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서울 금천구청에서 열린 금천시민대학 토크 콘서트에 나선 그는 "2013년을 앞두고 많은 국민들이 단순히 대통령과 집권당을 갈아치우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라 현재의 절망적인 삶을 크게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소망하는 것 같다"고 했다.
특히 대선 화두로 떠오른 경제 민주화에 대해서도 "모든 문제가 남북관계와 얽혀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경제 민주화 반대 세력이 경제 민주화를 옹호하는 세력에게 찍는 낙인의 이름이 '친북 좌파'다. 이 대결상태가 존재하는 한 이성적인 토론은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 등을 명시한 제 119조 2항은 최근 가장 뜨거운 헌법 조항이다. 이른바 '경제 민주화' 조항.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경제 민주화를 앞세워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민주통합당이 이를 '짝퉁'이라 몰아세우면서 선거판 이슈의 핵으로 떠올랐다.
2007년 '시장', '감세' 등을 내걸었던 당이 5년 후 재벌 개혁·불공정 거래 단속 등 국가 규제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 민주화를 내걸게 된 '상전벽해' 뒤에는 이 사람, 김종인 박근혜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이 있다. 1987년 개헌 당시 위의 119조 2항을 만든 인물이다. 올해 초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에 영입되었다가 물러났던 그가 이번엔 대선을 위한 2라운드에 나섰다.
김종인 위원장에게 청중들은 줄기차게 "경제 민주화를 위해 박근혜 캠프에 들어간 이유"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확고했다. 한국 사회의 보수 세력인 새누리당부터 바꿔야 경제 민주화도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하다는 것.
백낙청과 김종인. 두 사람은 이날 '경제 민주화에 대한 접근법', '박근혜·안철수의 집권 가능성', '다음 정권의 대북 정책' 등을 놓고 2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회를 맡은 고성국 정치평론가는 날카롭고 직설적인 질문으로, 300여 명의 청중들은 질문과 성토로 그 열기에 가세했다.
금천구와 민주주의리더십아카데미, <프레시안>이 함께 7강으로 구성한 금천시민대학 1기 토크 콘서트의 마지막 순서, 이날의 주제는 "전환의 세계, 변화의 시대, 그리고 한국의 미래"였다. 두 원로는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고 있을까? 당장 많은 것을 결정할 대통령 선거가 5개월 앞으로 다가와 그 '판'을 유권자들에게 드러내고 있다.
다음은 이날 토크 콘서트의 내용을 네 개의 논쟁으로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 백낙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왼쪽), 김종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오른쪽). ⓒ프레시안(최형락) |
고성국 : 오늘 모시기 어려운 두 분을 모셨다. 김종인 위원장과 백낙청 교수다. 먼저 두 분이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상부터 묻고 싶다.
백낙청 : '미래를 꿈꾼다'고 하면 먼 이야기인 듯하지만, 이제 바로 다음해를 기준으로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새 대통령이 취임할 2013년을 앞두고 많은 국민들이 단순히 대통령과 집권당을 갈아치우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라 현재의 절망적인 삶을 크게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소망하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을 '2013년 체제'라고 표현한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과 그 이후의 시스템을 '87년 체제'라고 부르듯이, 2013년부터는 '2013년 체제'라 부를만한 새 시대를 열어보자는 꿈을 갖게 됐다. 1987년과 같은 활기를 갖고 또 한 번 도약할 때다.
김종인 : 1987년으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모순은 더욱 심해졌고 사회는 더 격한 갈등 구조에 놓여 있다. 대표적인 문제가 양극화다. 이런 상황에서 백낙청 선생이 말하는 새로운 도약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역동성'을 살려내야만 한다. 그 역동성은 내년에 출범하는 정부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주도해야 살려낼 수 있다. 그러니 차기 대통령은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조화된 상태를 만든 뒤, 그 바탕 위에서 (국민이)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논쟁 1. 경제 민주화, 새누리당부터 바뀌어야 vs. 밑에서부터 바꾸어야
고성국 : 두 분 다 '87년'이라는 과거와 '대통령 선거'라는 미래를 중심에 두고 말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는 대선, 그 관련 이슈 중에서도 최근 뜨거운 게 '경제 민주화'다. 87년 헌법엔 경제 민주화의 토대가 되는 조항이 있다. 119조 2항("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이다. 이 조항을 김종인 위원장이 집어넣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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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법률 시장까지 장악하고 있는 거대 자본이 송사에 휘말리게 된다면 보수적인 판사들이 어떤 판결을 내리겠나. 결국 커다란 경제 세력이 원하는 대로 가게 되어 있고, 그러면 사회는 더욱 심한 갈등 구조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걸 차단하고 경제 정책에 있어 민주적 의사 결정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집어넣은 게 경제 민주화 조항이었다.
