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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네 거짓 삶을 찢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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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네 거짓 삶을 찢어라!"

[청춘의 고전] 열 번째 강의 : 이순웅 교수의 '<트루먼 쇼>와 <옥중수고>'

난방 기구가 돌아가는 방, 저녁 식사를 마치고 스마트폰으로 읽을거리를 체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추운 겨울도 그럭저럭 살 만하다. TV에서는 2012년엔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밝고 희망적인 모습을 비춘다. 개인적인 고난과 어려움은 잊을 수 있도록 '살'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트루먼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비록 첫눈에 사랑한 여자 실비아가 사라졌지만 예쁘고 착한 메릴과 결혼했고, 할부금에 허덕이긴 해도 정원이 있는 커다란 집과 차가 있다. 아름다운 도시 시헤이븐에서 평범한 보험회사 직원으로, 부족함 없이 살아가던 그가 왜 갑자기 모든 걸 의심하기 시작했을까? 왜 칼을 들고 아내를 위협하기에 이르렀을까?

영화 <트루먼 쇼>(1998년)는 "작은 나라의 총생산과 맞먹는 매출"을 올리는, 거대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다룬 영화다. 프로그램 주인공인 트루먼의 삶은 탄생과 첫걸음마부터 입학과 결혼까지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다. 본인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연기자고, 주위는 온통 세트일 뿐이다.

어느 날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나타나고 전파 교란으로 라디오에서 스태프들의 목소리를 엿듣게 되면서, 트루먼은 온 세상을 의심하며 돌발행동을 한다. 하지만 아내도 친구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으며, 아버지의 등장 역시 '기억상실증'이라는 설정으로 봉합된다.

결국 트루먼은 홀로 탈출을 도모하고, 돛단배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세트장 끝에 닿는다.

트루먼, '쇼'는 진짜 끝난 걸까?

▲ 짐 케리가 주연한 영화 <트루먼 쇼>. ⓒnaver.com
트루먼이 세트를 탈출하는 순간 전 세계 시청자들은 환호하지만, 감동이 끝나자 바로 다른 채널을 찾는다. 트루먼은 과연 그가 꿈꾸던 "진실된 세계"로 나아간 걸까? 트루먼의 탈출을 응원하면서도 이 거짓의 세계를 즐기기만 했던 사람들은 과연, 배우나 '인형'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진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열린 열 번째 '청춘의 고전' 강의는 이런 질문과 함께 시작됐다.

이순웅 숭실대학교 외래교수가 강사로 나선 이번 강의에서 영화 <트루먼 쇼>와 함께 읽을 고전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다. 트루먼 쇼의 세트장을 현실 세계의 은유라고 했을 때, 모든 것을 의심하던 트루먼의 몸짓은 사회를 바꾸고자 했던 혁명가 그람시의 삶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

'트루먼 쇼'의 감독 크리스토프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역겨워. 시헤이븐은 천국이지"라고 말한 것처럼, 실제로 세트장 안 세상이 바깥보다 행복할지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리 모순에 부딪쳐도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안주하고 살아가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사회를 상상하고 발을 내딛는 행위는 용기와 고통을 요구한다. "나가봐야 또 거짓투성이 세상 아닐까?"란 걱정은 트루먼, 아니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다.

이순웅 교수는 "트루먼도 세상이 거짓인 걸 깨닫고 즉시 뛰쳐나간 게 아니라,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우리 역시 당장 지금은 편하니까 탈출할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트루먼이 어머니의 병으로 인해 탈출을 미루고 아내, 친구의 만류로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세상과 타협해 가는 자신의 삶까지 함께 돌아보게 된다.

트루먼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알려준 실비아 같은 사람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의 진실에의 희구는 트루먼의 그랬던 것처럼 매우 험난한 일이다. 그렇기에 역사 속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혁명을 꿈꿔왔다. 그리그 그 중에는 이탈리아의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도 있었다.

그람시와 사회주의

그람시는 1891년 이탈리아에서 가장 산업화가 늦었던 남서쪽 사르데냐 섬 길라르차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곱사등 병을 앓았고 몸이 불편해 격렬한 놀이는 하지 못했다. 동물 관찰을 좋아했고, 인쇄물을 모조리 읽었다고 한다. 그러다 일곱 살 위의 형인 젠나로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접했고, 1921년에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립했다.

