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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와 신정아, '안티 조선'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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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와 신정아, '안티 조선'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2011년 책 100권 읽기 ②] 재난 현장에서 돌아온 후…

3월 16일 오후 3시쯤, 일본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시 기타가미가와(北上川) 근처 어디쯤, 잠시 주차된 승용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프레시안> 일본 지진 취재 팀으로 파견됐기 때문이다.

그 일대의 통신망은 지진 이후 두절된 상태였다. 국토교통성 연락 사무소에서도 경찰서에서도 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전파가 미약하게나마 터지는 곳을 향하여 다리 한 가운데로 이동했다. 일행 둘이 차에서 내렸고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져 갔다. 방금 전까지 뜨거울 정도로 해가 쨍쨍하게 내리쬐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산 너머에서 흘러온 커다란 먹구름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곧 우박이 내렸고 차는 뒤집어질 듯 흔들렸다.

나간 지 10분은 된 것 같은 일행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일이 없으니 머리가 제멋대로 돌아갔다. 영화 <해운대>에서도 지진 해일(쓰나미)이 오기 전에 우박이 오지 않았나? 아니다. 우박이 아니었을 거다. 맞더라도 그건 영화다. 게다가 여긴 해안에서 상당히 먼 곳 아닌가. 하지만 이런 '이성적인' 생각은 두 동료가 돌아오고, 날씨가 개고 나서야 든다는 게 문제다.

눈발 날리는 국도를 스노체인도 없이 달릴 때가 몇 배나 더 위험했겠지만, 3월 일본 지진 현장 취재 중 가장 두렵다고 느낀 순간은 이러했다. 위험이란 결코 네모반듯한 박스처럼 배달되는 것이 아니다. '몇 배나'라고 썼지만 객관적으로 측정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위험해도 누군가 경보기를 울려주지 않으면 도망 갈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원전 사고가 0~7등급으로 표시되고, 공기 중 유포되는 오존의 양에 따라 위험 정도가 매겨지지만, 실제로 그만큼의 해를 가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일본 방송을 볼 때는 이곳이 위험 지역이란 생각이 들지 않다가, 한국에서 오는 메일 혹은 문자, 뉴스를 열어 볼 때마다 위험을 느끼는 역설적인 상황이 반복됐다. 미국 "원전 주변 50마일(약 80㎞) 밖으로 대피하라", 영국 "240㎞ 떨어진 도쿄조차도 위험하다" 일본 "30㎞ 바깥이라면 괜찮다". 모두 같은 날 나온 주장들이다. 각 정부들의 판단조차 이렇게 달랐다.

우리는 '같은' 상황을 그때그때 '달리' 느끼면서 안전과 위험이란 실체 없는 '심리' 속에서 5일을 보냈다. 다행히 인천공항의 피폭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했다. 그러나 위험 지역에 직접 가서 취재하고 글로 옮기면서도, 발표나 현해탄 너머의 기사 같은 '모호한' 객관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주는 무력감에 시달려야 했다.

<언더그라운드>는 왜 성공할 수밖에 없는가?

일본 가서는 어쩔 수 없이 그랬으며 돌아와서도 한동안 책을 멀리했다. 그렇게 2주간 '100권 읽기'를 쉬었다. 그러다 우연히 집어 든 책 속에서, 위와 비슷하게 위험에 노출됐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났다.

▲ <언더그라운드>(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1995년 3월 20일 출근길 도쿄 지하철에서 벌어진 무차별 사린가스 살포 사건에 관한 인터뷰집인 <언더그라운드>와 <약속된 장소에서>(언더그라운드 2)다. <언더그라운드>는 60여 명의 피해자·가족과 나눈 대화, <약속된 장소에서>는 사린을 살포한 범인들이 속해 있던 종교 단체, '옴 진리교'에 입신 중이거나 그런 경험이 있는 신자들과 나눈 대화다.

두 권의 책은 강렬했다. 특히 <언더그라운드>는 책을 완독했던 날 밤 가위에 눌리고 악몽에 시달리게 했다. 께름칙한 기분 탓에 다음날은 지하철이 아닌 버스로 출근하기도 했다. 책의 배경이 된 사건이 충격적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기나긴 후유증을 호소하는 이는 매우 적고 증언자 대부분이 '경미한 증상'에 불과했기 때문에, 다른 재해나 테러 사건에 비한다면 파괴력도 크지 않았다.

문제는 형식이었다. 독자를 완벽히 사건의 공간으로 끌고 가는 실제 경험자들의 구술을 온전히 실었고, 게다가 이것이 60번 이상 반복된다는 점이다. 소설가 장정일의 말처럼 "반복은 지옥"이었다.

그냥 앉아서 열차가 빨리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다 '독가스', '폭발 위험물' 등의 안내 방송이 나왔고 역 입구 쪽으로 올라갔어요. 기침을 하는 사람이 유달리 많았고 축 늘어져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죠. (나중에 보니, 그 사람은 죽었다더군요.)

