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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판과 오만, 박근혜에게 승리 헌납한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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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오판과 오만, 박근혜에게 승리 헌납한 선거"

[선거 분석 좌담] "'이명박근혜'는 허상…사즉생의 각오로 나서야"

거리에서, 손에 든 스마트폰에서 '가카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라는 조롱의 말들이 흘러나왔고, 그 목소리는 다시 SNS의 창으로 입력되며 증폭되어 갔다. '가카'만 사라지면 세상이 바뀔 거라는 믿음이 '반 MB'라는 표제로 팔리기 시작했다. 21세기 한국에 심판의 날이 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정치의 해가 오자 한나라당은 이름을 바꾸었고 MB의 흔적을 지웠으며 '복지'를 이야기했다. 그들은 2002년 결집된 열정이 어떻게 정권을 뒤집었는지 잘 기억하고 있었다. 4월 10일, 19대 총선 하루 전까지만 해도 분명 판세는 이른바 범 야권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결과는 152대 127.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여당의 압승이었다.


'완패'부터 '사실상 패배'까지 그 표현은 다르지만 민주통합당 등 범야권의 반 MB 심판론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만 승리를 거두었고, 나머지 지역은 전멸했다는 분석은 공통적이다. 빨간 색으로 도배된 충청·강원·경상권의 모습을 목격한 민주당은 곧 "여러 미흡함으로 인해 현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 여론을 충분히 받아 안지 못했다"는 성명을 내놨다. 하지만 맞는 판단일까? '붉은' 지역에선 심판의 대리자보다, 조금이라도 먹고사는 문제를 신경써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덜 도덕적이고, 덜 깨끗하더라도?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심판론은 민심을 결집시키는 포인트를 잡아주긴 했지만 그 틀 안에 내용은 없었다"고 지적한다. 박권일 <자음과모음R> 편집위원은 "수도권의 교육 수준이 높은 시민들이 과잉 대표되면서 '심판론'이 실제보다 큰 것으로 오판됐다"고 말한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심판론 외에 새로운 사람들을 끌어들일 균열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오판과 오만, 그리고 내용과 의제의 부재. 심판론은 효력이 있었지만 이 선거를 완수하기엔 이미 명운이 다 해 있었다. 12일 오전 <프레시안>이 마련한 19대 국회의원 선거 분석 좌담에서 이철희 소장, 한귀영 연구위원, 박권일 편집위원은 야권 연대의 패인을 위와 같이 분석했다. 여기에 계파에 대한 집착과 비민주적 과정으로 얼룩졌던 공천, 잘못된 공천의 정점을 찍은 김용민 후보와 그를 둘러싼 팬덤, 한명숙과 문재인의 한계, 존재 근거를 잃어가는 통합진보당의 모습 등 선거에서 드러난 야권의 거의 모든 문제가 언급됐다. .

혹독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대선을 앞둔 여대 야 구도로 본다면 앞설 것도, 뒤처질 것도 없이 원점으로 돌아온 형국이라고 말한다. 물론 박근혜 리더십으로 대열을 갖추기 시작한 여당이 유리한 출발점을 점하기는 했지만, "총선의 패배가 쓴 약이 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어느 쪽이 되었든 12월까지 8개월,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갈 것이다. .

다음은 좌담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인터뷰는 임경구 <프레시안>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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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최형락)

'야당 우세 판도' 잘못 읽었나

프레시안 : 19대 총선 결과에 대한 총평부터 해보자. 선거 전 사회 전반적인 '좌 클릭'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단독 과반을 얻은 표심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이철희 : 시민들이 여야에 가졌던 정서를 한 단어로 표현해 보자면 여권에는 '분노', 야권에는 '불만'의 정서였던 것 같다. 그동안 시민들 사이에서 분노의 정서가 표출되어 이른바 '심판론'이 효과를 발휘했는데,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박근혜 선대위원장이 전면에 등장해 혁신을 이야기했고, 그것이 심판의 대상인 이명박 정권을 숨기면서 많이 희석되었다고 본다. 또한 여당 자체에도 2010년 6.2 지방선거 이후로 2년 내내 매질을 당했기 때문에 생긴 내성이 있었다.

한편 야권에 대한 정서인 '불만'은 △전체적으로 그들이 도대체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흩어져 있는 데 대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통합'의 노력은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과제인 '혁신'을 빼놓고 진행된 것이었기에 통합도 결국엔 '닥치고 통합'으로 진행되었고, 일부에선 '담합'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 이 문제는 사실 공천 과정부터 시작된 거다. 민주당의 임종석 사무총장의 실정이다. (공천 이후로) 하루 한 석씩 잃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나.