1926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당국에 의해 체포됐고, 7년 뒤 건강 악화와 국제 여론의 압박으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연금 생활과도 같은 병원 생활 끝에 1937년 사망했다. 그람시에게 20년 4개월 5일의 금고형을 언도하면서 검사는 "우리는 20년간 저 두뇌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엄포를 놨다. 그러나 그람시는 1929년부터 1935년까지 <옥중수고>를 집필했다.

이순웅 교수에 따르면, 그람시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람시는 무솔리니에게 박해를 받은 사회주의자였다. 하지만 그는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 공산당의 견해에 반기를 들면서, 소련의 눈치를 봤던 이탈리아 공산당으로부터도 외면을 받았다. 심지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그람시는 죽어서도 철학사에서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이순웅 교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철학자나 사상가 역시 "무늬만 평등한 사회를 원하는 이들의 필요에 의해 역사 속에 그 이름이 남은", "시대의 모순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은 자들"은 아닌지 묻는다. 정말로 시대의 모순에 도전했던 그람시 같은 사상가가 잊힌 이유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람시는 탄생 100주년인 1991년을 맞아 다시 주목을 받았다. 당시는 마침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줄줄이 몰락하고, 실패 이유를 자문하는 시기였다. 오늘날 현실 사회주의 몰락의 혐의를 스탈린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은데, 스탈린 노선에 비판적이었던 그람시를 다시 얘기하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런 수순으로 보인다.

이순웅 교수는 "사회주의에 어떤 전형은 없다"고 강조한다. 이탈리아에서 1919~1920년에 벌어진 사회주의 운동 역시 1917년 러시아 혁명을 목격한 이들의 실험이었다. 그람시 역시 러시아 혁명에 고무되었지만 구체적인 청사진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교수는 "산업화된 북부와 뒤쳐진 남부 문제 등 이탈리아의 특수성을 염두에 두고, 사회주의로 전환하려고 했던 그람시의 고민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이순웅 숭실대학교 외래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그람시의 주요 개념들

2004년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는 인욱(소지섭)이 자신처럼 가진 것 없는 하류층 여성 수정(하지원)에게 <그람시의 옥중 수고 1>(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이상훈 옮김, 거름 펴냄)을 건네주는 장면이 나온다. 재벌 2세인 재민(조인성)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정의 신분 상승 욕구를 이 책을 통해 넌지시 비유한 것이다. 인욱은 "그놈들의 헤게모니가 우리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을 뿐"이라고 조소한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는 그의 대표적인 개념이다. 지배 계급은 피지배 계급을 경제적, 물리적 힘으로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피지배 계급이 지배 계급의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 가치를 '자연스럽게' 공유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상식'처럼 받아들일 때,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기는 훨씬 더 쉬워진다. 마치 트루먼이 시헤이븐의 거짓 삶을 진짜 삶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그람시는 트루먼이 시헤이븐을 탈출하기 위해서 '진실'을 각성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처럼, 노동자 계급과 같은 피지배 계급이 지배 계급으로부터 해방되려면 새로운 '대항' 헤게모니를 형성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순웅 교수는 "이런 헤게모니 투쟁을 통해서 피지배 계급은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리더십(leadership)'을 형성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리더십' 없이는 설사 혁명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오래 갈 수 없다.

그람시가 당대의 다른 사회주의자와 달리 '문화'의 힘에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런 그람시의 통찰은 '경제 구조가 사회관계를 결정한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속류적인 해석에 대항하면서, 경제와 문화 사이의 상호 작용에 주목한 프랑크푸르트학파, 영국의 버밍엄학파 등 후대의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에게 큰 영향을 줬다.

