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만약 그런 남성이 있다면 그는 '화성인'으로 발탁돼 방송에 출연할 수도 있다. 이는 다시 말해 도박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아무런 반감 없이 자리 잡고 있는,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도박은 흥분과 쾌감, 부와 패가망신을 함께 주는, 치명적인 유혹을 지닌 위험이다.
흔히들 도박을 "불확실한 미래의 특정 결과를 기대하며, 금전을 포함한 가치 있는 어떤 것을 지불하는 행동"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만약 설에 친구들끼리 모여 '점백 고스톱'을 쳤거나 술내기, 밥내기 화투를 쳤다면 이는 도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 친척끼리 모여 돈을 걸거나 내기를 하지 않고 윷놀이를 하거나 고스톱을 했다면 이는 도박이라고 할 수 없다.
도박을 한다고 해서 모두 형사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체육진흥투표권, 소싸움 등 국가가 도박판을 깔아주는 이른바 합법적 도박은 당연히 처벌 대상이 아니다. 처벌 대상은 인터넷 도박이나 게임 도박 등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불법 도박을 한 사람들이다. 물론 국가가 인정하지 않은 불법 도박이라 할지라도 친구끼리, 동네사람끼리 '점백 고스톱'을 쳤다면 이는 오락 정도로 보고 처벌하지 않는다.
도박의 역사는 매우 오래 됐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도박의 종류는 다양해지고 도박을 즐기는 사람 또한 크게 늘어났다. 이제 도박은 선진국과 후진국, 동양과 서양, 남녀노소나 빈부를 가리지 않고 즐기고 있다. 고대나 중세와 달리 현대 도박의 특징이라고 하면 국가가 나서 도박을 합법적으로 하게끔 한다는 사실이다. 주식이나 선물 옵션 등도 일종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한편으로는 도박을 장려하고 한편으로는 도박 중독자를 예방·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다. 합법적 도박은 어찌 보면 모순덩어리다.
개인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도박 산업, 즉 사행 산업은 불황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서민은 등골이 휘고 피눈물이 나고, 중소기업은 경영이 악화되고, 자영업자는 한숨만 내쉬고, 소득 양극화는 끝 모르고 내달리고 있지만 도박 산업만큼은 불황을 모르고 날로 번창한다. 양극화가 심화할수록 오히려 도박과 도박 중독은 늘어만 간다.
자살 또한 우울증 증가와 양극화, 도박 중독자 증가와 함께 늘어난다.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부나방처럼 인터넷 도박, 경마, 경륜, 복권 등 국가가 공인한 도박이나 불법 도박에 몸을 내던지고 있다.
▲ 도박의 종류. ⓒ프레시안 |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자살 국가라는 불명예와 함께 세계 최고의 저출산 국가,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여기에다 세계 최고 수준의 도박 중독자 국가라는 타이틀마저 거머쥐었다. 이는 최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발표한 <2010 사행 산업 백서>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2010년 공식 통계에만 강원랜드, 외국인전용카지노, 경마경륜경정, 복권, 체육진흥투표권에 몸을 내던진 사람은 연인원 3954만 명에 1인당 평균 44만 원씩 모두 17조3270억 원을 정부 공인 도박에 쏟아 부었다. 정부는 이 가운데 약 30퍼센트에 해당하는, 5조 원을 웃도는 막대한 돈을 국세, 지방세 등 세금 명목으로 챙겼다. 도박 산업의 성황으로 대박을 터트리는 곳은 정부다.