결국 '분노'의 강도는 식어가는 가운데, '불만'에 대한 해소책을 제시 못 하는 판세로 이어졌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1992년 영국 총선 결과가 떠오른다. 선거 전엔 누가 봐도 영국 노동당에 유리한 형국이었다. 앞서 세 번 내리 지기도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졌다. 그때 사람들은 '보수당에 대한 감정은 미움이고, 노동당에 대한 감정은 불신이다.'라고 해석했다. '미움'은 사람을 바꾸거나 혁신 의지를 드러내면 해소될 수 있는 문젠데, '불신'을 해소하려면 상당한 진통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구도가 민주당이 직면한 신뢰의 문제와 비슷하다.

한귀영 : 같은 의견이다. 다만 몇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선거 사나흘 전 판세가 어떻게 될까 하고 엑셀 프로그램으로 조사를 해 보았다. 수도권에서 야권6 대 여권4 정도로 야권이 이기는 구도로 조사를 해 보니, 전국적으론 새누리당이 150석 넘게 나오는 결과가 도출됐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그래서 반대로 해 보니 수도권에서 야권7 대 여권3 정도로 이기고, 지방 무소속들로 인해 보수파가 일부 갈라지고, 충청권이 반씩 가져가는 구도로 되어야지만 (야권 연대가) 간신히 과반을 차지하는 구도였다.

이 얘기는 뭐냐 하면, 사회가 아무리 '좌 클릭'되고 야권 연대에 다른 호재가 있었어도, 한국의 보수 세력이 결집하면 이기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여권이 대승했던 2008년엔 오히려 한나라당·자유선진당·친박연대·무소속 등으로 보수가 분열해 있던 상황이었는데, 이번엔 무소속 당선도 거의 없었다. 똘똘 뭉친 보수를 상대해야 했던 거다.

또 하나 지적하자면 공천 중에서도 충청도 공천이 중요한 패인이었다고 본다. 충청도가 보수적이어서가 아니다. 민주당이 거기에 '인물'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선거가 결국 기존의 균열축인 심판론 가지고는 역부족이었단 사실이다. 새로운 균열축이 드러났어야 하는 건데, 그때 꺼냈던 게 '2040 세대'였다. 하지만 세대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세대 이면에 있는 계급, 계층 등이 문제인 거다. 그걸 못 보고 '2040 세대'라는 안이한 표심에 기댄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2040'이란 허상에 기대다

박권일 : 사실 애초부터 사회 전반이 '좌 클릭' 한 분위기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특히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시 언론에서도 '2040 세대가 박 후보를 선택했고, 그 표심이 대선에서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놨는데 과연 그럴까 싶었다. 어느 신문의 여론조사에서 40대의 정치적 성향이 1년 사이에 극단적 보수에서 극단적 진보로 엄청난 진폭을 보였다는 결과를 봤는데, 1년에 그 정도 차이라면 의심해 봐야 했던 게 아닐까?

기본적으로 야권의 패인은 '오판과 오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에 편승했던 분위기와 그에 대한 과대평가를 들 수 있다. 그 현상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교양 시민들, 이른바 '표준 시민'(수도권 교양 시민들이 쓰는 말을 '표준어'라 부르는 데 착안해 만든 조어)들이었다. 수도권에 살며, 2008년에 촛불을 이끌었고 이제는 SNS를 통해 활발히 활동하는 그분들이 여론에 과잉 대표되었고, 당이 그걸 잘못 해석하면서 '심판론이 먹힌다', '2040 세대가 진보적이다'라는 오판이 나온 듯하다. 한편 오만은 앞서 지적된, 공천에서 불거진 문제들이 잘 보여준다. 따라서 야권 연대가 내세운 심판보다는, 야권 연대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이 더 크지 않았나 생각한다.

▲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프레시안(최형락)
이철희 :선거의 기저에는 분명 심판론이 깔려 있었다고 본다. 민심을 결집시키는 포인트를 잡아주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심판론 다음에 나와야 할 새로운 의제로 확장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이 잘 못했다는 데 동의가 이루어졌다면,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그 다음 연결점을 만들어냈어야 했다. '반 MB·부패'란 '틀' 안에 알맹이를 넣었어야 했다는 거다.

