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어느 토요일 저녁, 김 아무개 씨의 가족은 TV 연속극을 보고 있었다. SBS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 장면. 게이 커플 태섭(송창의)과 경수(이상우)가 택시 안에서 사랑싸움을 벌였다. 경수가 말한다. "그러니까 진하게 키스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 말을 들은 택시 기사가 윽박지른다. "재수 없어, 당장 내려!" 참으라는 태섭과 격노하는 경수. 결국에 둘은 택시 문을 박차고 나온다.
이 장면을 이해하지 못한 김 씨의 아버지. "저 둘이 게이 커플이야." 하는 딸의 설명에 잠시 입술을 실룩거리더니 잠시 후 택시 기사와 똑같은 어조로 말한다. "TV 꺼! 저딴 걸 왜 해 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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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일 한때 트위터를 평정한(?) 표현이 있었다. '객관적 혐오감'. "내 여러 주관적인 혐오감은 객관적인 혐오감 앞에서 그저 비루한 것일 뿐", "역사에 두고두고 까일 문구", "혐오감도 객관적일 수 있다니", "호모포비아의 카프카적 표현" 등. 이 말은 이날 헌법재판소가 군형법 제 92조("계간 기타 추행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에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나왔다.
"계간에 이르지 않은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
군내 강제 추행은 처벌 받아야 마땅하지만 이 조항은 그 대상을 동성애자로 한정해 '계간(鷄姦)' 즉 닭들의 성교라 낮춰 부르며 차별했기 때문에 논쟁거리가 돼 왔다. 조항이 합헌 판결을 받은데 대한 공분과는 별개로 '객관적 혐오감'이라는 표현이 이런저런 패러디로 회자된 것은, 그것이 헌재를 비롯한 한국의 제도권 및 주류 사회가 갖는 동성애에 대한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강제 추행 혐의로 고소됐다가 20일 무죄 판결을 받은 개그맨 김기수 씨도 "무죄 판결보다 동성애자란 '딱지'를 뗐다는 사실이 더 기쁘다"고 진술했다. 한국에서는 '강제 추행자'보다 '동성애자'가 더 버거운 굴레인 것이다.
2. 최첨단 문화를 선도하는 게이?
"괜찮다 싶으면 여자 친구가 있고, 완벽하다 싶으면 남자 친구가 있다."
"'패션 리더' 게이, '트렌드 세터'로 부상…."
한데 한국에서 게이는 1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위의 통신사 광고 카피와 기사 제목을 보자. 김기수는 "동성애자란 말을 듣게 되자 운영하던 쇼핑몰에서 판매한 옷에 대해 선입관이 생겨 쇼핑몰도 폐쇄했다"는데, 어디서는 '완벽'한 '패션 리더'고 '트렌드 세터'란다. 남성 동성애자들이 다른 한 편에서는 대단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문구들이다.
특히 '돌체 앤 가바나'의 도미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 콤비, (현재는 해고당했지만) '크리스찬 디올'의 존 갈리아노 등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대다수 게이이며 공공연히 게이 코드들을 패션과 실생활에서 드러낸다는 사실 때문인지, 게이는 하이패션(최첨단의 유행)의 동의어처럼 여겨지고 있다.
다섯 명의 매력 게이남들이 촌스럽고 퀴퀴한 이성애자 남성을 180도로 변신시켜주는 미국 케이블 채널 '브라보'의 <퀴어 아이 포 더 스트레이트 가이(Queer Eye For the Straight Guy)>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어떤가. 게이가 패션은 물론 라이프스타일에서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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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잡지, CF,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화려하고 세련되게 비쳐지는 게이들의 모습은 문화 분야에서 구매력이 높은 20~30대 여성의 소구 대상이 됐다. 이런 경향을 낳은 대표 격으로 <섹스 앤 더 시티>가 꼽힌다. 주인공들의 패션과 삶이 욕망의 대상이 되면서, 그들 주변의 스탠포드나 앤소니 같은 잘 나가는 '게이 친구'에 대한 판타지도 널리 퍼져나간 것이다.
