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발', 실로 다양한 것들에 적용되겠지만 일본 만화 단행본일 경우 그 어감의 폭이 한층 팽창한다. 이미 부실한 해적판이나 TV·극장판 애니메이션을 통해 내용을 알고 있지만 아직 완벽하게 맛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충족시켜 준다. 또 외부 자극을 앞서 받아들였던 이들에게는 금지된 것을 몰래 즐겼던 역사를 떠올리게 할 것이고, 좀 더 어린 독자들에게는 최근작들의 레퍼런스 격인 만화가 시대를 단숨에 건너 뛰어 오는 듯한 느낌을 줄 것이다.
▲ <표류 교실>(전 3권, 우메즈 카즈오 지음, 장성주 옮김, 세미콜론 펴냄). ⓒ세미콜론 |
우메즈는 <소용돌이>의 이토 준지가 존경했고 그 작풍을 계승하려 노력한 대선배였으며 이 작품은 2002년 구보즈카 요스케 주연의 드라마 <롱 러브레터 표류 교실>의 원작이기도 하다. 즉, 일본에선 내내 '살아 있는' 작품이었다. 우리에게도 그럴까? 이 작품과 작품이 지나 온 내력을 소개하며 그 가치를 검증해 보고자 한다.
끔찍한데 뭔가 웃긴 호러 만화
<표류 교실>은 도쿄의 '야마토 초등학교'와 그 안에 있던 863명의 사람들이 풀 한 포기 없는 미래의 지구에 떨어져 한정된 자원으로 안팎의 적과 싸우며 살아남는다는 줄거리다. 이들의 '표류'가 정체불명의 지진으로 시작되고 진행되는 내내 산사태, 화산 폭발 등이 덮쳐 오기 때문에 재난·모험물, 서바이벌물로 볼 수 있으며, 시공간 균열 후 미래로 이동한다는 설정에서 SF 장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작화 스타일이나 주인공들이 고립된 상황에서 펼치는 행위로 봤을 때 호러물에 가깝다.
이들이 이동한 미래가 정확히 언제쯤인지 나와 있지 않지만 1972년으로부터 몇 십 년~백 수십 년 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3권 초반에 그들이 구(舊) 도쿄 역을 탐험하는 장면에서 10만 엔짜리 지폐가 발견되고 "틀림없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운 미래일 거야"라는 주인공의 대사가 나온다. (1985~86년 출간된 소설판 <표류 교실>에는 이 미래가 1985년으로부터 137년 후인 2122년으로 특정되어 있다.) 학교 바깥은 사막과 비슷한 상태고 하늘은 스모그로 덮여 어두우며 오후 세 시만 되어도 깜깜해진다. 전기나 수도 등은 모두 끊겨 있으며 비가 내리지 않는다. 또한 현생 인류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추악한 모습으로 진화한 미래 종족이 등장한다.
두꺼운 책 세 권은 단숨에 읽힌다. 그 재미는 먼저, 넘치는 긴장감에서 오는 것 같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결코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갑자기 외부와 단절된 채 폐허로 이동했는데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인구의 대부분은 최고학년도 열세 살인 '초딩'들이고 식량과 물은 부족하다. 여기에 자연 현상, 이(異) 생명체라는 외부의 적, 미쳐가는 아이들, 전형적인 악인의 공격이 가세한다.
<표류 교실>은 이 모든 상황이 연달아 닥치거나 동시에 겹쳐 오기 때문에 보는 내내 흥분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 한 가지 미션을 클리어했다고 웃거나 쉴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다음 시련 상황을 전개한다. 책장을 휘리릭 넘기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눈썹이 모두 미간을 향해 극적인 경사로 기울어져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웃는 표정이라곤 미쳐서 웃을 때 외엔 거의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보는 사람도 작중 인물들과 함께 공포에 질려 있는 표정을 짓게 된다.
또한 표현에 거침이 없고 꼬임이 없다. 아이들이 생각할 법한 원초적인 공포 상황과 해결법이 등장하기에 머리가 확 뚫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형적인 악인이나 '괴물 벌레', '미래 ' 같은 단순하고 기초적인 적(敵)이 극한까지 드래그된 형태로 등장한다고 할까. 거기에 대처하는 아이들의 협력과 공격도 참 극단적이다.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아이들은 "꺄아악" "우아악" 소리를 지르고 우당탕탕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러다 주인공 무리가 상황을 파악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설명하면 그때부터 피 튀기는 혈투가 벌어진다.
