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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혐오하는 대한민국! 희망은 대통령 아니라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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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책을 혐오하는 대한민국! 희망은 대통령 아니라 편집자!

[인터뷰] <출판 생태계 살리기> 펴낸 변정수

수시로 화제가 바뀌는 사이버 세계에서도 대세가 형성되는 때가 있다. 올해 출판계를 둘러싼 화제 몇 개도 그랬다. 한 출판사가 구직자의 트위터 계정을 보고 고용 하루 만에 해고한 사태, <의자놀이>(공지영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논쟁, '출판사 X' 계정 폭파를 시작으로 들불처럼 타오른 '대나무 숲…'.

물론 바람 잘 날 없는 곳이 출판계 뿐만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렇게 바람 잘 난 일이 끊이지 않았던 때가 2012년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출판평론가 변정수는 2004년부터 올해까지 쓴 칼럼을 책으로 엮으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8년 전에 쓴 글들인데도 당시의 '현안'들이 여전히 '초미의 현안'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심지어 어떤 문제들은 더욱 악화되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고. 게다가 이대로 손을 놓고 있으면 앞으로도 똑같거나 더 나빠질 거라는 사실이 자명했다고.

매년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겪어 온 출판계의 8년 풍경과 이 비명 소리를 없애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칼럼 모음, <출판 생태계 살리기>(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를 출간한 변정수를 지난 3일 만났다. 최근 건강 악화로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최근 출판계 현안과 반복되는 고질적 문제를 놓고서 열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놨다.

언론이 띄워도 초판을 소화하지 못하고 잊히고, 18개월 뒤 반값이 되어 겨우 제 주인을 찾아가는 게 21세기 한국에서 출판되는 '양서'의 운명이다. 모두 서로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변정수는 문제 해결의 시작이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음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위로하기보단 참담함을 드러내고 쓴 소리를 하는 데 집중했다.

변정수는 인터뷰 내내 '출판 공공화'를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그 공공성은 출판계 안팎에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지 정부가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다. 또 지속 가능한 양질의 출판을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독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시장을 넘어선 질서를 상상해야 한다.

변정수의 쓴 소리는 대부분, 그동안 '약자'로 위치 지어져 왔던 편집자 개개인을 향했다. 그것은 그들이 곧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란다. <편집자>


▲ 출판평론가 변정수. ⓒ프레시안(최형락)

정부 쳐다보기는 그만!

프레시안 : 올해 출판계에서 뜨거웠던 이슈 중 하나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낙하산 인사' 사태였다. 출판계에서 추천한 인물이 아닌 <동아일보> 출신 이재호 씨가 원장이 되면서 출판인 500여 명이 교보문고 앞에서 규탄 대회를 열기도 했는데, 이 연대의 움직임을 보고 약간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변정수 : 출판인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건 좋은 일이기는 한데, '이러다 마는 거 아냐?' 하는 걱정이 들었다. 실질적으로 출판인의 사활이 걸린 '도서 정가제'나 근본적인 이해가 맞물린 '도서관 정책'을 놓고는 한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던가.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원장이 누가 되는가보다 차라리 어떤 정부가 들어서는가가 관건이다.

프레시안 : 방금 언급한 '도서 정가제'와 '도서관 정책' 두 가지 이슈를 책의 곳곳에서 가장 강조했다. 먼저 유통 문제부터 얘기해 보자.

변정수 : 도서 정가제의 불가능성과 한계부터 먼저 얘기하고 싶다. 현재 시행 중인 도서 정가제는 '불구'다.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 나온 지 18개월 넘어선 도서는 무제한 할인 판매가 가능하고, '실용서'는 도서 정가제에서 제외된다. 그렇다면 대체 뭐가 실용서인가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이렇게 법이 미비한데 어느 출판사가 '제 살 깎아먹기'에 나설까 싶었다. 그 생각이 참 순진했다. 출판은 초기 비용이 집행되면 추가 비용이 거의 안 드니까 덤핑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창고에 쌓아두는 것보단 헐값이라도 파는 게 나으니까. 거기다 시장 전체의 악화와 맞물려, 누구나 제 살 깎아먹기에 자발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러니 참 서글픈 일이 벌어지는 게, 오히려 영세한 출판사일수록 할인 판매 규제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완전 도서 정가제가 큰 출판사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보는 거다. 작은 회사는 마케팅 비용을 크게 못 잡으니까 할 수 있는 게 할인 이벤트밖에 없는데 그 기회를 빼앗는다는 거다.