한편, 이보다 앞서 일본에서 전해진 게이들의 성애를 다루는 만화 '야오이물'은 '아이돌 팬 픽션(아이돌 멤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문화와 결합되면서 '꽃미남 게이 판타지'를 자극했다. 이러한 BL(Boy's love) 취향은 그 자체로 하나의 하위문화로 자리 잡는 한편, 요시나가 후미 원작의 영화 <앤티크>나 그룹 '샤이니'의 드레스 코드 등을 통해 대중문화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종합하자면 일부에서 '게이 문화'는 따라잡고 싶으며 열광할 만한, '팔리는' 코드로 안착했다. 패션계나 광고계에서 '셀러브리티'로 여겨지는 게이들도 등장했다. 한 블로거의 말처럼 "게이 클래스는 수적으로는 마이너리티이지만 사회적 위상으로 볼 때 메이저리그 급"이 된 것일까? 제도적으로는 여전히 인권의 사각 지대에 있을지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섬세하고 화려한 패션 리더로 거듭나면서 평범한 이성애자 남성들을 '호구'로 만드는 존재일까?
이러한 경향성에 대해 판단은 제각각이지만 많은 게이들은 "그것은 게이 문화라기보다 게이 판타지에 가깝다"고 선을 긋는다. 미술 작업을 하는 오용석(37)는 "국내에서 양산된 '게이 컬처'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라면서 "게이가 모든 이성애자 남성을 좋아할 거라는 환상, 게이들은 모두 예쁘고 아름다울 것이라는 환상 등 각자를 위한 '게이 환상'이라는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3. '게이 컬처'가 무엇입니까?
전파된 모습은 변모했지만 서구에서 탄생한 '게이 컬처' 자체가 실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원류는 게이라는 단어가 탄생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즈음부터 남성 동성애자와 그 그룹, 문화를 일컫는 일반적인 형용사이자 명사가 된 '게이'는 독특한 하위문화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의 바(bar) 문화, '캠프'(노동자 계급 게이 남성의 미적 취향이나 행동) 스타일로 변형시킨 오페라, 트루먼 카포티의 문학부터 재스퍼 존스의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게이 컬처'가 축적됐다.
지금도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갖고 있는 통념이지만, 1950~60년대만 해도 동성애는 일종의 정신병이며 치료를 통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질병이란 견해가 의학계에서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동성애는 제도적으로도 불법이었다. 당시 뉴욕 경찰은 센트럴파크를 비롯한 시내 곳곳에서 게이인 양 행세하며 게이에게 접근, 상대방이 응하면 바로 호송차에 태워 취조실로 데려갔다.
문화적으로도 획일주의가 득세한 가운데, 동성애자는 국가 안전에 위협을 가하는 매국노로 지목돼 억압을 받았다. 일부 게이 예술가만이 은밀한 방법을 통해 자신의 감수성을 표현한 시기였다. 이를 '벽장 속 예술'이라고 부른다. 플로랑스 타마뉴의 <동성애의 역사>(이마고 펴냄)를 보면, 당시에 동성애는 사진가 마이너 화이트 등 일부 동성애자 예술가를 통해서 '우회적으로' 표현됐다.
이렇게 억압된 분위기는 억압받는 자들의 저항성을 부각시킨다. "20세기 중반의 미국에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운명은 흑인으로 사는 것과 게이로 사는 것이라고 하는데, 둘 중에서도 게이 쪽이 치명적이었다"라는 극작가 엘리엇 타이버의 증언에 따른다면 게이 문화가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성 해방 움직임과 히피 문화가 요동치면서 게이 컬처는 더 뚜렷한 윤곽선을 갖고 전면에 등장한다. 데이비드 보위가 화려한 옷차림과 화장, 무대 위와 밖을 넘나드는 요란한 퍼포먼스로 '퀴어(Queer, 성 소수자에 대한 총칭.)'의 발판을 넓혔으며, 게이 영화인들도 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1950년대 창간되었던 다수의 게이 잡지들이 이런 문화를 조명하고 따라갔다.