거기서 벌어지는 폭력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저리 가라다. 교사가 쓰러진 아이들을 향해 차를 돌진시키는 초반 장면의 충격은 곧 아이들이 아이들을 향해 저지르는 폭력으로 잊힌다. 1학년들이 패닉에 빠져 집단 자살을 하기도 하고, 비를 내리게 하겠답시고 십자가에 친구를 매달아 불을 피우며, 태워 죽일 목적으로 사람에게 석유를 뿌리거나 서로 두 패로 나뉘어 그야말로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 사고든 의도적 살인이든 아이들 만화에서 아이들은 결코 끔찍하게 죽지는 않는다는 '아름다운' 설정, 동심이라는 기본 문법에 익숙해져 있다면 경악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묘하게 웃긴다. 웃을 틈을 주지 않는다면서 웬 말? 이 상황에 모조리 감정 이입하면 그렇지 않겠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독자다. 이렇게 '빡 센' 상황 속에 툭 튀어나오는 과장되게 일그러진 표정과 명랑 만화 풍 액션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거기다 모든 미스터리의 해결이 투박한 기적으로 이뤄진다는 점, 그 설명이 작중 인물의 쩌렁쩌렁한 대사로 소화된다는 점 역시 현실감을 깨면서 코믹함을 준다. (삐죽삐죽한 말풍선은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악역으로 나오는 급식 납품업자가 괴생물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이들을 '가미카제'로 쓰는 장면, 주인공이 마지막 힘을 내겠다며 "엄마, 인스턴트 라면을 한 조각 먹을게요"라 말하는 장면은 끔찍하고 비장한데도 뭔가 코믹하다.
작가의 스타일이 원체 괴기스러운 동시에 우스꽝스럽기 때문이겠지만, 탄생으로부터 지금까지 40년의 시차가 주는 효과이기도 하다. '올드'한 그림체 속에 과도하게 진지한 아이들. 각종 2차 창작물과 인터넷 패러디에 익숙한 21세기 독자들은 이것들에서 어떤 부분을 비틀면 '짤방'으로 만들 수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캐릭터의 매력이나 '감동' 면에서는 판단 유보, 혹은 다른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 같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남기를 바라고 또 그것을 실행하는 캐릭터가 '초등학생' 중에서 나오려면 상당한 비약이 있어야 한다. 주인공 다카마쓰 쇼는 겨우 6학년인데 힘도 세고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며 무엇보다 사람을 이끄는 데 천재성을 갖췄다. 그밖에 쇼에게 놀라운 헌신을 보이는 사키, 현대와 교신하는 아유미, 천재 소년 가모, 의료 경험 제로인데도 수술을 해내는 야나세 등 주연급은 모두 설명이 어려운 행동을 하거나 특전사 수준의 장기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 상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며, 서바이벌을 위한 장치로 복무하고 있다고 보면 그 역할 배분(?)이 자연스럽다.
모성애, 이성애 비슷한 감정, 우정, 인류애, 권력욕, 질투, 화해 등… 공격의 종류만큼 다양한 인간적 관계와 감정이 망라되지만 섬세한 표현을 기대해선 안 된다. <표류 교실>의 감동은 그보다 도저히 살 수 없을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삶의 씨앗을 뿌리는 인간의 고군분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40년 후를 예언하다?
1960년대 고도성장을 이룩한 일본은 1970년대, 경제적 풍요와 과학기술 만능주의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그 그늘로 심각한 공해 문제와 인간의 소외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는 현재까지 일본의 사회 운동을 특징짓는 범시민적 환경 운동을 잉태하는 계기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문학·영화 등 예술 분야에서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흐름을 조성하는 배경도 됐다. <표류 교실>이 그런 흐름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질주하는 문명이 언젠가 폭주하여 인간을 공격하게 되리라는 '광산 속 카나리아' 같은 분명한 경고를 담고 있다.
친구를 지켜주는 도라에몽이나 착한 원자력 소년 아톰, 과학 선진국 일본의 청사진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한 오사카 만국박람회 등 당시 소년소녀가 즐기고 또 배웠던 아름다운 미래상과도 궤를 달리 한다. 3권에는 그 시대 아이들의 '천국'인 놀이동산이 등장하는데, 그곳은 완벽하게 폐허가 된 채 자연의 잔혹함, 문명의 무상함을 더욱 혹독하게 가르쳐줄 뿐이다.
2013년에 한국 독자에게 배달된 <표류 교실>은 어떤 부분에선 반쯤 들어맞은 예언처럼 느껴진다. 40년 전 소년들에겐 공상에 불과했을 파국의 시나리오,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미래가 꽤나 구체적인 형태로 우리 앞을 스쳐지나갔거나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3권 초반, 외눈박이 미래 생명체가 인간이 어떻게 종말을 맞이하는지 설명해주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보자. (스포일러에 주의!)
"세계 각지에 대지진 (…) 태평양 연안에 거대 쓰나미 또 덮쳐! (…) 현재 간토 지방은 대지진 발생 위험 연대에 들어와 있습니다….
자살 증가! 각지에서 물 부족 사태-무분별한 벌목이 원인. 지하수 고갈. 마침내 바닥난 먹을거리! 고려장 부활! (…) 남회귀선과 북회귀선을 중심으로 이어진 사막지대 두 줄의 폭이 서서히 넓어지는 현상 발견! 일본도 규슈 남단이 사막지대로! (…)"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그 전후로 전개된 일본 사회 문제의 심각화는 위에 인용한 작중 슬라이드 내용과 거의 겹친다. 앞서 이 작품에서 아이들이 당도한 미래가 "생각보다 근미래"라는 점을 밝혔는데 우리는 그 상상이 뻗은 미래 범위에 이미 와 있거나 거의 근접해 가고 있는 셈이다. 40년 전 극단적으로 묘사한 미래가 한층 현실감 있게 읽힌다는 사실 때문에 <표류 교실>의 공포는 배가된다.
