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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무능한' 미국 노동자가 생산성이 높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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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느리고 무능한' 미국 노동자가 생산성이 높은 이유는?

[일과 희망·30] 우리 사회의 '생산성 향상' 담론에 대해

I. 일상에서 마주하는 몇 가지 순간

그 많던 통행료 징수원은 어디로 갔을까?

자동차를 통행료 징수원 계산원 앞으로 끌고 가며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뒤를 바라본다. 거기에는 1분 전부터 33분 전까지 내 모습이 어둠 속에 앞불을 밝히며 줄줄이 서 있다. '아무리 1월 1일이라지만 통행료 징수대 하나를 통과하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다니….'

자동인식기가 설치된 '쉽게가(EZ Pass)' 차선으로 달려온 차들은 통행료 징수대를 거침없이 통과해 그들의 안식처로 달려간다. 현금만 내는 차선에 자동차들이 몰리는데도 여전히 징수대는 몇 개 열려 있지 않고 오히려 줄이 하나도 없는 '쉽게가' 차선의 수가 훨씬 많이 보인다. 1분에 100대가 이 차선들을 통과한다면, 내 뒤에 왔던 3300대의 자동차가 이미 나를 앞질러 간 셈이다.

뉴저지 호텔에서 집까지 약 210마일이니 평균 시속 60마일로 오면 3시간 30분이 걸리지만 시속 70마일로 달리면 3시간이면 되니 30분이 절약된다. 그런데 징수원이 돈 계산을 하느라 더듬거리는 징수대 한 곳에서 과속단속에 걸릴 위험을 감수하며 달려온 모든 노력은 여지없이 무위로 돌아가 버리는 셈이다. 이 여정에서 이런 징수대를 무려 네 차례나 통과해야 한다.
▲ '쉽게가' 차선이 늘어나면서 이미 많은 징수원들이 자동인식장치로 교체됐다. '그 많던 징수원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른 능력도 별로 없을 텐데.'ⓒ연합뉴스

'쉽게가' 차선은 여러 모로 위험한 과속 대신에 차라리 '쉽게가' 차선을 위한 자동인식기를 착용할 것을 나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미 많은 징수원들이 자동인식장치로 교체된 상태이다. 통행료를 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떠오르는 생각.

'그 많던 징수원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른 능력도 별로 없을 텐데.'

점점 '귀해지는' 오프라인 가게들, 이 점원들은 또 어디로 갈까?

허탈하게 문을 나선다. 한 시간 전 아이들 교복을 사러 왔다. 불 꺼진 가게 유리창에 붙은 조그만 쪽지.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잠시 영업 중지'라 쓰여 있다. 돌아가려는데 점원 하나가 문을 열어 준다. 가게 안에 있는 점원들은 손님이 왔는데도 전혀 움직임이 없다.

여러 학교의 옷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맞는 옷을 고르는 시간이 어지간히 걸린다. 암산은커녕 계산기 없이는 계산도 못하는 점원이 일일이 종이와 연필로 계산을 마치는 데 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전기가 나가 신용카드를 받지 못한단다. 현금을 가져오지 않아 하릴없이 빈손으로 가게를 나오는 길이다.

'경제학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무능한 가게는 망해야 하는데, 어째 아직도 살아남아 있을까? 독점적 지위를 누리기 때문 일거야.'

자문자답, 투덜거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오자마자 이 회사 홈페이지를 방문, 온라인으로 필요한 옷들을 10분 안에 주문한다. 멍청한 가게에서 그리고 거기를 오가는 데 세 사람이 각각 1시간 50분을 썼으니 총 5시간 30분을 낭비한 셈이다. 왜 오프라인 가게가 희귀한지 이제야 깨닫는다.

'조금 지나면 그나마도 없어질 텐데, 오늘 본 그 점원들은 또 어디로 가나?'

느리고 무능한 미국 사회 안에도 규칙은 있다

학위과정을 포함해 미국에서 10년을 보내며 이와 유사하게 답답한 상황을 수없이 겪었다. 전세계적 추세인 온라인거래가 생각보다 많이 늘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8년 넘어 다시 온 미국은 여전하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너무 생소한 장면들이다. '이렇게 무능할 수가! 어떻게 저렇게 무능한 사람을 고용한 거야.' 처음에는 하도 답답해서 바동거려 보았지만 이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닫는다.