그런데 지난 25년간 이 경제 민주화에 대해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더니, 최근에 정치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들고 나온 느낌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제대로 이해도 못 한 상태다.
청중 : 김종인 위원장께 질문하고 싶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공동 선대위원장이 되셨는데, 새누리당은 그 전신을 포함해 10~20년간의 행적으로 보면 솔직히 수구 세력이 당을 장악해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와중에 일부 개혁 인사들이 새누리당에 영입되었는데 개혁 정책 중 하나라도 성공한 게 있나 싶다. 오히려 새누리당에 이용당하고 토사구팽 당하는 게 아닌가. 사회경제적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 민주화를 강조했는데, 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선택을 한 건가.
김종인 : 올해 초 한나라당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했을 때, 거기 들어가 성장과 복지를 동일하게 가자는 내용으로 정당 정책을 바꾸었다. 물론 말씀하신대로 그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아주 보수적인 인사들이 상당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인사들의 의견이 반영된 지난 총선의 공천 과정을 지켜보면서 비대위에 더는 있지 못하겠다고 떠났다. 그러다 다시 이 문제를 놓고 2라운드가 시작된 셈이다.
여전히 내 이름만 빌려주고 아무 것도 못할 거라고 충고하는 사람들도 많다. '꼴통 보수'만 있는 당에 가 있다고들 말하는데, 나는 그곳을 먼저 변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새누리당을 변화시켜야 변화한 사람들이 나라의 문제를 바꿀 수 있고, 그래야 국민이 편해질 수 있다.
박근혜 의원에게도 확실히 확인을 받을 거다. 그도 총선 당시 대중의 심리를 관찰하면서 경제 민주화를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는 것 같다. 대권 선언문에서도 경제 민주화를 가장 앞세워 발표했다.
고성국 : 박근혜 의원과 이야기 자주 나누나. 말은 잘 듣는가. (웃음)
김종인 : 한두 달이 아니라 몇 년 동안 얘기해봤다. 현실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잘 돼 있다. 왜 한국이 심각한 갈등 구조 속에 놓여 있는가를 잘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백낙청 : 김종인 박사가 개헌 때 119조 2항을 넣으신 것에 대해 존경을 표하고 싶다. 또 그렇게 애써 헌법에 명시했는데도 실행이 잘 안 되고 있으니 직접 정치에 뛰어들어 실현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행보도 존중한다.
그런데 나는 경제 민주화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잘 실현되지 않는 이유부터 다시 묻고 싶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집중된 권력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검찰과 언론 등 사회 곳곳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비롯되는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본다. 그렇기에 헌법에 관련 조항이, 새누리당에 관련 강령이 있어도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다. 즉 경제 민주화를 사회 전체의 민주화란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단순히 '훌륭한 경제학자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 그가 경제 민주화를 해 주면 국민의 역동성이 커질 것'이라는 식의 논리는 내가 이해하는 역사완 거리가 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나 '2013년 체제'에 대한 큰 꿈을 공유하면서 그에 부합하는 새 정부가 나올 수 있도록 힘을 합쳐야 비로소 경제 민주화의 구체적 내용의 실현이 가능해지리라고 본다.
다시 말해 그 동안 헌법 119조 2항을 무력화하는 데 주도적으로 움직여 온 세력 속으로 들어가 잘 타일러보겠다는 생각보다는, 경제 민주화를 위해 저항해 온 사람들에 힘을 실어주어 역사적 변화를 일으키자는 생각이 옳다고 본다.
논쟁 2. 경제 민주화, 박근혜가 적자다?
고성국 : 종합하자면 김종인 박사는 박근혜 후보를 잘 교육시켜서 경제 민주화를 실현 가능하게 하자는 입장이고, 백낙청 교수는 국민이 참여해야만 경제 민주화가 실현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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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국 : '다소 독재적 성향을 가진 지도자'는 박근혜 의원을 말하는 건가?
백낙청 : 누구라고 특정한 건 아니다. 다만 박근혜 의원의 지지 기반을 고려할 때, 훌륭한 경제학 교사의 말을 듣고 감동해 대선 출사표와 함께 경제 민주화에 나설 수는 있으나, 냉엄한 현실에 부딪히다보면 그 갸륵한 마음은 오래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고성국 : 박근혜 후보의 선대위원장이 된 김종인 박사를 말리고 싶나.