그람시는 이렇게 대항 헤게모니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지식인'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그람시가 얘기한 지식인의 좀 더 정확한 의미는 '당(黨)'이다. 이순웅 교수는 "트루먼이 진실을 각성하는 과정에서 실비아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처럼, 그람시도 대중을 이끌 어떤 존재의 필요성을 긍정했다"며 "그런 점에서 그람시 역시 엘리트주의자라는 평가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순웅 교수는 "그람시가 사회주의 혁명을 꿈꿨던 시대는 지식인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권위를 갖고 있는 시대였다"며 "더구나 대중 봉기가 약탈, 방화로만 끝나는 일이 빈번했던 만큼 그람시가 봉기를 조직하고 지도하는 일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은 자연스러웠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환상'이 넘치는 이 시대야말로 그런 환상이 갖는 의미를 해석하고 경고하는 사람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자는 현실에 안주하려 하고 약자는 현실을 변화시키려 한다. 따라서 미래는 약자에게 있다" 이번 강의를 마치며 이순웅 교수가 강조한 말이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선 진짜 권력은 눈에 드러나지 않고, 배후에서 힘을 발휘한다. 그람시가 금언으로 삼았던 로맹 롤랑의 유명한 말처럼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가 절실한 시기다.

ⓒ프레시안(최형락)

"2012년에는 마음의 눈, 영혼의 눈도 뜨세요!"

2011년 3월 시작해 열 번을 진행해 왔으며 2012년 1, 2월 두 번의 강의를 남겨놓고 있는 '청춘의 고전' 강의에는 우리가 모르는 만남이 숨겨져 있다. '동서양 철학 고전과 할리우드 영화와의 만남'만 있는 게 아니다. 수강생과 소외된 어린이와의 만남이다.

그동안 1인 1회당 5000원의 강의료를 모은 수익금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한 어린이 치유 센터 '하늘소리'에 책 구입비로 전달됐다. 5년의 역사를 가진 하늘소리는 편부모 가정,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며 서로 치유하는 곳으로 올해부터는 공부방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하늘소리를 만든 윤세나 대한성공회 신부가 2011년 마지막 강의인 이날 강의에 참석했다. 윤 신부는 '여성은 사제가 될 수 없다'는 공식적·암묵적 차별에 맞서 15년간 투쟁해 장벽을 깨뜨린 사람 중 한명이기도 하다. 대한성공회는 2001년 첫 여성 사제를 인정했다.

그는 이날 강의 후 기자와 만나, 이 특별한 만남의 의미를 놓고 대화를 나눴다. 윤 신부는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분들이 관심을 보내준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겐 큰 양분이 된다"며 "주는 사람들에겐 그저 '5000원'일 뿐이겠지만 받는 아이들에게 퍼지는 파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윤세나 신부(왼쪽)와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오른쪽). ⓒ프레시안(민정훈)

프레시안 : 한국에 성공회가 전파된 지 100년이 지난 시점까지 여성 사제가 없었다고 들었다. 어떻게 해서 '윤세나 신부'가 될 수 있었는지 그 과정과 함께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윤세나 : 내가 대한성공회 최초의 여성 사제는 아니다. 서너 번째 정도 된다. 여성 사제를 서품한 지 10년밖에 안 됐다. 그전까진 교구별로 명시적, 암묵적인 차별이 존재했고 지금도 문제는 많이 남아 있다. 사제가 되려면 성공회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야 하는데 여자이기 때문에 입학을 허용하지 않는 교구도 있고, 대학원 입학은 허용해도 성직자가 되는 것 자체는 허용하지 않는 교구도 있다.

이 차별 문제는 성서 해석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예수와 제자들이 모두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는 예수를 따르는 사제가 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그런 게 생물학적·육체적 차이를 떠나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이 10~15년 사이에 많이 확장됐고, 최근에 와선 예전에 극구 반대하셨던 분들도 적극적으로 교감하려고 하신다.

10년 이상 투쟁을 한 결과다. 뜻 맞는 여성 교인들끼리 만나 여성 운동 공부를 하고 성서를 재해석했으며 교인들과 만나 설득했다. 이런 투쟁의 결과이자 눈에 보이는 모델로서, 여성 사제 한 명 한 명 존재가 굉장히 중요하다. 전체적으로 봤을 땐 육체적 차이 하나만으로 한 쪽에 치우쳐 있던 교회의 불균형을 해소하다는 의미도 지닌다.

