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라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머천다이저(Merchandiser·상품 기획자)의 약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온라인 서점 MD들은 신간을 어디에 놓을지 어떻게 노출시킬지를 결정하고, 나아가 맞는 책을 맞는 독자와 만나게 하도록 힘씁니다. 웹에서의 책 고르기에 효과적인 동선을 짜 준다고 할까요. "책을 팔기 위해서라면 뭐든지(M) 다한다(D)"는 의미라는 우스개도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책을 구입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진 만큼, 책의 생산(저자·번역자·출판사)과 독자 사이를 이어주는 유통 채널로서 이들의 역할도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역사는 10년 조금 넘은 신생 직종이지만 책이 오가는 자리에 서서 그 교통량과 흐름을 '조망'해 줄 수 있다는 특권(?)으로 이제는 많은 매체에서 이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books'는 이들을 통해 2012년과 2013년을 잇는 출판계 흐름을 짚어 보았습니다.
업계 1위이자 다른 문화 상품 판매 포털로서도 기능하는 예스24, 그리고 진짜 책 좋아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튼실한 서점 알라딘. 두 회사 네 명의 MD에게 2012년 결산과 2013년 새해 전망에 대한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알라딘 인문·사회 분야의 박태근 MD, 해외 소설 및 예술 분야의 최원호 MD, 예스24의 경제·경영 자기관리 분야의 박수호 MD, 국내 소설 분야의 김미선 MD 네 사람이 연말연시 바쁜 가운데에서도 성실한 답변을 보내 왔습니다. '프레시안 books'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그 답변을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편집자>
안철수 찍고 레 미제라블?
프레시안 : 2013년 책 동네에 풍향계를 띄워보기 위해, 먼저 지난해가 어땠는지 충실히 갈무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해의 출판계를 압축하는 열쇳말 다섯 개씩 꼽아달라는 질문을 드렸는데요. 네 분 모두 거론한 열쇳말은 바로 안철수였습니다.
▲ <안철수의 생각>(제정임 엮음, 김영사 펴냄). ⓒ김영사 |
김미선(예스24 국내소설 MD) : 맞습니다. 당시 저희 서점(예스24)에서는 일판매량이 1만 부를 뛰어넘었어요. 제가 MD로 일하고 나서 처음 보는 일판매량이었지요.
최원호(알라딘 해외소설·예술 MD) : 외국소설 MD로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어요. 그가 출마 선언할 때 윌리엄 깁슨을 인용한 거 말이에요. (웃음) 저는 그 인용구를 듣는 순간, 앞으로 이 나라에서 죽을 때까지 대통령 후보에게서 SF 작가의 이름을 들을 일이 더는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판매가 오른 것도 오른 거지만 그보다는 뭐랄까, 아주 멋진, 다시없을 경험이었어요. 그런데 그가 정말로 깁슨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웃음)
프레시안 : 그 밖에 두 분 이상이 꼽은 열쇳말이 '선거', '고전', '힐링', '그레이'입니다. 그 중 고전이 의외였어요.
박수호(예스24 경제경영, 자기관리 MD) : 고전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지요. <논어>나 <손자병법> 같은 동양 고전은 자기계발 관점으로 재해석되어 인기를 끌었고, 문학 고전은 동시대 작가들의 상대적 부진 속에서 주목을 받았어요. 12월부터 유행 중인 <레 미제라블>(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민음사 펴냄)이 정점을 찍었지요.
박태근 : 맞아요. 전집으로 나오는 소위 '세계문학'이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시작은 <조선일보> 파워클래식에서 소개되어 판매가 급증한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펴냄)였던 것 같아요. 또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 300권을 돌파했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도 100권째 책을 세상에 내놓았죠. 이 경기의 승자는 잠정적으로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이 아닐까 합니다. 출판계에서 여러모로 주목할 사태라고 생각해요.
프레시안 : '힐링'은 결코 수그러들지 않네요.
김미선 : 예전에는 목사님, 수녀님이 출간한 책들이 주목받았었는데요. 2012년에는 특히 스님들의 도서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쌤앤파커스 펴냄) 같은 거죠.
최원호 : 위로와 격려의 코드는 포맷을 바꿔가면서 유지되고 있어요. 따끔한 충고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 내려놓으라는 것 같기도 하지만 공통점은 하나예요. "아무도 죄인은 없다"는 거죠. 누구를 의심할 필요 없이 자신만 닦달하면 되니 정규교육 받은 친구들에게 이만큼 편안한 알리바이도 없을 거예요. 이 수요는 당분간 결코 수그러들지 않을 거고, 힐링 도서는 거기 맞추어 공급될 겁니다.
