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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따위는 가라! 이젠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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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따위는 가라! 이젠 '드라이버'!

[김용언의 '잠 도둑'] 제임스 샐리스의 <드라이브>

우연이 빚어낸 효과를 깨닫기 위해서 가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3년 전쯤 언젠가 경리단길 근처 헌책방 'ITAEWON FOREIGN BOOK STORE'를 구경하다가 얇은 페이퍼북 한 권을 충동 구매했다.

제임스 샐리스라는 작가 이름도, "드라이브(Drive)"라는 소설 제목도 전혀 들어본 바 없었다. 이럴 때 독자가 가장 쉽게 현혹되는 문구가 표지 중앙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선정한 올해의 탑 10 소설입니다." 당시 하드보일드 소설에 관심이 많았고, 이 책도 2005년에 출간된 하드보일드 느와르 중 수작이라는 홍보 문구에 끌려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앞의 세 장 정도 읽다가 그냥 잊어버렸던 것 같다.

얼마 전 <드라이브>라는 영화 시사회를 갔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라는 감독 이름이 귀에 설었지만, '할리우드에서 만든 스릴러'로 2011년 칸 국제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이변을 일으켰다고 했다. 호기심에 감독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2010년 전주 국제 영화제에 놀러갔을 때, 마침 그 시간에 볼 수 있는 영화 중 표가 남아있는 작품이 덴마크에서 날아온 <발할라 라이징> 한 편뿐이었다.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일단 표부터 끊고 나서 극장에 들어갔다. 중세 시대쯤을 배경으로 한 무지막지한 유혈낭자 액션 영화였고, 구구절절한 대사나 상황 설명 없이 오로지 간결한 액션만으로 이뤄진 영화 언어가 인상적이었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 바로 그 <발할라 라이징> 감독이었다. 오오, 이런 우연이, 놀라워하며 <드라이브>를 보았다.

라이언 고슬링이나 캐리 멀리건 같은 스타 배우의 면면만이 이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게 맞구나, 하는 힌트를 줄 뿐, 영화는 꽤 낯설었다. 오히려 1960~70년대 장 피에르 멜빌이 줄줄이 빚어낸 아름다운 느와르 영화의 형제 격에 가까웠다. 잔혹하면서도 낭만적이고, 로스앤젤레스의 열기를 북유럽의 냉기처럼 묘사하는 영화였다.

그런데 왠지 내가 이 이야기를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시감의 정체가 뭘까. 갑자기 몇 년 전에 읽다 말았던 소설이 기억 속에서 튀어나왔다. 혹시나 싶어 책꽂이를 뒤져봤다. 그 책이 맞았다. 이름도 주어지지 않은 어떤 '드라이버'가 폭력의 세계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 독서의 궤적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꺾이고 반사되며 독자의 시간대를 제멋대로 겹쳐버리는 법이다. 다른 책들을 제쳐놓고, <드라이브>를 다시 한 번 첫 쪽부터 정독하기 시작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소설은 영화와 제법 많이 달랐다. 시작은 이러하다.

"팔에 남아있는 감각이 하나도 없었다.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팔은 그저 저기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떨어져서, 연결고리라곤 없이, 마치 버려진 신발처럼. 드라이버는 팔을 들어 올리려 해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중에 걱정하자. 그는 열려진 문을 돌아보았다. 아마도 그렇겠지, 드라이버는 생각했다. 아마 더 이상 아무도 오지 않을 거야, 아마 이제 끝난 걸 거야. 아마도, 지금으로선, 시체 세 구면 충분해."

(Jame Sallis 지음, Harcourt 펴냄). ⓒHarcourt

드라이버는 할리우드의 낡은 아파트에 산다. 미친놈처럼 차를 잘 몰기 때문에 일급 스턴트맨으로 인정받는다. 좀도둑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찔러 죽였다. 이후 스미스 씨 부부의 양자로 살다가 16살 생일에 가출하여 캘리포니아로 왔다. 그의 뛰어난 운전 솜씨를 탐내는 건 영화계뿐이 아니다. 각종 범죄자들도 그를 원한다. 그는 순순히 그 아르바이트에 가담한다. 단 조건이 까다롭다.

"난 운전합니다. 그게 내가 하는 전부요. 당신이 수익을 계산하거나 그 계획을 굴려나갈 때 난 차 안에서 내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다. 어디서 출발하고, 어디로 향할지, 일이 끝난 다음 어디로 가면 되는지, 시간이 언젠지만 말해주면 됩니다. 나는 그 일에 끼어들지 않을 거고, 누구와도 인사를 나누지 않을 거요. 무기도 들지 않소. 난 운전할 뿐입니다."

