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최형락) |
도서관이 있다. 그 앞에는 광장이 있다. 밀폐된 공간과 툭 터진 공간이 사이좋게 공존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도서관은 출입을 일일이 통제받는 곳이 아니다. 그곳 자체가 이미 개방된 공간이며, 건물 바로 앞이 이른바 '서울 광장', 무기명의 서울 시민들을 위한 곳이다. 게다가 광장에선 매일 여러 행사가 열린다. 결과적으로 도서관 측에서 계산한 평일 도서관 입장객의 평균은 1만 9231명, 주말엔 2만 4893명에 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보기 위해서 뿐 아니라 무료 사물함이나 카페, 화장실 등을 이용하기 위해 잠깐씩이라도 이곳을 드나든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광장의 새로운 허브라고 불러도 좋겠다. 10월 26일 옛 서울시청 자리에 개관한 서울도서관 얘기다.
1926년 준공되어 등록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된 옛 서울시청사가 4년여의 리모델링 끝에 서울도서관으로 변신했다. 건물 지하 4층부터 지상 4층 중 일반 이용자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지상층으로 제한되어있지만, 그만으로도 충분히 눈이 즐겁다. 일반열람실 1, 2층을 틔어 만든 5미터 높이의 벽면서가, 옛 서울시청의 흔적이 구석구석 남아있는 독특한 내부 장식 등이 기존 공공 도서관에서 느끼기 힘든 정취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던(그러나 신청사 건설과 관련되어, 옛 청사의 일부가 합의 없이 해체됨으로써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근대 건축물의 내부가 어떤 식으로 보존, 재활용되는지에 관심 가진 이에게는 서울도서관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 법하다.
20여 만권의 장서를 보유한 서울도서관의 지상 1, 2층 일반 열람실에는 최근 2년 간 출간된 신간들이 배치됐다. 그래서 독서가들이 주로 찾는 곳도 이 열람실이다. 하지만 이 공간은 엄밀히 말해서 다른 공공 도서관에서도 당연하게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서울도서관만의 특별한 장점이라고 하긴 어렵다. 서울도서관의 차별지점은 3, 4층에 있다. 3층에는 주요 시정기록물 원문 등을 열람할 수 있는 서울기록문화관, 서울시 및 정부기관 발간물과 행정 및 정책 연구 자료, 서울학 자료 등을 비치한 서울자료실이 있다.
이곳에선 <서울시정개요>(1962년), <서울통계연보>(1961년), <서울도시기본계획>(1966년), <올림픽대회백서>, <여의도 종합개발계획> 등 희소 자료를 포함한 3만여 권의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서울에 관한 정보들의 아카이빙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야말로 보물창고 같은 공간이다. 4층에는 다문화 자료·한국을 소개하는 외국어 자료 등이 비치된 세계 자료실이 있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영어권, 중국어권, 일본어 자료뿐 아니라 터키, 싱가포르, 베트남 등 보기 힘든 각국 책자들이 비치되어있다.
평균 방문자수가 2만 여명에 달해
개관한 지 3주가 지났다. 그동안 서울도서관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교통의 요지, 서울 한복판 중심지에, 그것도 옛 시청 건물에 도서관이 들어선다는 점에서부터 진작 화제가 됐던 터였다. 외적인 면으로만 보자면 서울도서관의 성과는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다. 평일과 주말을 합쳤을 때 하루 평균 대출 건수는 1058건, 방문자수는 2만 1496명, 회원증 발급 수는 623건에 달한다. 1000만 명을 훨씬 상회하는 서울의 인구를 생각해볼 때 단 3주 만에 470인 당 1명꼴로 서울도서관을 찾는다는 건 분명 고무적인 징조다.