또 나 역시 이번 선거를 통해 세대 담론의 허구성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세대 담론에 기대지 말고 그 내용을 채워나가야 하는데, 무조건 세대 이름만 외쳤다. 게다가 '2040 세대'는 그 말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이 안 된다.

박권일 :20대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청년 비례대표 관련해서도 정말 문제가 많았다. 특히 통합진보당은 서바이벌 게임을 그대로 베껴 내용은 없고 경쟁만 있는 '날림'으로 진행했고, 과정에서도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대체 누구를 뽑겠다는 건지, 애초에 의도가 뭔가 싶었다. 20대를 갖고 장사할 목적이었다면, 성공한 건 오히려 청년 비례대표를 아예 뽑지도 않은 새누리당 아니었나? 화려한 스펙을 가진 이준석과 순수한 열정으로 상징되는 손수조. 두 사람을 결국엔 국회로 보내지도 않으면서 알맹이는 다 가져갔다. 여야 다 20대에 대한 고민과 내용이 없긴 마찬가지였지만, 야권은 돈과 시간을 더 많이 쓴데다가 성과도 없었다.

세대를 내세울 거면 진짜 문제, 그러니까 '88만원 세대'로 뭉뚱그려서 이야기할 수 없는 '프레카리아트(아르바이트·하청 등 불안정 노동)'를 의제화했어야 한다. 난 '청년 실업'이란 말에도 어폐가 있다고 본다. 알다시피 일자리는 많다. 다만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결국 대다수가 열악한 불안정 노동에 빠지는 게 문제다. 이 부분을 보지 않고 일자리와 청년 실업률을 숫자로만 내미니 여당에서도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나오는 거 아닌가.

하나 덧붙이자면 선거가 끝나자 또 다시 거짓말처럼 '20대 개새끼론'이 나오더라. (웃음) 20대에게 '너희가 투표하지 않아서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는 혐의를 덧씌우는 것이다. 특히 20대하고도 여성들의 투표율이 8퍼센트밖에 안 나왔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떠돌면서 '된장녀' 운운까지 나온다. 무슨 일만 일어나면 그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문제라는 언사가 분노와 함께 되풀이되는데, 일종의 사회적 증상 아닌가 싶다.

중도보수를 끌어들일 '한 수'는 없었다

프레시안 : 잠정 투표율이 54.3퍼센트라는 점을 기준으로 여야의 결집도를 평가해보면 어떤가.

이철희 :그 숫자는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지방선거보다) 총선 투표율이 더 높아야 정상이다. 그리고 2008년 18대 총선은 특히 떨어져버린 수치였다. 게다가 올해는 대선도 있는 정치의 해다. 그렇게 보면 54.3퍼센트는 결코 높은 수치가 아니다.

투표율이 60퍼센트에 근접하려면 20, 30대를 투표장에 오게 해야 하는데 그들이 나오지 않았다. 그걸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투표 안 하는 게 민권의식의 문제는 아니니까. 결국 당사자들을 끌어내지 못한 정당의 문제다. 특히 투표 독려에 안간힘을 기울였던 야권. 18대 총선 투표율은 왜 46퍼센트밖에 안 나왔는지, 반면 서울시장 선거는 왜 높게 나왔는지, 여기에 대해 고민을 했다면 이렇게 느슨하게 대응하지 않았을 거다.

논문 표절한 문대성, 제수를 성추행한 김형태 등 여당 공천자들의 문제 하나 쟁점으로 만들지 못했다. 언론 파업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야권 쪽 보도만 줄었다. (웃음) 선거를 구성하는 요소 100개가 있다면 그 중 하나라도 제대로 했나 싶다.

프레시안 : 그나마 하나 성과가 있다면 여야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낸 것 아닌가. 절반의 성공이란 평가도 나오는데.

한귀영 :아무리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도, 보수 여권이 하나로 뭉치면 야권으로선 도저히 뚫을 수 없는 구조인 것 같다. 심판론을 넘어서는 새로운 균열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테면 무상급식이 그런 의제였다. 그게 보수마저도 중도파로 끌어들이고 결집시키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거의 3년 간 무르익었는데 새 균열축을 만들지 못했다.

또 야권은 2040 세대에 취해 있다가 정작 중요한 표층을 잃었다는 느낌이다. 50대, 특히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지방선거나 서울시장 선거 때 50대들은 일방적인 보수 구도를 형성한 게 아니라 4 대 6 정도의 균형을 보였다. 이번 선거에서도 초기 데이터를 보면 실제로 50대 자영업자들, 야권 쪽에 기우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1대99'라는 틀 속에서 공감을 보이던 50대마저도 이탈해 갔다. 굉장히 아쉽고, 치명적으로 작용한 부분 아닌가 싶다.

