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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야한 생각, 여기라면 무한 자유!

[프레시안 books]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

여고 시절. 예쁘고 잘 나가는 애들 한 무리를 빼고, 공부라도 잘 하는 5등까지를 빼고, 존재감 없는 열댓 명을 또 빼면, 한 반엔 거름종이 위에 남은 커피찌꺼기 마냥 일군이 남았다. 뒷자리에서 야오이 소설·팬 픽션을 읽어치우던, 앞머리를 늘어뜨린 여자아이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들의 강한 연대감의 중심엔 '.txt'가 있었다.

같은 시절, 남자아이들은 보나마나 '.avi'으로 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야오이물에 흥미를 잃은 이후로도, 그들은 여전히 더 많은 '.avi'를 긁어모았을 것이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야동 황제 '김본좌'가 잡혀가던 날 그토록 많은 남자들이 읍소한 걸 보면, 바빠 보이는 사람들도 최신 야동 동향은 체크하는 걸 보면, 심지어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하악대고 있는 아저씨들이 눈에 띄는 걸 보면 그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 탄복하고 만다. 거기엔 뭐가 있는 걸까?

궁금했던 어느 날 직접 야동을 다운받았다. 남자들이 아낌없이 돈을 붓는 그것이 얼마나 화끈할지 두근거렸다. 내걸린 제목들은 그럴듯했다. '아줌마 OO 절정', '미제 △△', '청순녀 엘리베이터 OO'…. 침이 꿀꺽. 엄청나게 환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았다. 그러나 웬걸, 내 백일몽에도 못 미치는 저열한 스토리였던 것이다! 차라리 수술대 위가 잘 어울릴 듯한 신체, 신체, 거시기, 거시기의 클로즈업만 있었을 뿐이다. 10초 건너뛰기를 수 번 하다가 꺼버렸다.

역겹거나 불쾌했다기보다, 그저 지루했다. 이렇게 조각난 거시기와 거시기가 좋다니. 차라리 초등학교 때 비디오 대여점에서 몰래 가져오곤 했던, 싸구려 비디오 잡지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성인 영화 소개가 훨씬 더 섹시했다. 그러고 보면 유부녀가 배달부가 어쩌고 하던 성인 영화 시놉시스도, 고등학교 때 열중했던 팬픽도 모두 '텍스트'다.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왕수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제목을 보자마자 과거의 기억들이 한 두름 엮인 건 당연지사. 남자는 (대부분) 왜 야한 사진과 동영상에, 여자는 (대부분) 왜 야한 이야기에 성적으로 반응하는 걸까?

▲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오기 오가스·사이 가담 지음, 왕수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이 책은 오기 오가스와 사이 가담이라는 두 명의 인지신경과학자 쓴 성과학(Sexology)서다. 저자들은 먼저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탐구하는 이 학문이, 그토록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이면서도 여태까지 미신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해명한다. 성에 대한 주관과 편견이 워낙 강해 표본을 구하기 쉽지 않고, 이불 속 얘기를 솔직하게 듣기도 어려우며, 어떤 기관도 이런 실험에 대해서 지원하길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사람들이 은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곳이 있었던 것이다. 칠흑 같은 방에 서로 아무 정보도 교환할 수 없는 젊은 남녀 다섯 명씩을 집어넣고, 어떤 행동이든 해도 된다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1970년대 실제 있었던 '절대적 익명' 환경의 실험을 수천만 배로 확대시킨 그것이 지금 당신의 일상에 와 있다. 그렇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그것, 인터넷이다.

여기엔 모든 종류의 성적 욕망이 망라되어 있다. 이 안에선 해리 포터와 스네이프 교수가 성 접촉을 하고, 아메리칸 아이돌이나 슈퍼스타K 출연자들이 난교를 벌인다. 염소와 사랑을 나누는 여자가 있고, 풍선이 터지는 것에 성적 흥분을 느끼는 사람들의 동영상이 있다. "인터넷 세계의 법칙 #34 : 그것에 대한 포르노가 존재한다"(38쪽) 그 말대로다.

저자들은 이 '노다지'에서 50만 명의 개인별 검색 히스토리를 포함해 총 10억 개에 이르는 웹 검색 내용을 일일이 여과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에로 소설 수십만 편과 인터넷 로맨스 소설 수천 편의 내용을 분석했다. 이들은 성적 욕망이 사회적 입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신호를 감지하는 두뇌 속 기제의 문제라는 확신을 토대로, 엄청난 양의 데이터 속에서 사람들의 성욕이 다른 이유를 밝혀내려 한다.