취재 차 화요일 오전에 서울도서관을 찾았을 때에도 1, 2층 열람실의 좌석은 3분의 2 이상 꽉 차 있었다. 업무에 필요한 자료를 찾는 것으로 보이는 직장인들도 있었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신간을 체크하는 20대 커플, 단정하게 앉아 책 두 세권을 쌓아놓고 읽던 노년층들, 엄마의 손을 잡은 채 그림책을 들여다보는 어린이들 등 세대와 성별을 막론한 독서 인구가 서울도서관의 공기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다. 1, 2층을 커버하는 전면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 중 다수가 이미 누군가의 손을 거친 뒤 책장 밖으로 빠진 채 그 앞에 쌓여있었다. 현재 서울도서관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이용훈 서울시 대표도서관건립추진반장은 "지금 오전이니까 이 정도고, 오후가 되면 훨씬 더 많이, 자주 쌓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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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뜨거운 호응만큼이나 고민도 그만큼 깊어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서울광장과의 인접성은 '책만' 읽으러 오는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일 수 있다. 도서관 공간이 개방적이기 때문에 도서관을 자유 휴식 공간 내지는 책 읽는 카페로 여기는 일부 이용자들의 인식도 큰 골칫거리다. 주말에 광장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를 구경하던 이들 중 일부는 광장 장터에서 구매한 농산물을 도서관 내 사물함에 넣어둔 채 나가기도 하고, 화장실도 자주 이용하게 된다. 물론 광장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비롯되는 소음도 피할 수 없다. 가끔 어른과 동반한 아이들이 열람실 안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대도 그들을 제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도서관 내 정숙을 부탁했을 때 그 아이들의 보호자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은 적도 몇 번 있기 때문이다.
이용훈 반장은 "사실 반가운 일이다. 여기는 시청 건물이었는데 일반 시민들이 시청 안에 편안하게 들락거릴 일이 거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신청사가 들어서면서 일반 시민들에게 자유롭게 공개되고, 바로 앞쪽 구청사가 도서관으로 바뀌었다고 하니까 겸사겸사 호기심으로 구경 오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시청 건물이라는 위압감이 예전보다 줄어들면서 보다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된 건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이 건물을 워낙 '다양하게' 활용하는 이용자들과 도서관 자체를 목적으로 오는 이용자들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앞으로의 관건이다. 도서관을 편의시설로 생각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전부 제한하는 것에도 난관이 따른다는 데에 도서관 측의 고민이 있다.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불만과 건의들은 많은데, 서울도서관의 입장 상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들이 많아서 전부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 대표 도서관'이라는 생소한 위치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도서관 내 불편사항에 대해 딴죽을 거는 건 쉽다. 보다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자면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시청 주변으로 공공 도서관들은 많지 않은가? 정독도서관, 남산도서관, 종로도서관,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등 얼른 떠올릴 수 있는 이름만도 여럿이다. 굳이 서울도서관이 필요했던 것일까?
답은, 서울도서관은 일반 공공 도서관이 아니라는 데 있다. 서울도서관은 '서울 대표 도서관'이다. 이는 도서관법 제22조에 의거하여 "시도지사가 해당 지역에 도서관 시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이와 관련된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설립 또는 지정하여 운영하여야 하는 도서관"을 의미한다.
더 자세한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지난 10월 13일 열린 '서울시 도서관 및 독서문화 활성화 정책토론회-서울, 도서관을 말하다'에 나왔던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보자. 당시 김태희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원의 발제에 따르면 서울시에는 "120개소의 공공도서관, 1293개의 학교도서관과 85개소의 대학도서관, 그리고 277개소의 전문도서관"이 분포되어 있다. "이들의 운영주체도 서울시, 교육청, 자치구, 민간 등으로 다양한 상황"에서 "운영주체간의 이해관계가 상이하여 정책 조정에 어려움"이 있다. 이들의 '컨트롤타워'를 할 역할 주체가 필요했고, 서울도서관이 바로 그 역할을 수행하는 '서울 대표 도서관'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서울도서관은 "서울 시내 모든 도서관을 총괄하여 지원 및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컨트롤타워의 역할과 운영주체의 다원화에 따른 상호 이해관계의 복잡성과 소통 부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서관 협력체제 구축 및 운영, 그리고 상호대차, 도서관 통합 홈페이지 운영 등 이용자 편익 증진을 위한 시스템 구축 및 서비스 제공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다. 또 다른 발제자 김기영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도 서울 대표 도서관의 임무에 대해 "다수의 공공도서관에 대한 업무, 즉 정책업무"와 "다수의 규모에 제한이 있는 공공도서관이 할 수 없는 서비스"를 그 핵심 역할로 삼아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용훈 반장 역시 이에 동의했다. 그는 "서울도서관에는 세 가지 목표가 있다"면서, "가장 큰 목표는 다른 도서관과의 협력 네트워킹서비스 정책 기능, 그 다음이 서울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 및 아카이빙, 마지막으로 일반 도서관의 열람 및 대출 기능이다. 이중 앞의 두 가지는 다른 도서관에선 하지 못하는 기능이자 서울도서관이 꼭 해야 하며 앞으로도 강화시켜야 할 방향성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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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이후가 진짜 시작이다
정책 토론회에서 김태희 의원이 지적한 바에 따르면, 서울시 도서관 인프라의 현재 상황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사서 직원 한 명당 봉사인구, 봉사대상 인구 1명당 자료구입비 및 소장도서의 수 등의 측면에서 전국 16개 시‧도 중 최하위 수준"이다.
