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 직전인 6월 6일 미국의 <AP>통신이 보도한 내용이다. 이 매체는 "이전까지 중국에서 금기시됐던 북한 붕괴 문제가 중국 내 학계에서 점차 논의되고 있다"며 특히 "중국 관리와 비공식 미팅을 가진 윌리엄 팰런(William Fallon) 전 미국 태평양 사령관은 중국 관리들도 이 문제를 고려할 의사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팰런이 북한 붕괴 시 핵무기 확보를 비롯한 문제들을 논의해야 한다고 중국 전·현직 관료 및 군부 인사에게 타진해본 결과, 과거와는 달라진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아이디어가 거절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 문제에 대해 고려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휴양지 서니랜즈에서 함께 거닐며 손을 흔들고 있다. 양국 정상의 노타이 차림으로 알 수 있듯이 양국은 이번 회담을 두 정상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AP=연합뉴스 |
6월 초 독일에서 열린 비공식 동북아 안보 회의에서도 중국 학자들은 중국이 장기간 유지해온 핵심적인 이익, 즉 북한의 안정 유지 못지않게 비핵화에도 점차 비중을 높이고 있다는 암시를 줬다고 이 회의에 참석한 프랭크 자누지(Frank Jannuzi)가 전했다. 현재 앰네스티인터내셔널 미국 대표로 활동 중인 자누지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상원 외교위원장 재직시 동아시아 담당 보좌관을 맡았었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 붕괴론 논의에 적극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상회담 직전 주미 중국대사인 추텐카이는 "한반도에서 어떠한 대혼란이나 무력 충돌도 중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우리는 항상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누지 역시 "중국은 북한의 대화 복귀 설득을 위해 자신이 할 바는 한 만큼, 이제는 미국과 한국이 호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6자회담 재개 VS 북한붕괴론 논의
이에 비춰볼 때, 미국은 북한이 붕괴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중국이 대북 제재 및 압박을 가해 북한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접근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이러한 미국의 지속적인 요구에 일부 호응하면서도 6자회담 조속한 재개를 통한 문제 해결을 여전히 선호하고 있다.
그렇다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 문제를 놓고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일단 공개된 내용은 지금까지의 합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북한이 비핵화해야 하며, 어느 나라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합의"했고, "두 나라는 북한의 비핵화를 성취하기 위한 두 나라의 협력과 대화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러한 합의를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 가운데 하나라고 자평하고 있다.
반면 시진핑 주석은 6자회담을 비롯한 대화의 필요성을 설득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호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지금 긴급하게 필요한 것은 되도록 조속히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닐런은 "현 시점에서 우리는 대화 재개에 필요한 실질적 내용에 관한 약속을 북한에서 보지 못하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을 보여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오히려 도닐런은 "두 정상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가 이행될 필요가 있다는 데 합의했으며, 이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공동으로 모색한다는 데에도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는 대화보다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이행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더구나 도닐런의 후임자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주도했던 수전 라이스 주유엔 미국 대사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됨으로써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제재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6월 9일 자 <뉴욕타임스>의 보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신문은 시진핑 시대의 중국을 상대로 새로운 관계를 모색했던 오바마 행정부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며 대북정책에 대한 미중간의 이견 완화를 그 근거로 들었다. 정상회담 미국측 배석자들을 접촉해본 결과, "중국은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용어를 써가면서 중국이 북한의 김정은을 굴복시키기 위해 어떤 지렛대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말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만약 시진핑이 그러한 공약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중요한 성과가 될 것"이라며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한국전쟁 이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핵) 야심에 의한 위협이 북한의 붕괴 시 초래될 혼란의 위험보다 더 클 것이라는 점을 중국에 설득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관료들은 만약 북한이 현재의 경로를 유지한다면 한국과 일본이 독자적인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유혹도 커지고 더 많은 미국 군사력이 아시아-태평양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미국 정부의 견해에 시진핑 주석도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바마의 외교적 승리?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볼 때,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미중간의 경쟁 구도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재개에 대한 명확한 합의 없이 비핵화에 대한 합의를 이룸으로써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지렛대를 강화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장이 북한 붕괴보다 더 큰 위협'이라는 오바마의 주장에 시진핑이 동의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가령 시진핑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알았다'고 말했다고 해서 이것이 곧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닐 수 있다. '당신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의미를 담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한반도와는 태평양 건너에 있는 미국과, 한반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 사이의 전략적 우선순위 및 이해관계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은 북핵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해결되면 미사일방어체제(MD)를 비롯한 아시아-태평양의 군사력을 축소할 수 있다는 '당근'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를 덜컥 받을 정도로 중국이 바보는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번 정상회담 결과에 도취돼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려고 할 경우, 한반도 정세는 물론이고 미중관계가 또 다시 출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미중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는 중대한 분수령을 맞이하고 있다. 당장 12-13일에는 남북당국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6월 하순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첫 정상회담도 열릴 예정이다. 일단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자신의 입장이 관철된 것으로 믿고 대북 제재 및 압박 구도를 강화하려고 할 것이다.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한 북한은 경제발전에 집중하면서 이를 위한 "평화적 대외 환경 조성"에 매진하려고 할 것이다. 김정은의 특사에 이어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시진핑 주석은 남북대화를 주시하면서 한중정상회담을 준비할 것이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정책과 입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남북관계와 비핵화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을 6자회담의 조건으로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6자회담 재개를 통한 비핵화 설득에 무게중심을 둘 것인지, 그리고 한중정상회담을 통해 어떤 중재안을 만들 것인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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