자기 이익을 배반하면서 '내 살 깎아먹을 권리를 달라!'고 부르짖는 셈이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출판계가 '어떻게 해달라'고 말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나는 완전 도서 정가제를 주장해 왔지만 그보다 앞선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출판계 안에서도 이렇게 목소리가 다르니 정부에 뭔가 요구할 힘도 없다. 이 이해관계의 조정이 좋은 정부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모든 주체들이 다 합의하는 정책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무엇이겠는가. 먼저 '안에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조직적인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시장을 넘어서

프레시안 : 강제적인 규제가 먼저 시행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일단 규제 강화를 관철시키면 조금씩 바뀌어 나가지 않을까.

ⓒ프레시안(최형락)
변정수 :
완전 도서 정가제는 당면 과제이지만 결국 미봉책에 불과할 거다. 그건 그냥, 시장 질서를 건전하게 하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시장 질서를 건강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책이 놓인 세계, 즉 '출판 생태계'의 붕괴를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려면 시장의 질서가 아니라 시장을 '넘어선' 질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막연하게 '넘어선' 질서를 얘기하기 전에 일단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외면할 수 없으니 상대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출판 매체가 위기를 맞은 것은 독자에게 더 이상 '좋은 책'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도서관 정책, 교육 정책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본다. 한국 교육은 '독자'가 생겨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독자가 점점 사라지면 일시적인 마케팅으로 만들어낸 '소비자'만 남게 될 거다. 출판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지금도 독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90퍼센트는 거품, 즉 마케팅으로 만든 소비자들이다. 이 상태에서 책 몇 권 더 팔고자 마케팅에 힘을 쏟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독자에게 다가가려는 노력도 물론 소중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어떻게 독자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거기서 지금 마케팅 비용의 10분의 1이라도 떼 공공 자금을 만들어서 도서관이나 유사 기능을 하는 독서 커뮤니티를 지원하자는 게, 즉 독자를 '만들어 내는 데' 돈을 쓰자는 게 나의 주장이다.

소모적인 물량 마케팅보다 지속적인 시장을 창출하는 '독자 만들기'가 오히려 더 나은 마케팅 아니겠는가. 여담이지만 그래서 요즘은 책이 좋아서 출판사에 취직하고 싶다는 친구들에게 "그렇게 애정이 있으면 도서관 운동을 하거나 비영리 단체 활동가가 되는 게 어떠냐"고 조언하기도 한다.

프레시안 : '결국 문제는 도서관'이라는 주장은 지당하지만, 정작 출판인들 사이에서는 별로 반응이 없는 것 같다. 출판계는 출판계고, 그냥 책 동네에 '도서관 운동'이라는 카테고리가 저 멀리에서 따로 존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변정수 : 당장 자기 발등의 불을 끄기에 바쁘니까 미래를 위한 투자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또 하나는 신뢰 문제인데, 뭘 같이 해 본 경험이 없어선지 선뜻 나서질 못한다. 경쟁 논리가 내면화되어 있어서, '다 같이 힘을 합쳐 공공적인 판을 만들어내는' 생각으로 나아가질 못하는 거다. 하다못해 출판인 교육만 하더라도, 이야기가 '우리 같이 뭘 하자'라고 나오는 게 아니라 정부만 쳐다보는 입장이다. 그러니 그 교육도 출판의 본령에서 벗어난다.

십몇 년 전쯤 출판계가 매달렸던 과제 중 하나가 대여점이나 불법 복제물 단속 문제였는데, 그때 난 출판계 다수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대여점을 퇴출시킬 게 아니라 사설 도서관이라는 개념으로 양성화하자고 했다. 공공 도서관 중에서도 민간에 위탁해 운영되는 곳이 있는데 바로 그런 것처럼 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책은 돌려 읽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출판계에는 여럿이 책을 돌려보는 공간을 밥그릇 위협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정서가 있는 것 같다.

