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두 후보 중 누가 된다고 뭐가 달라지기나 할까?' 하고 회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두 후보의 '프로필의 색깔'은 다르지만, 구분되는 정책적인 특징은 눈에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두 후보는 각각 "자신이 지금 꼭 서울 시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로 지지를 호소하기보다는 상대방의 흠을 잡는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종반부에 다다른 선거전은 상대 후보 헐뜯기 게임으로 변했고, 이 가운데 우리가 몰랐던 후보들의 흠만 속속들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렇게 알게 된 후보의 개인 정보는 정작 서울 시장에게 필요한 덕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둘 중 누가 된다 한들, 과연 그들이 호언장담대로 서울 시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선거는 좋은 서울 시장을 뽑는 첫 번째 걸음일 뿐이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그렇게 뽑은 시장이 자신이 선거 때 내세운 비전, 가치, 공약을 염두에 두고 좋은 시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 이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경원, 박원순 후보부터 시작해서 아무도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해서는 질문을 던지지도, 답하지도 않는다.
'프레시안 books'는 난장판 속에서 결국은 당선이 될 다음 시장이 제발 좋은 시장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미리 훈수를 둘 생각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열 명에게 다음 서울 시장이 누가 되든, 그 누군가가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을 추천 받았다. 쉽게 말하자면, 책으로 말하는 '다음 서울 시장에게 바란다!'
온갖 분야를 망라하는 이들이 추천한 책은 다양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한목소리다. "나경원이든 박원순이든 누가 당선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서울' 그리고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고! 이어지는 기사는 열 명의 추천 도서와 추천 이유를 정리해 엮은 것이다. <편집자>
ⓒ프레시안(손문상) |
막무가내 개발에 마침표를 찍어라! <저성장 시대의 도시 정책 : 더 좋은 도시, 더 행복한 시민>(한국공간환경학회 기획, 한울 펴냄) 강현수 / 중부대학교 교수
<저성장 시대의 도시 정책>은 서울 시민들의 요구가 변한 이유를 '저성장 시대'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한국 경제 고도 성장기의 종식, 저출산 고령화 심화, 완숙기로 접어드는 우리나라 도시화 단계 등을 고려 할 때, 이미 서울 시민은 직감적으로 과거와 같은 개발 공약이 더 이상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고도 성장 시대 우리나라 도시 정책은 개발을 더 많이, 더 빨리, 더 쉽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라는 변화된 조건에서 우리의 도시 정책은 이제 개발보다는 시민들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저성장 시대의 도시 정책>은 그에 대한 해답을 고민하는 책이다. 이 책에 담긴 고민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시장의 의지와 현장 공무원의 열정이 합쳐진다면 서울 시민들은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제인 제이콥스 지음, 유강은 옮김, 그린비 펴냄) 김현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진보신당 녹색위원장
1961년 첫 판을 낸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제이콥스는 당대의 주류 도시 계획 패러다임을 "빛나는 전원 도시 미화(radiant garden city beautiful)"라고 일갈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 에베네저 하워드의 '전원도시' 그리고 뉴욕 시장 로버트 모제스의 '도시 미화'' 등이 모두 시대를 달리하면서도 기존의 건축물과 공동체를 쓸어버리고 말끔한 정원과 고속도로를 낀 고층건물을 지으려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는 재건축과 '뉴타운', '디자인 도시'라는 이름으로 홍역을 앓는 우리 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주상 복합 타운과 명품 아파트 단지는 제이콥스가 그토록 경멸한 '슈퍼 블록'이고, 사라져버린 피맛길과 쫓겨나는 청계천 상인들은 제이콥스가 지키고자 했던 지역 사회와 아케이드의 활력이기 때문이다. 산천마저 급변하니 인걸도 갈 데가 없는 서울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서 무엇을 나누고 사는지에 관심을 갖는 서울 시장이라면 제이콥스부터 일독해야 한다. 그리고 차분히 서울의 골목들을 들여다본다면, 결코 이전 시장들처럼 할 수는 없을 터다. |
'사람'이 사는 공간을 창출하라! <집은 인권이다>(주거권운동네트워크 엮음, 이후 펴냄) 미류 /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급매 매달 연금처럼 월세 따박따박."
