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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악마, 아버지? 잡스의 맨얼굴 최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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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악마, 아버지? 잡스의 맨얼굴 최초 공개!

스티브 잡스 공식 전기 출간…"잡스의 '혁신'은 무엇인가?"

그는 컴퓨터 화면 상단에 위치한 '제목 표시 줄'에 "사소한 수정을 가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고 불평하는 GUI(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디자이너와 개발자에게 "그걸 매일 쳐다봐야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못했소?" 하고 윽박질렀다.

그는 매킨토시 내부 깊숙한 곳에 들어갈 인쇄 회로 기판에서부터 열자마자 버려질 제품 패키지의 외양에까지 엄청난 공을 들였다. 심지어 투병 중 의사들이 그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려 할 때조차도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 쓰기 싫다고 투덜대며 다른 마스크를 다섯 가지쯤 가져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민음사

디자인에 '미친' 괴짜인가, 디자인을 최초로 '이해한' 창조적 혁신가인가. 그, 스티브 잡스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앞에서 소개한 일화는 지난 5일 세상을 떠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일생을 다룬 공식 전기에 실린 그의 단면 중 일부에 불과하다. 잡스의 첫 공식 전기가 24일 오전(한국 시각)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동시 출간되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잡스의 사생활과 죽기 전 마지막 모습 등이 공개됐다.

미국 동부 시각 기준으로 23일 오후 6시에 공개된 이번 전기는 <타임> 전 편집장이자 전기 작가인 월터 아이작슨이 집필한 것. 그 내용은 잡스 사후부터 이날까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쳐졌다. 한국어판은 안진환 씨가 번역을 맡아,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와 같은 시각 민음사에서 944쪽 분량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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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 잡스>(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시중에 넘쳐나는 자신을 다룬 책들에 늘 극도의 불만을 표시했던 잡스는 가까웠던 아이작슨에게 직접 집필을 의뢰했고, 두 사람은 2009년부터 2년간 40여 차례 걸쳐 만나며 집중 인터뷰를 했다. 잡스는 "사람들 입을 여는 데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아이작슨을 선택했고, 집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조건에 선뜻 응했다.

아이작슨은 잡스 외에도 그의 가족이나 친구부터 그가 버리거나 그에게 분노한 사람들, 그의 적들까지 100여 명의 주변 인물들을 만났다. 그중엔 잡스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주 빌 게이츠를 비롯해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의 핵심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잡스의 후계자 팀 쿡 등이 포함되어 있다.

책에는 작은 차고에서 시작해 세계적 기업이 된 애플의 성장 비밀, '애플 I'에서 시작해 매킨토시를 거쳐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혁신적 제품에 얽힌 탄생 비화 그리고 스티브 잡스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전설의 프레젠테이션 준비 과정부터 극도의 절제와 완벽주의로 상징되는 경영 비법에 이르기까지 그간 애플이란 조직이 생동해 온 역사가 그대로 망라되어 있다.

또 실리콘밸리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임종 전 마지막 순간, 개인적인 일화부터 공식적으로 알려진 의미 있는 사건, 선불교로부터 받은 영향과 극도로 절제된 채식주의에 대한 믿음 등 그간 베일에 싸여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인간 스티브 잡스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개인사적 정보들이 담겼다.

특히 잡스가 만난 여인들을 비롯해 생모와 친여동생을 만나게 된 일화, 나중에 인정한 딸 리사와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죽기 전까지 만나지 않았던 아버지와 사실은 서로가 부자지간인 걸 모르는 상황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는 사실 등 그의 복잡한 가족사와 연애사들이 이 책에서 처음 구체적으로 밝혀진다.

빌 게이츠, "가족 모두가 여기서 사는 거예요?"

