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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신뢰 프로세스', 본격 시험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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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신뢰 프로세스', 본격 시험대 올랐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포커스'] 제25호 <1>



우리 사회에서 대북정책은 그 속성상 높은 수준의 국민적 지지도를 얻기가 용이하지 않다. 이른바 보수와 진보를 모두 만족시켜 주는 정책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그런데 출범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문제를 둘러싸고 취한 정책에 대해서 긍정적 평가가 부정적 평가보다 훨씬 많다. 흔치 않은 현상이다. 물론 보수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나 이는 소수의 의견에 불과하다.

다만 초기에는 다소 엇갈리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 4월에 북측이 근로자들을 철수시키는 조치를 취하자 우리도 남측 주재원 전원 철수라는 초강수로 대응하고, 6월에 남북당국 간 회담 서울 개최가 합의되었지만 북한 대표단의 격(格) 문제를 지적해 결국 회담이 결렬되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우리 정부가 북한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며, 북한과의 기싸움에서도 우리가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켰으며, 과도한 원칙주의이며, 소모적인 기싸움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지난 8월 14일 개성공단 실무 7차 회담에서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 남북이 개성공단 정상화에 전격적으로 합의한 이후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관련 정책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사실 남북당국은 개성공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회담을 열었지만 입장차가 워낙 커 타협점을 찾는 데 거듭 실패했다. 핵심 쟁점은 개성공단 사태의 책임 소재와 재발방지책이었다. 그런데 지난 14일 회담에서 남북은 절충점을 찾아 합의서 1항에 "남과 북은 통행제한 및 근로자철수 등에 의한 개성공단 중단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명기했다.

▲ 남북은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7차례의 실무회담을 가진 끝에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했다. 김기웅(왼쪽) 남측 수석대표와 박철수 북측 수석대표가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개성공동취재단

물론 일부에서는 이러한 합의서 1항의 주체가 '북'이 아니라 '남과 북'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북한의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 것이 이번 합의에서 가장 미흡한 부분이라고 비판한다. 우리가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북측을 더 압박하는 전략을 취해야 했다는 아쉬움도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설명대로 개성공단 중단사태의 원인이 되었던 것은 통행제한, 근로자철수 등이고, 재발방지를 위해 필요한 것도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재산의 보호 등이라는 것이 합의서에 나타나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주체를 명기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보아도 북측이 주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게다가 남북공동위 설치 문제, 공단 국제화 문제, 피해보상 문제에 관한 내용, 나아가 개성공단 내 인터넷 사용과 휴대전화 사용까지 합의서에 포함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즉 내용 면에서는, 우리 정부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주장했으나 북측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것을 전격적으로 그리고 대폭 수용한 것이다. 요컨대 남과 북은 형식과 내용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대타협을 이루어냈다고 볼 수 있다.

개성공단의 재가동 시점을 둘러싼 타협도 눈에 띈다. 당초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의 재가동 시점은 출입 및 체류, 투자자산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이후'라는 입장을 견지했고, 이에 대해 북측은 가능한 기업부터 즉시 재가동이라는 입장으로 맞섰다. 그런데 이번 합의에서는 "남과 북은 안전한 출입 및 체류, 투자자산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며 개성공단 기업들이 설비정비를 하고 재가동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한다"며 서로의 입장을 병기하는 것으로 절충점을 찾았다.



북한이 종전의 태도를 바꾸어 남한에 대해 매우 유화적인 자세로 나오고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 큰 양보를 하면서 공단 정상화에 합의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지적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국 변수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올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정부가 보인 북한에 대한 비우호적 태도는 북한정부가 위협을 느낄만한 것이었고, 아울러 중국은 북한에 대해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강력히 권유했다.

