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전문가의 치명적 유혹…"듣지 마, 다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전문가의 치명적 유혹…"듣지 마, 다쳐"!

[프레시안 books] 데이비드 프리드먼의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

바야흐로 전문가 시대다. 의사, 변호사 등 자격증이 필요한 전문가부터 자장면 배달 등 생활의 달인까지 우리 주변엔 전문가들이 차고 넘친다. 회사를 믿기엔 불안한 직장인들도 저마다 자신을 브랜드화하기 위해 전문 분야를 파고든다. 그러니 언론에서 온갖 전문가를 만나는 것이 이상하지도 않다.

하지만 통계와 전문 용어를 동원하며 세상만사에 명쾌한 해법을 내놓은 전문가들은 과연 믿을 만한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수상한 전문가'들이 적지 않은데다 '권위 있는 전문가'들도 특정 현안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는 마당이니 말이다. (멀리 갈 것 없다. 4대강 사업이나 천안함 사고에 대한 논란은 어떤가.)

▲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데이비드 프리드먼 지음, 안종희 옮김, 지식갤러리 펴냄). ⓒ지식갤러리
미국의 과학 및 기업 분야 저널리스트가 전문가의 신뢰성에 강력하고도 근거 있는 의문을 던졌다. 의학 분야를 중심으로, 과학·기업·스포츠 분야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고 사례와 자료를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른바 전문가들이 왜 곧잘 허튼 소리를 하는지, 우리는 왜 전문가에 혹하는지, 전문가의 조언을 제대로 가려내 수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파헤친 덕분이다.

예를 들어보자. 비만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온갖 다이어트 비법을 다룬 책이 쏟아진다. 의사는 물론이고 헬스 트레이너며 연예인까지 나서 요가 등 운동이나 특정 식품을 이용한 비법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서로 상충된 '비법'이 적지 않다. 심지어 고기만 먹으며 살을 빼는 비법도 한때 인기를 끌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우선 의학 분야 연구의 진위를 가리는 전문가 이오아니다스에 따르면, 비만의 원인과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요인은 3000가지다. 한데 다이어트 전문가들은 이중 한두 가지에 초점을 맞춘다. 명쾌하긴 하지만 일반인들을 오도하기 딱 좋은 '비법'을 소개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깊은 연구를 하지 않은, 이른바 '주변의 전문가'들이라고? 그렇다면 경영의 혁신을 가져온다는 각종 신 경영 기법은 어떤가? 회사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절차나 일을 제거하자는 '린 경영 혁명', 모토로라에서 시작된 품질 혁신 운동인 '식스시그마'는 여러 기업들이 앞 다퉈 도입했던 '히트 상품'이었다.

뿐만 아니다. 수많은 경영학 대가들이 경영 이론 열풍을 비꼬는 'TLAs(세 글자로 된 두문자어·three-letter acronyms)란 말이 나올 정도로 MBO(management by objective·목표 경영),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업무 재설계), BSC(balanced score cards·균형 성과 기록표), JIT(just in time·적시 생산 시스템), TQM(total quality management·종합 품질 관리) 등 각종 경영 기법을 쏟아내 경영학도와 기업가의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신기법이 과연 경영 개선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이를 채택한 기업 중에 실패한 사례가 없는지, 채택하지 않은 기업과 비교해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를 밝히지 않는 "단선적이고 비약적인" 이론이라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나아가 다른 전문가의 입을 빌어 "오늘의 성공 사례가 내일의 실패 사례로 드러나는 형편에 성공한 기업에서 배울 교훈은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각종 기록으로 선수 능력 등이 분명히 드러나는 스포츠에서도 전문가들의 실패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 프로 미식축구 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트의 쿼터백 톰 브래디는 팀을 슈퍼볼에 네 번 진출시켜 세 번 우승시켰고, 슈퍼볼 최우수선수상을 두 번 받은 미식축구의 스타다.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 등재가 확실하며 미식축구 사상 최다승을 기록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대학 시절 후보 선수였으며 드래프트에서 198번이나 "고맙지만 됐어요"란 말을 들은 끝에 199번째로 프로 선수로 턱걸이했다. 감독, 코치, 스카우트 담당자, 스포츠 평론가 등 전문가들이 브래디의 재능과 잠재력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럼 일반인들의 기대와 달리 전문가들의 분석과 전망이 왜 틀리는 걸까. 지은이는 6가지 요인을 들었다. 편견과 부패, 비합리적인 사고, 청중에 대한 고려, 능력 부족, 감독의 부재, 자동적인 반응이 전문가 실패의 전형적인 패턴이란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정신 질환을 진단하는 데 널리 쓰이는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4판)에 글을 실은 170명의 정신과 의사들 100%가 정신질환 약품 제조 회사와 재정적 관계를 맺고 있었던 사실은 어떻게 봐야할까. 제약사에 우호적인 편견이 개재될 여지는 없었을까.

대학 평가에서 전문가들은 졸업생의 평균 수입을 주요 기준으로 삼아 아이비리그 교육을 높이 평가하지만 아이비리그 졸업생들이 다른 학교 졸업생들보다 힘 있고 부유한 집안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거나 이들이 주로 연봉이 높은 금융 관련 직장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는다. 지은이는 이런 사실을 들어 대학 평가 기준이 계량화하기 쉬운 요소에 집중하고, 그 기준도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과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세계에서도 올바른 것이 항상 직업적으로 성공하는 최선의 방책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비공식적 전문가들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전문가의 실패는 언론에 의해 더 부풀려진다. 지은이는 2005년 영국의 BBC, <타임스>와 미국의 CNN 등이 이메일과 전화 때문에 산만해진 사람들은 지능 지수가 10점 하락했는데 이는 마리화나의 악영향보다 두 배 높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던 사례를 든다. 80명을 임상 시험했고, 1100명을 면접 조사했다는 이 뉴스를 추적한 지은이는 '연구 책임자'가 8명을 간략히 시험했으며 본인도 언론의 보도 태도에 어리둥절했다고 전한다.

"대체로 옳고 바른 것을 수용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며 (…) 전문가의 연구 결과를 선정하고 전달할 때 재미있고, 도발적이고, 유용한 것 같은 것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저널리스트가 진리를 밝히기 위해 헌신한다는 주장은 회계사가 세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과 비슷하다"는 지은이의 지적은 우리 언론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하지 싶다.

책은, 대중은 왜 그런 전문가들의 조언에 쉽게 현혹되는지, 올바른 전문가 조언을 어떻게 가려낼지도 제시한다. 이를테면 인류의 조상은 샤먼 등 전문가의 조언에 따르는 편이 생존 확률이 높았기에 전문가의 조언에 따르도록 진화되었을 가능성이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 등 더 잘 아는 사람에게 기대면서 체화한 '오즈의 마법사 효과' 등이 그렇다.

하지만 올바른 전문가 조언을 가려내는 방법으로는 누가 왜 그런 '연구'를 했는지 또는 명쾌하고 획기적이며 유익하다는 '연구 결과'를 의심하라는 충고를 하는 것으로 그친다. (책의 원제가 '오류(Wrong)'란 사실이 이런 한계를 짐작케 한다.) 그러니 전문가의 옥석을 가리는 '처방'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겐 미흡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또 읽는 데 걸리적거리는 번역의 몇몇 문제에도 불구하고 책은 유용하다. 적어도 우리 곁의 수많은 전문가들에게 맹목적으로 넘어가지 않기 위한 첫 걸음은 뗄 수 있으니까. 상반기 읽은 책 중 사회적 의의라는 측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책으로 꼽고 싶을 정도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