'나꼼수'라는 덫

프레시안 : 민간인 불법 사찰과 김용민 막말 파문이 선거 막판의 최대 이슈였다. 후자의 경우 그 영향이 있었는지 알기 어려운데, 어떻게 보나?

한귀영 :나꼼수 얘긴 함부로 했다가는…. (일동 웃음)

이철희 :먼저 하겠다. (웃음) 김용민 후보의 발언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본다. 이런 문제의 후보를 다루는 정당의 부족한 리더십과 무기력, 꼼수에 화가 난 게 더 큰 문제였다. 외부에선 상당히 세게 김용민 후보의 사퇴를 주장했고, 심지어 한명숙 대표까지 비례 후보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하나도 안 먹혔다. 정신 차린 사람 몇 명 있긴 했겠지만 결국 당 자체로는 김용민과 나꼼수를 제어하지 못했다. 정작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시내 한가운데에 팬을 모으고 차 위에 올라가 주머니에 손 넣고 사진 찍고 있는데, 정당은 눈치나 보고 있는 게 말이 되는가.

▲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한귀영 :김용민 후보를 공천할 때부터 민주당은 덫에 걸렸다는 생각이다. 공천 순간부터 그 후보에 대한 제어는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문제가 될 걸 몰랐을까?

공천이란 정당이 자당을 대표하는 후보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해당 인물이 공익과 공동체를 위해 어떠한 기여를 해 왔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관점이 가장 중요한데, 그건 빠진 상태에서 스타성에 기댄 공천이 주를 이루었고 그 절정이 김용민 후보였다. 차라리 김 후보는 나꼼수만 계속 만들었다면 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거다.

또 하나는 나꼼수 자체의 문제인데, '비키니 논란'을 비롯해 그간 여러 번 문제적 조짐이 드러났었다고 본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진영 논리에 갇혀 버렸다는 사실이다. 나꼼수가 대중의 환호를 얻은 결정적 이유는 모든 성역을 없애버렸다는 데 있는데, 어느 순간 그들이 성역화된 것이다. 어디에나 칼을 들이댔지만 그 칼날이 자기 자신을 향하지는 못했는데, 그럼 칼날은 자연히 무뎌질 수밖에 없다. 그 성역화와 편 가르기가 '우리 편'한텐 무척이나 통쾌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게 정치권력이 된다면 굉장히 위험한 결과가 나타날 거라고 본다.

프레시안 : 민주진보 진영 내에선 매우 열정적인 팬덤 문화가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것 같다. 결속력이 강한 소수의 열정이 결과적으로 왜곡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반복되는 듯 하다.

이철희 :2002년에 구 민주당이 국민 경선으로 대선 판을 엎어버린 일이 있지 않았나. 내용과 형식 중에 형식을 통해 바꾼 일화 중 하나였다. 이번에도 형식에 집착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형식에 대한 집착, 깜짝 쇼, 뭔가를 한 번에 바꿔보려는 욕망…, 이런 방식은 도움이 안 된다. 여기에 재미를 붙이면 대선 판에서도 한 번에 엎어버리려는 기획이 시도될 수 있는데, 그럼 절대로 못 이긴다.

노무현·김대중 두 전 대통령도 '정상적'으로 이긴 게 아니었다. 어떤 운과 분위기가 작용했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이기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결국 다시 민주당의 역량 문제로 돌아오는 것이다. 민주당이 내용 면에서 천착할 부분이 굉장히 많다. 이걸 감안하면 2012년의 깜짝 쇼를 노리기보다 2017년까지 길게 바라보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이명박근혜'는 없다

▲ 박권일 <자음과모음R> 편집위원.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새누리당의 시각에서 총선을 돌아보자. 일견 불리해 보이는 판세를 뒤집고 위력을 과시했다. 유권자들에게 어떤 점을 어필했던 걸까.