서서히 시야가 어두워지기 시작했어요. 왜 이렇게 날이 어두워졌나 의아했죠. 회사에 갔더니 아침에 OO선을 탄 사람은 반드시 병원에 가 보라고 해서 억지로 갔죠. 병원에는 이미 수많은 사린 가스 피해자가 와 있었어요. (…) 처음에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날 밤 심각한 두통이 찾아왔습니다. 머리를 짓누르는 통증이 한 시간 정도 이어졌습니다. 이틀째부터였나, 40도에 가까운 고열이 계속되었습니다.


인용문이 아니다. <언더그라운드> 증언 가운데 많은 데서 겹쳤던 요소들을 섞어서 마구 써 본 것이다. 이건 실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종종 상상하는 개념인 '평균치'다. 경험의 평균치. 책에 나온 이들이 겪었던 고통과 후유증은 '대략' 저 정도였고 이에 비할 바 못 되는 강력한 서너 명의 경험과 경미한 부상자 여러 명의 경험이 상쇄했다. 이것을 심하게 단순화하면 "12명이 사망하고 3500명 이상이 '중경상'을 입었다"가 될 것이다. 매스미디어가 사건을 전하는 방식이다.

이런 추출과 요약은 <언더그라운드>의 전략과 정반대다. 그것을 강조해 보려 일부러 비튼 것이다. 책은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성장 배경을 소개하며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언더그라운드>의 설계자가 모두가 학생운동의 열기에 빠져 있던 어느 해마저 '애써' 개인의 구체적인 연애사로 기억해내는 무라카미 하루키이기에 더 의미심장하다.

"(사적인 배경 취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한 인간을 '얼굴 없는 많은 피해자 중의 한 사람'에 그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나는 '종합적이고 개념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딱히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인 존재양태에 대해서만 흥미를 느낀다." (머리말 중)

하루키는 "많은 피해자들의 모습을 두루 부각시킨다면 사건의 전체상이 축소·패턴화되지 않고 새로운 형태로 모습을 띠게 될 것이라고 예감"한다. 그리고 <언더그라운드>는 그 예감과 인터뷰에 기울인 1년간의 노력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수작이다. '두루 부각'된 인물에 매번 몰입하다보니 끔찍한 사고와는 60번 마주치는 꼴이 된다. 이것이 앞서 말한 이 책이 갖는 강렬함의 원천이자, 성공할 수밖에 없는 기획인 이유다.

매스미디어는 왜?

머리말에서 하루키는 피해자들의 언론 보도에 대한 불신이 정말로 강했다고 말한다. "정말로 내가 말하려 한 것은 결국 잘려버렸고 발언 시간도 짧아서 하다 만 것 같다"고 전한다. 1년 전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만난 천안함 사건 유족들이 했던 말과 똑같다. 그밖에도 숱하게 들어왔던 얘기다. 하루키 역시 매스컴 보도에 대해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거기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고 단언한다.

언론은 덩어리가 아니라 '단면'으로 세계를 보여주는 거라고 배웠다. 단단하고 육중한 고깃덩어리 그 자체 말고, 어딘가를 칼로 썰어내면 보이는 2차원의 마블링으로 말이다. 40명이면 40명, 3000명이면 3000명의 경험이 저마다여도 '대표성 있는' 단면 하나만을 취한다. 이야기를 '함축해 보여주는' 한 마디 말이면 앞뒤를 자른다. (보통 단면들이 그럴듯하면, 언론계에선 '섹시하다'고 부른다.) 그리고 거기에 객관, 중립이라는 기계적 원칙들이 작동한다. 거기서 개인의 경험과 감정은 오롯이 부각되지 않고 사회적인 맥락 속에 끼워 맞춰진다.

<언더그라운드>를 "성공할 수밖에 없는 기획"이라고 말한 건 이런 속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특히 거대 방송은 그 영향력 덕분에 사건을 규정하는 '말의 권력' 피라미드 정점에 서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의 패턴화된 사건 재현 방법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는 하지만, 웬만해서는 매스미디어가 최초에 박아놓은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언론이 '멍청할 수밖에 없는' 특성을 간파하고 이 두꺼운 논픽션과 몇 년 후에 펴낼 픽션 <1Q84>로 그것을 뛰어넘는다. 사린 살포 사건은, 그래서 '하루키 월드'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 훨씬 의미 있고 생생하다.

세상의 많은 사건들이 이런 노력으로 축소·왜곡되지 않은 전체상을 갖는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하루키 같은 은인(?)을 만나지 못하고 딱딱한 신문 언어로 굳어지기 마련이다. 기사는 많은 경우 취재원 각각의 주관적 현실과 판단을 외면하거나 축소한다. 기사는 대부분, 취재원 개인의 주관적 세계와 언론이 지키려 하는 객관성(에 대한 불가능한 도전) 사이에 알력으로 발생하는 결과물이다.