가슴만 보여도 흥분하는 남성

성욕 신호는 성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남자들은 '시각적' 섹스 이미지를 보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얼굴 없이 가슴만 덜렁, 엉덩이만 활짝 찍힌 사진에도 흥분하는 것이다. 집중하는 부위는 가슴과 엉덩이 외에도 발, 그리고 남자의 페니스가 있다. ("'커다란' 페니스에는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91쪽)) 대부분 가슴은 크면 클수록 좋아하지만, 1만 개에 이르는 가슴 정보를 실은 붑피디아(Boobpedia)가 증명하듯 그 취향은 너무도 다양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취향은 달라도 왜 본능적으로 여자의 특정한 신체 부위에 평생 관심을 갖는 것일까.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받는 가슴과 엉덩이 등의 곡선은 그 여성이 앞으로 몇 년 동안이나 건강하게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지표 역할을 하는데, 인간 수컷들은 "단기간의 성적인 관계보다는 자녀를 양육하는 장기적인 관계를 더 선호하도록 진화했"기에 그 지표들에 회로가 자극된다는 설명이 붙는다.

가령 사람들이 검색한 성적 관심사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한 것은 '젊음'이었는데, 이는 "어린 아가씨는 이제까지 다른 남자의 아이들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 적이 없을 것이고, (…) 새로 임신한 아이가 스스로 생존해나갈 수 있을 때까지 엄마로 살아 있을 확률이 더 높다"는 도널드 시먼스(캘리포니아 대학 인류학과 명예교수)의 설명과 부합한다.

남자의 성욕은 이렇듯 시각적 신호에 의해 즉각적으로 활성화되어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포르노는 이런 성적인 두뇌를 자극하는 데 손색이 없는 혁신적인 수단이다. 그들은 성욕 처리를 위해 동영상이나 이미지를 찾으면 그만이지, 다른 이들과 취향이나 경험을 공유하는 일은 드물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저자들은 "외롭고 빨리 흥분하며, 목표를 반드시 가져야 하는" 이런 남성의 특성을 애니메이션 <루니 툰>의 사냥꾼 엘머 퍼드에 비유한다. 총질에 사족을 못 쓰는 그는 목표물인 벅스 바니가 언뜻 모습을 비추기만 해도 발사를 해대며, 가짜 바니에게 총을 쏴놓고서도 기죽지 않고 다시 총을 장전한다.

여자가 섹스를 하는 이유, 237가지나 돼?

여자들을 흥분하게 하는 기제는 꽤나 복잡하다. 1998년 실수로 개발된 비아그라가 제약 회사의 주가를 두 배 오르게 하는 등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내자 일각에서 곧바로 여성용 비아그라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들이 만든 혈관확장제는 여자들의 성욕을 끌어내는 데 효과가 없었다. 성적인 몸과 성적인 마음이 분리되어 있어 몸이 젖어도 섹스를 원치 않을 수 있는 그들에게, '심리적 흥분 기제' 없는 자극제란 허사였다.

저자들은 여자들의 성욕 발전(發電) 기제를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에 나오는 중년 부인 탐정의 이름을 따, '미스 마플 탐정 사무소'라 부른다. 수십만 년 동안 남자들을 파헤치며 갈고닦은, 수많은 단서를 갖고 생식에 임하는 신중한 과정을 비유한다. 이 사무소를 구성하는 것은 감정, 사회성, 문화, 신체 담당 탐정으로, 네 가지 소프트웨어를 감독하여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결정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여자들의 장기적인 고려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십만 년에 걸쳐 진화해온 소프트웨어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봐야한다.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 젖을 먹이고 양육에 매달리는 등, 여성은 섹스를 통해 자칫하면 삶이 본질적으로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의 성욕은 "이 모든 잠재적 리스크를 신중히 감안해 조심히 체로 걸러야만 하"며, 현대의 여성은 그 조심성이 응축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여자들을 작동하게 하는 심리, 사회성, 정황 정보 등은 이미지보다는 서사체 이야기나 대화를 통해 더 잘 전달되는 법이다. 그래서 에로 소설이 주로 여자들에게 읽힌다. 영어권에도 한국, 일본의 '동인지 문화'에 필적하는 방대한 에로 소설·팬픽 문화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창작·소비는 대개 여성들이 맡는다. 이 소설들의 특징은 남자들을 겨냥한 에로 소설과의 비교를 통해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녀의 몸에서는 헐떡임과 비명 소리가 반반씩 섞여 도망치듯 새어 나왔고" vs "그가 유방을 더 세게 당기자 털 하나 없는 그녀의 성기 입술이 열리더니"(170쪽) 어느 쪽이 남성을 겨냥한 소설일까? 남성을 겨냥한 글에선 시각적 묘사가 도드라지고, 여성을 겨냥한 글에선 등장인물의 '감정'과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춘다.

성욕 소프트웨어가 미각 신호라면 여자의 두뇌는 단맛과 쓴맛, 남자의 두뇌는 짠맛과 신맛만 느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성별 차이가 크다. 또한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 역시 다른데, 엘머 퍼드와 마플 탐정 비유에서 알 수 있듯 남자의 두뇌는 단 하나의 신호(or)에도 쉽게 흥분을 하지만 여자의 두뇌는 여러 개의 신호(and)가 있어야 흥분이 가능하다. 이 이야기는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신디 메스턴·데이비드 버스 지음, 정병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표지를 본 (내 애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남성들의 반응과 연계해서 보면 더욱 재미있다. "뭐 이렇게나 많아? 진짜야?"

