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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나꼼수>가 접수한 책동네, 세상은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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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안철수와 <나꼼수>가 접수한 책동네, 세상은 왜 이래?

[2011 책동네 열쇳말] 위기의 '도가니', '멘토'만 날갯짓

올 한 해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고, 많이 사 본 책을 추적하면서 발견한 것은 그 중심에 책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안철수, 스티브 잡스, 도가니, <나는 꼼수다>… 출판계 화제의 단어들을 보라. 모두 다 그 인물이나 관련된 이슈가 먼저 뜨고 나서, 책이 뒤따라 주목을 받은 경우였다.

올해 출판계를 정리하는 말로 '위로와 공감', '닥치고 정치' 등이 거론된다. 모두 옳은 설명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언제나 위로와 공감을 갈구했고, 정치적인 변화를 꿈꾸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가 말해줄 수 있는 건 별로 많지 않다. 어떤 걸 '구입'했는가를 가지고 사람들의 욕망이나 시대정신을 읽어내긴 무리라는 얘기다.

이건 그 내용이 개인적인 위로에 그쳤다는 올해 최고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특수한 사정만은 아니다. 지난해 사람들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많이 읽었고 따라서 정의를 갈구한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그 이후 세상이 조금이나마 정의로워졌냐고 물었을 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듯 어떤 상품이 많이 나왔느냐, 팔렸느냐로 한 해를 정리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지만, '프레시안 books' 역시 그 설명에 도전했다. 올해의 베스트셀러, 현상, 주목 받은 필자를 섞어 10개의 열쇳말로 정리했다. 그 속에서 왜 책이 무력했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찾기 위해서다.

스마트 기기 등 새로운 미디어가 가져온 문화가 책 세계로 흘러들고, 책 하나만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풍성한 가운데 "유난히 올해의 책 한 권을 고르기 어려웠다"는 것이 총평이다. 이를 아울러 2011년 전체 열쇳말로 '무기력한 책'을 고를 수도 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다만 시작은 현실을 짚어보는 것부터다.<편집자>

스마트폰

책 동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다른 매체의 이름을 먼저 꺼내야 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올해 책과 관련해서 스마트폰은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이자 '배경'이었다. 스마트폰이 배경으로 작용한 책 동네 풍경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통한 활자 소비, SNS 관련 콘텐츠가 출판물로 '역류'하는 현상, <나는 꼼수다> 발(發) 책들의 러시.

올해 본격적으로 일상에 안착한 스마트폰·SNS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말싸움의 세계로 사람들을 몰고 갔다. 그 가운데 출판계나 문단과 관련된 것만 간추려보더라도 소설가 김영하-문학평론가 조영일 간의 '작가 지망생들의 현실 인식을 둘러싼 논쟁'(1월), 신정아의 <4001>(사월의책 펴냄)이 불러일으킨 유명인 자서전의 '폭로'의 정당성에 관한 논쟁(3월), 김애란의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창비 펴냄)의 문학성 논쟁(8월), <스티브 잡스>(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민음사 펴냄) 오역 논쟁(10월) 등 눈에 띄는 것들이 많다. <두근두근 내 인생>의 경우를 제외하고 나머지 논쟁들은 트위터가 없었다면 크게 확산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페이스북 담벼락에 희망을 걸다>(권영민 지음, 북셀프 펴냄), <유쾌한 420자 인문학>(최준영 지음, 이룸나무 펴냄), <트위터 만인보>(박형기 지음, 알렙 펴냄) 등 SNS 콘텐츠를 다룬 책, <마이크로 스타일>(크리스토퍼 존슨 지음, 노정태 옮김, 반비 펴냄) 같은 SNS 글쓰기 가이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청림출판 펴냄), <생각 조종자들>(엘리 프레이저 지음, 이현숙·이정태 옮김, 알키 펴냄) 등 SNS를 비판한 번역서들이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스마트폰 문화가 출판계에 영향을 준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나는 꼼수다> 열풍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스마트폰용 방송 서비스 팟캐스트에서 출발했고, '반(反) MB' 성향인 국내 트위터 여론에 안착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뒤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 인기에 힘입어 <닥치고 정치>(지승호·김어준 지음, 푸른숲 펴냄), <달려라 정봉주>(왕의서재 펴냄), <나는 꼼수다 뒷담화>(김용민 지음, MSD미디어 펴냄) 등 '나꼼수 4인방'의 책들도 쏟아졌다.