<언더그라운드> 시리즈가 이런 매스미디어의 방식이 사건을 보여주기에 얼마나 역부족인지 보여준다면, 신정아의 <4001>은 반대로 개인의 주관성이 강하게 작용할 때의 부작용을 드러낸 예다. 물론 2007년 '신정아 사건' 당시 언론은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장사'에만 열을 올렸지만, 그 과오와 별개로 <4001> 역시 사건을 다시 보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4001>은 신정아 버전으로 재구성된 진실의 파편일 뿐이며 그것의 의미는 <언더그라운드> 한 챕터에 해당할 것이다. 다만 과거에 어떤 신문도 신정아 측의 주장을 충실히 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가 이렇게 일방적으로만 쓰인 책을 들고 나타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 <신문, 텔레비전의 소멸>(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이연 옮김, 아카넷 펴냄). ⓒ아카넷
<언더그라운드>와 <4001>은 둘 다 언론을 불신한다. 전자는 언론의 보여주기 방식이 갖는 한계 때문이고 후자는 언론이 그녀에게 발언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매스미디어가 살 길은 없다"고 주장해 온 사사키 도시나오의 <신문, 텔레비전의 소멸>도 태도 면에서 그들 편에(?) 선다.이 책을 거칠게 요약하면 신문 기사-신문 지면-판매점으로 수직 통합되어 있던 기사 유통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거대 신문사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편집권을 빼앗겼"으며 따라서 "매스미디어가 신(神)인 시대는 끝났다."

그는 미디어를 퍼스널미디어, 미들미디어, 매스미디어로 구분하면서 "이제는 특정 기업이나 업계, 특정 분야의 사람 등 수천 명에서 수만 명 규모의 특정 층을 대상으로 전송되는 정보인 미들미디어의 시대다"라고 말한다. 작금의 미디어 환경에서 매스미디어의 기존 방식과 권위가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고언이다.

한편, 이어서 펼친 한윤형의 <안티 조선 운동사>에선 그 덩치와 영향력에 어울리지 않는, 고도로 인격화된 이념과 편향성을 갖춘 한국 유수의 언론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개별 기사에서는 그렇지 않겠지만)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조차 포기한 채 자기의 생존만을 위한 입이 되어 있었다.

자.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 어떤 정보에 의존해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언론은 개개인의 교환 불가능한 경험을 틀 지우고 축소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으며(<언더그라운드>), 이해관계에 따라 정권이고 개인이고 할 것 없이 무차별 공격을 가하며(<4001>, <안티 조선 운동사>),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미들미디어가 부상함에 따라(<신문, 텔레비전의 몰락>) 의미와 권위와 정당성을 잃어가고 있다.

앞서, '현장'에 서 있음에도 보도나 공식 발표를 통해서만 위험을 가늠할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주민들도 "걱정은 되는데 떠날 수 없다"며 정부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과거에 더 강력하게 그랬던 것처럼, 언론은 여전히 상황을 판단하기에 상당히 편리한 틀로 작용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니 <언더그라운드>가 뛰어 넘고자 했던 언론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신문, 텔레비전의 몰락>의 저자의 '매스컴 종말 선언'을 유보하자고 말이다. 그러나 그 '편리함'은 공영방송 NHK가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보도 통제를 하고, 여타 민영 방송들도 최대 스폰서인 도쿄전력을 비판하지 못하는 가운데 제공되었다는 또 다른 사실 위에 있다.

많은 파편을 찾아 낼수록 사안의 전체상이 잘 보이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사안에 대해 일일이 그런 작업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와 직결되는 문제 혹은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라면 어떨까. 말의 홍수 속에서 어떤 입장에서 쓰인 사실을 골라야할지, 거기에 또 얼마나 의존해야할지에 대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한다. 작은 매체가 늘어나고 누구나 발언할 수 있게 된 탓에 오히려 혼탁한 세상이 되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 상황은 소수의 매체만이 강력한 힘을 독점했을 때 그만큼 볼 수 없는 것이 많았다는 사실로부터 초래되었다. 수천만을 대상으로 한 '매스미디어'는 아닐지라도, 한 매체에서 기자로 살아가는 내게 뼈아픈 질문들을 던지는 취재 경험, 독서 경험이었다.

이런 책을 읽었습니다

이번 달 11권을 읽었습니다. 대부분 인터뷰와 서평 기사를 위해 읽은 책들이라 재미는 덜했습니다. 2011년 목표 100권 가운데 29% 달성. 목록은 가장 최근에 읽은 책들부터입니다.

<심야 치유 식당>(하지현 지음, 푸른숲 펴냄)
<테이킹 우드스탁>(엘리엇 타이버 지음, 성문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모나미 153 연대기>(김영글 지음, 미디어버스 펴냄)
<안티조선운동사>(한윤형 지음, 텍스트 펴냄)
<차이와 사이>(요네하라 마리 지음, 홍성민 옮김, 마음산책 펴냄)
<약속된 장소에서>(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
<언더그라운드>(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펴냄)
<4001>(신정아 지음, 사월의책 펴냄)
<신문, 텔레비전의 소멸>(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이연 옮김, 아카넷 펴냄)
<팬티 인문학>(요네하라 마리 지음, 노재명 옮김, 마음산책 펴냄)
<명품 판타지>(김윤성 지음, 레디앙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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