그 정점은 1969년 6월 27일의 '스톤월 봉기'다. 이날 밤 경찰은 그리니치빌리지 내의 한 게이 바인 '스톤월 인'을 급습한다. 그동안 도망가거나 동성애자가 아닌 척 하기 바빴던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이날 모두 한자리에 모여 맥주병과 벽돌을 들고 경찰과 대치했다. 이틀에 걸친 이 싸움은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후 '게이 컬처'를 포함한 동성애자들의 문화는 좀 더 운동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벽장에서 나오다'라는 뜻의 '커밍아웃'이 자랑스러운 명령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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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컬처'는 이처럼 문화 예술계 혹은 게이들의 일상 속에만 갇힌 것이 아니라 세상에 돌을 던지고 왜곡된 통념을 바로잡는 데 기여했다. 1989년 덴마크에서 시작해 특별법 제정 혹은 부부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을 거쳐, 1990년대 유럽 각국에서 동성애자 결혼이 인정받게 된 것이 그 대표적 성과다. 여기서 '운동'과 '문화(예술)'는 역할을 나누어 따로 간 것이 아니라 하나의 덩어리진 힘으로 움직였다.
이와 동전의 앞뒷면처럼 동시에 나타나는 경향이 위에서 언급한 상업화다. 명품 광고에서 SM(사도-마조히즘) 성향을 띤 게이·레즈비언 코드가 등장하고, 패션이나 음악계의 일부 인기 게이들의 캐릭터를 내세운 '핑크 마케팅'이 활발해졌다. 드라마에서 이성애자들의 흥밋거리를 위해 창조된 게이 캐릭터가 나오고 할리우드 '게이 영화' 속 게이는 가족주의를 흔드는 일 없이 관용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4. 한국에는 게이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 즉 2011년 한국의 게이 컬처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지금까지 언급한 풍경들에 대해 공간·시대적으로 멀게만 느껴지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글자 그대로 '퀴어' 즉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 게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글자 그대로 없었다는 게 아니라 주류 사회로부터, 대중 매체로부터, 도시의 공적인 공간으로부터 존재를 부정당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텅 빈 터미널의 화장실이나 옥상, 종로의 파고다극장과 충무로의 극동극장 등에서 눈을 피해 '크루징'(cruising, 특정한 거리나 공공장소, 업소에서 데이트 상대를 찾아다니는 일)을 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알기 시작했다.
물론 TV 고발 르포 프로그램이나 선정적인 잡지에는 이런 장소가 부정적으로 오르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런 보도가 더 많은 게이들에게 노출되면서, 오히려 더 많은 수의 게이가 '모이는' 효과를 냈다. 1980년대에는 지하철 종로3가역 근처 낙원동 일대에 4~50개에 게이바가 자리를 잡았고, 이곳에서 자생적인 게이 문화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는 젊은 게이들이 '터널', '스파르타쿠스' 등 이태원 게이 클럽에 모여 들면서 종로와는 또 다른 커뮤니티 문화를 형성했다.
이때부터 바깥으로 내는 목소리도 커졌다. 게이 인권 운동 단체 '친구사이'도 1993년 '초동회'를 거쳐 이듬해 결성됐다. 동성애자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서울대학교 '마음 001', 연세대학교의 '컴투게더' 등 주요 대학에서 성 소수자 모임이 발족됐고 서동진 씨, 이정우 씨 등이 '게이 활동가'로 등장했다. 또 PC 통신 시대로 접어들면서 더 많은 게이들이 벽장 밖으로 나왔다.
좀 더 가까운 기억을 더듬어 보자. 2000년에는 배우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이라는 '대 사건'이 있었다. 이듬해엔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 씨가 등장했다. 2011년 현재 극장과 영화제에서 <친구사이?>, <후회하지 않아>, <종로의 기적> 등 게이 영화인의 작품을 대중적으로 만날 수 있다.