동네 전봇대에 붙어 있는 광고지였다. '따박따박' 월세를 내느라 노후를 준비할 겨를이 없는 사람들과, 월세를 '따박따박' 받아서 노후를 해결하려는 사람들. 우리는 '집'을 이렇게 만나고 있다. 서울은 전국에서 주거 문제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다. 서울시는 문제를 풀려고 낑낑대는 것 같았지만 언제나 '주택' 정책만 늘어놓았고, 그건 대개 '개발'로 귀결됐다.
지난 3월 암으로 별세한 건축가 정기용은 그래서 이렇게 말했었다. 공간을 완성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이라고. 따라서 사람이 주인이 되는 풍경을 만드는 것, 즉 주체의 회복이야말로 건축의 숙제이자 숙명이라고. <감응의 건축>은 그러한 생각을 실천으로 풀어낸 놀라운 과정의 기록으로, 건축가 정기용이 1996년부터 만 10년 동안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펼친 건축 활동을 정리한 책이다. 공설 운동장에서부터 납골당에 이르기까지, 근대 건축의 고정관념과 지역 사회의 관료주의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사려 깊은 건축가가 한 지역에서 남긴 발자취는 평범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도시란 어떤 것인가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지금, 서울의 집단 기억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나는 이것이 차기 서울 시장이 첫 번째로 마음에 담아야 할 질문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여기에 있다'라는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는 지금, 서울의 기억은 너무나 황폐하지 않은가. 그러니, 진짜 희망을 말하기 위해서는 이 책 속의 건강하고 구체적인 기억들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 아, 권하고 싶은 게 또 있다. 다수가 원하는 보편적 필요에 화답하는 사람. 자본의 논리에서 제외된 영역까지 보살피고 뒷바라지하는 사람. 이건 모두 정기용이 스스로 내린 새로운 건축가의 정의지만, 곧 이 도시의 시장이 될 사람에게 기꺼이 빌려줘야 하지 않을까?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 NO LOGO>(나오미 클라인 지음, 이은진 옮김, 살림Biz 펴냄) 김신현경 / 여성학 강사·다큐멘터리 기획자
하긴 개개인이 하나의 브랜드가 될 것을 강요받는 시대이니, 도시의 브랜드화에 정색을 하는 몸짓은 촌스런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받을 만도 하다. 그러나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이 보여주는 브랜드화의 세계에서 기업들의 브랜드가 거리, 광장, 나아가 도시를 점령하는 실제의 예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사태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공공장소가 브랜드화 될 때, 그 곳에서 가능해지는 것은 토론과 축제, 더 나은 삶에 대한 상상이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수다한 잡담과 불평뿐이다. 더 이상 우리는 서울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을 가진 시민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찬탄 혹은 불만만을 내뱉는 소비자로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또 나오미 클라인은 브랜드의 세계가 도래하면 브랜드에 대한 젊은이들의 선망을 이용하여 그들의 노동력을 어떻게 무상으로 착취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있는데, 이 또한 눈여겨 볼 만하다. 다음 서울 시장은 시민으로서의 삶에 대한 정치적 감각, 도시 공간의 배치와 쓰임에 대한 민주주의적 자세, 노동 인권에 대한 평균 수준의 존중을 가졌으면 한다.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
소통,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자! <콘택트>(칼 세이건 지음, 이상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이명현 / 천문학자
그들도 나를 외계인처럼 느끼고 서로를 외계인처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 말도 통하지 않고 어떻게 소통해야할지도 모르는 타자 중의 타자, 외계인. 차기 서울 시장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을 한 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칼 세이건의 소설 <콘택트>를 선택하겠다. 차기 서울 시장이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아 나선 천문학자의 치열한 삶을 담은 이 책을 읽고 외계인보다 더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의 타자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터득하기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물론 이런 내 제안이야말로 그들에겐 어느 외계인 나그네의 철없는 주절거림일 것이겠지만 말이다. |
일류 도시? 교육 문제? 바보야, 문제는 문화야!