ⓒ프레시안 |
① 그 밖에 중요 열쇳말은… ▲편집자 : "철학자 강신주가 편집자의 이름을 표지에 내건 일에서부터 시작된 '편집자론'이 <편집자로 산다는 것>(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 논쟁과 작가 이지성의 발언을 거치며 끝없이 이어졌고 트위터 내 익명 계정인 '출판사 옆 대나무숲' 사태에까지 이른 한 해였지요." (박태근) ▲원작소설 : "원작 소설이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 인데요. 지난해에는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들이 큰 흥행을 이끌어내면서 원작의 판매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가까운 예만 해도 <두 도시 이야기>(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펴냄), <레 미제라블>이 있죠." (김미선) ▲진보 : "소위 "깨어있는 시민"들의 출판계 대거 유입으로 사회과학 분야에서 큰 혼란이 있었던 시기였네요. 저널리즘 또는 그를 바탕으로 한 만평이 사회학이 담당하던 위치를 일부 빼앗아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최원호) |
프레시안 : 두 번의 큰 선거도 중요 열쇳말로 거론해 주셨습니다. 향후 몇 년 간 이런 '정치의 계절'은 오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난해엔 특수를 노린 정치 관련 서적이 많이 나왔습니다. 한편 온 국민의 관심사가 선거에 쏠려 있을 때엔 출판 시장이 위축되기도 했는데요. 여러분이 담당하시는 분야에서는 선거의 영향력을 어떤 식으로 느끼셨는지요.
박수호 : 일단 관련 종수가 예년에 비해 늘었고, 박근혜-문재인-안철수 등 주요 대선 후보들의 출판계 '장외 대결'도 볼만했죠. 판매만 놓고 보면 안철수 후보가 월등했고 다음이 문재인, 박근혜 후보 순이었습니다. 실제 선거 결과와는 정반대죠. (웃음)
또한 정치에 대한 관심과 함께 '99대 1'이라는 구호가 유행해서인지,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는 책들의 출간이 증가했습니다. 제 담당인 경제 분야만 해도 <문제는 경제다>(선대인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우석훈·선대인의 누나를 위한 경제>(시사IN북 펴냄) 등 '99퍼센트'를 표방하는 경제 책들이 주목을 끌었거든요.
박태근 : 제가 느끼기엔 사실, 기대와는 달리 관련한 책들의 흐름이 두드러지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출판사에서는 기대를 갖고 여러 책을 내지만 기대만큼 좋은 성과를 얻는 책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집으로 오는 홍보물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는데, 투표한다고 무슨 책까지 읽나'라고 뇌까리곤 하는데,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후보를 다룬 책은 상대적으로 형편이 낫지만, 투표 제도나 선거 전략을 다루는 책들은 언론의 관심에 비해 독자들이 많이 찾지는 않았어요.
▲ <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우석훈 지음, 김영사 펴냄). ⓒ김영사 |
문학 전반으로 보면 특히 국내에서 흥미로운 케이스들이 있습니다. <의자놀이>(공지영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나 <모피아>(우석훈 지음, 김영사 펴냄), <꿈꾸는 자 잡혀간다>(송경동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같은 일종의 고발 문학들이 선거 전후로 꾸준한 반응을 얻었거든요. 재미있는 점은 외국 고발 문학 작품들은 그에 비해 거의 반응을 얻지 못했다는 건데요. 역시 이 분야는 당장 직면해 있는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 먹여 살리는 것 같습니다.
김미선 : 선거와 관련한 현상은 아니지만, 말씀하신 고발 문학의 약진과 관련해서 기존 인문·사회 분야 저자들이 소설이나 에세이의 형식을 빌려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시도들이 있었어요. 우석훈과 김두식이 대표적이지요. 소설가 배명훈의 <총통 각하>(북하우스 펴냄)처럼 세태 비판적인 소설도 주목받았지요.
휩쓸리는 듯 휩쓸리지 않는 갈대들!