전자책

또 스마트 기기 이야기다. 하지만 그 논점은 다르다. 위에선 스마트폰과 '종이 출판물'과의 관계를 바라봤지만 이번엔 전자책 그 자체를 살펴볼 차례다. 출판계에서는 "올해야말로 한국 전자책의 원년"이라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시장이 확대되었다. 매출액이 지난해 300억 원에서 1500억 원으로 다섯 배나 성장했다.

스마트폰·태블릿 PC 등 전자책을 볼 수 있는 디바이스가 대중화되면서, 지금까지 전자책은 '단말기 싸움'이라 생각했던 출판사들이 콘텐츠 기획·제작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거기서 60개 출판사가 주주가 된 한국출판콘텐츠(KPC)도 큰 역할을 했다. 원래 유통사들이 '종이책 내용'만 받아서 만드는 데 멈춰있던 전자책 콘텐츠를, 출판사들이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 관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KPC 회장을 맡고 있는 신경렬 더난출판사 대표에 따르면 과거 교보문고 등 유통사들이 직접 콘텐츠를 제작·판매할 때는 서체나 이미지가 깨지는 등 질이 저하되거나 출판사가 전자책 수익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는 등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공통 창구를 통해 가격, 유통 질서, 저작권 보호 등에 걸친 전자책 환경을, 출판인들이 주도해 가는 추세다. 따라서 그동안 종이책 콘텐츠를 그대로 변환시키는 데 머물렀던 '전자책 1.0' 시대가 가고, '전자책 2.0' 시대가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먼저 안착에 성공한 분야는 문학, 그 중에서도 장르 소설이다. 한 권의 소장 가치 자체가 크지 않고 '많이 읽을수록' 좋아하는 충성 독자들의 태도가 그 이유였다. 앞으로 더욱 시장이 안정되기 위해서 헤쳐 나가야 할 난관으로는 일본과 미국 등 외국 저서의 저작권 문제와, 아직까지 전자책을 '종이책의 전자화'로만 알고 있는 출판사들이 이해를 높이고 인력을 확충하는 등의 내부적인 변화가 꼽혔다.

부익부 빈익빈

이렇게 새로운 기기들이 각광받고 무수한 활자들이 엄지 밑으로 오가는 사이, 종이책 시장은 전보다 훨씬 더 외면을 받았다. 출판계 불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제는 하락세가 완전히 굳어진 것 같다"는 푸념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교보문고가 지난 5일 발표한 연간 결산 자료에 따르면 올해 신간 4만 5629권(교보문고 입고 기준)의 1권당 평균 판매 권수는 140권에 머물렀다. 또 통계청이 지난 7월 15일부터 같은 달 29일까지 실시한 사회 조사에 따르면 1년간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은 독서 인구 비율은 61.8퍼센트로 2년 전보다 소폭 하락했다. 국민 10명 중 4명이 완전히 책을 읽지 않고, 나머지 6명이 분발해도 한 권의 책이 1쇄 팔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란 얘기다.

▲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쌤앤파커스

하지만 독서 인구의 평균 독서 권수는 2009년의 17.4권에서 올해 20.8권으로 눈에 띄게 늘었고, '팔리는 책들'은 더욱 많이 팔렸다. 교보문고의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든 책들의 판매량은 200만 권을 돌파했으며, 그 대부분이 1~50위권 내의 책들로 판매량 누계가 153만 권이다. 이는 10년 만에 4.2배 상승한 수치라고 한다. 뚜렷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다. 그렇다면 어떤 책이 부를 가져갔을까?

