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 장관의 사퇴 요구가 점차 거세지면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골머리를 썩고 있다.
이라크전 실패 책임과 국방부 내 의사소통 문제 등으로 지금까지 총 7명의 예비역 장성들이 '럼즈펠드 사퇴'를 촉구하며 부시 행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부활절 휴가 중 이례적으로 '럼즈펠드 경질은 없다'며 이같은 주장을 일축하고 나섰지만 미 정치인들까지 퇴역장성들의 움직임에 가담하고 있어 '럼즈펠드 사퇴 공방'은 한동안 워싱턴 정가를 시끄럽게 할 전망이다.
***퇴역장성에 정치인들까지 '럼즈펠드 사퇴'에 가담**
차기 민주당 대선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는 빌 리처든슨 뉴멕시코 주지사는 16일 미 〈CBS〉 방송에 출연해 "이라크전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용감한 미국인 남녀 2300명 이상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이들 전직 장성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며 "나는 그 장관(럼즈펠드)이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리처든슨 주지사는 "우리 군은 현재 깊은 절망에 빠져 있다"며 "럼즈펠드 장관이 그들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것이 우리가 이 수렁에 빠져 있는 이유"라며 럼즈펠드 비판에 목소리를 높였다.
다이안 파인스타인 민주당 상원의원(캘리포니아주)도 〈CNN〉에 출연해 "럼즈펠드의 문제는 그가 너무 완고하고 너무 단호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웨슬리 클라크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사령관도 지난 15일 럼즈펠드 사퇴 요구 행렬에 동참했다.
클라크 전 사령관은 이날 럼즈펠드 장관과 딕 체니 부통령 두 사람이 미국을 이라크전에 이끈 장본인들이라며 "이라크에 대한 침공은 테러와의 전쟁과는 무관한 것으로 외교적 해결 이전에 미국을 전쟁으로 이끈 것은 비극적인 실책일 뿐만 아니라 전략으로도 큰 실수"라고 주장했다.
클라크 전 사령관은 "일선 지휘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지휘관이 필요하다는 것이 군 장성들의 요구"라며 "그러나 이런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럼즈펠드 장관은 신뢰성을 잃었으며 이제는 새 지휘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4일에는 지난 2004년 이라크에서 제82공수사단을 지휘했던 찰스 스워넥 예비역 소장과 존 리그 예비역 소장도 럼즈펠드 비판에 가담했다.
***백악관ㆍ국방부 사태 진화에 부심**
백악관과 국방부는 확산되고 있는 럼즈펠드 경질 요구 진화에 부심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연일 럼즈펠드에 대한 지지를 밝히며 '경질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럼즈펠드 장관의 열정이 넘치고 집요한 리더십은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꼭 필요한 것"이라며 전적으로 럼즈펠드 장관을 지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16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14일 영향력 있는 퇴역 장성들과 민간 분석가들에게 한 페이지 분량의 메모를 보내 럼즈펠드 장관이 여러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국방부는 이 메모를 통해 "미군 지도자들은 국방부의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전례가 없을 정도로 관여하고 있다"며 럼즈펠드 장관은 지난해 초부터 합참과 139차례, 주둔지 사령관들과는 208차례 회동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럼즈펠드 장관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퇴역 장성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또 국방부는 현재 미국에는 8000여 명의 현역 및 퇴역 장성이 있다고 밝히며 최근 일련의 움직임이 소수의 퇴역 장성들에 의해 제기된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미 국방부가 여론 형성 영향력을 가진 퇴역 장성들에게 이같은 메모를 보내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지만 퇴역 장성들이 동료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도록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럼즈펠드의 미래는?…일각에선 다음 국방장관 예측까지**
백악관과 국방부가 이처럼 사태진화를 위해 백방으로 애쓰고 있지만 파문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소위 '반란'을 일으킨 퇴역 장성들에게 '나도 공개적으로 럼즈펠드 경질을 주장하는 대열에 합류할 수 있겠느냐'는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며 이번 파문이 쉽게 중단될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도 16일 이번 파문이 지난 1951년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해임시킨 이래 군과 행정부 간에 공개적으로 벌어진 가장 심각한 대결이라고 말했다.
홀브룩 전 대사는 그러나 이날 〈워싱턴포스트〉에 게재한 '군부 반란의 이면'이라는 칼럼을 통해 이번 퇴역장성들의 반란은 퇴역 장성들이 아직 군에서 활동 중인 동료들이나 부하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고, 현역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대신 말하고 있으며 목표가 단지 럼즈펠드 장관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트루먼-맥아더 대립 사태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홀브룩 전 대사는 또 "럼즈펠드 외에도 이라크 및 아프간 실책에 관여한 사람들이 그대로 권력을 쥐고 있고 일부는 현직 군인"이라며 "과거의 실책이나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미국이 새로운 국방장관을 긴급히 필요로 한다는 이유 때문에 럼즈펠드의 교체는 저항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이 딕 체니 부통령과 함께 자신의 집권에 기여한 '일등공신'인 럼즈펠드를 쉽게 경질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워싱턴 정가에서는 장기적으로는 부시 대통령이 여론의 압력에 굴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부 진보단체와 민주당 일각을 넘어 네오콘과 공화당의 일부도 럼즈펠드 사퇴 요구에 가담하고 있어 이같은 압박을 부시 대통령이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얘기다. 이미 미 주요 언론과 학술단체들은 후임자의 후보군을 거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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