또 자기가 낼 책에 대해서는 열심히 고민하는데, 그게 어떻게 유통되는지, 뭐랑 맞물려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잘 안 갖는다. 출판계 중견 선배들이 모여서 고전 읽기 같은 스터디를 한다. 좋은 현상이지만, 오히려 그런 공부는 밑에 직원들 시키고 대신 경영자들에게는 출판 생태계를 선순환시키는 산업·유통 구조에 대한 공부가 더 시급하지 않은가 싶다.

프레시안 : 양자가 뭔가를 함께 해 본 선례가 있는가.

변정수 : 두 분야가 한 길에서 노력하는 가장 행복한 예가 <학교 도서관 저널>일 것이다. 이 잡지는 출판계에서 돈을 내고, 도서관에서 일 하는 분들이나 도서관 운동하시는 분들이 많이 본다. 현 단계에선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주는 것 같은데, 이런 예를 통해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

'대나무 숲'을 우려하는 이유

프레시안 : 올해 공저로 낸 책 <편집자로 산다는 것>(강주헌·변정수·정은숙·이홍·김학원·정민영 지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을 둘러싸고 약간의 논쟁이 있었다. 김류미의 <편집자로 산다는 것> 서평(☞관련 기사 : 편집자=저자와 사장의 심부름꾼? 그럼 나는?!)을 보고 거기서 던진 가상의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썼는데(☞관련 기사 : '취직', '창업'…원하는 게 정말 '출판'이야?) 한 출판 노동자가 편집자론을 비판하는 글을 투고했다(☞관련 기사 : 출판계 멘토님! 먹고살고 싶거든요?).

변정수 : 할 만한 이야기였고,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편집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런데 그 분이 책을 제대로 안 읽은 것 같다는 불만은 좀 있었다. 왜냐하면 그 책 안에서 저자 여섯 사람이 다 결이 다른 얘기를 했는데, 그걸 싸잡아서 '이 따위 책이 무슨 소용이냐'는 식으로 비판했다. 원래 하나의 콘셉트를 갖고 기획된 책이 아니라 연속 특강을 묶은 책이고, 그 배경도 머리말에 나와 있다.

프레시안 : 이 투고 글의 문제의식이 요즘 한창 화제가 되는 트위터 '대나무 숲' 계정과 연결된다. 지망하는 사람은 많지만 노동 현실은 고단하기 짝이 없는 방송, 정보통신, 광고, 디자인 등 소위 '열정 노동' 판에 종사하는 '을'들이 '갑'이나 고용주, 상사에게 직접 하지 못하는 말을 익명으로 고발하는 공동 계정이다.

이 '대나무 숲' 열풍의 발원지가 출판계다. 자사 사장의 악행과 비리를 폭로하던 '출판사X'라는 익명 계정이 폭파되고 난 뒤 '출판사 옆 대나무 숲'(@bamboo97889)이 탄생했고, 유사한 대나무 숲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만큼 출판 노동이 부조리와 모순을 가득 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걸 해결하는 데 있어 대나무 숲이 순기능을 할 거라고 보는가?

변정수 : 내가 오해를 감안하고 하고 싶은 말은, 출판계는 결코 유별난 곳이 아니란 거다. <편집자로 산다는 것>을 둘러싼 논쟁이나 대나무 숲 둘 다 마찬가진데, 뭔가 행동은 하나도 나타나질 않고, 담론만 과격해지는 것 같다. '배설'이 앞선다. 물론 배설 자체의 효용을 부인하진 않겠는데, 이게 '대세'를 형성하는 거면 대단히 곤란하다. 배설의 긍정성이 강조될수록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은 단절되고 마니까.

김류미 씨가 기명 칼럼에서 '더 많은 대나무 숲을 바란다'고 긍정적으로 썼는데, '첫 단추로서는 그렇게라도 시작하는 게 좋다'고 대꾸하긴 했다. 그래도 경험이 좀 더 많은 처지에서 보자면, 어떻게 될지 빤히 보인다. 대나무 숲 관련해서 가장 동의한 건 <노컷뉴스> 변상욱 기자의 관점이다.