알려진 대로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 폴과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그에게 양부모는 각별했다. 그는 "내가 버려졌기 때문에 죽어라 열심히 일해 부모님이 나를 되찾고 싶게 만들려 한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얘기들이 나도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라며 누군가가 그의 부모를 '양부모'라고 부르거나 '진짜' 부모가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하면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반면 생부모에 대해서는 "그들은 나의 정자와 난자 은행"이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후에 '낙태 결정을 내리지 않은 일이 고맙게 여겨졌다'는 이유로 조앤 심프슨(잡스의 생모)을 만나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 1956년 아버지와 함께 한 스티브 잡스. ⓒ민음사
어린 시절, 기아에 시달리는 나이지리아 어린이의 사진이 담긴 잡지 표지에 충격을 받은 잡스는 교회 목사님에게 보여주며 '하나님이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시는지' 물었다. 목사는 "하나님은 아신다"며 애매하게 답했고 그 이후로 잡스는 그러한 하나님을 숭배하는 일과는 어떠한 관련도 맺기 싫다고 선언, 다시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 종교 대신 그가 심취한 것은 7개월간을 인도에서 보내며 깨달은 선불교의 가르침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결혼식 주례 역시 자신의 영적인 스승인 일본의 선불교 승려 오토가와 고분 지노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심지어 자신의 제품에도 선불교의 정신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가령 그는 팬이 필요 없는 전원 공급 장치를 원했는데, 컴퓨터 내부의 팬이 내는 소음은 정신 집중을 방해하기에 선불교의 정신과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다.

과일과 채소만을 먹은 그의 극단적 채식 습관 역시 다른 이들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다. 그는 또 단식을 정기적으로 단행함으로써 몸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단식에 들어가서 일주일이 지나면 정말 황홀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잡스의 가치관은 종양 제거 수술을 거부한 결정으로도 이어진다.

잡스는 아이작슨에게 "그들이 내 몸을 여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다른 방법들이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려 했지요"라고 설명했다. 수술 대신 선택한 방법은 신선한 당근과 과일 주스로 구성된 엄격한 채식 위주의 식단을 고수한 것이다. 여기에 침술과 다양한 약초 요법을 병행했고 가끔 인터넷이나 전국 각지 사람들과의 상담을 통해 알아낸 민간요법을 몇 가지 사용하기도 했다.

선불교의 영향을 받아 "서구 사회의 광기와 이성적 사고가 지닌 한계"를 말할 정도로 물질주의적 가치에 거리를 두었던 그였기에, 사는 집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고 가구도 거의 없이 단출했다.

그는 "애플의 많은 사람들은 웬만큼 돈을 만지기 시작하자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으나 나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그들의 아내들이 성형수술로 얼굴이 바뀌는 것이나 집에 경호원을 두는 것 등 부자들의 생활 습관을 비판했다. 잡스의 집이 너무나 검소했던지 이곳에 방문했던 빌 게이츠는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가족 모두가 여기서 사는 거예요?"라고 물었을 정도다.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면 만들지도 않는다

매킨토시 개발 팀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던 앤디 허츠펠드는 잡스에 대해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만드는 제품들은 예술품이어야 했다. 잡스는 애플의 GUI 핵심 개발자인 빌 앳킨슨에게 "위대한 예술품은 사람들의 취향을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확장시킨다"며 매킨토시도 그렇게 만들어야 하다고 강조했다.

허츠펠드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경쟁에서 이기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의 목표는 "가능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하는 것, 혹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으로 요약된다.