교보문고·예스24·인터파크 도서가 각각 발표한 2011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공통적으로 1위를 차지한 책은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 펴냄)다. 지난해 말 출간된 이래 100만 권 이상이 팔린 밀리언셀러다. 그 외의 상위권 목록을 보면 김이 빠지게도 대개 올해 출간된 책이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생각 버리기 연습>(2010년), <도가니>(2009년), <엄마를 부탁해>(2008년)) 2011년 나온 책만을 기준으로 하면 <스티브 잡스>(월터 아이작슨 지음, 김진환 옮김, 민음사 펴냄)가 유일한 초대형 베스트셀러였다.

멘토

자, 그럼 베스트셀러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 이름 하나로 '청춘'이 결코 죽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2007년 <88만 원 세대>(우석훈·박권일 지음, 레디앙 펴냄) 이래로 '20대'와 '청춘'은 출판계 '기본 안주' 같은 아이템이었다. 권당 두세 쪽씩만 다뤄도 단행본 하나로 묶일 만큼(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펴낸 <20대 : 오늘, 한국 사회의 최전선>)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20대가 처한 문제를 지적한 데 이어 그들에게 직접 목소리를 내게 하고, 비로소 사회 문제와 소통하는 데까지 진화하던 관련 책들이 올해 당도한 종착역은 다름 아닌 '멘토'였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50위 순위를 보면 1위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할 것도 없고 <시골 의사 박경철의 자기 혁명>(리더스북 펴냄, 9위), 고도원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홍익출판사 펴냄, 14위),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위즈덤경향 펴냄, 30위), <스무 살 절대 지지 않기를>(리더스북펴냄, 43위) 등의 책이 눈에 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지친 영혼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달해 주려는 목적, 저자가 김제동·이지성 등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최근 5년간 주류를 이뤘던 자기 계발서들이 'OO에 미쳐라' 'OO에 또 미쳐라' '죽기 전에 하지 않으면 안 될 OO 일들' 등 강박적인 제목을 달고 주로 직장인의 생존 전략을 제시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변형된 자기 계발서"인 멘토들의 책은 한결 느슨하다.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태반이 비정규직을 내몰리는 20대의 현실을 보면 위로를 갈구하는 현상은 당연한 귀결이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20대는 현재 맨몸으로 최전선에 서 있는 상황"이라며 "20대가 사회적 성찰이 없다고 비판하기 전에, 그들이 '멘토의 한 줄'에 기댈 수밖에 없는 고통을 먼저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멘토 열풍의 '종결자'는 단 두 마디로 대권 주자가 되어버린 안철수였다. 박경철과 함께 '청춘 콘서트'로 대표 멘토 자리에 선 그는 직접 쓴 단행본을 내지 않고도 서점가에서 이름을 날렸다. 젊은 기자·논객들이 쓴 <안철수 밀어서 잠금 해제>(한윤형 외 지음, 메디치 펴냄) 등이 대표적이다.

'닥치고' 정치

앞서 거론한 대로 <나꼼수>의 선풍적 인기 이후 주인공 4인방의 책들이 쏟아졌다. 잇따른 출간은 엄청난 속도로 "공장장이 따로 없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닥치고 정치>의 활약만은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10월 초 출간된 이 책은 3개월도 안 된 시점에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예스24에서 네티즌의 투표로 가린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 <닥치고 정치>(김어준·지승호 지음, 푸른숲 펴냄). ⓒ푸른숲

이 책이 사랑받은 사실을 두고 2010년의 '정의' 열풍과 2012년 총선·대선 시즌 사이에 존재하는 '변화'의 갈구라는 분석이 있다.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은 "한 시대(자기 계발서의 시대)가 끝나고 변화를 요구하는 계절이 왔다고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의 연장선상에서 "그 전까지 '닥치고 너나 잘해'라고 했던 논리를 깨고 사회를 바꾸자는 목소리를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실제 정치적 응집력을 보여주기엔 콘텐츠가 약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좀 더 대중적인 접근성을 취하고 있는 것뿐이며, 스타일에 대한 호오가 갈릴 뿐"이라고 대답했다.