박권일 :일단 새누리당이 플래카드에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크게 내세우는 등 일종의 물타기를 했다. 겉으로 봤을 때 야권이 차별화되는 부분이 없어진 거다. 전략적으로 최대한 '반 MB'를 희석시킬만한 행보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한귀영 :그런데 새누리당이 이긴 게 아니라 민주당이 새누리당에게 헌납한 선거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철희 :그에 대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해 주자면, 애초에 (민주당의) 과반수 확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7대 국회 때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확보했고, 이명박 정권 말기 들어 선전하는 걸로 보이니까 과반 확보를 당연한 것처럼 여겼지만, 이번 선거에서 나타났다시피 보수와 영남이 한 덩어리로 움직이면 무시할 게 못 된다. 당시 152석이 가능했던 건 충청권에서 의석을 가져왔기 때문인데, 이번엔 충청·강원권에서 대패하지 않았나. 그렇게 제외할 거 제외하고 현재 야권 연대의 역량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127(민주당 의석 수)+13(통진당 의석 수)=140이다. 이렇게 보면 아주 나쁜 성적표는 아니다. 다만 그 과정이 한심했을 뿐이지.

그래서 이대로 '박근혜 대선 순탄'이란 예측을 내놓는 건 섣부르다고 본다. 다만 이번에 그가 보인 리더십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박근혜 대 문재인의 선거는 아니었지만, 박근혜가 다섯 번이나 부산에 내려가 손수조의 손을 잡아줄 때, 진보 진영의 대표선수라 여겨지는 문재인은 대체 무엇을 했나. 두 사람의 모습에서 현격한 차가 드러났다. 그게 작아 보여도 어떤 세력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내는 데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 같다.

한귀영 :동의한다. 2002년 대선과 비교해 보자면, 전력이란 측면에서 당시엔 한나라당이 압도적 우위였다. 그때에 비하면 현재 새누리당의 전력은 많이 약해졌다. 그런데도 보수도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박근혜의 전략에 대한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이철희 :물론 새누리당으로선 '1인 정당화'라 할 정도로 박근혜에게 과도하게 의지했다는 우려를 피할 수 없겠지만, 민주당의 문제는 그 반대였다. 그들은 중심이 없는 선거를 했다. 박근혜의 결기는 상당한 수준인 데 반해 야권의 그것은 답답한 수준이다. 굳이 대표가 아니더라도 내용 면에서 리더가 있어야 했는데 전혀 없었다.

어쩌다 한 번 신문을 읽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선거 주제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하는데, 민주당은 MB 정권 심판론을 꺼내면서도 자꾸 박근혜에게 칼날을 세웠다. 그게 박근혜의 프레임에 말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본질은 이명박, 그러니까 개인으로서의 이명박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보수를 아우르는 상징으로서의 이명박의 잘못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명박이 박근혜 뒤로 숨은 꼴이 됐다.

프레시안 : 야권이 프레이밍한 '이명박근혜' 자체가 허상이 아니었을까?

이철희 :애초에 그렇게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2007년 대선 직전에도 한나라당 경선에서 둘이 세게 붙지 않았나. 박근혜는 그 때도 이명박을 대선 후보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18대 총선은 친이계의 친박계 학살이었고. 박근혜가 이명박의 대리인 혹은 수혜자라는 이미지를 아예 안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보통 사람 시선으로 봤을 때 분명 반 MB의 의지가 있다. 게다가 '이명박근혜'라는 조어는 발음도 어렵고 와 닿지도 않는다.

박권일 :이미 대중들에겐 피터지게 싸우는 세력으로 각인돼 있는데 '이명박근혜'로 연결 지으면 굉장히 작위적이란 느낌을 받게 된다. 앞으로 박근혜는 이명박의 '천박한 보수'와 차별화되는 '정통 보수', '보수의 적통'이란 프레임으로 나갈 것 같다. 그래선지 올해 대선이 보수 대 진보란 프레임으로 가게 될까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안철수 열풍이 착한 보수에 대한 열망과 연결되어 있는 걸 고려하면, 결국 '어떤 보수냐'의 대결이 되리란 생각이 든다.

박근혜, 난공불락인가?

프레시안 : 어쨌든 여당의 대선 대열은 박근혜를 중심으로 정비됐다고 봐야 할듯 하다.

이철희 :그렇다. 박근혜는 이번 선거를 자기 노선에 대한 확정으로 받아들일 거다.

프레시안 : 반면 야당의 경우 한명숙 체제가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는데,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지도 체제에 대한 고민이 시작돼야 할텐데.

이철희 :대선까지 지도부를 재구성하고 준비 체제를 다시 꾸리는 게 불가능하다는 의견, 그 자체가 한심하다고 본다. 이번 선거가 준 교훈 중 하나가 무너진 당내 리더십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인데, 그걸 안 하고 대선을 치를 수 있겠는가. 문책이 반드시 필요하고, 현재 지도부가 사퇴라는 조치로 책임지는 게 합당하다고 본다.

