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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점령 당한 도시, 걷기도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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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점령 당한 도시, 걷기도 권리다!

[도시 주인 선언·20] 걷고 싶은 도시

걷는 데도 권리가 필요하다

1993년도 4월경에 내가 받은 어느 어머니의 전화 한 통에서부터 우리나라 보행권은 시작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하굣길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며 "보상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제발 학교 앞 횡단보도에 신호등을 설치하고 횡단보도 옆에 그어진 주차구획선을 지워 달라"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사고 지점은 왕복 4차선 내리막길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와 횡단보도 주변에 주차구획선이 그려져 있었다. 운전자는 내리막길에 속도를 줄이지 않았으며 횡단보도 주변 주차 차량은 아이와 운전자 모두의 시야를 가려버렸는데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고 횡단보도 주변 주차 차량만 없었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고 이후 학교와 학부모 모두가 구청과 경찰청에 문의도 하고 민원도 넣어보았지만 "자동차의 통행을 저해하기 때문에 신호등 설치 불가"라는 답변만 되돌아 온 상태라고 했다. 아이들이 다치고 사망하는데 학교 앞 신호등 설치가 왜 그렇게 힘든 일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떻든 그 시기에 신호등 설치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당시 내가 고육지책으로 떠올린 것은 '주민 서명'이었다. 학교 선생님과 학부모들을 만나면서 문제점을 정리하고 사진도 찍고 논의를 이웃으로 확대해 나가자 놀랍게도 어머니들은 2주일 만에 2000명의 주민 서명을 받아냈고, 당연히(?) 구청과 경찰청은 단호하게 "불가하다"는 공문만 보내왔지만 끈질긴 공문 재발송과 전화 항의로 결국 주민들의 요구는 모두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어린이 교통 사고 사상자 수는 현재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1993년도 14세 미만 어린이 교통사고 통계를 살펴보면 총 4만1905건의 사고 중 998명이 사망하고 2만2398명이 부상당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사고의 약 70퍼센트가 집과 학교 부근에서 보행 중에 발생했다는 점인데 이는 사람은 길이 없어도, 불편해도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한 결과물로 자동차 중심의 교통 체계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도시는 오로지 자동차만을 위한 공간이었으며, 자동차 통행을 저해하는 모든 요소들은-보행자까지-밀어내야 하는 존재였다.

어린이 교통안전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사무실에서 본 일본 책은 '보행권'을 떠올리게 했지만 함께 일했던 사람들조차도 매우 낯설어했다. '걷는 데도 권리가 있나?'

이후 '세계 걷기 대회'라는 내용의 행사를 언론을 통해 접하면서 우린 막연하고 생소했던 '보행권'이라는 단어를 현실화시키기로 결정했다. 1993년 6월, 서울시청에서 종로5가까지 현수막을 들고 여러 시민들과 함께 걸었던 '보행권 신장을 위한 도심지 걷기 대회'를 통해 보행권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고, 인간의 기본권인 '보행'에 대한 관심은 시작되었다.

걷고 싶은 서울 만들기 운동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차별 없이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도시는 자동차에만 과도한 혜택을 부여했을 뿐, 보행이나 이동 약자에 대한 배려는 매우 인색했다. 보도 공간을 축소해서라도 차도를 설치해야 했으며, 차량의 통행 흐름을 위하여 보행자들을 공중으로 지하로 내몰아 버렸다. 도시를 계획하고 만들어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사람'을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너무나 쉽게 생각해버렸기 때문이다.

단 한 개의 횡단보도도 없이 14개의 지상 출입구만 설치해 놓았던 서울시청역이 대표적이다. 덕수궁에서 1분이면 도착할 서울시청을 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지하도를 뺑뺑 돌아야만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 불과 2002년도 서울의 모습이었다.

또한 서울시와 경찰청은 1996년경에 2기 지하철을 개통하면서 너무나 많은 횡단보도를 없애버렸다. "횡단보도는 육교, 지하도, 다른 횡단보도로부터 200미터 이내에 설치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도로교통법에 근거했다고 하나 건물 3~4층 깊이의 지하도를 계단을 통해 이용하면 된다는 배짱은 인간에 대한 눈곱만큼의 예의도 없음을 의미한다. 주민들의 대화나 만남, 어린이들의 놀이 공간으로 자리매김 되었던 주택가 골목길 역시 주차나 통과 차량으로 이미 '생활도로'의 기능을 상실한 채 자동차 도로로 전락해 버렸다.