이런 역사 속에서 은어, 패션, 취향 등 광범위하게 '게이 컬처'가 형성됐지만 그들 스스로 낸 목소리가 바깥에 제대로 전달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존재감을 부각시켜오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드라마나 영화에 게이가 고개를 내미는 횟수가 늘기는 해도 성적 정체성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가족을 불행하게 만드는 '우울한' 캐릭터 혹은 여성스럽기 때문에 오해를 받는 개그 캐릭터에 그쳤다.
5. 지금 여기의 게이들이 말하는 게이 컬처
1과 2에서, 한국 사회에서 게이를 보는 극단적인 두 가지 시선 '혐오감'과 '판타지'를 얘기했다. 그 극단에서 던지는 질문에 실제 게이들은 뭐라고 답할까.
먼저 혐오감에서는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동성애는 청소년들이 모방하거나 학습할 우려가 있으므로 대중문화에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한 게이가 답한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 마세요. (…) 동성애자들이 더 크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뿐이지 갑자기 그 숫자가 많아진 것은 절대 아닙니다."
반대로 이런 질문도 있다. "게이들은 전부 패션 감각이 뛰어난 것 같아요". 따르는 답변, "일반인들이 게이의 패션 감각을 높이 사는 이유는 성 정체성이 벽으로 작용하지 않는 패션계에서 차별 없이 능력을 펼친 게이들의 노력이 빛을 본 결과입니다. 솔직히 저 같은 경우에는 패션에 별로 관심도 없고 감각도 꽝이랍니다."
이상은 지난 2월 발간된 <게이 컬처 홀릭>(씨네21북스 펴냄)의 '이성애자 상담실' 코너에서 나온 질문과 답변이다. 게이가 아닌 이들이 실제 할 법한 질문들에 대해 솔직히 들려주고 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버디>라는 성 소수자 문화 잡지가 정식 서점을 통해 유통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 게이들이 직접 자신의 문화를 안내한 책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당시 친구사이의 문화팀장이었던 김성진 씨가 책을 내자는 제안을 했고, 편집위원회가 구성됐다. 수개월에 걸친 편집 과정에서 여러 게이들의 목소리가 모아졌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게이 문화 안내서가 나온 것이다.
▲ <게이 컬처 홀릭>(게이 컬처 홀릭 편집위원회 지음, 씨네21북스 펴냄). ⓒ씨네21북스 |
책은 게이 커뮤니티 내외의 게이들은 물론 "게이들의 시크한 감수성이 궁금한 이성애자"들 모두에게 열려 있다. 따라서 상당히 발랄한 만듦새다. '기갈(성깔을 부리거나 끼를 떠는 일,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가진 끼 등을 일컬음)'이니 '식성(성적 호감을 느끼는 스타일)'이니 하는 은어들의 실체도 '언니'들이 몸소 가르쳐준다.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 제도, 장애인 게이나 외국인 게이 등 이중 소수자 문제 등 가볍지만은 않은 부분도 놓치지 않는다. 또 '에이즈', '비정상' 같은 부정적인 키워드와 함께 나열되는 언론 보도 등 주류의 시선도 고발한다.
김성진 씨는 "처음에는 (인권 현실 등) 무거운 면을 다뤄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지만 점점 밝은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 갔다"면서도 "이 책을 읽어 보면 (게이들이 모두 패션 리더고 잘 나갈 것이라는) '환상'도 깨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6. 너와 나, 우리가 바로 게이!
책을 통해서 게이 컬처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지만 그 '특성'이라 할 만한 것이 한 손에 잡히는 것은 아니다.
▲ 현재까지 널리 사랑받는 게이 아이콘 주디 갈런드, 그녀가 출연한 <오즈의 마법사>(1939) ⓒnaver.com |
편집위원회의 전재우 씨는 "(게이 문화가) 가벼워 보인다, 난삽해 보인다고들 하는데 한 꺼풀 벗기면 그렇지 않다"면서 "시끄럽고 재밌고 웃긴다는 부분엔 동의하지만 '방탕하다', '가볍다' 이런 평가는 사실 다른 커뮤니티에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는 특성 아닌가. 게이 커뮤니티가 더 심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성진 씨는 "104명에게 설문 조사를 해봤더니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통적인 취향이나 코드를 끄집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게이 문화에서) 특징적으로 '이거다'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게이들의 취미와 친구 관계 등을 묻는 이 설문에서, '가장 즐겨 하는 운동'을 물었을 때 축구를 꼽은 게이가 없었다는 것 정도만이 눈에 띈다.
