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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교통, 분신후 179일째 고독한 파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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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오교통, 분신후 179일째 고독한 파업중

"물러설 데가 없어 물러설 수 없다", 사측 가압류-해고 압력

1백79일. 지난 5월7일 조경식씨가 택시부가세전면지급과 민주노조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분신한 사건을 계기로 8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간 정오교통 노조가 2일 현재까지의 파업 일수다. 현대판 막장인생이라고 흔히 말하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택시노동자가 벌써 6개월째 장기파업을 진행 중인 것이다. 서울 상봉동에 위치한 정오교통 농성장을 2일 찾았다.

***파업 179일째, 변한 것은 없다**

가을이 끝나감을 알리는 차가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2일 오후 정오교통 농성장은 저녁집회를 갖고 있었다. 40여명의 정오교통 조합원들과 인근 민주택시연맹 소속 택시업체인 문화교통 조합원 몇몇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정오교통 방남철 노조위원장은 "지난 5월8일 파업에 돌입하면서 6개월이 지나도록 아침·저녁 집회를 거른 적이 없다"며 "파업이 장기화되었지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노조 지도부의 지침에 성실하게 따르는 조합원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녁집회는 30분 정도 간단히 마무리됐다. 방 위원장의 연설, 연대 나온 문화교통 위원장의 발언 그리고 '파업가'를 함께 부르는 것이 모든 순서였다. 날이 한결 추워진 탓에 어깨는 움츠러들었지만, 기개는 여전했다.

집회 후에는 저녁식사다. 운전대를 잡기 전에 음식점에서 일해 본 조합원이 있었던 터라 빈약한 메뉴였지만 다들 맛있게 "어이 시원하다", "국 한 술 뜨니 속이 다풀리네"라며 후룩후룩 한그릇 거뜬히 해치웠다. 흰 쌀밥 한 공기, 두부 세조각, 감자 한조각, 양파, 파가 들어간 된장국과, 열무김치가 전부인 식사였지만, 이들의 마음과 몸을 따뜻하게 풀어주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방남철 위원장, 1억2천만원 가압류..."어차피 가진 것 없으니 잃을 것 없다"**

장기파업은 조합원을 지치게 한다. 더구나 몇 개의 빌라를 소유하고 또다른 택시 업체를 소유하고 있는 정오교통 사업주에 비해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는 택시노동자들의 사정은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실정이다. 정오교통 조합원들의 생활고에 대한 질문에 방남철 위원장은 "여기저기서 도장 찍자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대뜸 말한다. 무슨 의미인지 재차 묻자 방위원장은 "6달 동안 돈 한푼 안 가져다 주니 집에서 이혼하자는 이야기가 안나오겠냐"고 말했다.

방 위원장은 미혼이다. 그래서 이혼 걱정은 없어 다행이라 했다. 대신 그에게는 지난 5월 분신해 지금껏 병원에서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조경식씨 치료비 보증을 서 민주택시연맹 구수영 위원장과 함께 1억2천여만원 가압류가 들어온 상태다. 한강 성심병원에 입원중인 조경식씨는 생명은 건진 상태이지만 귀, 눈, 손의 화상정도가 매우 심해 현업에 복귀하기에는 무리라고 전해졌다.

그는 "어차피 가진 것도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 다만 파업이 풀려 일을 하게 되면 월급 고스란히 뺏기는 것이 다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자신보다 자식들을 두고 있는 동료 조합원들이 더 큰 문제다"고 덧붙였다.

***아내는 식당일 나가고, 아이들은 학원 그만두고**

정오교통 노조는 지난 1일부터 전원 농성체제에서 12명의 '결사대'만 남기고 나머지 조합원들은 소위 '생계투쟁'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결사대는 농성장을 지키는 인원이고, '생계투쟁단'은 자신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일터에 나간 사람들이다.

조합원들의 생활고는 대부분 비슷한 모습이었다. 아내들이 각 종 허드렛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들의 학원은 파업에 들어가면서 모두 중단된 상태였다. 초등학생 두 명의 자녀를 둔 최병국 부위원장은 "아이들 학원을 끊을 때 가장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최 부위원장은 "아내가 식당에 나가 생계비를 충당한다"며 머뭇거리며 털어놓았다. 그는 또 "한달에 한 번 정도 집에 들어가면 아내와 아이들 보기 참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조합원 김기철씨는 중학생이 된 맏딸 아래 두명의 딸과 한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김씨의 아이들도 모든 학원을 끊었다. 김씨는 "일을 할 때는 그래도 한 두개 과외학원도 보냈는데, 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집사람은 말을 못할 뿐이지 속이 터져도 여러번 터졌을 것이다"고 답답해 했다. 그가 내뿜는 담배연기는 답답함을 대신하고 있었다. 김씨는 "여기 조합원들 중에 누가 더 낫고 못하고 하는 것은 없다"며 "다들 오기로 버티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씨의 아이들은 가끔 농성장을 둘러본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이 현장을 둘러보고, 이야기들으면서 아빠가 정당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줘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최 부위원장과 김기철씨처럼 결사대에 포함된 사람들 이외에 생계투쟁에 나선 조합원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방남철 위원장은 "대개가 공사판에서 노가다를 하고, 간혹 도급택시를 모는 조합원들도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는 "다른 회사 택시를 몰고 싶지만 이미 '정오 사람'이란 것이 '발각'되면 어김없이 운전대를 놓아야 한다"고 전했다.

***"물러설 데가 없어 물러설 수 없다"**

장기 파업이 됐지만, 정오교통 조합원들은 물러설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들은 "지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지만, '물러설 데가 없어 물러설 수 없다"고 말했다. 정오교통 김종오 사장은 방남철 위원장을 비롯해 노조간부 20명의 사표를 들고오면 정상화시키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한 조합원은 "없는 사람들이 있는 사람 상대해서 싸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며 "그러나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끝까지 가 볼 심산"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조합원은 "조경식 동지가 분신했을 때 사회·언론에서 반짝 관심을 가졌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파업한 우리 동료들이 흩어지지 않고 똘똘 뭉치는 것이란 걸 알았다"며 "동료들 얼굴을 보면서 힘을 낸다"고 말했다.

또 한 조합원은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와도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이 택시 사업장 분쟁이란 걸 잘 안다"면서도 "그러나 노조간부 20명 사표 들고와야 협상하겠다는 김종우 사장에 절대 굴복할 수는 없지 않나"고 말했다.

방 위원장은 "조합원들은 이제 오기로 버티고 있다"며 "정오교통 김종오 사장의 그간 악행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조합원들이기 때문에 여전히 투쟁 의지가 살아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비정규직노동자가 아무리 힘든다고 해도 택시 노동자만 하겠냐"며 "택시 노동자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다가 사업주의 전근대적인 노조탄압으로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오기로 1백79여일을 버틴 정오교통 조합원들. 비닐텐트 안 전기장판위에서 옹기종기모여 서로의 의지를 다독이는 그들을 뒤로하고 농성장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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