제품의 질에 가장 큰 가치를 둔 그답게, 혁신적이었던 기업들이 결국에 쇠퇴하고 마는 이유에 대해서도 "제품의 질을 경시하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제품 엔지니어나 디자이너가 아닌 수익의 바늘을 움직일 수 있는 세일즈맨들에게 가치를 두기 시작하고 그들이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서 결국에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는 "나의 실수로 스컬리가 영입되었을 때 애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며 애플에 대해서도 솔직한 평가를 털어놨다. 애플의 3대 CEO인 존 스컬리는 원래 경영 전문가로 잡스에 의해 CEO로 영입되었으나, 이후 잡스를 애플에서 축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 50세 생일 파티를 하는 스티브 잡스. ⓒ민음사

그의 또 다른 고집은 애플의 엄격한 인사 체계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목표는 "머저리가 급증하지 않도록", 즉 회사에 이류 인재가 넘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잡스는 특정 부서에 지원한 면접자들을 해당 부서의 관리자가 아닌 팀 쿡, 필립 실러 등 회사 수뇌부와 만나게 했다. 그런 다음 잡스와 그들은 따로 모여서 그들이 적당한지 어떤지 이야기를 나눴다.

또 잡스는 디지털 세상의 중심에 있음에도 그것의 고립 가능성을 인식하고 '직접적인 만남'을 신봉한 아날로그적 인물이었다. 그는 이메일이나 아이챗을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말도 안 된다"며 "창의성은 우연한 만남이나 무작위적인 논의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서로 전혀 만날 일이 없을 이질적 팀원들이 우연히 뒤섞이도록 설계한 픽사의 건물은 이런 철학을 최대한으로 관철시킨 결과물이었다.

잡스의 경영 철학은 말년에 그를 찾아온 구글의 CEO 레리 페이지에게 한 조언에서 잘 요약되어 있다. 잡스는 페이지에게 가장 집중하고 싶은 다섯 가지 제품을 물은 뒤 그 외의 나머지는 모두 제거하라고 조언했다. "그렇지 않으면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되고 말 것이다. 적당할 뿐 훌륭하지는 않은 제품들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그가 바라는 건 오로지, '가장 위대한 것'과 그 이상일 뿐이었다.

악마이자 아버지가 써 내려간 혁신사(史)

"그는 단정하게 구색을 갖추고 경쟁에 나선 전형적인 상사나 인간이 아니었다. 악마 같은 면을 지닌 그는 주위 사람들을 분노와 절망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이처럼 평생을 기행으로 일관했던 잡스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공식 전기를 요청한 이유는 책의 말미에 나온 그의 말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며 사후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비쳤다. 그가 남기고 싶은 '약간의 지혜'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좀 더 인간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는 죽기 며칠 전 아이작슨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항상 곁에 있어 주진 못했다"며 "우리 아이들이 나에 대해 알았으면 했다"는 한 사람의 아버지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는 시대에 획을 그은 한 인물의 전기란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애플이란 기업이 일으킨 PC와 애니메이션, 음악과 휴대전화, 태블릿 컴퓨팅과 디지털 출판 등 여섯 개 산업 부문에 걸친 혁명을 다룬 산업사이자 일종의 경영서로도 가치를 지닐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21세기 초를 뒤흔든 한 천재적 인물과 그로 인해 끌어올려진 과학 기술의 교차점에서 펼쳐지는 인문학서로도 손색없을 듯하다. 아이작슨은 이러한 관심사를 "인문학적 감각과 과학적 재능이 강력한 인성 안에서 결합될 때 발현되는 창의성"이라고 표현했다. 무엇보다 아이작슨은 이 책이 "혁신을 다룬 것으로 평가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이작슨은 서문에서 잡스와 대화하는 동안 애플의 동료들이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라 칭하던 일면, 즉 잡스의 기억 왜곡과 거짓말 성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책이 전기의 주인공에게 편향될 수 있었던 위험성을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100명이 넘는 친구와 친척, 경쟁자, 적수들을 만나야만 했고, 잡스에게 집필 과정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을 것과 사전에 보여 달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전기엔 잡스의 실수와 후회, 그로 인해 절망하고 분노한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내밀한 이야기들이 비교적 가감 없이 기록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작슨은 자화자찬으로 끝나기 쉬운 공식 전기에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생전에 잡스를 상징했던 완벽주의를 또 한 번 구가한 셈이다.

▲ 1996년의 스티브 잡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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