프레시안 : 네 분이 담당하는 분야에서 지난 1년간 새로운 유행이라고 감지된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박수호 : 제가 담당하는 자기관리 분야를 보면, '정리'나 '습관' 등 디테일에 주목한 책들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루 15분 정리의 힘>(윤선현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곤도 마리에 지음, 홍성민 옮김, 더난출판사 펴냄), <습관의 힘>(찰스 두히그 지음, 강주헌 옮김, 갤리온 펴냄) 등이 대표적입니다.
경제·경영의 경우 특별한 열풍은 없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정면으로 비판한 책이나 범위를 좀 더 넓혀 신자유주의 혹은 주류 경제학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담은 책들이 이목을 끈 정도입니다. <문제는 경제다>,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이원재 지음, 어크로스 펴냄), <종횡무진 한국 경제>(김상조 지음, 오마이북 펴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장하준 외 지음, 부키 펴냄)등을 들 수 있겠네요.
최원호 : 제 경우엔 앞서 언급된 고전 세계문학 시리즈들의 약진인데요. 신작들이 잘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 출판사들이 기존에 검증된 콘텐츠 쪽으로 회귀하고 있어요. 이 약진에는 할인 등의 프로모션이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이게 좀 불안요소이기는 해요. 고전 걸작들까지 할인에 의존해야만 판매를 올릴 수 있다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고요.
고전은 일반적인 소설 독자 이외의 구매층이 많기 때문에, 고전 걸작의 구매량이 준다고 해서 그 반사이익이 신작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확률은 희박합니다. 인기 고전들의 현재 판매는 좋지만 이게 소설 시장의 성장과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좀 회의적이에요.
▲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신정근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21세기북스 |
조금 더 크게 보면 인문 분야에서 심리 시장이 열리면서 시작된 현상이라고 봐야겠는데요. 기존의 인문 출판사들이 이런 시장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동안 경제·경영, 자기계발 출판사들이 외서 번역을 중심으로 해당 시장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버린 거죠. 국내 필자 중심이라 집필과 편집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철학과 역사와는 달리 심리는 콘셉트가 유효한 외서를 가져와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책을 낼 수 있는 구조니까요.
또 하나는 국내 인문 필자들의 대형 출판사로의 이동입니다. 몇몇 대형 출판사들은 책이 나오는 과정과 이후 프로모션에 있어 작은 인문사회 출판사와는 전혀 다른 체험을 저자에게 전해주니까요. 작은 인문사회 출판사들이 앞서 말씀드린 지점과 이 지점을 동시에 전제하고 타개책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프레시안 : 유행은 다양한 사회 현상과 맞물려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출판사들이 일부러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 히트 이후 정의와 관련된 책 제목이 급증했음은 물론 관련 외서 번역·국내서 기획이 줄이었죠. 최근 이런 쏠림 현상으로 기억되는 사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박수호 : 지난해 열쇳말 중 하나가 '고전'인 바, 비교적 유행에 민감한 자기관리 분야에서 고전을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앞서 박태근 씨가 말씀하신 대로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이나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강상구 지음, 흐름출판 펴냄)처럼 연령대와 연결시키는 시도들이 눈에 띄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현상만은 아니겠으나 비판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런 시도들 속에서 '석(石)'만이 아니라 '옥(玉)'도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나온 책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원고의 질은 물론 편집에 더 공을 들이는 책들이 나온다면 다양성 측면에서도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박태근 : 제가 몸담고 있는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쏠림 현상이 실제로 벌어지기 쉽지 않습니다. 책의 기획과 저술이 오래 걸리는 데다 의외로 그런 데 신경 안 쓰고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출판사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저 역시 그런 쏠림 현상에 대해서 비판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문화 현상에든 유행이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걸 제어한다는 발상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걸 테니까요.
한편 소위 2등 전략이라고 불리는 출판물도 있는데, 예를 들어 <1일 1식>(나구모 요시노리 지음, 양영철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이 성공하니까 <1일 2식>(히가시 시게요시 지음, 안중식 옮김, 지식여행 펴냄), <1일 1식 레시피>(김은아 지음, 위즈덤스타일 펴냄) 같은 책은 나오는 거죠. 취미·실용 분야는 워낙 유행에 민감한 분야라 이런 식의 발 빠른 대응 자체가 출판사의 능력처럼 보이기도 해요. 아무튼 책은 다른 문화 장르와는 달리 선택항이 너무나 많고 또 영화처럼 상영관을 독점하는 식의 마케팅에도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억지로 유행을 만들어내는 일은 생각처럼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최원호 : 외국소설 분야에서도 어떤 유행을 감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나는 따라가기 유의 기획이 재미를 본 적이 거의 없다는 걸 학습해서이고, 또 하나는 그런 유행을 만들 만큼 파급력 있는 히트상품이 없었기 때문이죠.