올해 정치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오고 많이 팔린 건 사실이다. 교보문고 정치·사회 분야 판매 권수는 지난해 대비 24.1퍼센트, 판매액은 14.2퍼센트 증가했다. 인기를 끈 책들의 공통점은 진보 집권을 이야기하는 <진보 집권 플랜>(조국·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펴냄), 노무현 정부의 추억을 이야기한 <문재인의 운명>(문재인 지음, 가교 펴냄) 등 'MB 시대'를 벗어나자는 논리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기획물이 "근본적인 문제는 회피한, 진보 진영의 스타들을 앞세운 멘토 열풍의 변주"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한편, <닥치고 정치> 등 <나꼼수> 관련 콘텐츠들의 의의는 그 내용보다 미디어 역학이란 관계에서 조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출판기획 문사철의 강응천 대표는 "필요한 정보나 관점을 이미 팟캐스트나 SNS 등 다른 미디어에서 얻은 사람들이, 거기서 생긴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덤으로 책을 사보는 현상인"이라며 "출판이 '후일담' 식으로 이어지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디어의 역학 관계, 출판의 위기라는 면과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스티브 잡스

'2011년 생 베스트셀러'의 독보적인 존재는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자서전이다. 집필과 번역을 끝내고 전 세계 동시 출간을 앞두고 있던 10월 5일 그가 세상을 떴고 20일이 못 지나 서점에 깔렸다. 출간된 24일 하루 만에 예스24에서 4700부, 알라딘에서 4000부가 팔려 각 서점에서 "하루 판매량 기록 경신"이란 보도 자료를 내게 했다. 3개월 동안 50만 권 정도가 팔렸다.

스티브 잡스 사망 전 출판계 언저리에서는 "스마트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책을 안 읽는다"는 푸념 섞인 자조가 떠돌곤 했는데,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하고 정보통신 업계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그의 자서전이 올해 서점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사실은 재밌는 아이러니다. 책 자체에 대해서도 "저자의 균형 잡힌 시각이 돋보인다" "자서전의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었다" 등 평가도 좋다.

이 책의 출간이 '비독서 인구'까지 흡수해 책 자체의 수요를 진작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40여 종에 이르는 스티브 잡스 관련 서적이 모두 판매 급증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공감 영어>, . <스티브 잡스 이야기>,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의 비밀>은 그 덕에 '어부지리'를 누렸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는 데에는 많은 이들이 머뭇거렸다. 책보다 인물 그 자체, 특히 영면(永眠)이라는 드라마틱한 사건에 주목도가 더 높았다는 것이다. 이현우(로쟈) 한림대학교 연구교수는 <스티브 잡스>가 출판계 자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며 "책 자체보다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군 '안철수 현상'과 같은 맥락에서 그 인물이 내포하는 탈 정치성, 기술적 혁신, 사회에 대한 기여 등의 코드가 강하게 공유·소비되고 있다는 측면을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가니


▲ <도가니>(공지영 지음, 창비 펴냄). ⓒ창비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베스트셀러는 공지영의 <도가니>(창비 펴냄)다. 도가니 열풍은 두 가지로 조명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역시 영화·드라마의 원작 소설들이 강세였다는 측면이다. 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도가니>는 황동혁 감독의 동명의 영화가 관객 460만을 돌파하고 네티즌 투표로 '올해의 영화'로 선정되는 등 폭풍이 특별히 거셌다.

같은 맥락에서 2000년 출간되어 이미 100만 부 이상 판매됐던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 펴냄)이 다시 베스트셀러 목록에 든 일을 들 수 있다. <완득이>(김려령 지음, 창비 펴냄)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역사 소설 <뿌리 깊은 나무>(이정명 지음, 밀리언하우스 펴냄)도 다시 주목을 받았고,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원작(<성균관 유생들의 나날>(파란미디어 펴냄)) 작가인 정은궐의 <해를 품은 달>(파란미디어 펴냄)도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도가니' 열풍의 또 다른 측면은 바로 '실제 사건→기사→소설→영화→SNS→실제 사건'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현상이었다는 점이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학교장·교직원들이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성폭행을 저질렀고 2005년에 언론 보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집행 유예로 풀려나는 등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을 뿐이고, 그 석방 순간을 스케치한 기사를 발견한 공지영 작가가 취재 끝에 2009년 소설을 냈다. 그리고 2년 뒤 스크린에 올라서야 여론의 공분을 샀고, 경찰이 재수사에 착수한 끝에 학교법인 이사장·이사에 대해 사전 구속 영장을 신청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이 현상은 역설적이게도 사건을 처음 세상 위로 이끌어낸 기사와 소설이라는 매체가 여론을 움직이는 데 무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사람들은 영화가 나온 이후에서야 사건이 처음 일어난 것처럼 반응했다. 이는 물론 영화가 시각적인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재의 특성이 영화라는 매체와 잘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크다. 강유정 문학평론가는 "지난해 '정의' 열풍에서 보이듯 사회적 정의에 대한 갈증이 높아가던 상황에서, 이 소재가 갖는 시각적 선명성이 영화라는 매체에 맞아 떨어지면서 역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던 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애란과 정유정