한귀영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들이 심판론을 이야기했는데 심판의 다른 말은 책임이다. 여당한테 물었던 것만큼, 자기 진영 유권자들의 욕구를 대변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걸 대의민주정치라고 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 : 종합하자면 박근혜 대세론은 확고해진 듯하다. 신뢰라는 키워드도 독점했다. 대선까지 한참 남긴 했지만, 현재로선 박근혜의 존재가 난공불락처럼 느껴지는데.

이철희 :새누리당 안에서는 확실해졌지만, 대선 전체 판세를 보면 난공불락까진 아니다. 18대 총선을 떠올려 봐라.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등 보수당이 다 합쳐 185석을 얻었다. 통합민주당이 81석을 얻었고,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의 3석까지 합치면 89석이 야권이 받은 성적표였다. 이거에 비하면 19대 총선 성적은 정말 많이 향상된 것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대선이 일방적으로 흘러갈 거라고 보지 않는다. 물론 이런 얘기하면 그들이 그대로 눌러 앉을까봐 조심스럽다. 이번에 지기 힘든 선거를 완벽하게 졌고, 탁월한 무능이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래도 대선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수도권만 놓고 보자면 새누리당이 43석을 얻은 데 비해 민주통합당은 65석이고 통합진보당 4석까지 합치면 진보진영이 69석을 얻은 셈이다. 43대 69면 상당히 해볼 만한 구도라고 본다. 앞으로 충청이나 강원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구도다.

프레시안 : 이번 결과가 민주당에게 '쓴 약' 역할을 할 거라는 의견도 있다.

한귀영 :약을 약으로 만드는 건 주체의 능력이다. 이번 패배를 통해 변화와 내부 결집을 보여준다면 가능성이 있겠지만, 계속 지금처럼 지리멸렬하면 어려울 거다.

이철희 :'만만치 않은걸' 정도의 쓴 약이라면 치료되지 않을 거다. 그보다 훨씬 깊은 내상이다. 새누리당이 대통령 임기가 1년이나 남은 시점에 친이계 권력을 깨버리는 공천을 한 것처럼 쓴 것을 삼킬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 절박함을 반추해 보라.
ⓒ프레시안(최형락)

문재인이 빠진 딜레마

프레시안 : 야권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은 어떤가. 문재인 후보가 지역구 승리는 했어도 사실상 실패했다고 얘기되는데, 문재인의 한계와 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철희 :17대 총선 때 PK(부산·경남) 득표율을 보면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을 합쳐 46.7퍼센트까지 갔다. 근데 이번엔 거기에 못 미친다. 부산진구을에 출마했던 김정길 후보도 40.5퍼센트 지지율로 낙선했는데 지난번보다 줄어든 수치다. 이게 문재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만일 PK를 영남권에서 떼어내는 것이 과제였다면 실패가 확실하고 책임의 상당 부분은 문재인에게 있다고 본다.

한귀영 :일면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일단 의석수로 보면 PK에서 얻은 게 겨우 세 석이니까 문재인의 힘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몇몇 지역에서 오차범위 내로 접전을 펼쳤기에 '고작 3석'이라는 말로 문재인의 한계를 얘기하기도 어렵다.

PK에서 변화의 욕구가 있긴 있다고 본다. 특히 부산에선 저축은행 사태라든지 심각한 양극화 문제로 인해 뚫고 들어갈 지점이 분명히 있었다. 영도구에 출마한 통진당 민병렬 후보의 선전(37.6퍼센트, 2위로 낙선)이 그걸 증명한다. 출구조사만 놓고 보면 1위와 오차범위 내에 있었다. 영도에 김진숙과 한진 중공업, 희망버스가 있긴 했지만 부산에서 노동이란 의제를 갖고 37.6퍼센트를 만들어낸 건 대단한 거다.

그런데도 문재인이 PK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건, 오히려 친노라는 틀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야권은 이제 수도권을 공력하면서 거기서 먹힐 인물이 누군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다시 노무현(친노)을 소환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다. '친노', 'PK'만 갖고 문재인이 버틴다면 상당히 힘들어질 거라고 본다. 빨리 그 두 굴레를 벗어나야 대안으로 부각될 수 있을 텐데 본인에게 달린 숙제다.

