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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어디 가고 '여성'만 혼자 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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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어디 가고 '여성'만 혼자 남나?"

[인권오름] 여성의 권리에 기초한 접근 필요해

"가족은 어디 가고 여성만 혼자 남나"

출근하다가 지하철 가판에 걸린 신문 머리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냐고? 아니 천만의 말씀! 여성언론의 리더라고 하는 <여성신문>의 969호(2월 26일자) 머리기사이다. 지난 2월 20일 정부 조직개편안을 두고 여야가 한창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 타협을 이룬 것은 여성부를 존치하는 결정. 그 과정에서 가족업무는 보건복지부로 넘겨졌다. 이에 따라 2본부, 3국, 2관의 정원 187명이던 여성가족부는 2국이 없어지고 정원이 102명으로 줄어든 초미니 부처가 되었다. 이에 반발한 <여성신문>의 논조는 "여성정책과 분리된 가족·보육정책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성운동에 드리운 '가족주의'의 그늘

<여성신문>은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의 말을 인용하며 "저출산·가족변화, 돌봄 노동의 공백으로 인한 가족 위기는 여성문제가 그 핵심이며, 여성정책과 분리된 보육·가족정책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인구문제와 가족해체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정책을 책임지는 장 전 장관의 관점과 여성언론의 리더를 자처하는 <여성신문>의 논조를 보면서, 여전히 여성의 이슈를 가족 안에서 제기하는 방식에 놀라움을 느꼈다.
▲ ⓒ프레시안

처음 느낀 것은 아니다. 호주제 폐지 운동 과정에서 여연(한국여성단체연합) 중심의 여성운동은 부성혈통주의에 뿌리를 둔 가족 안에서 아동의 성씨가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고통을 부각시켰다. 이때도 '가족주의'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음을 보았다. 이는 최근의 정책 경향에서도 드러난다. 저출산고령화대책위원회는 가족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두세 자녀 이상이 있는 가족에게 출산장려금을 줬고 다자녀 가족에게 국민임대주택이나 민영공급주택에서 특별 분양 자격을 줬다. 이런 방법은 보육이라는 보살핌 노동을 가족이라는 틀로 한정시키고 결국 그 역할을 맡을 사람을 여성으로 위치지우는 발상에 근거하고 있다.

여성의 권리에 기초한 접근

<여성신문>과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의 논조처럼 가족의 위기를 여성의 위기로 연결시키는 것은 여성의 권리에 기초하지 않는 접근이다. 여성은 가족 안에서의 여성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은 이주, 장애, 성정체성, 결혼여부, 나이, 인종, 언어, 종교 등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되는 복합적인 불이익과 차별을 경험한다. 따라서 가족 내에서의 여성만이 아닌 다양한 억압의 질서에 놓여있는 여성의 경험이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는 여성정책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여성부의 정책은 '가족' 중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권리가 옹호되는 노동, 사회, 인권 정책의 틀을 짤 때, 반드시 가족주의가 갖는 배타성을 넘어서야 한다. 여성을 '가족구성원의 일원'이 아닌 '공동체의 개인'으로서 바라봐야 한다. 사회정책은 가족이 아닌 개인을 기본 단위로 짜여져야 하며, 그러한 개인은 '원자로서 나 홀로 존재'하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안'에서 성찰할 수 있는 '깨어있고 힘 있는 개인'이어야 한다. 그러한 개인 간의 연대로 이루어지는 공동체가 배타적인 소유관계를 넘어설 수 있으며 그야말로 지배가 없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부의 우선순위는 가족보육업무가 아니라 여성인권을 침해하는 질서를 밝히고, 여성인권이 옹호되는 성 평등 질서를 만드는 일에 놓여야 한다.

가족담론에 대한 성찰 필요

<여성신문>의 머리기사처럼 가족업무는 보건복지부로 가서 보건복지가족부가 되고 여성부는 홀로 남게 됐다. 이러한 정치적 합의를 보면서 여성운동 진영은 환영할 수만은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2월 20일 정부 조직개편안이 타협을 보던 날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은 성명을 통해 "차기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여성가족부의 존치가 아닌 성 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이라며 "단순히 여성부 존치가 아닌 성 평등 정책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 평등 정책은 어느 특정 부서의 위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국가정책에 골고루 성인지적 관점이 녹아들어야 한다.

이제 곧 3.8 세계여성대회 100주년이 다가온다. 세계여성의 날 100주년 3.8여성축제 기획안을 보니, 사업목표에 '호주제 폐지 시행원년을 맞이하여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문화를 확산'하겠다는 내용이 제시되어 있다. 성인지적 관점에서 가족 내 평등한 질서는 인권운동이 쟁취해야할 목표이다. 그러나 '가족주의'를 재생산하는 가족담론에 대한 성찰과 실천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여성은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가사노동과 임금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불안정한 현실, 가족을 통해서만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는 2등 시민의 위치에 머무르는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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