올해 나온 많은 국내 문학 작품은 중견-신인을 가리지 않고 "태반이 문학상 수상작"이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러나 압도적인 작품은 없었고, 300개가 넘는 국내 문학상의 존재 의미를 묻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저 이상한 문학 공동체를 공고하게 하는 일종의 파벌 잔치의 한 이벤트처럼 되어버렸다"(문학평론가 전성욱, <기획회의> 307호)는 쓴 소리가 그 예다.


▲ <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 지음, 창비 펴냄). ⓒ창비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은 위에서 언급한 <도가니>와 함께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지음),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세 권으로 모두 창비 책이다. 이 가운데 첫 장편을 낸 김애란을 두고 문예지에서 '문학성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원로 문학평론가가 "시도 산문도 아니고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김윤식, <문학사상> 8월호)라고 저평가한 데 이어 젊은 평론가들도 "약간의 눈물", "키치적 아름다움", "젊은 여성 독자들이 밑줄 치면서 읽기에 좋은 아포리즘" 등이라 비꼬았다. 그러나 "새로운 글쓰기", "올해 나온 장편 중 최고"라는 찬사도 비판에 못지않았으며, 논쟁거리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김애란에 쏠린 기대와 관심을 입증했다.

김애란만큼 떠오른 이름으로 <7년의 밤>(은행나무 펴냄)의 정유정이 거론된다. 무력한 퇴물 야구 선수에서 언론을 뜨겁게 달군 '살인마'로 변한 아버지와, 아버지가 연루된 사건의 비밀을 추적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세부 묘사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명성에 걸맞은 문단의 평가는 찾기 어려웠다.

이에 대해 박진 문학평론가는 "몰입도가 크고 재미있지만 '덧붙여 이야기를 하고 싶은 지점'이 없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사의 힘만으로도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여줄 수 있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작가"라며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김이설의 <환영>(자음과모음 펴냄), 최제훈의 <일곱개의 고양이 눈>(자음과모음 펴냄), 조현의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민음사 펴냄)등은 평단이나 인터넷 서점 MD들에게서 "올해의 발견"이라는 평을 받았다.

강신주

인문서 시장에선 '하이브리드', '다시 읽기', '리라이팅'부터 'CEO를 위한 OOO' 시리즈 등 다양한 기획과 실험이 활발하게 벌어졌으나 판매 면에선 부진을 면치 못했다. 오히려 이렇게 '소프트'한 접근보다 '하드'한 인문서 간행이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사례들이 들려온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그 대표적인 예로 악셀 호네트의 <인정 투쟁>(문성훈·이현재 옮김, 사월의책 펴냄)을 꼽으면서 "올해는 과도하게 기획에 의존한 '당의정 입힌' 인문서가 많이 나왔는데, 출판계도 살고 인문 독자도 살려면 인문서 다운 인문서를 제대로 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응천 문사철 대표 역시 최근 1~2년 사이의 인문서 붐에 대해 "왕 이야기가 역사적 맥락을 제거한 채 현대 지도자론으로 등장하거나 체제에 저항감이 없는 인문서가 CEO를 위한 교양으로 소비되고 있는 등 그 본래의 의의가 왜곡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다소 부드러운 기획물이면서도 완성도·대중성 면에서 성공해 모범이 된 필자로 '강신주'가 강력하게 꼽힌다. 그는 올해 무려 4권의 단행본(<철학이 필요한 시간>·<철학의 시대>·<관중과 공자>(사계절 펴냄),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동녘 펴냄))을 썼고 2권의 책에 강의자 혹은 공저로 참여했으며 조만간 시인 김수영과 관련된 단행본을 추가로 낼 계획이다. 이 가운데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교보문고 인문서 분야 5위에 오르는 등 판매 면에서도 성공적이었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강신주를 '올해의 필자'로 추켜세웠다. 그는 "강신주는 비교적 짧은 글 속에서도 동서양 철학을 넘나들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우리가 어떤 철학적 성찰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고 말했다. 또 독자·평단이 '새로운 글쓰기'에 관심 가질 필요가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강신주와 같은 필자가 발굴되었단 사실에 큰 의의를 둔다고 덧붙였다.