"대나무 숲에서 솔직히 털어놓고 서로 위로하는 것은 좋지만 습관적으로 험한 말을 쏟아낸다면 잠시 후련해도 습관적으로 또 쏟아내야 하는 함정이 있다. 가능한 적절히 이용하고 과격한 언사가 일상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나무 숲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 건가?

(…) 분노한 다음은 조직하고 참여하고 연대하고 움직여야 세상이 바뀐다. 대나무 숲에 울분을 쏟아 놓은 걸로 세상 부조리에 대해 스트레스가 풀리고, 소리칠 만큼 소리치고, 대들만큼 대들었다고 여긴다면 스트레스가 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진보가 거기서 끝나는 것이다."
(☞관련 기사 : 변상욱의 기자 수첩 '대나무 숲에서 정의를 외치다')

이제까지 많은 운동을 지켜보면서, 어떤 정치적 열망이 눈덩이 굴러가듯 세력이 커지면 반드시 변질된다는 걸 알게 됐다. 대중화할수록 대중들이 내면화한 가장 보편적인 정서에 발목을 잡히는 거다. 소수가 깊이 있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이, 아주 작은 공통분모만을 공유하면서 논의할 때 네트워크는 느슨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공통분모를 조금씩 좁혀 나가야 한다는 건가.

변정수 : 한 사람보단 열 사람의 목소리가 크지만, 그게 100명, 1000명이 될 필요는 없다. 하나의 이슈를 놓고 여러 사람이 달려들기보다, 다양한 지향을 가진 작은 주체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거다. 분명한 지향을 공유하되 탄탄한 조직들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와 사안 별로 연대하는 것. 그게 바로 네트워크다.

ⓒ프레시안(최형락)

더 많은 출판 장(場)을 위하여

프레시안 : 올해 봄엔 모 출판사가 직원을 채용해 놓고 하루 만에 해고한 사태도 있었다. 입사 결정을 내린 후 구직자의 트위터를 보고 '우리 회사와 맞지 않는 사람이다'라며 해고를 통지했고, 당사자는 트위터를 통해 문제를 공론화시켰다. 결국 양자 간 합의에 이르렀고 잘 해결되었지만 이때도 잠시 이야기가 영세한 출판사의 노동, 고용 문제로 확대됐다.

이 책에서도 몇 꼭지에 걸쳐 출판인을 양성하고 채용하는 문제에 관해 지적했는데, 방송이나 광고, 경영 분야처럼 '공모전'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했다. 출판계에선 구직자는 정보 부족에 허덕이고 회사는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방금 언급한 사건과 결부하여 어떤 방식으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보나.

변정수 : 그 채용 관련 사태는 이미 양쪽 다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그 출판사 대표가 처음에 보냈다는 메일 내용, 즉 '당신은 좀 더 큰 곳에서 일할 사람이다'라는 말이 핑계가 아니라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해고된 분이 문제에 대처한 방식은 옳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여론화를 시도한 것 자체가 '더 큰 곳이 어울린다'는 출판사 대표의 판단을 역설적으로 입증해 준 셈이다. 큰 곳에서는 오히려 그런 행동이 필요하니까.

문제가 있다면, 채용 과정에서 출판사가 상당히 게을렀다는 점이다. 트위터 들여다보고 충격 받아서 해고할 정도면 전형 기법, 즉 자기네 회사랑 맞는 사람을 판별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는 거다. 좀 더 정교한 방법이 있을 텐데, 이런 전형 기법 개발에 출판계 전반적으로 손을 놓고 있지 않았나 싶다.

주변을 보면 다들 편집자를 막연한 감으로 뽑는다. 그런데 편집자로서의 감수성이나 전문성이 점수로 매겨지는 것도 아니고, 인상만으로 판별하기 굉장히 어렵다. 결국 함께 진짜로 일을 해 봐야만 아는 거고, 가장 좋은 방법은 체계적인 인턴십 제도의 도입이다. 관건은 그렇게 같이 일하는 동안에 발생하는 비용을 누가 댈 것이냐, 이 부분이 공공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프레시안 : 편집자를 지망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털어놓는 불만은 '편집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변정수 :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다. 문예창작과에서 작가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영화과라고 영화감독 되는 법을 가르쳐주진 않는다. 그런데 다른 분야에서는 '그것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영화 하고 싶은 사람은 영화 동아리에라도 들어가 직접 영화를 만들어 보고, 작가가 꿈인 사람은 문학회 활동을 한다.