▲ <일본의 검은 안개 1>(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모비딕 펴냄). ⓒ모비딕 |
그런데 점점 국적 및 시대의 다양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요. 뉴질랜드에서 온 스릴러도 있었고, 일본산 스파이 스릴러처럼 독특한 분야도 있었고, 조세핀 테이나 나이오 마시, 클레이튼 로슨 등의 황금기 작가들도 꾸준히 소개됐고요. 무엇보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본격적으로 재조명되면서 사회파 미스터리가 입지를 마련했다는 점, 때마침 미스터리 소설의 역사나 사회학적 요소에 대한 분석서들도 나왔다는 점 등을 들 수 있겠죠. 해당 장르를 둘러싼 외연과 내연 모두가 출판사들의 자체적인 방향 설정 하에서 확장 중입니다. 물론 이런 시도들이 좋은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만… (웃음)
프레시안 : 최근 2~3년 동안 북토크나 북콘서트 같은 행사가 많아졌잖아요. 이는 저자의 스타화 현상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혜민스님, 이지성 등 자기계발 분야뿐 아니라 김두식, 강신주, 우석훈 등 인문사회 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출판계 별들이 있었지요.
박수호 : 출판사 입장에서 저자의 스타화야 말로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 아닐까요? 저자가 스타가 되면 방금 출간된 책뿐 아니라 같은 저자의 구간까지 같이 움직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가 맡고 있는 자기관리 분야의 경우는 저자의 유명도가 판매를 크게 좌우하는 편이지요.
전 이런 현상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고 보는데요. 저자의 위상이 올라간다는 건 그만큼 후속작의 원고나 만듦새에 신경을 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물론 스타성만 믿고 책을 허술하게 출간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선순환 모델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박태근 : 최근엔 외서보다 국내서가 낫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외서는 초기 홍보에 실패하면 되살리기가 어려운데, 국내서는 저자를 이용한 추가 프로모션이 가능하고, 또 언젠가는 그 저자가 떠서 책을 살려줄 거라는 기대도 가질 수 있으니까요.
한편 저자의 스타성과 관련한 성공 사례가 쌓여가니까 출판사들이 저자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수준을 넘어 저자가 여러 출판사를 경쟁시키는 경우도 벌어지는 현실인데, 이 역시 변화하는 출판계 모습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은 듯합니다.
최원호 : 근래 베스트셀러 저자로 손꼽히는 사람들을 보면 책 이외의 소통 루트를 하나 이상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송이나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트위터 같은 사회연결망서비스(SNS)도 영향력이 있죠. 혜민스님 책의 히트는 트위터에서 쌓아온 명성 없이는 쉽지 않았을 거예요. 이렇게 유명한 캐릭터가 있는 상태에서, 현재 시대상황을 감안한 기획을 붙여서 베스트셀러에 도전하는 거죠. 굳이 과거 <느낌표>의 경우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금도 흥행은 다른 미디어에 종속돼 있습니다.
박태근 : 맞아요. 요즘에는 신간을 갖고 오시는 마케터 분들께서 저자의 트위터 팔로워 수를 장점으로 강조하시기도 하거든요. (웃음) 이제는 저자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을 넘어서 책의 판매에도 직접적으로 나서서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시대가 온 거라고 봐야겠지요. 북콘서트 유의 행사는 독자와 접점이 넓어진다는 점에서는 분명 장점이 있고, 또 그간 소홀히 해온 영역에 대한 노력이라 일단 긍정적으로 보는 편입니다.
다만 그런 면대면의 만남이 글로 만나며 사숙하는 관계보다 과연 나은 것이냐 하는 물음에 이른다면 좀 다르죠. 책으로부터 발현되는 현상이라기보다는 책이 하나의 매개로만 활용된다고 봐야 할 테니 결국 출판이 아닌 '에이전트'의 역할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독자의 본래 의미인 '읽는 사람'도 퇴색되는 거고요.