당시 또 다른 발제를 맡았던 이용훈 반장은 서울 시 도서관 현황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120개소의 공공도서관을 예로 들자면, 공공도서관은 1관 당 평균 8만 8000명이 이용하며 1관당 평균장서는 8만 2000권이다. 다시 말해 시민1인당 0.81권의 책을 보유하는 셈이다. 1관당 직원은 11명(사서는 5.7명)으로 1인당 봉사대상 인구는 9000명에 달했다. 이중 91개소의 구립 공공도서관의 경우, 1관당 이용자 수는 30만 명에 달하는데 1관당 서울시 지원액은 2007년 1억원에서 2012년 5000만원으로 감소했다. "도서관 수는 증가했으나 지원액은 큰 변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설과 운영예산, 근무자 수의 절대적인 부족은 도서관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지만 서울의 경우는 여타의 시‧도에 비교해서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도서관들의 곤란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는 '컨트롤타워'이자 '씽크탱크'로서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서울도서관의 고민은 깊다. 무엇보다 서울도서관 자체 내의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서울도서관의 공간 자체는 매우 크다. 최대 수장 능력은 70만권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도서관 인력은 37명이다." 이용훈 반장이 한숨을 쉬었다. 주말에만 2만 5000여 명의 이용자가 드나드는 도서관을 모두 합쳐 37명이 커버하고, 몇 시간만 지나면 수북하게 더미를 이루는 기존 열람실의 책 정리 등 기본 업무를 해내면서 '컨트롤타워'의 역할까지 동시에 진행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 서울도서관의 기본적인 목적 3가지를 전부 충족하기에는 어림도 없다.
게다가 본래 도서관 용도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다보니, 공간과 공간 사이도 개방되어있으며 여닫이문으로 공간을 개별적으로 독립시키거나 분리시킬 수 있는 기동성이 부족하다. 각 층마다 방은 평균 6개씩이지만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다보니 소수의 직원들이 층 전체를 관장하기가 쉽지 않다. "자원봉사자 분들이 도와주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도서관 측의 하소연이 엄살로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도서관은 책이라는 가벼운, 이동이 용이한 물품을 끊임없이 원상 복구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한 곳"이라는 이용훈 반장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벼운 것을 무겁게 대할 수 있는, 혹은 그 가벼움을 무질서로 치환시켜버리지 않는 조심스러움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 다음으로는 서울 대표 도서관이라는 명칭부터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서울도서관은 서울 '대표' 도서관이 아니라 '서울' 대표 도서관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기존 도서관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단점을 최소화한 서울의 대표적인 1등 도서관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지역 내 도서관을 아우르며 행정을 처리하는 도서관이라는 입장을 도서관 이용자들부터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이용훈 반장은 서울도서관이 35년 역사의 정독도서관이나 90년 역사의 남산도서관과는 비교할 수 없으며 비교하기에 적절하지도 않음을 강조했다. "개관 처음부터 모든 일처리가 완벽하면 좋겠지만, 서울 내 모든 도서관과의 상호대차서비스를 진행하는 데만도 모두의 협의가 필요하고 아직 100퍼센트 완벽하게 도달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몇몇 논의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른 도서관이 하는 것들을 우리도 똑같이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도 수반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도 남산도서관과 정독도서관만큼의 세월이 필요한 것이다." 서울대표도서관으로서의 위치가 확립되고 난 다음에야 서울 내 도서관들의 지원과 협력도 좀 더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도서관이 민간기구가 아니라 서울시의 4급 사업소 형태로 개관한 만큼, 도서관 측에서 호소하는 실질적인 어려움이 시 차원에서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되어 그 단계를 밟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편집자 주) 마지막으로 기자가 서울도서관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느꼈던 대표 안내 전화 문제(대표번호로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아무도 받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전화를 받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는 120 다산콜 센터와 협의 중이라고 한다. 이용에 참고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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