이와 반대로 경고나 공포보다는 인류애,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 등 밝은 분위기로 읽힐 수 있는 가능성도 크게 열려 있다. 드라마 <롱 러브레터 표류 교실>(2002)이 좋은 예다. 드라마는 '끔찍한' 장면은 되도록 많이 삭제하고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인간의 조건임을 강조했다. 원작에서는 긴장을 높이는 대결 구도였던 쇼와 오토모의 관계가 따뜻한 친구 관계로 바뀌고, 교사들의 러브라인이 형성되며, 100퍼센트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경고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는 메시지가 무한 반복되는데 뭔가 요즘 유행하는 '힐링'도 떠오른다.
이렇게 전혀 다른 분위기의 리메이크가 가능한 것은 원작에 모성애, 친구를 지키려는 마음, 절망 속에서 조직을 만들고 종교를 만들어 자원과 정신을 관리하고자 하는 인간의 적응 본능 같은 고전적인 테마들이 그만큼 풍부하고 잘 조율되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테마 가운데 일본이라는 공간에 국한된 변치 않는 공포의 원천 '지진( 및 화산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나중에는 사건 발생이 자연 현상으로서의 지진이 아님이 밝혀지지만 그래도 '땅이 흔들리고 내가 서 있는 공간이 어딘가로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공포는 직접적 위험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로서는 일상적으로 떠올리기 어려운 감각이다. 이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더더욱 많은 작품에 무한한 영감을 제공하는 젖줄이 되기도 했다.
공포의 원형 '지진'으로 시작하여 결과적으로 맞는 예언이 되고 만 현실감 있는 위협이 줄줄이 이어지는 만화이지만, 결말은 그래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핵발전소 사고 이후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 미래 인류(?)인 독자들은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에 일말의 미안함을 느낄 지도 모른다. 작가 우메즈도 2011년 8월 인터뷰에서 "저도 인류에 속한 일원이다 보니 밝은 미래를 기원합니다만, 이대로라면 어렵지요"라고 말했다.
우메즈 카즈오, 더 보고 싶다
1960~70년대 공포 만화 붐을 일으키고 1995년 절필 이후 지금은 연예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는 우메즈 카즈오. 그는 좀 괴짜 할아버지인 것 같다. 그는 매체에 나올 때마다 늘 빨간 색과 흰 색의 줄무늬 옷을 입고 다닌다. 해적을 동경하기 때문이란다. 이와 같은 색상 배합의 외관을 지닌 도쿄 기치조지의 자택 겸 작업실이 2007년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 요구 소송에 휘말리고 TV 와이드쇼에 나오기도 했다. 법원이 청구를 기각함에 따라 '마코토 하우스'라는 이름의 자택은 무사히 명을 유지해 기치조지의 명물이 됐다.
<표류 교실> 책날개에 명시된 대로 그는 자동차를 매우 싫어하여 전철을 이용하거나 그냥 걸어 다닌다. 또 영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 등 5개 국어의 NHK 라디오 강좌를 수년간 녹음해 계속 듣는 등 '어학 학습' 괴짜이기도 하다.
괴짜 같은 모습만 나열했지만 그에겐 '거장'이나 '신' 등의 칭호가 따라다닌다. 동시대 만화가를 칭찬하지 않기로 유명한 데즈카 오사무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칭찬한 유일한 작가라 하며, 1960년대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해 공포 만화 붐을 일으키고 많은 후배 크리에이터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이토 준지를 통해 경악하는 표정이 웃음과 공포를 동시에 주는 경험에 익숙한데, 이 이토가 작품 후기마다 감사를 전하고 스승으로 모시는 이가 바로 우메즈다. 일본 최고의 호러 만화상이 그의 이름을 딴 '우메즈 카즈오 만화상'이며, 이토는 <토미에>로 이 상의 가작을 받으면서 프로 데뷔했다.
우메즈는 1955년 '숲의 형제'로 데뷔한 이래 <표류 교실> 외에도 <고양이눈 소녀>, <뱀 소녀>, <오로치>, <세례>, <나는 신고>, <14세> 등 많은 작품을 그렸다. 공포 만화가로 이름을 떨쳤지만 본격 개그 만화부터 소녀 만화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했다. 또한 그의 전성기 때 '미소녀 작화'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하는데… 사실 여기까지 쓰니 찔린다. <표류 교실> 이전에 국내 정식 발매된 작품이 <무서운 책>(전 2권, 시공사 펴냄)밖에 없고 그마저도 접하지 못했으니 모두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표류 교실>을 두고서도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언급과 그렇지도 않다는 언급이 혼재한다. 세미콜론은 '네이버 책-출판사 추천 도서'에 이 책을 소개하며 "이 작품이 많이 팔린다면 우메즈의 다른 작품도 한국어판을 볼 수 있다"고 말했는데, 아무래도 이 호소에 숟가락을 올릴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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