언제나 인생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채 관조하며 자신의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에게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리나와 그녀의 남편 스탠더드, 어린 아들 베니치오가 드라이버의 삶에 끼어들고, 굶어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열여섯 살의 그를 거둬준 스턴트맨 쉐넌이 촬영 도중 골반이 모조리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하고, 마약 거래가 본업이었던 의사 닥이 길고양이 '미스 디킨슨'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하고…. 이 사소한 변화들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인생은 언제나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고 편안하게 앉아, 우리가 어떻게 그 메시지들을 놓쳐버리는지를 지켜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계획된, 아주 '평범해' 보였던 한 탕이 실패로 돌아가고, 예상보다 너무 많은 돈이 굴러들어오고, 예상보다 너무 많이 사람들이 죽으면서 드라이버는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의 중심으로 밀려간다.

"그가 차를 어떻게 몰든지 간에 그 무스탕은 바싹 따라붙었다. 마치 나쁜 기억처럼, 도망칠 수 없는 역사처럼."

친숙한 조합으로 설명 한 줄을 뽑아내자면, <드라이브>는 (LA의 지형학을 탐사하던) 레이먼드 챈들러와 (사막 한복판을 건조하고 사납게 돌파하던) 코맥 매카시가 사이좋게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한 것 같은 소설이다. 유령 같은 남자가 애리조나 주 투손과 할리우드를 오간다. 신대륙 개척 판타지의 한 거점이기도 했던 장소와 꿈의 공장이라 불리던 신기루 같은 장소. 두 곳 모두 멕시코와 아주 가깝게 붙어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경계선이 무너질 수 있다.

결국 투손과 할리우드는 크게 다르지 않다.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곳곳에서 24시간 불을 밝히고, 20세기 삶의 진보라 일컬어지던 사물들이 결국은 더러운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둥둥 떠내려가고, 히스패닉, 이탈리아인, 폴란드인, 중국인, 한국인, 유태인 등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낯선 존재들이 곳곳을 점유하며 '미국적인' 풍경을 재 정의내리는 공간. 개별적인 이질감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함으로 너무 쉽게 녹아내리는 공간.

남자는 차 안에서만, 운전대 뒤에서만 가장 평화롭고 가장 강력하다. 손쉽게 모든 것을 균등하게 만들어버리는 그 진부한 평범함에 포착되지 않기 위해, 그는 공간을 점유하는 것도 공간에 붙들리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는 차를 타고 끝없이 달아난다. 말 그대로, 드라이브.

<드라이브>의 모든 페이지는 소망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삶 위를 감도는 어떤 비탄의 정조를 발가벗긴다. 드라이버는 소설을 읽다가 도저히 뜻을 알 수 없는 단어 때문에 작가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그 단어는 'desuetude', 폐지, 폐용이라는 뜻이었다. 카탈로그상으로는 너무 예뻐 보였지만 막상 조립하고 나면 더할 나위 없이 못생긴 싸구려 책상 앞에서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 어머니는 10년을 함께 살았던 아버지를 어느 날 저녁 식사가 채 끝내기도 전에 아무런 경고 없이 고기 써는 칼로 푹푹 찔러 죽이고는, "나중에 이해할 거다"라는 말을 남긴다. 아들은 20여 년 후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고백을 털어놓는다. 혹은, "내 인생이 안 좋은 선택의 역사 자체인 걸요. 그쪽으로는 완벽한 재능을 타고 났어요"라며 망설이지 않고 대꾸하는, 그런 삶. 내가 실패한 건지, 삶이 나를 바꿔버린 건지 가늠할 수 없는 지점에 내몰린 그런 삶.

하지만 드라이버에게는 책임감이 있다. 죽은 이들에게 한 약속은, 그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지켜져야만 한다. "비열하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그 남자는 이 비열한 거리를 걸어가야만 한다"(<심플 아트 오브 머더>)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유명한 문장처럼, 그는 결국 단호하게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 악몽처럼 따라붙을 흔적을 모조리 끊어내고야 만다. 그럼으로써 간신히 자유로워지고, 동시에 죽음이나 진배없는 삶을 다시 살아야만 한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나?" 커피와 코냑으로 옮겨갔을 때 버니 로스가 물었다. "아니오. 하지만 삶이 우리 머리 위로 내던져졌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한테는 뭐랄까, 삶이 영원토록 우리 발밑에서 조금씩 스미고 있는 것 같습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읽으며 밑줄 긋고 싶은 무수한 문장들을 발견했던 독자라면 <드라이브> 역시 꽤나 마음에 들 것이다. 하드보일드의 정석과도 같은 문장들이 매 페이지마다 튀어나온다. 제임스 샐리스의 소설은 아직까지 한국에 번역된 적이 없다. 그의 대표작은 탐정 루 그리핀 시리즈라고 하는데, 독립적인 장편으로서 <드라이브>부터 소개되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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