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황군'의 일원이 되어 침략과 식민 통치의 고용인이 되기를 선택한 일은 학병에서 탈출했거나 항일 독립 투쟁에 나선 동시대 청년들의 관점에서 보면 오직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식민지에서 태어나 황국 신민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으며, 일제 말 전시 체제 하에서 극도의 가난에 허덕이던 조선 청년들에게, 생존과 자기실현을 위한 길 자체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들의 선택을 그냥 비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중 일부는 더 충성스러운 '신민'이 되기 위해 다른 식민지 백성들이나 전쟁 포로들에게 가혹한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제국의 용병으로 겪었던 현실 자체는 바로 식민지 백성이 아니고서는 겪을 수 없었을 차별과 굴욕이었고,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이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일본과 일본인들의 과거 잘못에 대한 무책임과 무지를 피해자인 조선인의 처지에서 조명하였다. 저자 중의 한 사람인 우쓰미 아이코는 <조선인 B·C급 전범>(이호경 옮김, 동아시아 펴냄)이라는 책의 저자로서 국내에도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야스쿠니에 묻혀있거나 전후 연합군의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조선인 전범들이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면서도 일본과 한국 양 국가에 의해 완전히 잊힌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킨 바 있다.
▲ <적도에 묻히다>(우쓰미 아이코·무라이 요시노리 지음, 김종익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 ⓒ역사비평사 |
한국 현대사나 한일 관계 연구에서 민족주의 정서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우리 한국 학자들은 이 책의 저자들처럼 조선인 군무원들에게 현미경을 들이대기는 어려웠다.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전쟁 범죄자와 항일 투사는 천양지차다. 그러나 포로를 감시하는 군무원이 되었다가 이후 전범으로 분류되어 처형당한 사람들의 억울함이나 항일 결사를 만들어서 저항하다가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억울함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일지 모른다.
이 저자들이 발굴한 가장 중요한 사실인 네덜란드 군에 맞서 싸우다 죽어서 인도네시아의 독립 영웅이 된 양칠성의 이야기는 우리가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가장 새롭고 흥미진진한 것이고 또 감동적이다. 그가 여러 정황으로 인도네시아에 머물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식민지인 인도네시아의 편에 서서 싸우다가 목숨을 바친 이유는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굴욕의 체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것을 통해 나름대로 인류 보편의 가치를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들은 조선 청년들의 저항을 단순히 일제 식민지 억압과 항일의 이분법으로 지난 역사를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일본이 패망했음에도 인도네시아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조선 청년들은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떠들던 일본 제국주의의 맨 얼굴을 섬뜩하게 느낄 수 있었지만, 식민지 백성을 해방시킨다던 연합군도 해방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을 위해 일하다 죽어간 조선 청년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던 일본의 모습과 그러한 일본에 대해 책임 추궁하지 않았던 국제 사회가 바로 그들이 뼈저리게 자각한 냉엄한 국제 정치 현실이었고, 그러한 현실은 오늘 이 시점까지 지속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한국 정부까지도 이들 조선 청년들의 희생의 역사를 알지도 못하고 있으며, 관심조차 기울이고 있지 않다. 이들 잊혀진 조선 청년들의 역사는 전후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는 미국 패권 하의 새 동아시아 질서의 그늘 그 자체다. 모든 국가는 국가, 민족 이데올로기 지배 하에서 쌍방 간의 질서만이 유일한 현실인양 국민들에게 주입하고 있다. 이들 모든 국가는 자기 나라의 희생만, 오죽 자기 나라만의 전쟁영웅만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의 작업은 우리 한국의 연구자들에게 크게 깨우침을 준다. 일본군 성노예 출신 할머니들의 증언과 강제 동원 노동자의 고통 등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피해 사실을 거의 일본 연구자들에 주도하도록 내버려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 아닌가? 피해자 당사자들이 자신의 역사에 무관심하고 남의 도움으로 자신의 과거를 배우고 있는 사실이 참 어처구니없다. 이제 한국의 학계도 좀 더 보편주의 시각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본의 용병이 된 식민지 조선 청년들의 이야기는 당연히 20여 년 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국군 청룡 부대에 의해 주민 145명이 목숨을 잃은 베트남의 투이부촌 사람들은 한국군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 한국군은 미군의 용병이었기 때문에 한국군에 의한 학살도 미군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베트남의 퇴역 장군 한 사람도 "한국도 식민지 경험을 했고 분단 상태에 있기 때문에 다른 민족의 고통을 알고 있는 민족이고, 따라서 베트남을 침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전쟁의 기억,기억의 전쟁>(김현아 지음, 책갈피 펴냄, 102쪽).
과연 그럴까? 이들 베트남 사람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도 좋을까? 일본군이나 일본의 군무원으로 징집되어 인도네시아에 간 아버지나 삼촌을 둔 한국 청년들은 자신이 베트남에 참전해서 무엇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꼈을까? 일제 말 천황의 적자가 되라고 조선 청년의 징병을 독려했던 모윤숙은 "자유를 잉태하러" 가는 길이니 "죽음으로 황군의 전사가 되라"고 또다시 선전하는 시를 썼다. 한국인들은 과연 역사를 통해 배운 게 있는 것일까? 그래서 <적도에 묻히다>는 아직도 전쟁 중에 있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이 책의 번역자인 김종익은 이명박 정부 최대의 조직적 범법 행위인 민간인 사찰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그는 이들 조선 청년들의 고통과 저항의 이야기와 자신의 처지를 견주어 생각하면서 번역 작업을 했을 것이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만이 다른 억울한 자의 심경을 알 수 있고, 그러한 처지에 서서 역사를 다시 읽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번역자의 한과 열정도 이 책의 감동을 더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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