백낙청 : 내가 말린다고 들으실 분은 아니다. (웃음) 그리고 김종인 박사가 선택한 정치 참여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이 더 잘 아시겠지만 거기엔 두 가지 리스크가 따른다. 하나는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고 또 하나는 당선 이후의 배신 가능성이다. 다 알고 하시는 것 아닌가.
김종인 : 백낙청 선생의 말은 결국 경제 민주화를 위해 진보 진영과 협력해야 한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현재 진보 진영에서 나오는 경제 민주화 얘길 들어보면 너무나 과격하다. 마치 금방이라도 뭐가 이뤄질 것처럼 얘기하지만 경제 민주화란 게 그렇게 쉽게 될 순 없는 거다.
이런 의미에서 백낙청 선생은 너무 순수한 것 같다. 초지일관 진보 진영에 기대를 거시는 것 아닌가. 나도 솔직히 김대중·노무현 두 전 대통령이 왜곡된 사회 구조를 시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라는 어려움이 있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모순을 해소하기는커녕 그것을 더 고착화시켰다. 노무현 정부는 어땠는가. 진보 좌파 정권을 표방했지만 한 짓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았다.
구체적 안이 나온 건 아니지만 민주통합당이 내거는 경제 민주화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과연 실질적으로 할 수 있겠는가. '누가 경제 민주화를 잘 할 것 같은가'를 물은 최근의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새누리당이 38퍼센트, 민주당이 27퍼센트라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문제는 경제 민주화 조치의 현실성이다. 그 현실성은 국민이 판단하게 될 거다.
고성국 : 그렇다면 박근혜 의원이 갖고 있는 구체적인 경제 민주화 안(案)은 무엇인가?
김종인 : 내가 이걸 몇 년을 했나. 현재 머리속에 다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답할 수 없다. 대선에 임박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게 될 거다.
고성국 : 현실성을 강조했는데,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박근혜 후보가 경제 민주화를 함에 있어 더 낫다는 판단인가.
김종인 : 그렇다. 현실적으로 그가 대통령이 되어야 경제 민주화가 더 가능해진다.
고성국 : 백낙청 선생은 박근혜 의원을 만난 적이 있나. 어땠는가.
백낙청 :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고, 그냥 행사에서 만났다. 단아하고 품위 있는 분으로, 선친이 보인 면과 대조적인 부분이 돋보인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공식 발언에서 드러나는 역사 인식은 상당히 문제가 된다고 본다. 5.16이 쿠데타임을 부정하고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차라리 5.16이 쿠데타였음을 인정하고 그 외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잘 한 일도 있지 않느냐고 항변했으면 많은 국민들이 이해했을 거라고 본다. 이런 역사 인식을 갖고 정치적 민주주의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경제 민주화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싶다.
고성국 : 김종인 박사께서는 박근혜 의원의 5.16 관련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종인 : 사실 1960년 이후 출생한, 현재의 50대 초반까지는 5.16이 일어난 맥락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런 이들이 듣기에 박근혜 의원의 표현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 표현이 좋게 되었으면 (반응이) 달랐을 텐데 부모자식 관계라는 이유 때문에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가급적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아버지가 아닌 '전직 대통령'으로 바라보면서 그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길 바란다.
백낙청 : 표현상의 실수이길 바라지만 내가 보기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기본적인 역사 인식의 문제다.
고성국 : 진보 진영에서는 경제 민주화란 이슈를 보수 진영에 선점 당한 것 아닌가. 이에 백낙청 선생도 책임질 부분이 있지 않은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가.
백낙청 :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면 책임지겠다. (웃음) 하지만 현 정부에 분노하는 국민들이 야당조차 대안으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은 전적으로 야당의 책임이다.
앞서 '희망 2013'이라는 꿈을 얘기했다. 희망이란 확정된 미래에 대한 예견이 아니다. 그렇게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거기엔 언제나 불안이 따른다. 올해 대선은 크게 보아 희망과 불안이 대결하는 국면으로 나아갈 거라고 본다. 여기서 많은 국민들이 '나부터 나서서 세상을 제대로 바꿔보겠다'는 꿈을 공유한다면 희망을 대표하는 사람이 이길 것이고, '희망을 말하는 사람보다 잘 했든 잘 못했든 정치를 해본 사람이 낫다'며 불안에 져버리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다.