핵심을 한 줄로 요약하면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곳이자 프랑스인이 갖는 문명적 자부심의 상징인 루브르 박물관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과 공화주의(민주공화국)의 성과라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박물관을 '공교육'의 일환으로 명시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한국에서의 공교육 강화 논의가 초·중등 교육 현장에만 집중해 있다면, 프랑스 공화주의는 성인까지를 그 이용 대상으로 하며 역사와 과학, 예술과 문화 등을 모두 포함하는 박물관을 공교육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로 규정했다. 더구나 그 이용은 '무료'다. 물론 19세기 동안 부르주아 정부(이를테면 지금의 이명박 정부)가 등장했을 때는 늘 박물관 이용을 유료화 함으로써 무산자와 서민을 성인 공교육의 혜택으로부터 배제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전후 보수적인 대통령 드골 하의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는 1958년부터 대대적으로 프랑스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관, 자연사 박물관 등에 국가적 예산을 투입해 이용을 무료화 함으로써 파리와 프랑스의 여러 도시를 문화, 예술, 과학이 숨 쉬는 곳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것들은 현재 프랑스인은 물론 외국 관광객에게 '공교육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현 대통령 사르코지는 2010년에 다시 루브르와 퐁피두 센터 등 공립 박물관의 무료 관람을 제창했다. 더구나 유럽연합(EU) 주민 모두에게도 무료 관람 권리를 제공했다. 우리의 경우 피카소 전시회 관람을 위해서는 일인당 수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국립과천과학관의 경우 그 수준이 시립 수준밖에 되지 않는데다, 기획예산처는 늘 그 이용료를 대폭 인상하고 국비 지원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립극장과 국립현대미술원은 민영화 대상이다. 한마디로 돈 있는 집 청소년들과 그 부모들만 이용하라는 이야기다. 저자 중 1인인 송기형 교수는 책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조금이라도 더 살 만한 도시, 더 다니고 싶은 학교, 더 가고 싶은 박물관, 더 연대적인 사회, 더 인간적인 인간, 덜 어두운 세상을 지향하는 문화 민주화를 위한 문화 정책은 끊임없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박물관 무료 관람 확대가 하나의 길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
문제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라!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서영표 / <진보평론> 편집위원
우리는 왜 사는 것일까? 국내 총생산(GDP)를 올리고, 더 많은 고층빌딩을 짓고, 더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고, 궁극적으로 몸과 마음마저도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삶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말하고 명령하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적 시장 체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생산과 소비 그리고 사회 체제가 우리 삶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뭐 대단한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쉬고, 생각하고, 나눌 수 있는 삶을 원할 뿐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너무 과한 것을 바라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앙드레 고르 지음, 이현웅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단편선 / 음악가·자유기고가
고르는 1960년대 프랑스 신좌파의 중요한 사상가이자 <에콜로지카> 등의 저작으로 생태주의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강조한 앙드레 고르. 그가 1980년 출간한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은 '후기 산업 사회'라는 현 시점의 토대를 바탕으로 사회 구조가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는 것이 필요할지에 대한 전망을 저자 특유의 관점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책이다. 특히 감동적인 것은 고르가 현 시대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두 축,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넘어 일찍이 마르크스가 주창했던 유토피아(그는 이를 '공산주의'라 표현했다), 즉 '평등'한 동시에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유하고, 길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이원론적 유토피아'라는 프로그램의 제안으로 이 책을 끝내고 있다. 지금 같은 시대에 유토피아라니!) 물론 그가 염두에 두는 전략들-노동시간 단축, 기본 소득, 계급 아닌 계급(비계급)의 투쟁 등-은 기존의 우파는 물론, (책 제목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듯) 좌파의 전략과도 적잖이 다르다. 그런 이유로 인해 좌파에게도, 우파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책이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그런 이유로 인해 좌파에게도, 우파에게도 새로운 모색의 시발점으로서 기능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결국은 한 끗 차이다. 하지만 가끔씩 우리는 그 한 끗에 기대를 걸어야 할는지도 모른다. 도시로서의 서울, 우리는 어느 곳을 바라보며 걸어야하는가? <룸살롱 공화국>(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전홍기혜 / 기자
서울은 도심 유흥가뿐 아니라 주택가 골목에서도 '룸살롱'을 볼 수 있을 정도니 심각한 문제 중 하나라는 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단순한 '성도덕'의 문제를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룸살롱으로 상징되는 성 산업은 이 사회의 여성 그리고 노동의 문제를 보여준다. 여성이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그만큼 변변치 않다. 서울에 만연한 룸살롱이 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은 <룸살롱 공화국>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때려잡는' 식으로 대안을 마련할까 하는 걱정이 들어 <막달레나, 용감한 여성들의 꿈 집결지>(엄상미 지음, 그린비 펴냄)도 같이 읽기를 권한다. 성매매 여성들과 그들의 삶에 대한 편견을 깨야 '룸살롱 공화국'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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