이를 유형별로 보면 경마장이 7조5765억 원(43.7퍼센트)으로 전체 가운데 절반에 가깝고 이어 복권 2조5255억 원(14.6퍼센트), 경륜 2조4421억 원(14.1퍼센트), 체육진흥투표권 1조8731억 원(10.8퍼센트), 강원랜드 1조2534억 원(7.2퍼센트) 등의 순이다. 정부 공인 사행 산업의 규모만 보더라도 어마어마한데 수많은 불법 개인 도박, 인터넷 도박 따위를 더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도박의 규모는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불법 사행 산업의 경우 합법 사행 산업의 세 배가 넘는 53조 원(2009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 새로운 도박으로 그 이용객이 급증하고 있는 인터넷을 이용한 신규 사행 산업과 사실상 사행 산업이랄 수 있는 선물 옵션 따위를 보태면 국내 사행 산업 규모는 진짜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사행 산업의 급격한 팽창은 도박 중독자 증가와 샴쌍둥이다. 이는 또 도박 중독자의 치료, 가정 파탄, 자살, 범죄 증가, 이로 인한 범죄 방지 체계 구축, 증가한 범죄자에 대한 교정 비용 등 도박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역시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게끔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카지노, 경마, 경륜, 복권 등을 포함한 합법적인 도박 관련 사행 산업은 1995년까지 연간 2~3조 원에 불과했다. 외환 위기 이후 사행 산업은 번창했다. 2002년 12조6516억 원으로 껑충 뛰었고 2008년 16조 원, 2009년 16조5337억 원, 2010년 17조3270억 원 등으로 최근에도 해마다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도박 중독자의 수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방증이다.
도박 중독은 자신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자제력이 없어져 도박보다 더 중요한 가족, 직장 등이 있음에도 이는 내팽개쳐 놓고 도박에만 몰두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에게 도박은 더는 여가 생활이나 즐거움,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 아니다. 오로지 돈 놓고 돈 먹기이다.
도박 중독은 국가 경제와 재정, 고용과 교육, 범죄와 건강, 가족과 사회 등 모든 면에서 부정적 파급 효과가 매우 높다. 중독자 개인 측면에서 보면 신체·정신적 건강을 저해하며, 여러 가지 행동 문제를 야기하는 등 삶의 질을 크게 추락시킨다. 가족 측면에서도 이혼, 가정불화와 폭력 등과 같은 부정적 영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게다가 사회적 측면에서는 개인의 생산성 저하와 직결돼 건강한 경제 활동 참가와 사회의 경제 발전을 가로막고, 한탕주의 문화와 범죄 유발 등으로 인하여 도덕적 해이와 사회 병리적 현상을 발생시킨다.
도박으로 날밤을 샌 직장인이 그 직장에서 일과시간에 일을 제대로 할 리가 없다. 당연히 경제적 생산성과 효율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직장 생활을 온전히 하기 어렵다. 회사를 관두고 빚을 내 계속 도박장으로 출근한다. 신용 불량자가 되거나 이혼을 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도박 자금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과 사기, 횡령, 절도, 강도 등 범죄까지 저지른다.
전문가들은 도박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2009년 무려 78조 원으로 추산했다. 국내 한 연구 보고에 따르면 우리나라 도박 중독자 유병률은 6.1퍼센트로 나타났다. 1인당 사회·경제적 비용으로 환산하면 2631만 원에 해당한다. 강원랜드 도박중독센터가 상담 현황을 분석한 결과 강원랜드에서 도박으로 1억 원 이상 탕진한 중독자가 44퍼센트나 됐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도박 증가가 계속될 경우 2050년에는 도박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무려 361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도박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손을 써 해결해야 할 시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강원랜드를 만들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들먹였다. 하지만 이는 허구다. 도박 중독자 양산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와 실직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대한민국 차원에서는 실질적 고용 감소를 가져오고 전체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도박은 열심히 땀 흘려 부를 모으려는 사회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다. 또 건전한 다른 여가 문화를 즐기려는 기회를 빼앗는다.
도박 중독자에게는 다른 사람에 견줘 우울 등 병리적 정신 문제가 잘 생긴다. 국내외 연구를 보면 도박 중독자 가운데 무려 76퍼센트가 우울 장애를 지니고 있으며 20퍼센트가 자살을 하거나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47~52퍼센트가 약물이나 알코올 의존성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박 중독은 가족 갈등과 해체, 아동 학대나 방임 등의 원흉이다. 병적 도박자의 이혼율은 53.5퍼센트로, 비도박자에 비해 약 3배나 높다.