나의 답답함과는 관계없이 그들은 그들의 원칙대로만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꽉 막힌 벽을 느낀다. 차라리 조그만 책을 하나 읽으며, 말도 안 되는 긴 줄에 끼여 내 순서를 기다리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그나마 다행스런 그리고 매우 중요한 사실은 내 차례가 되면 어느 누구도 끼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누가 나를 앞질러 서비스를 받는 일은,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전혀 없다. 줄만 서면, 내 차례는 보장되는 것이다.

"아빠, 언제나 빠져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쇼핑몰 주차장을 빠져 나오는 시각이 하필이면 영화가 끝나는 시각과 맞아 떨어져 출구를 향하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들고 있다. '무사히 빠져 나갈 수 있을까?' 서울에서 이런 일을 몇 번 겪은 적이 있는 아이들은 눈을 감고 말이 없다.

"걱정하지 마. 한 차씩 번갈아 나가다보면 생각보다 빨리 빠져 나갈 걸!" "그게 무슨 소리?"

주차장 교차점에서 자동차들이 어김없이 번갈아 질서정연하게 나가는 것을 본 아이들은 눈이 동그래진다. 어느 새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쇼핑몰에서 보았던 상품들을 평가하고 있다. "정말 항상 그렇게 하는 거야? 누구나?" "그럼. 너희들이 직접 보았잖아. 너희들도 나중에 차를 몰 때 그렇게 할 거잖아. 어릴 때 모두 이런 걸 보고 자라고 커서는 스스로 이렇게 하는 거야. 그게 이곳의 규칙이야."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아빠 이거 미국의 수도 맞아요? 무슨 수도에 이렇게 숲과 나무가 많아?"라며 어리둥절했던 아이들은 지난 몇 달 동안 이 대도시에서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이러한 말없는 조그마한 규칙을 지키는 것을 보고 놀라며, 이게 오히려 모두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양보가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다.

중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의 과학 교과서(생물학)를 보니 제약요인 또는 한계요인(limiting factors)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나의 생태계는 상호 의존하는 개체들이 일정한 공간을 공유한다. 이 생태계가 균형을 이루고 이러한 균형이 지속하자면 각 개체는 이 공간 내에서 제약요인 이내로 존재해야 한다. 하나의 개체가 이러한 제약요인을 넘어서면, 그 여파는 전체 생태계로 전파된다. 모두에게 생존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등장한다.

고등동물인 인간세계로 번역하면 일단 창의적 활동은 접어두고 생존에만 집착하여야 한다. 나의 생존에 있어 공동의 규칙이나 질서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한적한 공원이 지척에 있고, 항상 맑은 공기를 숨 쉴 수 있고,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을 맘대로 빌려 볼 수 있고, 고호와 피카소의 명작을 언제라도 공짜로 볼 수 있고, 사라 장의 바이올린과 키로프의 발레를 쉽게 볼 수 있는 곳.

과도한 경쟁과 가족과 보낼 시간조차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할애하며 부대껴야 하는 퍽퍽한 삶에 익숙해 생존을 도모하다 보니, 이런 곳에서 지내면 창의성으로 가득 찰 것 같은 착각을 해본다.

∥. 생산성에 숨은 이야기

셈도 못하는 미국 점원들이 빠릿빠릿한 우리 근로자보다 생산성이 높다?!


아래 그림은 지난 40여 년간 미국(●)과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 한 명이 만들어내는 국내총생산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두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산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허리띠 졸라매고 늦게 출발한 토끼처럼 빨리빨리 숨차게 달려왔으니까 차이가 줄어들었을 거라 믿고 싶지만 미국과 한국 사이에 존재하는 생산성의 격차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난다.
▲ ⓒ프레시안

이런 일이! 그 셈도 못하는 점원들이 도대체 어떻게 우리같이 빠릿빠릿한 근로자들보다 뛰어나단 말인가? 초등학교부터, 요즘은 유치원생까지, 학교 공부도 모자라 온갖 학원을 드나들고, 그 신나는 음악도 신비로운 미술도 포기하고, 밤을 밝히며 영어공부에 수학문제를 풀며 인적자본을 쌓아온 우리 근로자들이 어떻게 학교 공부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지낸 저들보다 못하단 말인가? 어째 그 격차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 것인가? 믿기 어렵다.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내려면, 여기에서는 생산성 격차를 줄이자면, 과거와 현재를 직시해야 한다. 몇 가지 오해부터 풀고 나면 이러한 믿기 어려운 답답함은 일단 풀린다.