위기

2008년 금융 위기로 촉발된 전 세계적 경제 위기가 시간이 지나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 선정한 올해 최악의 사건 '톱 10'의 1, 2위에는 유럽의 재정 위기와 미국 경기 침체가 나란히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월가 점령 시위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기존 경제 질서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 뭐라도 해 봐야 한다"는 비판이 인 것이다.

올해 널리 읽힌 경제·경영서에선 이러한 위기의식이 반영됐다. 먼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짚은 해외 번역서들을 들 수 있다. 지난해 말 출간돼 올해까지 열풍을 일으킨 신자유주의 비판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GDP에 초점을 맞춘 미국식 성장 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조지프 스티글리츠 외 지음, 박형준 옮김, 동녘 펴냄), 미국 금융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며 소득 불균형 문제를 지적한 <폴트 라인>(라구람 G. 라잔 지음, 송희령·김민주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등이다.


▲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김광기 지음, 동아시아 펴냄). ⓒ동아시아
한국이 따라가려 하고 있는 미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들을 조명한 책들도 많았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김광기 지음, 동아시아 펴냄),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단 와터스 지음, 김한영 옮김, 아카이브 펴냄),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부키 펴냄) 등이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긍정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긍정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도 높은 호응을 이끌어냈고, 이러한 문제점들을 앞에 두고 참지 말라는 노장의 외침 <분노하라>(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돌베개 펴냄)도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단연 돋보인 건 복지라는 화두였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지은 <우리는 중산층까지 복지를 요구한다>(밈 펴냄)부터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 국가의 길>(밈 펴냄) 등 현재 우리의 복지 실태를 짚고 정책을 제시하는 책부터, <복지 국가 스웨덴>(신필균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홍기빈 지음, 책세상 펴냄) 등 복지 국가 모델의 실례와 그 배경을 점검한 책들이 널리 읽혔다.

그야말로 미국식 경제 질서가 가져온 위기와 그에 대한 대안 논의가 풍성한 해였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 않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날치기 통과되는 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2012년 전 세계 주요국들의 지도자 선거를 앞두고 참여나 분노, 대안보다는 '영웅', 강한 리더십을 기다리는 심리도 함께 커가고 있다.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그 밖에…

정운찬 전 총리와의 염문 등 대형 폭로로 화제를 모은 신정아의 <4001>(사월의책 펴냄)은 출간 즉시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키며 불티난 듯 팔렸으나 대형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신정아 돌풍은 고백 혹은 폭로 문학에 대한 우려를 낳았지만 결국 '1주일 천하' 혹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창비 펴냄)는 지난 4월 미국에서 출간된 이래 11월 아마존닷컴이 선정한 '문학·픽션 부문 올해의 책 베스트 10'에도 선정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에 따라 한국에서의 판매량 역시 다시 늘었다.

한국 문학의 거목이었던 소설가 박완서가 올해 초 담낭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나 많은 지인과 독자들을 눈물짓게 만들었다. <책으로 읽는 사상가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 등의 대형 작업으로 수많은 책벌레들에게 비평의 길라잡이를 제공했던 출판평론가 최성일의 타계(7월) 역시 가슴 아픈 부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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