경험을 통해서든 영화를 통해서든 남녀가 성적인 요구를 하거나 받아들이는 촉이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부주의한 판단은 민망한 장면, 심각한 상처를 초래하곤 했다. 과거 헤어진 남자친구는 안아달라기에 안아주었더니 그 '안아줌'이 아니라며 말을 빙빙 돌렸고(나는 당시 새 애인이 있었다), 내게 그런 말을 해선 절대로 안 되는 위치에 있는, 결혼도 한 자는 술기운을 빌려서 뜬금없이 자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그때 역시 내겐 애인이 있었다). 혹시나 이 글을 본다면 부끄러움에 이불을 뻥뻥 찰 필요는 없고, 237가지 중 한두 개는 더 알아보길 바란다.

이런 해프닝은 약과다. 기혼 여성들이 자주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엔 "남편이 억지로 한다", "이것 때문에 이혼 생각한다" 이런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사연들이 올라온다. 만족을 위해 노력해도 모자랄 시간에, 서로 파트너의 성욕 회로가 다르단 사실은 생각조차 못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이런 반목이 책 몇 권으로 해결되는 일은 아니다. 또 "인간의 성욕을 몇 가지의 생물학적 신호로 환원해버리면 섹스가 지닌 마법적인 힘이 사라져버린다고 믿는 이"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무슨 욕망을 가졌으며 왜 나와 다른지 차근히 바라보려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성욕 소프트웨어를 이성애자 남자, 여자라는 큰 틀에서 비교했지만 단일한 형태의 '남자의 성욕' '여자의 성욕'은 없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성별마다 성욕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몇 가지씩 있고, 이것들이 각양각색의 변화를 보인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는 얘기다. 분류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욕구들을 수집해 보여주었으며 게이의 욕망에 대해서도 한 장을 할애했음에도 뒷부분에 이런 경고를 덧붙인 이유는, 책이 자칫하면 성 역할을 고정시키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인터넷에 갇힌 욕망의 동물들

사실 한국어판 제목이 씌우는 프레임이 다소 과도한 감이 있다. 이 책은 여자와 남자의 생물학적이고도 결정적인 차이점을 찾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원제를 보자. "A Billion Wicked Thoughts." '오만가지 야한 생각들'. 책을 읽다보면 실제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남녀 탐구 생활' 유의 틀에서 벗어나 한 가지 더 중요한 주제를 메모하게 된다. 억 단위의 은밀하고도 엄청난, 하나도 겹치지 않는 욕망들을 확인하게 해주는 곳. 인터넷. 이 책은 컴퓨터 앞 '클릭하는 동물' 인간의 자화상이다.

이 책이 '왜'에 대한 설명이 생각보다 부실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재미와 의미를 갖출 수 있었던 건 연구의 장소이자 방법이었던 인터넷에 빚진 바 크다. "현미경을 통해 지극히 미세한 입자를 볼 수 있게 된 것처럼 남녀의 욕망은 인터넷을 통해서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추천사에 무릎을 친다. 하나의 학문이 맞춤한 '창'을 만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이다.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온라인에서 하는 행동 중 흔적이 남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는 저자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디지털 발자국'으로 들키고 싶지 않은 욕망을 추출했다는 감사이자 경고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교훈으로 마무리지으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느낀 것은 모종의 애처로움이다. '미스터 팬티', '미스터 옷장' 등 검색어로 정체성을 부여받는 모르모트 신세에 대한 약간의 슬픔, 엄청난 (검색의) 자유를 느끼는 현실이 결국 커다란 실험실이라는 사실에 대한 실소다. 그리고 수많은 동영상과 글과 변태들이 넘쳐나도 진정으로 섹시한 것은 없다는 안타까움이랄까. 고삐 풀린 채 뛰어놀고 있지만, "이제 성 말고는 인간이 해볼 수 있는 태곳적부터의 모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뭔가 애처롭다.

신나게 야한 욕망을 까발리고 난 뒤, 결론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에게 놀이터가 정해져 있듯, 우리는 영리하게 남은 놀이터에 우리의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 외의 나머지 삶은 산업 사회가 만든 담, 쇠창살, 쇠사슬, 굳게 닫힌 대문에 단단히 갇혀 있다"고. 외설이냐 예술이냐 논란을 각오한 예술적 도전들부터 섹스 칼럼이나 섹드립(섹스+애드리브의 준말, 섹스와 관련된 장난들)에 이르기까지, 더이상 재미가 없는 건 이런 이유에서일지도 모르겠다.

자유로움에 대한 착각과는 별개로, 오색찬란한 성적 신호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아직도 세상엔(특히 한국엔) 어떤 신호에 대해선 '변태'라 낙인을 찍고 무시하거나 억눌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다만 그 욕망이 현실로 뚫고 나왔을 때 타인을 해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 혼자만의 상상을 현실로 인식하는 자들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어떤 신호는 받아들이고 어떤 신호는 받아들일 수 없는지 판단을 내릴 때 과학은 어떤 윤리적 처방도 제시해줄 수가 없다"는 말은 그래서 조금 무책임하게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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