② "아낌없이 칭찬한다!" MD들이 말하는 2012년 내가 '밀었던' 책 …김미선 "국내에서는 좀 생소한 작가인데요. 앙드레 드 리쇼의 <고통>(이재형 옮김, 문학동네 펴냄) 이라는 작품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많은 작품을 내지 못한 채 잊혀져간 작가이긴 하나, <고통>은 카뮈가 극찬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출간 당시 무라카미 하루키 등 대형 신간들이 많아서 조금 묻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이후 꾸준히 판매되고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최원호 "가장 칭찬하고 싶은 시리즈는 역시 필립 K. 딕 걸작선입니다. 아무도 이 시리즈가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예정대로 완간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또 개인적으로 띄우고 싶었던 책들 중 둘만 고르자면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체벤구르>(윤영순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와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최민 옮김, 열화당 펴냄)예요. <체벤구르>는 2012년 만난 최고의 소설입니다. 좀 더 좋은 세상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신념을 이렇게 아름답게, 촌스럽지도 위악적이지도 않게 만날 수는 없을 거예요. 강력한 프로모션은 못했지만 여러 군데에 지속적으로 노출을 시도했고, MD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설을 골라 노출하는 코너에도 소개했어요.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아마 알라딘 창사 이래 최초로 열화당 책이 '웰컴 페이지 탑북'에 선정된 사례일 거예요. 판매 역시 타사 대비 두 배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일체의 이벤트나 혜택 하나 없이 이뤄낸 성과죠. 이럴 때 무척 기쁩니다." …박수호
…박태근 "먼저 현암사에서 나오고 있는 '우리시대 고전 읽기 질문총서'를 기억에 남는 시리즈로 꼽겠습니다. 현대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들을 국내의 전공자가 읽고 해석하고 비평하면서 새롭게 읽어내는 시리즈입니다. 지난해 나온 세 권 중 하나가 김우창의 <궁핍한 시대의 시인>을 읽어낸 <사무사(思無邪)>(문광훈 지음)인데요. 첫 해 세 권 중 한국 학자의 저작이 포함되었다는 점이 눈에 띄고, 쉽게 해설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제대로 읽어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는 점도 기억해둘 만합니다. 단행본으로는 <단단한 공부>(윌리엄 암스트롱 지음, 윤지산·윤태준 옮김)입니다. 지난해 문을 연 유유출판사의 첫 책인데요. 보통 하나의 출판사가 생긴다는 건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거라고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어떤 출판사의 첫 책은, 여러 현실적인 한계를 감안한다고 해도, 그 출판사의 지향점이나 출판 방식에 대한 고민이 집약된 결과물이 아닐까 싶거든요. 이 책은 여러모로 간단한 방법으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출판사의 포부가 느껴져요. 책 리뷰를 보면 '이 책을 읽고 나니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는 내용이 많은데, 이거야말로 출판사가 책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효과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책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역할 말이지요." |
온라인 서점의 도전
프레시안 : 독자와의 접점을 넓히는 일은 출판사·저자뿐 아니라 온라인 서점 차원에서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독자를 길러내야 온라인 서점의 생명력도 유지될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여러분의 일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도 될 텐데요. (웃음) 어떤 독자 참여형 이벤트를 기획하셨고, 계획 중이신지 궁금합니다.
박태근 : 2012년에 새롭게 시작한 기획으로는 알라딘 독자 북펀드가 기억에 남습니다. 진정한 북펀드의 수준에 이르기에는 규모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지만 독자들을 출판의 장으로 적극적으로 불러내서 함께 책을 만들어가자는 메시지는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규모는 10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이고, 독자들은 최대 5만원까지 그 책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정해진 기간 내에 순위나 세일즈포인트가 기준점을 넘어서면 그 기준에 부합하는 이익금을 추가로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초기의 방식을 한 단계 발전시킨 게 스페셜 북펀드인데, 이 경우에는 담당 MD가 미리 원고를 보고 진행을 판단하고요.