게다가 미국 정부 또한 남북관계의 진전없는 북미대화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줄곧 피력해 왔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북·중 관계 개선 및 대미 협상을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불가피했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개성공단 정상화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또한 김정은 시대 들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각종 특구 · 개발구 사업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해외자본 유치가 최대 관건인데 이는 개성공단 정상화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측면도 무시 못할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정책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가장 큰 것은 이른바 원칙과 유연성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우리 정부가 지난 6개월 동안 일관성 있게 원칙을 견지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것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8월 14일 실무자회담에서 보여준 대담한 유연성에 무게를 둘 것이다. 현상적으로 보면 우리 정부가 지난 6개월의 초반에는 원칙을 강조했으며, 후반에는 유연성을 발휘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이번의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 경험은 남북한에 귀중한 자산이자, 희망의 미래를 위한 초석이다. 남북 모두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대화를 이어갔으며, 서로의 입장을 한 발짝 양보하는 태도를 통해 타협점을 찾음으로써 신뢰 구축의 기반을 마련했다. 아울러 개성공단 정상화에 국한된 회담이었지만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계기를 마련했다. 게다가 남북관계가 그동안의 오랜 경색국면에서 탈피해 대화모드로 전환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남북 간에 다양한 현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실제로 가장 먼저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논의에 들어갔다.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도 조만간 논의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가동을 위한 주춧돌이 놓여진 셈이다.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정리된 상태에서 지난 21일 공개된 것도 이러한 분위기의 반영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제대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당장 중요한 것은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 내용이 순조롭게 이행되어 개성공단이 정상적으로 제2의 출발을 할 것인지 여부이다.

사실 현재는 개성공단 정상화를 향한 첫걸음을 뗀 데 불과하다. 남북이 정상화에 전격 합의했지만 이는 큰 틀에서의 원칙적 합의일 뿐, 민감한 현안을 세부적으로 다루는 '메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특히 새롭게 구성될 남북공동위원회에서 유사 사태 재발 방지, 남측 인력 신변안전보장, 국제화, 그리고 피해보상, 3통문제 등 산적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측 수석대표가 말했듯이 합의서 체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남북공동위 구성 방법부터 시작해 공단 재가동 시점, 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방안 등 여러 가지 민감한 구체적 현안들을 다루는 과정에서 이견이 드러나고 논쟁과 신경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제야말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 개성공단 사태 일지

2013.4.3 북한, 개성공단 통행 제한 조치 실시, 남측으로의 귀환만 허용

2013.4.8 북한, 개성공단 가동 잠정 중단 및 근로자 전원 철수 발표

2013.4.26 우리 정부, 개성공단 잔류인원 전원 귀환 결정 발표

2013.5.3 개성공단 잔류인원 귀환 완료, 잠정 폐쇄 상태 돌입

2013.6.6 북한, 남북당국간 회담 제의

2013.6.9 남북당국 실무접촉서 12~13일 서울에서 당국간 회담 개최 합의

2013.6.11 수석대표의 '급'(격) 문제로 남북당국간 회담 무산

2013.7.3 북, 개성공단 기업인 및 관리위원회 방북 허용 공식 채널 통해 발표

2013.7.4 남북, 실무회담 합의

2013.7.6~7 남북당국간 실무회담(1차 회담), 개성공단 재가동 원칙적 합의

2013.7.10 남북당국간 개성공단 2차 실무회담

2013.7.10~11 북, 금강산관광재개 및 이산가족 상봉 실무회담 개최 제의, 우리 정부 이산가족 상봉 회담만 수용. 북, 이산가족 상봉 회담 보류 통보

2013.7.10~11 개성공단 입주 기업, 설비점검차 방북

2013.7.12 개성공단 입주 기업, 완제품 및 원부자재, 설비 반출 시작

2013.7.15 남북당국간 개성공단 3차 실무회담(우리측 수석대표 교체)

2013.7.17 남북당국간 개성공단 4차 실무회담

2013.7.22 남북당국간 개성공단 5차 실무회담

2013.7.25 남북당국간 개성공단 6차 실무회담

2013.8.7 우리 정부, 개성공단 경협보험금 지급 결정 북한, 개성공단 정상화 전제 당국간 7차 회담 제의

2013.8.14 남북당국간 개성공단 7차 실무회담,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5개항의 합의서 체택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3년 9·10월호(제25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박근혜정부 6개월 평가 : 기대와 우려'입니다.

* 원제 : 개성공단 사태와 남북경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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