2006년 국내 한 연구팀이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 카지노 설립 이전과 설립 이후 각각 4년간 이 지역에서 발생한 범죄를 조사한 결과 카지노 설립 이후 총범죄가 30퍼센트 증가했다. 유형별로는 절도 70퍼센트, 폭력범 30퍼센트, 지능범 90퍼센트, 풍속범 100퍼센트 각각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또 같은 연구진이 2009년 카지노 출입 중증 도박자 4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범죄와 관련해 24.6퍼센트가 가벼운 수준의 영향을, 13.9퍼센트가 심각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전체적으로 38.5퍼센트가 과도한 도박 때문에 범죄를 경험한 것으로 분석됐다.
2009년 한국마사회가 고려대 연구팀에 맡겨 이루어진 연구 결과 조사 시점을 기준으로 과거 1년간 도박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58.1퍼센트로 나타났다. 이를 20세 이상 성인 인구 3791만 명에 대비해 계산해 보면 2198만 명이나 된다. 이 연구는 도박 관련 연구 가운데는 가장 많은, 20세 이상 성인 2만 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다.
또 국제적으로 많이 쓰이는 척도를 사용해 우리나라 일반 성인의 도박 중독 유병률(특정 시점에서 모집단의 인구 중 도박 중독자의 백분율)을 조사한 결과 중위험 도박자 4.9퍼센트, 문제성 도박자 1.4퍼센트 등 6.3퍼센트로 나타났다. 이는 2007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조사 결과인 9.5퍼센트보다는 약간 낮은 수치다. 도박 중독 유병률이 성인 인구 가운데 6.1퍼센트라는 통계는 전체 국민 중 230만 명이 도박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집중적 치유와 관리가 필요한 사람 또한 165만 명이나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수치는, 같은 척도를 사용하여 조사한 외국의 도박 중독 유병률인 캐나다 3.3퍼센트, 오스트레일리아 2.4퍼센트, 영국 1.9퍼센트에 비해 2~3배 높은 수치로 우리나라의 도박 중독 문제가 심각한 상태임을 보여 준다. 대한민국이 도박 공화국이라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도박 중독 유병률 비교. ⓒ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 |
한국마사회는 도박 중독 자가 진단 결과를 토대로 사교성 도박과 문제성 도박, 병적 도박 등 세 단계로 도박의 정도를 나눈다. 사교성 도박은 일상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문제성 도박부터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제성 도박은 도박 금단 증상이나 내성을 보이지는 않지만 주말 등 시간이 나기만 하면 도박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다. 자기도 모르게 도박장으로 발길을 옮기거나 도박 동료에게서 전화라도 올라치면 부리나케 달려간다.
병적 도박은 알코올 중독자가 저녁만 되면 술자리를 함께할 사람을 찾아 나서듯 함께 도박할 사람을 찾아 나선다. 도박을 하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않거나 안절부절,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거의 매일 도박을 하고 가족과 일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 때문에 이혼이나 별거의 위험이 높아진다. 우울증이 찾아오고 자살 충동을 느낀다.
▲ 한국마사회 유캔센터 도박 중독 자가 진단 테스트. '예'가 0~1이면 사교성 도박, 2~4이면 문제성 도박, 5 이상이면 병적 도박으로 판정한다. ⓒ프레시안 |
도박 중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닫는 데는 통계 수치나 도박 중독의 위험성에 관한 전문가들의 충고보다도 실제 도박 중독 때문에 가정이 파탄 난 가족의 절규만큼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공모한 2011년 도박중독예방·치유 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성 아무개 씨의 '더 낮은 곳으로 임하게 하소서'를 읽노라면 도박 중독이 이렇게까지 위험한 것인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성씨는 교사다. 남편은 대학을 나와 주식으로 상당한 돈을 번 뒤 1990년대 초 주식 투자에 다 걸기(올인)를 하다 쫄딱 다 잃고 나서 본격적으로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16년간을 도박 중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인생을 허비했다.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다. 카드깡, 사채, 캐피탈, 파이낸스, 물건 깡, 지인들에게 돈 빌리기 등 무려 1000번 이상 노름빚을 빌렸다. 그는 동사무소에서 대출을 위한 인감 증명서를 가장 많이 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는 보험 대리점을 하면서 고객이 낸 보험료까지 몽땅 털어 도박 자금으로 썼다. 결혼 패물, 피아노 등 집안 가재도구까지 몽땅 팔아치웠다.