그 1호 도서가 유유출판사의 <열린 인문학 강의>(윌리엄 앨런 닐슨 엮음, 김영범 옮김)인데 알라딘에서 종합 30위권에 진입하는 좋은 결과를 냈고, 2호와 3호 도서가 각각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결국 북펀딩은 좋은 책을 열심히 내는 출판사에 힘을 실어주고, 서점이라는 유통 채널이 출판 생태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독자들이 책을 평가하고 고르는 본연의 힘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알라딘 인문학 스터디'는 3년여의 여정으로 시즌 1을 마쳤습니다. 스무 개가 넘는 주제의 기획 강좌로 100여 회의 강의를 진행했고, 참석 인원이 총 1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프로젝트였지요. 오는 3월부터 시즌 2로 다시 찾아뵐 생각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김미선 : 예스24에서도 매년 누리꾼 추천 '한국의 대표 작가'(문학 캠프 포함), 그리고 '블로그 축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캠페인도 진행 중입니다. 특히 문학 캠프는 매년 200명의 회원들과 대한민국 문학의 탄생지를 둘러보는 행사인데요. 저희 서점에 순문학 부문이 강점인 이유도 이러한 노력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모든 영역 종사자들이 독자와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바뀌었는데요. 저희 역시 매년 치러지는 행사들에 어떠한 변화를 줄지 고심하고 있고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좀 더 발전적인 행사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2011년부터 출판계 초미의 관심사인 전자책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2011년은 '전자책 원년'이라 불리고, 2012년엔 판매에서 위력이 입증된 해였어요. 이쪽 판매 및 마케팅 동향은 어땠나요?
김미선 : 매출 규모는 여전히 종이책에 비해 작지만 성장률을 보면 어마어마합니다. 2012년 성장률이 250퍼센트 정돈데요. 특히 문학 분야에서는 장르소설 분야의 매출이 전자책으로 많이 이동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박수호 : 주요 신간의 경우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시 출간하는 출판사들이 늘었고, 프로모션도 전자책을 염두에 두고 기획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거기서 나온 게 바로 '그레이 시리즈'라는 전자책 베스트셀러죠. 또 전용 단말기 '크레마 터치'의 성공적인 런칭도 주요한 사건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 안드로이드 기반의 전자책 단말기 '크레마 터치' ⓒ예스24 |
최원호 : 그런데 전자책 프로모션과 관련해 가장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는, 전자책 공급사별로 표준이 다르다는 것 같아요. 물론 표준을 강제로 규격화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이렇게 공급사들이 각자 개발해서 제공하는 전용 기기나 어플리케이션의 완성도가 국내의 웹·모바일 이용자들이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거죠. "우리 회사의 전자책이 좋아요"가 되어야지 "이 뷰어로 보는 수밖에 없을 걸" 이라고 강제하는 느낌을 줘서는 안 됩니다. 점유율 확보를 위해 일단 던져 놓고 문제는 나중에 보완하자는 식의 환경 조성은 장기적으로 독이 될 겁니다.
③ "이건 왜 안 떴지?" MD들이 말하는 2012년 아까운 책 <북극 허풍담>(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해외 문학은 영화나 드라마 원작 위주로만 판매되는 추세인데요. 다른 좋은 작품들에 대한 독자들의 호기심이 요구될 때입니다." (김미선)
"어린이 문학으로 각인되는 바람에 국내에서 포지션이 어정쩡한 상태죠. 막상 읽어보면 냉소적이고 센티멘털한 면도 많고, 스토리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지 않아서 각 장면들이 제멋대로 반짝거리는 작품이 많아요. 이 전집이 완간되면 정말 행복할 거 같아요." (최원호) <보수는 어떻게 국민을 속이는가>(조슈아 홀랜드 지음, 이은경 옮김, 한빛비즈 펴냄) "보수주의 경제학의 속살을 예리하게 파헤친 책입니다. 미국 사례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요." (박수호) <질문이 답을 바꾼다>(앤드루 소벨·제럴드 파나스 지음, 안진환 옮김, 어크로스 펴냄) "질문이 가진 힘과 그 중요성을 흥미로운 사례들로 풀어낸 수작입니다." (박수호)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김상봉 지음, 꾸리에 펴냄) "이 책이 알려지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 주제가 사회적인 의제로 확장되지 못한 점은 여전히 아쉽습니다." (박태근)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이한 지음, 미지북스 펴냄) "책을 보고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기대는 책이 아니라 그 책을 밀어낼 정도의 내용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쉽게도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100분의 1도 나가지 않았지만, 어쩌면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고 있는 이들의 수효가 그 정도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박태근) |
2013년, 새 희망은 보인다?
프레시안 : 이제 2013년 전망 얘기를 해볼까요. 매년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갱신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여러 고민거리 가운데서도 출판계 초미의 관심사인 도서 정가제에 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2013년 새해 소망으로 "도서 정가제 완전 시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도서 정가제 이야기가 나오면 온라인 서점에서의 '반값 할인 이벤트'도 출판 생태계를 해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데요. 많은 출판사가 온라인 서점에 의존하면서도 온라인 서점의 할인 경쟁을 문제로 지목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늘 궁금하더라고요.