기계로 낙엽치우는 미국과 빗자루로 쓸어야하는 한국
▲ 셈도 못하는 미국 점원들이 도대체 어떻게 우리같이 빠릿빠릿한 근로자들보다 뛰어나단 말인가?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미국 근로자들은 엄청난 장비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연합뉴스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미국 근로자들은 엄청난 장비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는 노동(인력, 인적바본) 뿐 아니라 자본(기계나 장비 등)이 필요하다. 셈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바코드를 만들어 인식장치에 다가가기만 하면 셈이 되고 심지어는 재고 관리까지 한 번에 가능해진다.

더 나아가 이제는 점원이 필요 없는 '자기셈(self check-out)창구'가 늘어나고 있다. 길거리 낙엽을 치우는 단순노무자도 장비를 잔뜩 싣고 온다. 송풍기에서 나오는 강한 바람으로 낙엽을 한 곳으로 몰고,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인다. 우리는 아직도 새벽부터 하루 종일 빗자루를 들고 다니는 환경미화원을 목격할 수 있다.

자본이 부족하였던 우리는 장비나 기계보다는 인력에 의존하였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성장은 상대적으로 거의 몸으로 때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기업은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여 왔고, 이러한 버릇은 80% 이상의 고졸자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초고등교육사회로도 이어져 임금을 둘러싼 충돌을 빚게 되었고 값싼 노동력을 찾는 기업은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외국인근로자를 찾게 되었다.

둘째 과연 한국 학생이 미국 학생보다 많은 공부를 하는 것일까? 물론 우리 아이들이 더 많은 시간을 학습에 투입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학습 내용을 보면 과연 학습시간 대비 전반적 능력향상은 우리가 뛰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주저하게 만든다. 또한 일부 상위층 학생들은 우리 학생들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학습을 한다.

그러니 정작 창의적 학습을 시작해야 할 고등교육 단계에서는 과로효과가 나타나 오히려 학습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다. 반면 미국 학생들은, 대학원 박사과정을 회고해 보면, 대학 과정에서 화장할 시간도, 술 마시며 사회를 논의할 시간도 없이 열심히 공부한다. 이런 기초를 바탕으로 대학원에 오면, 우리랑 비교할 때, 처음에는 바보 같은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우리를 앞서가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끝으로 숫자놀이를 해보자. 모든 사회에서 상위 1%가 사회를 선도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우리는 약 45만 명 정도. 미국은 인구가 6배 정도 되니까 사회 선도 인력이 270만 명이나 된다. 그것도 모자라 세계 각국의 인재들을 끌어들여 그 중에서도 우수한 두뇌를 골라 사거나 빌려 쓴다.

III. 미래를 위한 우리의 반전 카드는?

미국은 20세기 말 소위 정보통신을 주축으로 하는 신경제를 주도하여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한층 높였다. 최근에는 학교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교육개혁 바람이 불고, 하버드대학이나 예일대학은 엄청난 장학금을 추가 지원하는 등 고등교육의 수준을 한층 높이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 창의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21세기 창의사회를 맞이하는 노력들이다.

이미 7년이 지나갔건만, 우리는 준비된 21세기를 맞이하는 노력을 얼마나 기울여 왔는지 걱정이 앞선다. 유치원생 때부터 보습학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대학에 가려고 고만고만한 문제를 놓고 문제풀이를 외우고 또 외우고, 수능문제 하나를 놓고 한 나라가 벌컥 뒤집히고, 교과서 한 권 제대로 사서 충실히 읽지 않고 대학문을 나서고, 기업들은 여전히 값싼 노동력만 찾고, 그 많은 대졸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가장 혁신적이어야 할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 등 다양한 이유로 투자처를 찾지 않고, 한쪽은 제약요인을 넘어서 생존에만 매달리게 되고 다른 한쪽은 텅 비어 모두가 떠날 기회만 찾고….

이제 창의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이러한 추세를 반전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묘안은 없다. 일단 교육에서 방향을 찾는 것이 근본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단순반복 주입식 교육에 모든 국민이 목을 매고 사교육에 가계지출의 상당 부분을 출혈하는 고비용 저효율 균형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교교육만으로도 충분히 지적 능력을 키우고,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갖는 가운데 창의성과 예술성을 신장시키며 최소한의 사회질서를 지키는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모든 학생과 국민의 유인체계를 전환시킬 수 있는 교육개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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