그런데 왜 '아마추어 출판회' 같은 건 없는 걸까? 인턴십에 당장 비용 문제가 있다면, 아마추어 출판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로 방향을 옮겨 보자. 만일 누구든 출판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잘 모르니까 틀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나는 무보수로 뛸 각오가 돼 있다.

(아마추어 출판물을) 활용할 수 있는 마당이나 서점은 꽤 있는데, 정작 그걸 활용하는 주체는 별로 없다. 출판을 하나의 문화 활동이 아니라 취업이란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게 문제인 것 같다. 뭔가 하나라도 더 만들어 보려고 하는 움직임이 자발적으로 일어날 때, 기성세대도 그걸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다. 아마추어의 장이 활성화되면 예비 출판인들은 포트폴리오 작성하기도 편할 거고, 출판사도 자기네 회사 오면 좋을 사람을 뽑기에 훨씬 수월할 거다.

프레시안 : 독립 출판계는 거기 나름의 고유한 존재 가치가 있는 건데, 출판사 취업을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면 안 되지 않을까.

변정수 : 맞다. 가령 이른바 '충무로 상업 영화' 판이랑 독립 영화판의 논리가 다른 것처럼 그럴 수 있다. 독립 영화판이 메이저 판으로 가기 위한 마이너리그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로 존재한다고 보고, 끝까지 거기서 자기 정체성을 일관시키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 영화를 만들다가 상업 영화도 찍게 되는 사람도 있듯, 하나의 '경로'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초점을 단순히 '취업 준비생의 구직'에 맞춰 보면 안 되고 좀 더 큰 틀에 놓고 봐야 한다. 출판도 음악이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신과 채널이 다변화되어야 건강해 진다. 많은 사람들이 더 풍요롭게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한국 영화가 독립 영화라는 나름의 채널을 가짐으로써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이 넓어진 것처럼 출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본다. 이러한 큰 효과에 덧붙여, 취업을 원하는 사람한테도 하나의 가시적 경로가 되어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프레시안 : 책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출판사 조직을 통해 책을 만들거나 '1인 출판사'를 창업하는 게 아닌 개인으로서 책을 만드는 '독립 편집자'가 진짜로 가능할까.

변정수 : 현 시점에서, 출판에 참여하고 그걸로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으로써 출판사 조직이란 채널 외에 다른 수가 없다. 작은 임프린트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다. 이런 질서를 넘기 위해선 누가 위험 부담을 안는가 하는 문제가 먼저 제기되어야 한다. 즉, 공공적인 지원 프로그램 없이는 불가능한 얘기란 거다. '출판 공공화'가 대전제고, 이 전제를 건너뛰고 편집자 인권을 이야기하는 건 현실성이 없다고 할까, 담론만 과격해질 소지가 있다.

그런데 요즘 '공공적 지원'이란 말을 쓰기가 참 조심스럽다. 한국 사회에서는 '공공' 하면 국가밖에 생각을 못 하니까. 그런데 오히려 정부 지원은, 우리 세금이 들어가는 문제라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안 하는' 그림이 나올 수가 없다. 세금으로 지원해야만 하는 영역도 분명히 있겠지만, 정부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콘텐츠 생산자는 자생력을 잃어버린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예산 지원 폭이 늘어난 시민 단체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 지원이 끊기니까 한꺼번에 파탄 난 게 그걸 입증하는 예다.

공공의 폭은 넓다. 정부를 벗어나서 '공공'을 생각해 보자는 거다. 더 튼튼한 공적 연대를 통해 문제를 바라보자. 내가 생각하는 선순환적 구조라면, 먼저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가 많이 형성되고 거기서 고급 독자들이 길러져, 그들이 주인이 되는 출판인 지원 프로그램이 생기는 것이다. 그럼 독자들이 지원서를 받고 그걸 자기들 기준에 맞게 심사한 뒤 펀딩을 해서 출판을 지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구조가 과거에 대학 사회를 중심으로 약간이나마 존재했다면 지금은 완전히 무너졌고, 유일한 희망은 공공 도서관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 사회가 아닐까 싶다.