도박 중독자가 되면서 그는 거짓말의 달인이 되었다. 2000년부터 단도박 모임에 가입해 도박이라는 악마를 몸에서 몰아내려 했지만 10년 넘게 도박의 유혹을 결코 뿌리치지 못했다. 그러다 2010년 10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죽기 일보 직전 관상 동맥 수술을 받고 극적으로 살아났다. 담배를 더 이상 피우면 죽는다는 의사의 말에 이제는 담배 연기 자욱한 도박장에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내년이면 결혼 30주년을 맞는 아내 성씨는 "남편의 건강은 나빠졌지만 정신 건강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며 기뻐했다. 다음은 수기 가운에 극히 일부를 소개한 것이다. 이 수기에서 도박중독은 중독자 본인뿐만 아니라 배우자와 자녀 모두에게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세월이 15년입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정상적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중증 충동 조절 장애자로 살아가면서 저희 가족은 처절하게 파멸의 길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도박 중독자가 된 그때부터 내가 알던 남편은 없었습니다. 그 대신 항상 눈이 붉게 충혈 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벽이슬과 함께하는 귀가와 외박을 하였습니다.
그 많은 기다림의 고문은 분노로 가슴을 터지게 하였고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전혀 가족에게는 관심이 없는, 정서적으로 매우 쫓기며 돈에 혈안이 된 파괴자가 가정을 뒤집어 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의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재산들이 하나하나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 번 남편의 도박장을 습격하여 깽판을 치고 딸애와 같이 울고불고, 쌍욕하고, 모욕을 줘도 잠시 뿐인 골수까지 깊이 침투한 중독자인 남편을 구제하기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와 딸도 서서히 정신병자가 되어 갔습니다. (…) 그러면서 세월이 흘러 초등학생이던 딸은 2년 전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영문과를 졸업했는데 아직 취업을 못했습니다. 학원 강사를 하라고 하니까 그간의 소심하고 용기가 없는 내면의 상처로 인해 학생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렵다고 나가지 못하고 지금은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정신 의학계에서는 도박 중독을 병적 도박이라고 부른다. 앞에 소개한 사례만 보더라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도박에 빠져든 사람은 도박 중독이나 병적 도박이라는 말을 매우 싫어한다. 술·담배에 매우 관용적인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담배 중독자에게 애연가, 알코올 중독자에게 애주가란 이름을 붙여 불러 왔다.
이제 대한민국에서도 더는 술·담배에 관용적이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담배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 또는 알코올 의존자라는 말을 더 즐겨 쓴다.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노름을 좋아한다', '화투를 좋아한다'는 표현으로 도박 중독의 실상과 위험성을 얼버무렸지만 더는 안 된다. 이제는 정확하게 병적 도박, 도박 중독이란 말을 사용해야 한다. 도박 중독자들이 좋아하는 용어인 습관성 도박이란 말도 적절치 못하다.
흡연이나 술 중독처럼 도박도 내성이 생긴다. 점점 더 위험도가 높은, 다시 말해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따거나 잃을 수 있는 도박에 빠져든다. 알코올 중독자와 흡연 중독자들도 처음에는 한두 잔과 한두 개비로 시작했지만 점점 단위가 높아져 한두 병, 한두 갑, 심하게는 하루에 서너 병, 서너 갑을 마시고 피워야만 정상적 삶을 영위할 수 있듯이 도박 중독자는 처음에는 하루에 일이만 원의 판돈으로 도박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하루에 수십만 원, 수백만 원으로 판돈이 점점 커지고 심지어는 하루 저녁에 수천만 원, 수억 원의 돈이 오가기도 한다.