논쟁 3. '안철수 대통령' 가능한가?
▲ 사회를 맡은 고성국 정치평론가. ⓒ프레시안(최형락) |
김종인 : 봤다. 사업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사물과 사람을 너무 단순화해서 보는데, 몇 번 이야기해본 결과 안철수 원장의 사고방식이 딱 그렇다. 하지만 기업 경영과 국가 경영은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그런(사업가적인) 버릇이 나와 문제가 되게 돼 있다. 그는 본인 입으로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한다'고 말한 적도 있고, '(나는) 정치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말한 적도 있는데, 최근 다른 생각이 든 건지 (여러 행보가) 갑작스럽다.
고성국 : '불통의 박근혜, 소통의 안철수'란 얘기가 있다. 들어본 적 있나.
김종인 : 그가 하는 '청춘 콘서트'를 두어 번 같이 해 봤다. 젊은 친구들 2~3000명 앞에서 여러 상황을 비판적으로 말하고, 그들 구미에 맞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그게 젊은이들에겐 감성적으로 와 닿는 모양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박수치고 호응하는 건 소통이 아니다. 소통이라고 착각하는 것뿐이다.
백낙청 : 나는 안 원장을 만나본 적이 없다. 다만 23일 방영된 '힐링 캠프'(SBS)를 봤고, 최근 나온 책(<안철수의 생각>(제정임 엮음, 김영사 펴냄))을 보는 중이다. 그 결과 생각은 참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경제 민주화 문제,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그 답을 독자적으로 제시한 건 아니고 주변에서 '말해주는 분들'이 있었다고 본다.
정치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향후 검증 받아야 할 문제다. 만일 방금 김종인 박사가 언급한 모습이 지금 드러난다면 대중의 기대는 금방 깨질 거라고 본다. 한국 정치판이 '개판'인 것 같아도 만만치 않다. 이 판의 검증이 상당히 무섭다는 뜻이다. 만일 안철수 원장이 그 검증을 견뎌내면 앞으로 정말 큰 역할을 할 거라고 본다.
고성국 : 그 검증 과정을 피하려고 자꾸 대선 출사표를 미루는 것 아닌가. 어쨌든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할 거라고 보는가.
백낙청 : 나올 거라고 본다. 그리고 출사표를 미뤄서 검증 과정을 피해보려 한들 불가능한 얘기다. 출마 선언을 대선에 임박해서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아무리 미뤄봤자 검증에 필요한 시간은 충분하다. 그가 누군지 금방 드러나게 되어 있다. 국민들은 현명하다.
만일 그가 출마한다면 민주당에 들어가서 그곳 경선을 치를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무소속 출마 혹은 지금 없는 어떤 정치 세력을 만들어서 출마하게 될 텐데, 이럴 경우 생각 가능한 선례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다. 당시 박원순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한 뒤 민주당-통합진보당(당시 민주노동당) 후보와 3자 구도에서 경선을 통해 후보로 올라 이겼다. 나중에 결국 들어가게 됐지만 '박원순 시장'은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은 상태로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델이 대선에선 적용되지 않을 거라고 본다. 만일 안철수 원장과 민주당 후보 사이의 경선이 벌어져 전자가 이긴다면, 민주당 입장에선 체면뿐 아니라 돈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숫자나 최근 선거 득표율로 계산되어 나오는 게 정당 보조금인데 가장 중요한 대선에서 민주당 득표율이 0이 되면 내년 살림이 불가능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른바 야권에서 승리를 위한 한 명의 후보를 만들어 낼 다른 길은 없을까? 없지는 않지만 여기서 떠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민주당도 이 문제에 있어 창의적인 답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고, 안철수 원장 역시 훌륭한 정치인이 되고자 한다면 걸맞은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고성국 : 대선에서 야권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가?
백낙청 : 이 문제에 있어서 비전문가라는 점을 전제하고 다소 무책임하게 발언하자면,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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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4. 남북관계 잘 풀어갈 사람은?
고성국 : 앞서 경제 민주화란 이슈를 중심으로 대선 후보들의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해봤는데, 이제 남북관계 문제를 논할 차례다. 백낙청 선생은 우리 현대사를 '분단'이란 프레임으로 해석해 왔다. 먼저 백 선생께 현재 파탄으로 빠진 남북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대선 주자가 보이는지 묻고 싶다.
백낙청 : 나는 '분단체제'라는 말을 써 왔다. 남과 북이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두 세계가 묘하게 엉켜서 체제 비슷한 것을 형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남쪽 문제든 북쪽 문제든 독자적으로 풀기 어렵다는 취지로서 사용했다.