ⓒ프레시안(최형락)

편집자에게 가혹한 이유

프레시안 : 최근 출판계가 인구에 회자된 일로 <의자놀이>(공지영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를 둘러싼 논쟁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논쟁이 진행될수록 소위 논객들의 감정 싸움으로 번지고 애초에 제기된 작가와 담당자의 인용구 처리 문제는 흐려진 감이 없지 않다. 한쪽에서는 이 책이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나온 것을 지적하며 다시 한 번 출판 노동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해고 노동자 사태를 다룬 책을 내면서 정작 출판사는 노동권에 무감각했다는 비판이었는데, 이 사태는 어떻게 지켜봤는가?

변정수 : 오히려 논란이 될 이유도 없는 간단한 문제다. 편집자란 사람이 상황이 그렇게 될 줄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편집자가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할 게 저작권이다. 그 문제에 치밀하지 못하면 편집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이 책이 숨 가쁜 스케줄 속에 나왔기 때문에 실수 혹은 판단 오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변정수 : 의사가 수술을 잘못 해 놓고 열악한 수술 환경 핑계를 댈 수 있겠는가. 그걸 대체 누가 양해해 주는가. 내 말은, 작업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책을 정확히 내는 노력은 별개라는 거다.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조건이라면, 그건 투쟁해야 할 문제다. 그런 촉박한 일정을 잡는 것도 따지고 보면 편집자 자신이다. '이건 회사에서 강요한 거고, 나는 책임이 없다'라는 식의 논리는 웃기는 핑계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보면 많은 편집자들이 보신주의에 빠져 있다. 저자와 독자의 대화를 위해 책을 만드는 일이 편집인데, 일하다 보면 독자는 잘 안 보고 사장이나 편집장과 충돌하지 않는 책을 만들려고 기를 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투쟁은 '이해받을 수 없음'에서 출발한다는 거다. 출판계의 변화는 개개인이 이해받을 수 없을 때, 거기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앞서 얘기한 대나무 숲에 대해 첨언하자면, 배설의 나쁜 점이 그거다. 그게 출발점이 될 수 없는 게 '우리끼리 이해받자'에서 끝나고 마니까, '이해받을 수 없음'이란 전제가 무너지고 만다. 문제를 집단 마스터베이션으로 해소해버리고 나면 더 단단해질 수 있겠는가.

돌파구는 사장이나 독자들에게 이해받는 순간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결집할 때 겨우 열릴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 돌파구를 만들어야 할 주체들이 너무 허약하다.

프레시안 : 이 책에서도 그렇고, 유독 편집자들에게 가혹한 것 같다.

변정수 : 가혹한 게 아니라, 거기에 유일하게 희망을 걸기 때문에 그렇다. 애정과 기대가 없으면 비판도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유사 이래로 기득권자가 자기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적은 없다. 사장? 노동부? 믿을 수 없다. 그럼 이대로 내버려 둘 거냐, 그건 아니란 거다. 결국 생태계 개선을 위해 믿을 건 편집자들밖에 없다. 그 책임을 얘기하자는 거다. 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서, 자기들끼리 노동조합도 못 만들면서 출판 산업이 망해가고 있다고 하소연 할 자격이 있겠는가.

서평지여, 엄지를 내밀어라!

프레시안 : 서평 섹션 기자로서 이 책의 몇 꼭지에 거론된 서평지에 대한 쓴 소리에 뜨끔했다. 2004년에 쓴 한 칼럼에서는 일간지 기자들이 알량한 권력을 이용해 마땅히 제가 할 서평 청탁을 편집자들에게 미루는 행태를 언급했는데, 그래도 요즘은 그때보단 나아지지 않았나.

변정수 : 언론사의 횡포가 좀 덜해진 게 아니라, 언론사에 대한 의존이 줄어들면서 욕이 덜 나오는 것뿐이다. 예전에는 '백광이 불여일홍(백 번의 광고보다 한 번의 홍보(기사화)가 더 효과가 크다)'이란 우스갯소리도 있었지만, 요새는 거의 모든 일간지 북 섹션에 중간 크기 이상 기사로 도배된 책이 초쇄도 소화 못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처음 책 제목 후보 중 하나가 "출판 생태계 복원"이었는데, '언제 뭐가 있었어야 복원을 하지'라는 농담을 하는 분도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에는 지금 얘기하는 독서 커뮤니티가 분명히 있었다. 그게 소멸된 시점이랑 일간지 서평 섹션의 약발이 떨어진 시점이 일치한다. 두 시점이 맞물린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고, 지금은 그게 더 심화된 상황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가 사랑했던 출판사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앞으로 매순간 목격하게 될 거다.