1996년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도시연대)는 '걷고 싶은 서울 만들기 운동 본부'를 출범시킨다. 소식지 발간, 시청 앞 보행자 광장 조성 캠페인, 횡단보도 설치 운동과 더불어 '서울시 보행환경기본조례 제정 운동'까지 1년간 전문가와 서울시의원까지 합세하면서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리고 1997년, 세계 최초로 '서울시 보행 환경 기본 조례'가 제정되었다.

도시연대가 '시청 앞 보행자 광장 조성'을 요구했던 이유는 자동차에 점령당한 시청 앞을 보행자 광장으로 만들어 시민들의 몸짓과 목소리를 담아내는 진정한 시민의 마당으로 되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이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는 숭례문과 덕수궁, 시청 그리고 경복궁까지 연결되는 서울의 대표적인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자동차 체증에 대한 우려로 불가함"이었다.

'자동차 소통을 방해하면서까지 광장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행정의 인식을 일거에 뒤집어 놓은 것은 바로 2002년 월드컵이다. 월드컵은 자동차 체증이라는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시청 앞이라는 커다란 공간에서 서로 간의 소통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것을 배우게 해 준 사건이다.

걷고 싶은 서울 만들기 운동은 '길'이 갖고 있는 가치를 되찾아오려는 시도였다. 이는 약자보다는 강자의 논리, 효과보다는 효율의 논리, 배려보다는 배제의 논리, 가꾸기보다는 개발의 논리가 활개 치는 자본 중심의 공간 전략을 '인간 중심의 공간 전략'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거리 응원을 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걷고 싶은 거리 만들기 조성 사업

보행 조례 제정 이후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시는 25개 자치구별로 1개소씩 '걷고 싶은 거리 조성 사업'을 시범 실시하게 된다. 서울시의 추진 전략은 자치구별로 특색 있고 지역 실정에 맞는 시범가로를 선정하여 설계 및 공사 시행을 통하여 시민의 보행 편의에 기여할 수 있는 가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서대문구 명물거리 등 24개소의 시범가로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 사업은 서울시가 걷고 싶은 서울을 만들기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돈화문로 등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시범가로 조성 사업과 연계하여 각 자치구별로 사업을 시행하게 하면서 걷고 싶은 거리 조성 확산을 꾀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초기 의욕과 달리 이 사업은 많은 한계를 보여줬다.

우선 자치구에서는 '걷고 싶은 거리 조성 사업'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행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도로 구조와 교통 운영을 보행자 위주로 바꾸어야 함에도 차량 통행이나 주차 등 다양한 민원을 의식한 나머지 단기적 실적 위주로 추진되어 기본적인 보행 환경에 대한 진단과 해결보다는 거리의 특성화나 시설물 디자인, 보도 포장 교체 등 치장 위주의 사업에 치우치게 된 것이다. 또한 시공과 관리의 부실로 잦은 시설물 파손, 주민들의 무관심으로 인한 쓰레기 투기 등으로 '불필요한 예산 낭비'라는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기도 했다.

분명 걷고 싶은 거리 시범가로 조성 사업은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와의 긴밀한 소통 부재 및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면서 대안을 모색해나가는 참여 과정의 부재, 과도한 디자인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첫 출발이었던 이 사업에 대해 한계는 분명하게 제기하되, 본래의 취지가 되살릴 수 있는 따뜻한 비판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어떻든 2차까지 진행된 이 사업은 이후 중단되었지만, 보행자 중심으로 가로 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그것이 그 거리의 생명력을 다시 되살릴 수 있다는 의미는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이름의 보행자 거리 사업이 현재도 추진되고 있다.

걷고 싶은 도시를 위하여

걷는다는 것은 매우 여유로운 행위다. 주변도 살펴보게 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좋은 건물 앞에서는 사진도 찍고 싶고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는 발걸음도 멈추게 된다. 나만이 아닌 타인이나 다른 사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기에 걷고 싶은 도시는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를 심어준다. 따라서 단순한 물리적 환경의 쾌적성이나 안전성만이 아니라 '사람의 행위 자체의 건강함'을 회복하기 위해 생활적 관점과 문화적 관점, 사회학적 관점을 반드시 견지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 속에서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횡단보도 설치다. 걷고 싶은 도시는 수십 억 원의 비용으로 가로를 정비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바로 가까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출발해야 한다. 보행은 어쩌다 큰 맘 먹고 하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생활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횡단보도 설치에 인색한 상태에서 특정 가로 중심의 보행 환경 개선 사업은 전시용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도시의 건강성을 진단하는 첫 출발은 바로 '걷는 사람이 존중받고 있는가?'이다. 우리 도시의 건강성을 되찾아야 한다. 건강한 도시는 보행자에게 매력적인 환경을 만들어낸다. 보행자들의 행위 속에서 거리는 살아나고 활기를 부여받고,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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