안철수에게 시간이 없다

프레시안 : 또 한 명 빼놓을 수 없는 게 안철수다. 이번엔 그야말로 숨을 죽이고 있었는데, 이번 총선이 과연 안철수에겐 무엇이었을까. 과연 야권의 패배가 안철수의 기회가 될까?

박권일 :내가 보기엔 수혜를 입었다. 문재인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되면서 박근혜의 대항마로 자연스럽게 안철수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되지 않았을까. 안철수는 언제 등판하게 될까, 라는 기대감이 대중들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이철희 :덕은 봤을 거다. 야권이 힘이 달리는 걸 보여줬기 때문에 분명 안철수를 잘 끌어안으려고 할 테니까. 하지만 반대로, 총선이 이 따위로 될 때까지 그는 대체 뭐 했냐고 물을 수 있는 거다. 고작 투표 독려뿐이었다. 그래서 안철수가 야권의 경선 레이스에 들어오겠다고 하면 당에서 아주 흔쾌히는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본다. 여전히 중요한 의제들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고, 자기가 어떤 정치 주체인지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지층의 동의를 구하긴 어려울 것 아닌가.

이렇게 보면 수혜를 입은 듯 하면서도 얻은 알맹이는 많지 않다. 자기 정체성이 뭔지, 뭘 할 거며 누구랑 같이 갈 건지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철수에게 주어진 시간도 별로 많지 않다고 본다.

한귀영 :나도 안철수 효과의 1라운드가 지난겨울 1500억 원을 기부한 시점에서 일단 끝났다고 본다. 이제는 그 현상이 있었는지조차 아득하게 느껴지는데, 그런 의미에서 정권에 나설 거라면 1라운드 이상의 것을 보여줘야만 한다고 본다. 단순히 불공정한 것에 대한 젊은 층의 반감이 아니라, 자기가 꿈꾸는 정치에 대한 상(像)들을 업어야 하는 거다.

물론 총선에서 안철수가 어떤 역할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대선은 거의 인물 하나로 가지만 총선은 246개 지역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구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총선을 전후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총선 며칠 전 어느 강연에서 현 정권을 비판하는 듯한 비유적 발언을 했는데, 그게 안쓰럽게 한 발 걸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그가 정치란 진탕에 뛰어들 수 있을지조차 회의적이다.

이철희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때 취한 스탠스와 이번 4월에 보인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이번엔 더 나가야 할 판에 뒤로 물러나 버렸다. 파급력 면에서도 별 재미를 못 봤다. 이러면 차라리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같이 고민하고 경쟁하는 게 그에게도 나은 선택이다. 그게 아니라 '너희들이 꽃가마 태우고 가야 한다'는 식이면 난망하다. 대선 전에 당 재정비를 할 때 끼어들어 거기서 자기 역할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만일 민주당이 그를 '유명함' 하나로 결정적인 순간에 끌어들이려 한다면 그건 민주당으로서도 자기 부정이나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정책적 색깔과 안철수의 그것이 많이 다르니까. (만일 그런 식으로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면) 민주당은 5년 동안 매일 청문회만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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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13석 과분한 이유

프레시안 : 통합진보당이 13석을 얻었다. 통진당 역시 선거 과정에서 맹점을 많이 드러냈다고 본다. 선거 내용을 복기해보면 이들이 얻은 13석은 과분해 보인다.

박권일 :이정희 대표 사건이 컸다. 결국 사퇴라는 옳은 판단을 내렸지만, 그 과정에서 '경기 동부'가 조중동에 소설처럼 등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나는 아직도 통진당이 어떤 정당인지 대해 대중들의 상이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의 업둥이 정도의 이미지라고 할까. PK의 소위 진보 벨트라 불린 울산이나 창원에서도 그들이 진짜 노동자를 대표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신뢰가 없지 않았나 한다.

이철희 :야권 연대에만 의지했지 자기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다. 이번 총선에 임한 통진당만 놓고 보면 결국 민통당과 합치는 수순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선거구제를 바꾼다면 모를까 지금 의석수로는 19대에서도 불가능해졌고, 이번에 양당제 구도가 한층 더 명확해졌는데 여기서 과연 통진당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보면 민통당과 통진당 간의 차이도 별로 없다. 통진당이 진짜 좌파 정당, 이념 정당을 표방한다면 '20석 목표'를 내거는 게 말이 되나.

