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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진보' 교수, 노무현에게 돌 던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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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진보' 교수, 노무현에게 돌 던진 이유는?

[프레시안 books] 김기원의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식탁에서 피해야 할 화제는 정치와 종교라고들 한다. 신념에 관한 문제이기에 곧잘 말다툼이 벌어져 감정이 상한 채 끝나기 십상이기 때문에 나온 지혜이지 싶다. 꼭 그걸 지키려는 건 아니지만 가까운 이들과 만나도 가능하면 그 분야는 화제에 올리지 않으려는 편이다. 그렇다 해도 정치판의 온갖 군상들이 쫄깃쫄깃한 '안주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우리 실정에 이를 마냥 외면하기는 힘들다.

해서 어쩌다 정치 이야기를 하고 나면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 때가 많다. 50대 후반에, 괜찮은 학교를 나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직장에 다닌 친구들은 나더러 '좌파'라고 놀린다. 한데 후배들이나 젊은 학생들은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않더라도 은근히 '꼴보 같으니…'하는 시선을 던진다. 사안에 따라 야당이나 시민 단체의 주장에 동조하기도 하고, 정부 여당의 손을 들어주기 때문이다(음, 생각해 보니 그럴만한 주제가 드물기는 하다.) 어쨌거나 합리주의자 또는 상식인이라 자처하는 처지인 만큼 양측의 이런 시선이 모두 불편하지만 무엇보다 '난 어떤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김기원 지음, 창비 펴냄). ⓒ창비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창비 펴냄)의 지은이 김기원도 '꽤나 불편하겠다'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 편, 네 편을 확실히 가르는 우리 정서상 꽤나 용감해 보이는 제목 탓이었다. 게다가 "진보파가 거듭나지 않으면 어찌어찌해 정권을 잡더라도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은 편"이란 당찬 소리를 읽자니 지은이의 의도야 어떻든 좋은 평을 듣기는 힘들지 않을까. 통합진보당 사태로 위축된 진보 진영에 돌 하나를 더 던진 셈이어서 타이밍도 좋지 않아 보수 진영에 좋은 공격거리만 제공할 것 같으니 말이다.

막상 책을 읽어보니 생각만큼 독하지는 않고, 경제를 전공한 진보 성향의 지식인이 짚을 만한 것을 합리적으로 짚었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민감한 논쟁을 겨냥한, 그래서 책 판매에 탄력을 받으려는 출판사 또는 편집자의 의도가 작용한 제목이란 혐의가 짙다. 물론 이는 나 같은 '박쥐'의 감상이긴 하다.

그래도 책 자체는 권할 만하다. 감동이나 재미가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이런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라 믿는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이 책 역시 그런 점에서 몇 가지 미덕을 지녔다.

그 중 하나가 우리 사회의 경제적 모순을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이란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한 것이다. '고단함'은 생산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가리킨다.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과정 그리고 그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력을 생산해내는 과정에서 무한 입시 경쟁, 취업 전쟁, 열악한 노동 환경 때문에 거의 모든 한국인이 평생 허덕인다는 이야기다.

'억울함'은 1차 분배 과정에서 빚어진다. 소득 분배가 사회적 가치 창출에 대한 기여에 걸맞게 공평하게 이뤄지지 않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기업과 근로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소기업과 대기업,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 등에서 합리적 소득 격차가 있는 게 아니어서 대중의 박탈감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불안함'은 복지의 문제다. 고도 성장 시대는 끝났는데 핵가족화로 가족 복지가 해체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중산층에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것이 쉬운 용어로 한국 사회의 병폐를 짚어내 대중에게 호소력을 지녔다면 진보↔보수, 개혁↔수구, 남북한 평화 협력↔남북한 긴장 대결'이라는 3차원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의 틀을 제시한 것은 탁견으로 보인다.

한편, 한진중공업 사태를 살피면서 한국 사회 모순 구조의 변화를 드러낸 것은 진보 진영을 겨눈 날카로운 화살이다. 그는 종래의 자본과 노동 사이의 관계보다 자본 사이, 노동자 사이의 모순 구조가 더 심각하게 대두하고 있다고 보았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퍼센트 수준인 한국에서 노동조합은 거대 기업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노동자와 사회 전체의 이익을 경시하는 특수 이익 집단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리 해고 자체는 부정할 수 없으며 '악' 소리도 내지 못한 채 해고된 수천 명의 비정규직 문제가 묻혔다는 등 불편한 진실을 일깨운 뒤다. 물론 사회 안전망의 확충이나 기업 총수의 도덕성 문제도 함께 거론하지만 '정리 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란 진보 진영의 구호가 지닌 허구성을 지적하는 데 비중이 실렸다.

이밖에도 노무현 정권의 정치력 부재는 근본적으로 '선거 시기'와 '통치 시기'를 분별하지 못한 데서 기인했다든가, 노 정권 집권 초기 다양한 '전선'을 만들 게 아니라 신용 불량자 지원 대책 같은 대중적이되 기득권층의 조직적 반발 가능성이 적은 문제부터 풀었으면 좋았을 것, '신자유주의 타령'의 허구 등은 진보 진영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에선 다른 많은 책처럼 적지 않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우선 블로그 글을 엮은 것이어서인지 체계적이지 못하다. 이를테면 '현실과 유리된 진보파'란 장의 대부분을 장하준 비판에 할애한 것은 뜬금없는 데다 균형을 잃었다는 인상을 준다. 게다가 그 비판의 논거 중 하나인 통계 인용 잘못은, 적어도 <프레시안>에서 벌어졌던 논쟁을 보면 지은이가 밀린 것으로 보이기에 과연 그 제목으로 그만한 분량을 할애한 것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출간 의도가 명확치 않다. 물론 진보 진영이 아플 만한 지적은 여럿 있다.

"비판은 어렵지만 대안은 어렵다. 진보 개혁 세력의 현실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건 선수지만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엔 지진아인 경우가 많다" "진보파 중에는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주체사상과 이념이나 사회주의 혁명론에 사로잡힌 경우가 없지 않다."

인용한 대목이 특히 그렇다. 그러나 제목과 달리 진보 진영의 논리나 행태 비판에 구체적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날을 세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 해서 진보 진영의 집권 로드맵 혹은 집권 후 청사진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노무현 정권의 실책을 분석하는 데 무게가 실린 덕에 1부 '노무현 정권의 정치력을 돌아본다'가 빛나니 책 제목과 내용이 부합하지 않는다고 할까.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이로운 말은 귀에 거슬린다 했다. 이 책은 어쨌거나 진보 진영에, 그리고 우리 사회를 위한 '보약'같다.

"이념과 목표가 같은 가까운 쪽이라 해도 그들의 잘못을 무조건 감싸주는 이른바 진영 논리에 빠져서는 안 된다." "처지가 딱한 사람이 요구하는 것이라고 해서 옳지 않은 주장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지당한' 이야기가 실렸으니 대선을 앞두고 진보든 보수든 눈여겨 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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