남북이 통일이 되면 모든 문제가 다 풀린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경제 민주화를 포함한 모든 문제가 남북관계와 얽혀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경제 민주화 반대 세력이 경제 민주화를 옹호하는 세력에게 찍는 낙인의 이름이 '친북 좌파'다. 이 대결상태가 존재하는 한 이성적인 토론은 불가능하다.
북한 문제 자체만 놓고 보면 전통적으로 김대중-노무현 두 전 대통령이 속해 있던 야당이 앞서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그쪽 후보들이 새로운 남북관계 발전에 임할 적임자가 되는 건 아니다. 다만 거듭 말한 것처럼 남북관계 발전은 국내 사안과 얽혀 있으므로, 국내 경제·정치 민주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남북관계도 잘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고성국 : 김종인 위원장의 의견은 어떤지 듣고 싶다.
김종인 : 우리가 앞으로 소망하는 남북관계를 만들어 가려면 남쪽 내부의 조화가 우선이다. 다시 말해 정치와 경제 민주화가 되어야 남북관계도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의 경제적 능력이 배양돼 있어야 통일의 기회가 올 때도 주저함 없이 포착해낼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세력 관계가 커다랗게 변하고 있는 현재, 다음 대통령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6자 회담의 실질 당사자인 4자(한국·북한·미국·중국) 가운데 한국은 거의 아무 역할도 못 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나 중국과 대화하고 우리에게 통보하는 식이다. 이걸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가는 큰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을 세계적으로도 가장 '못된' 국가라고 말하지만, 그곳도 권력과 주민 사회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 6.15 공동선언(2000년) 이후로 북한 사회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고 본다. 원시적이나마 시장도 형성되어가고 있다.
고성국 : 다른 새누리당 의원들과는 다른 생각이신 것 같다. (웃음) 백낙청 선생께선 햇볕정책이 유효했다고 보시는가.
백낙청 : 무엇을 기준으로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간 교류가 활발해졌고, 노태우 정권 시절 체결되었으나 실행되지 못한 수많은 좋은 합의들이 실현된 건 명백한 사실이다.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태도가 크게 바뀌었으며, 개성공단을 통해 각자 이득도 얻었다. 이런 면에선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고성국 : 박근혜 의원은 남북관계 문제를 잘 풀어갈 것 같나.
백낙청 : 그는 이명박 정부와는 다른 방침인 것 같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도 그간의 남북 간 합의를 '존중한다'는 말을 이따금씩 하곤 했다. 그리고 곧 잊어버려서 문제였지만. (웃음) 그가 천안함 사건 이후로 발표한 '5.24 조치'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의 합의뿐 아니라 노태우 정부 이래 진행된 모든 남북 교류를 중단하겠다는 역사적인 선언이었다. 이에 비한다면 박근혜 의원이 내놓은 안은 훨씬 더 온건하고 합리적이다. 아니, 사실 누가 해도 이명박 정부처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웃음)
그런데 거듭 말하지만 남북관계와 국내 현안은 밀접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국내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이 남북관계도 잘 푸는 거지, 남북관계에 있어서만 온건한 태도를 취한다면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즉 국내에서 국민의 뜻을 거스른다면 결국 남북관계도 경화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취임 전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가 남북관계는 '실용적'으로 풀어나갈 거라고 기대를 가졌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도 북한과 거래해 큰 토건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 취임 초부터 미국산 쇠고기 파동 등 국민 저항에 부딪히니까 '비빌 언덕'이 수구 세력으로 좁아졌다. 거기서 그가 남북관계를 잘 풀어나가면 기득권을 침해받고 만다는 딜레마가 생긴 거다.
청중 : 35년간 자영업을 하고 있다. 정부가 개성공단에 투자한다면 물류비나 인건비도 낮아지고 노동자들과 소통도 되니까 남과 북이 '윈-윈'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의원께 진언을 하신다니 안심은 되지만, 더 강력하게 (남북관계를 잘 풀어가자고) 얘기해줄 수 없겠는가. 강력히 확대할 생각이 있는지 묻고 싶다.
김종인 :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생각해 남쪽에서도 개성공단을 유지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북쪽도 아마 같은 입장일 거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긴장 상태에 놓인 때라도 개성공단만큼은 계속 돌아갔다. 앞으로 축소되거나 철수되지 않고 쭉 발전해 나갈 거라고 장담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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