김미선 : 할인 경쟁이 문제이긴 하지만, 온라인 서점이 출판 생태계를 해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일단 이른바 반값 할인 도서, 즉 50퍼센트 이상 할인 도서는 전체 매출의 2~3퍼센트에 지나지 않고요. 대부분의 반값 도서 행사의 경우, 출판사의 과다 재고를 해소시켜 주는 데 첫째 의미가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당장 완전 도서 정가제가 시행된다면 가장 먼저 소비자 판매 가격이 올라갈 것이고, 결국 독자수가 감소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큽니다. 적정한 마케팅으로 좀 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차원의 도서 유통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원호 : 완전 도서 정가제가 바로 시행되었을 때 바로 타격을 입는 곳이 대형 쇼핑 사이트에 입점한 도서 코너일거고 그 다음이 온라인 서점일 것 같지만, 사실 손실을 입는 곳은 출판사입니다. 정가제가 실시되고 일정 기간 도서 판매가 소강 상태를 보이면 모두가 매출 부진을 겪겠지만, 서점은 정가 판매로 인해 이익률이 올라 어느 정도 손실을 보전할 수 있어요. 그런데 출판사는 고스란히 판매 부진의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만큼 오프라인 판매 증대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정가제 실시와 동시에 지방 도매상들과 군소 서점들이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죠.
그 전환기를 버틸 수 있게끔 만드는 보완책이 필요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 보이는 "형평성에 맞는 공급률 인상"은 마치 현재의 부분 정가제 하에서 "합리적인 할인 가격 책정"을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게 되면 좋겠지만 아무도 이루지 못하죠. 강제 법령이 제정되지 않는 이상 아무도 고양이(서점) 목에 방울을 달지는 못할 거예요.
결국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정가제 정착기 동안 자금 유통이 빡빡한 군소 출판사·서점들을 별도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 없이 완전 정가제가 시행되면 약한 곳부터 무너질 겁니다. 그러니 완충책을 먼저 마련한 다음 전체 시스템을 변경해야 합니다. 완전 정가제는 성공적으로 안착하기만 한다면 득이 많겠지만 단숨에 해치울 때의 부작용은 현재의 구조가 가진 약점을 극대화시킬 겁니다. 병들었으니 일단 죽은 다음에 다시 태어나라, 이런 식으로는 안 되죠.
박태근 : 우선 저는 출판계를 하나로 묶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데요. 2011년 봄 한국출판인회의가 주도한 할인율 30퍼센트 제한 사례에서 보듯이 출판사들도 상황에 따라 입장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는 걸 전제해야 합니다. 또한 이 문제를 출판계와 서점계의 힘겨루기로 보거나 그런 식으로 몰고 가는 행태에도 반대합니다. 말씀하신 반값 할인으로 득을 보는 쪽이 있을까요? 온라인 서점도 배송비 등을 빼면 반값 할인으로는 이익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재고를 회전시키는 목적이라 해도 출판사에 큰 이득이 생기는 것도 아니겠지요. 그럼에도 반값 할인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특별 할인으로 베스트 순위에 진입하려는 목적도 있을 테고 정말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도서 정가제가 출판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듯이 얘기되는 까닭은 그만큼 이 문제에 다양한 이해관계와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일 텐데요. 서점과 출판사의 공급률 문제, 출판사의 도서 가격 책정 문제, 독자들의 소비 의식, 게다가 도서관 도서 구입 문제에 책의 공공재 맥락까지 여러 문제들이 모두 여기에서 논의될 수 있잖아요.
이 문제들을 여기서 하나씩 짚어볼 수는 없을 테고, 저는 출판사들이 조금 더 주도적으로 판을 짜고 움직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자리 한 번 제대로 만들어봤던가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도서 정가제 논의가 앞서 출판계로 묶어 표현하신 출판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또 다른 패배감을 전하는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서점과의 협의, 독자 설득은 오히려 그 다음 문제가 아닐까요.
프레시안 : 머리 맞대고 이야기해 보는 자리, 마련해 보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2013년, 출판계에 어떤 흐름들이 펼쳐질까요? 여러분이 담당하는 분야에서 어떤 흐름이 계속되리라 예상하시는지, 어떤 흐름을 '기대' 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미선 : 국내소설 분야는 역시 젊은 작가들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2년에도 김연수, 김중혁, 배명훈, 김애란 등 비교적 젊은 작가군이 두드러졌거든요. 그들의 새로운 시도를 기대하고 또 응원합니다.