한귀영 :나 역시 이번 결과가 그들에게 내용적으로 참패라고 본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3퍼센트의 지지를 얻고 비례만 8석을 꿰찼다. 이번에는 10.3퍼센트의 지지를 얻어 6석을 가져갔다. 사실 진보정당은 기본적으로 지역구에서 선전하기 힘들다. 그래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꾸거나 정당 명부제를 통해 가치로 검증받고 비례 의석을 가져가는 구도가 아니면 생존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번엔 이상하게 지역구에서 선전해서 7석을 가져갔다. 그래서 외형적 결과인 13석과는 별개로,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인 가치와 정책이란 면에서 제대로 평가를 못 받지 않았나 싶다. 노동자 기반이라는 그들의 존재 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가 될 수 있는 거다.

비례 의석을 얼마 못 가져간 이유는 물론 표면적으로 '이정희 사태'로 이해되고 있지만, 그보다는 비례대표 선출 과정 자체에 너무도 큰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정당이 가장 비민주적인 선출 과정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얻은 13석 가운데 두세 석을 빼놓고 앞서 말한 그 '경기 동부' 일원들인데, 특정 정파에 휘둘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이 딜레마를 대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들의 존재를 위협하기로는 민주당 합당 문제보다 클 수도 있다.

프레시안 : 선거 결과를 보고 우려스러운 게 있었다. 아까 이철희 소장이 말한대로 확실히 양당제적인 질서의 틀이 잡힌 게 아닌가 하는….

박권일 :제3지대에서 급진적인 의제를 제시할 수 있는 진보정당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녹색당이나 진보신당이 몇 석이라도 얻었으면 공동체 전체에 정말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개인적으로 너무 아쉽다. 녹색당의 경우 '탈핵'이라는 원내 정당보다 더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나. 새누리당이 비례 1번을 찬핵 인사로 설정하면서 찬핵을 분명히 한 것에 대항할 수도 있었다.

진보신당도 그렇다. 이번 선거 '신의 한 수'가 손수조였다면 '감동의 한 수'는 진보신당 비례 1번 청소노동자 김순자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진보신당의 경우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초점이 정책보단 김순자란 인물에 맞춰져 있었고, 그래서 반성해야 할 부분도 분명 있다. 그래도 두 정당이 한 석도 못 얻은 건 굉장히 안타깝고, 넓게 보면 범 진보개혁 진영은 물론 정치 전체에 타격이라고 본다. 양당제 구도로 가는 현실 속에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제3지대의 작은 정당들이 미래에 대한 안전판으로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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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끝났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이번 총선 결과를 바탕으로 대선 정국과 결부해 정리의 말을 부탁한다.

이철희 :민주당과 범야권에 뼈를 깎는 수준의 성찰이 필요하다. 새로운 지도부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깊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치열하게 성찰하되 쫄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아예 절망할 수준이 아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면 대선도 해 볼만 하다. 사즉생의 각오로 바꿔나가길 바란다.

한귀영 :정치적 변화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새로운 층이 유입되면서 생겨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유입은 새로운 아젠다를 통해 균열축을 만들어낼 때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뼈아프다. 변화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농후했는데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선이 남아 있고, 대선이야말로 진짜 아젠다가 맞붙는 장이다. 12월의 결과는 대중의 삶과 관련된 의제를 어떻게 구축하는가에 달려 있을 거라 본다.

박권일 :아까 한귀영 연구위원이 '50대 자영업자들이 야권으로 기울었다 결국엔 보수당을 선택했다'고 말했는데, 돌아서게 된 변화가 무엇일까. 나는 그분들의 진짜 문제,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야권에서 별 얘기를 안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꼼수도 그렇고 SNS도 그렇고, 선거 전 야권이 힘을 쏟았던 영역은 전부 수도권에 사는 교육 수준 높은 '표준 시민'들 사이에서 통하는 이야기였다. 대개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이야기들이다.

의제의 제시와 설득 과정 없이 트위터나 나꼼수로 바람몰이하는 정치는 그 시효가 끝났다고 본다. 길게 보면 2002년에 시작된 팬덤 정치의 한계가 드러난 거다. 10년 가까이 사람들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끼고 반복적으로 축제를 벌여 왔는데, 그 축제가 끝나면 탈진 상태에 빠졌고, 다시 축제와 탈진이 반복됐다. 그러면서 피로감이 쌓이고, 정치를 이야기하긴 하지만 축적되는 게 없었다. 극복하려면 정공법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외부 인기인의 영입을 노리기보다 정당 내 인력 재생산의 틀을 만들어야 하고, 무엇보다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의제를 제시,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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