프레시안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서평지 혹은 책 관련 프로그램은 어떤 모습이라고 보는가.

변정수 : 일방적인 '책 소개'가 아니라 '책을 둘러싼 담론'을 어떻게 생산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또 하나, 색깔이 분명해야 한다. 나 역시 잡지 판에서 오래 일했는데 기본적으로 내 매체관이 그렇다. 색이 불분명하고 느슨할수록 포괄할 수 있는 영역은 많겠지만, 그럼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끝이다.

색깔이 분명하면 그 매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 마니아 블록이든 팬덤이든, 뭐라고 불러도 좋다. 어쨌든 사람이 모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태계 복원'을 달리 표현하면 먹이사슬 구조를 커뮤니케이션 가능한 구조로 바꾸자는 얘기고, 매체가 그 채널이 됐으면 하는 거다. '이런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 이런 관점으로 바라 볼 사람 모여라!' 하고 엄지 내미는 거, 그게 매체가 해야 할 역할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체성을 지킬 때 명줄도 더 길더라.


▲ <출판 생태계 살리기>(변정수 지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프레시안 :
'책이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346쪽)란 칼럼이 인상적이었다. 칼럼은 이 질문에 대해 썼다면, 이번엔 이 질문 자체를 던져보고 싶다. 당신에게 책이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변정수 : 실제로 그 글이 이 책에 실린 다른 글들과 결이 좀 다르다. 그 칼럼은 겨냥한 구석이 여러 개 있었다. 일례로 출판계 종사자들이 실용서를 책이 아니라고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편집자 간 연대를 가로막고 있는 부분도 있어서 그걸 깨고 싶었다.

'책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에 대해 얘기해 보자면, 다른 책을 읽게 해주는 책이 좋은 책이다. 가령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는 그 책에서 위안을 주고 다른 책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끊어버리니까 '나쁜 책'의 일례라고 생각한다. 책은 다른 책과의 고리를 만들어 줄 때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좀 구별했으면 좋겠다. 책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난 책은 거기에 아무것도 기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책이 자기 삶을 바꿨다는 사람들도 못 믿겠다. 책이 세상이나 개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미망에서 벗어나자. 책은 그냥 다른 책을 읽게만 해주면 좋은 거다.

나는 '왜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는 보는데 책은 이토록 안 읽는가' 하는 개탄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봉착한 문제는 책을 읽느냐, 영화를 보느냐, 인터넷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문화 환경의 문제다. 가령 나는 <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 아름다운전태일 펴냄)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면서 박정희를 존경하는 사람도 봤고,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펴냄)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지음, 돌베개 펴냄)을 순수하게 '자기 계발'이란 같은 맥락에서 자신의 베스트로 꼽는 사람도 봤다. 혹시 천재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웃음) 그렇다고 그 독자 개인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수용은 각자의 몫이니까.

하지만 그 책들이 '나쁜 책'이 되지 않도록 수용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할 필요는 있는 거다. 이건 다른 매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책이 더 많이 읽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진정한 의미의 독자를 길러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책이 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출판 하는 사람들은 이제 교육 정책이나 도서관 정책에 눈을 떠야 한다. 제발 관심 좀 갖자.

독서 인구가 날로 축소된다고들 하지만, 현재의 매출을 지지하는 인구들이 한목소리가 되면 공공 도서관 4000개, 꿈이 아니다. 그리고 도서관 한곳 당 1년 신간 구입비가 2억5000만 원 정도는 되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렇게 계산하면 1조 원이다. 중앙 정부 예산만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시민 사회까지 고려해 공공 기금을 출연해 이 돈을 만드는 거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럼 정말 많은 게 달라질 거다. 노동 환경도 개선될 거고, 도박판이나 다름없는 출판 생태계 문제도 해결될 거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근본은 거기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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