최원호 : 외국소설 분야는 장르소설과 유명 고전 소설들로 재편될 것 같습니다. 장르소설은 현재 거의 유일하게 팬덤이 살아남은 분야이기 때문이고요. 다만 팬덤이 그 절대 숫자가 늘어나지 않는 가운데 점점 취향이 세분화되고 있어서 각각의 작품에 대한 집중도가 예전 같지는 않을 것 같아요.
오늘 고전 소설 이야기를 많이 드리는데, 여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분야가 미디어 또는 사회·교육 시스템이 지원해주는 거의 유일한 외국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도서 판매의 절대다수가 평소에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독자들의 몫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런 시스템의 도움이 절대적이죠. 이 역시 방어적인 기대감입니다. 문제는 한정된 스테디셀러를 여러 출판사가 나눠 가지게 되고, 그래서 콘텐츠 자체가 확장되지 못한다는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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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 미제라블 1>(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
박태근 : 변화를 주목해야 할 분야는 역시 사회 분야인 듯합니다. 사회 분야의 도서를 크게 둘로 나누면 사회비판서라 불리는 정치사회 분야와 사회과학 분야로 나눌 수 있을 텐데요. 지난 2~3년간 MB 정부의 실정 덕택에 정치사회 분야가 흥했거든요. 나꼼수 열풍으로 <닥치고 정치>, <달려라 정봉주>, <주기자>가 연이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요.
이렇게 응축된 힘이 현실 사회로 옮겨 도전된 것이 지난 대선일 텐데, 그들로서는 '실패'로 돌아간 셈이지요. 이런 분야의 책은 읽기 위해 구매하기도 하지만 구매가 일종의 의사 표현이자 동참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기도 한데, 이게 한두 번은 가능하지만 열 권, 스무 권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재미난 건 대선 이후 사회과학 분야가 아닌 역사 분야 내 한국 현대사 관련 도서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입니다. 지금 알라딘 역사 분야 베스트 1위부터 10위까지가 거의 다 한국 현대사 도서들입니다.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성, 정통성 문제와 연관된 독자들의 적극적인 반응이겠지요. 역사 분야에 속해 있긴 하지만 실제 구매 독자층은 사회과학 도서를 열심히 보던 분들이라고 봐야겠고, 따라서 사회과학 분야의 흐름에서 살펴볼 포인트라는 생각입니다.
④ "신년, 이 책에 주목하라!" MD들의 2013년 첫 따끈따끈 추천서 <당신들의 기독교>(김영민 지음, 글항아리 펴냄) "철학자 김영민이 기독교 안에서 생활하며 겪은 현장들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료로 한국 사회 개신교의 문제점을 짚고 예수가 찾고자 했던 구원이 무엇인지 되묻는 책입니다." (박태근)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구본형 지음, 생각정원 펴냄)와 <박경철의 그리스 기행(가제)>(리더스북에서 1월 출간 예정) "이 두 책은 경제·경영, 자기계발 분야의 파워라이터가 그리스 문명에 대해 오랜 기간 공부하고 또 현장에 수차례 다녀온 기록으로, 잠재된 독자층을 끌어들이고 관련 분야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 기대 받는 기획입니다." (박태근) <경제학자의 영화관>(박병률 지음, 한빛비즈 펴냄) "경제학의 주요 이론과 원리를 영화와 접목시켜 소개하는 책입니다. 시도가 신선해 관심을 끌 것으로 보여요." (박수호)
"카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이방인> 일러스트 판입니다. 원전이 많은 사랑을 받는 고전인 만큼 일러스트 판도 아주 성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김미선) "이번에 나온 일러스트 판 <이방인>은 근래 소개된 일러스트 소설·그래픽 노블 중에 가장 퀄리티가 좋습니다. 확실히 각인된다면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걸로 보입니다." (최원호) <와일드우드 1>(콜린 멜로이 지음, 카슨 엘리스 그림, 이은정 옮김, 황소자리 펴냄) "<와일드우드>는 청소년도 읽을 수 있고 어른이 읽기에도 재미있는 지점을 제공합니다. 모험 판타지 소설이 다시 득세하는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최원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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