도박은 일시적으로 현실의 압박감과 우울, 스트레스를 벗어버리게 도와줄 수 있다. 도박을 하게 되면 빠른 시간 안에 한꺼번에 실패를 만회하고 잃어버린 모든 것(돈, 가족, 직업, 인생, 자존심, 명예 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미 많은 돈과 시간, 노력을 투자했기 때문에 쉽게 발을 빼지 못한다. 최소한 본전만이라도 건지려 든다. 도박을 하게 되면 돈을 딸 수 있다는 비합리적 기대와 환상을 갖게 되며 행운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의 기술과 정보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이러한 기술을 갈고 닦는데 열중하게 된다.
그래서 경마장에서 사람들은 경주마에 대한 분석을 열심히 한다. 경륜장에서는 선수에 대한 분석을 열심히 한다. 하지만 합법적 도박이든, 불법적 도박이든, 경마든, 스포츠토토든, 복권이든 그 어떤 도박에서도 평균적으로는 절대 돈을 딸 수 없다. 오로지 잃기만 할 뿐이다.
경마를 비롯해 대부분의 합법적인 도박에서는 판돈의 30퍼센트 가량을 무조건 세금 명목으로 떼기 때문이다. 그 나머지 70퍼센트를 놓고 100퍼센트를 투자한 사람들끼리 자웅을 겨루므로 많이 따거나 적게 따는 사람이 나오기는 하겠지만 평균적으로는 자신이 건 돈의 70퍼센트만 가져갈 뿐이다. 무조건 밑지는 장사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신이 건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가져갈 수 있다는 착각을 한다. 이런 생각을 강하게 하는 사람은 도박의 늪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돈 싫어하는 사람 없고 힘들게 일하고 싶은 사람 없다. 도박은 사람의 이런 심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좋은 도구이다. 도박은 짧은 시간에 힘들이지 않고 큰돈을 만지기를 바라는 욕망과 기회가 결합된 것이다. 도박은 스릴과 흥분, 맞히는 쾌감과 즐거움을 제공한다.
실제로 나도 과천경마장에 가서 경주마에 몇 만 원의 돈을 걸고 경마를 관람한 적이 한두 번 있었다. 맞히지는 못했지만 경주마들이 결승점 부근을 통과할 때 고함을 지르는 관중들의 스릴과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베팅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스릴과 흥분은 배가할 것이다.
몇 년 전 도박 중독에 빠진 50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새삼 떠오른다. 그는 주중에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힘든 일을 하루 종일 하고 받은, 알토란 같은 돈을 주말만 되면 도박장에 가서 죄다 날리고 온다. 그리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런 생활을 계속 해오고 있다. "도박을 끊어야지" 하면서도 도박꾼들한테서 "좋은 (도박) 자리가 있다"는 전화가 오기만 하면 마음먹은 것과 달리 이미 몸은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독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사례였다.
▲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중독예방치유센터가 만든 도박중독예방운동 포스터. ⓒ프레시안 |
재미나 심심풀이로 친구나 가족, 친지들과 사교성 도박을 즐기는 사람은 도박을 스트레스 해소의 '놀이'로 보지만 병적 도박자, 즉 도박 중독자는 자제력을 잃은 만성적 진행성 질환자이다. 도박 중독은 특정 성격의 소유자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걸릴 수 있다. 도박 중독자들은 흔히들 본전만 찾으면 탈탈 털고 일어선다고 약속하지만 돈을 딴 뒤에도 다시 도박에 뛰어든다. 또 이들은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 흡연 중독자들이 중독에서 벗어난 뒤 몇 년 지나 다시 술과 담배에 손을 대듯이 도박 중독자 또한 도박에 손을 씻고 난 뒤 몇 년 지나 다시 도박에 빠져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든 중독과 위험은 예방이 최선이다. 모든 중독은 위험하고 해롭다. 중독이나 위험과 관련해 국가나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를 최소화하고 예방하며 치유하는 것이다. 국가가 술과 흡연을 권장해서는 안 되듯이 사행 산업, 곧 도박도 국가나 정부가 권장해서는 안 된다. 다른 건전한 여가 문화를 널리 퍼트려야 한다.
한편으로는 도박을 권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법이란 이름으로 단속·처벌하는 모순이 계속되는 한 결코 불법 도박을 뿌리 뽑지 못할 것이며 도박 중독자는 양산될 것이다. 이 글이 정부의 사행 산업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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