얼마나 뒷심이 빈곤한 가를 제대로 드러낸다.
  
  서울 강남 일부 구민들의 '이권조합 조합장' 정도가 결코 대통령일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색하게 교육감 선거 결과를 빌미로 '촛불 족쇄'로부터 벗어났다고 여기면서 이제부터 돌격이라는 식의 이명박 본색이라면 너무 만만하게 국민을 알고 있다.
  
  이제 '촛불'은 경찰을 동원한 두려움에, 잦은 꼼수와 협박에 속거나 굴복하지 않는다. 정작 잘못된 권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권력의 폭력에 두려워하지 않는 국민들이다.
  
  지금 이 시간, 숨고르기에 잠시 들어간 '촛불'의 내면은 시시각각 사태를 응시하고 있다. 만에 하나 이성과 상식에 반하는 이명박의 돌출행위가 계속 되풀이 되고 시민들 일상의 삶 자체를 일그러지게 한다면 비등점에 달한 분노는 똑바로 이명박 집단을 행해 돌진하게 된다.
  
  격렬하게 발산하는 이 민주주의 시민의 힘은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이며 예상보다 더 빨리 이명박 집단은 완전 작동 불능의 상태로 급진전될 수도 있다.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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