이 책의 서문에서도 "동성애자들에게 '성적 지향'을 제외한다면 이성애자들과 구분될 것이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라고 쓰여 있다. 필자 중 한 명인 심정희 패션 디렉터는 "'패션계에서 게이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걸 이야깃거리 삼다니….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같은 글은 아무도 쓰지 않잖아?"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게이 컬처는 그저 성적 지향이 다른 남성의 '문화들의 묶음'일까? 그렇지 않다. 이 성적 지향의 '다름'이야말로 게이 컬처를 독특하게 하는 결정적 차이점이다. 엘리엇 타이버는 자전적 저서 <테이킹 우드스톡>에서 "우리의 성적 취향이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사회가 우리를 억압할 경우, 섹스는 혁명적인 행위가 되고, 많은 이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가 된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제도적으로, 사회적으로 게이들을 차별하는 상황에서 이런 타이버의 지적은 유효하다. 책의 한 꼭지를 맡은 편집위원회의 이종걸 씨는 "성 소수자에게는 성적 지향이 자신을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런 이들에게는 자신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이를 긍정하면서 생기는 '연대 의식', '형제애'가 있다"고 말했다.
▲ <테이킹 우드스탁>(엘리엇 타이버·톰 몬테 지음, 성문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그렇다고 게이 컬처를 운동적 측면에서만 파악하면 이 단어의 또 다른 뜻인 '명랑하고 즐거운' 부분을 놓칠 거라고 편집위원회는 조언한다. 쉽게 접근하라는 의미에서 책의 디자인과 편집에도 공을 기울였다.
영화 <인 앤 아웃>에서 주인공 하워드가 게이들의 송가인 빌리지 피플의 '마초 맨'을 들으며 일어나는 장면에서 함께 웃고, 영화 <친구사이?>의 오프닝과 엔딩의 립싱크 영상처럼 '뽕끼' 넘치는 발랄한 장면을 즐길 수 있다면 이들의 목표, '친절한 게이 문화 안내'는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많은 이들이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가 게이 커플을 너무 희화화시키지도, 어둡게 그리지도 않으면서 성 소수자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드라마 보고 내 아들 게이 됐다, 책임 져라!"라는 호모포비아가 고개를 드는 아픔도 있지만 대중매체가 게이들의 실제 목소리에 귀 기울일수록 그들의 인권은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영화감독 김조광수 씨는 지난 21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마이 게이 라이프')에서 "(어머니가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데까지) 긴 시간을 혼자 감당해야 했고 그 때문에 고통이 크셨다. 그때 엄마 주변에 엄마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엄마는 혼자였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을 하는 관계 속에 <게이 컬처 홀릭>이 놓여있다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징검다리가 되지 않을까. 편집위원회는 이 작업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몰이해가 조금이라도 없어진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뭘 이 정도 갖고,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친구사이 회원인 게이 남성은 <게이 컬처 홀릭>의 발간 감회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함께 읽기 <게이 컬처 홀릭>(게이 컬처 홀릭 편집위원회 지음, 씨네21북스 펴냄) <테이킹 우드스탁>(엘리엇 타이버 지음, 성문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성적 다양성, 두렵거나 혹은 모르거나>(바네사 베어드 지음, 김고연주 옮김, 이후 펴냄) <동성애의 역사>(플로랑스 타마뉴 지음, 이상빈 옮김, 이마고 펴냄) <문화정치 문화전쟁>(돈 미첼 지음, 류제헌 외 옮김, 살림 펴냄) <5리터 - 피의 역사 혹은 피의 개인사>(빌 헤이스 지음, 박중서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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