프레시안 : '하늘소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윤세나 : 교회 생활을 하면서 성서적으로 사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내가 직접 만들었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보니 양주시 장흥면에 멈췄다. 여긴 도시도 아니고 농촌도 아닌 도농 도시인데, 문화 생활 면에서도 가정·공동체 면에서도 소외되어 있는 아이들이 많다. 그런 아이들 열 명과 함께 시작했다.

프레시안 : '소외된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치유하겠다'는 밑그림은 원래부터 갖고 있던 것인가?

윤세나 : 처음엔 내가 사제로서 이 '병든 아이'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여기서 좀 잘 해서, 교회에서도 인정받아야지" 하는 과시적인 욕구도 있었다. 그런데 치료가 안 되는 거다. 아이들이 변하지 않는 거다.

그러다 아이들이 갖고 있는 버려진 경험과 아픈 기억들이 내가 겪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시점부터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그 아이들과 같은 상처가 있었기에, 내가 나를 돌아봐야 했다.

내게도 부모님의 심한 갈등과 폭력에 노출된 아동기가 있었는데, 우리 엄마가 나를 버리고 떠나지는 않았다. 다만 엄마가 아빠와 싸우고 집을 나갔을 때 혼자 있었던 그 밤이 얼마나 처절한가는 잘 안다. 어느 순간에 내가 '원장이란 이유로 너희들과 함께 할 수 있겠냐'는 말을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그거면 됐다'고 하더라. 나는 그게 일종의 '테스트' 통과라고 생각했다.

자기를 버리고 간 부모를 용서해가는 처절한 과정을 죽 지켜보면서,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을 '돕는다'는 개념이 깨졌다. 오히려 나와 아이들이 상호 치유되는 곳이라고 본다. 그래서 원론적 의미의 '자원봉사자'도 받지 않는다. 아이들을 불쌍한 약자로 보는 시각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하늘소리에서 올해부터 공부방이 생겼다고 들었다. '청춘의 고전' 수익금도 이 공부방의 책으로 전달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윤세나 : 만들어진 지 5년 정도 됐는데 올해부터야 공부방을 열었다. 그 전엔 안 된다는 걸 뻔히 알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프고 영혼이 닫혀 있으면 아이들이 제대로 공부를 할 수가 없다. 오늘 강의에 비유하자면 아이들이 아직 '트루먼 쇼' 안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아이들은 부모가 감독 역할을 하는 삶 속에서 왜곡된 명령어를 내려 받고 있었다. 부모가 "바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했기 때문에 바보가 아닌데도 바보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 우리의 치료는 이 잘못된 '설정'에서 아이들을 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리얼한 현실로 발을 뻗게 하는 과정이었다.

이젠 아이들이 그 무대 위에서 내려왔다고 본다. 지금은 자기들끼리도 안다. 그 무대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아이가 있다면 서로 "넌 지금 누구야?" "옛날의 너야?" "너의 본질은 뭐야?"라고 질문한다. 그렇게 아이들이 치유되고 나니까, 지적 에너지가 상승하면서 성적이 오르더라.

5살 때 엄마로부터 버림받고, 아빠도 현재 교도소에 있는 아주 힘든 소녀가 있다. 이 친구가 크리스마스 행사 때 '내가 소중한 존잰지 몰랐는데, 당신들의 사랑을 통해 내가 어떤 존잰지 알게 되었다'는 고백이 담긴 노래를 불렀다. 그때 모인 사람들 전체가 감동해 울음바다가 됐다.

'청춘의 고전' 강의를 듣는 분들이 수익금이 책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받는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파장은 '책 한 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자기 존재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내가 사랑 받는 존재이구나"하는.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윤세나 : 신체적 기관인 눈으로 보이는 것, 마음의 눈으로 보이는 것, 영혼의 눈으로 보이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 눈을 모두 떠서 사회적 약자들과 소통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이 아이는 불쌍한 아이, 내가 도와줘야 할 아이"가 아니라 나와 다르지 않은 아이다. 우리 사회의 소통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늘소리에서 경험해 보니 한 아이의 마음이 치유되고 영혼이 깨어나면 그 아이만 변하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변하고 동네가 변하고 지역 사회가 변하더라. 가장 작은 존재가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결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장 근본적 힘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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