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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의 진실 "시선은 다르다! 그러나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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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신정아의 진실 "시선은 다르다! 그러나 똑같다!"

[프레시안 books] 신정아의 <4001>을 둘러싼 논란

"쓰러져라"

2007년 미국 예일 대학 학력을 위조하고 성곡미술관 공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재판장에 섰던 여인은 재판 중에 그의 변호사로부터 이런 메모를 건네받았다. 여인은 말한다. "날보고 재판 중에 쓰러지는 쇼를 하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책 <4001>(사월의책 펴냄)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당시 변호사가 주문한 쇼는 할 수 없었지만, 이 여인은 4년 뒤 더 크고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게 된다. 위의 재판 과정들을 포함해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은밀한 연애담, 자신에게 지분댄 유력자들에 대한 비난, 베일에 가려진 외할머니와의 추억 등 솔깃한 내용들로 채워진 400여 쪽의 기록과 함께다.

신정아. 그는 의도 했든 안 했든 이 책을 둘러싼 스펙터클 속에서 '비련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오랜 시간 재판을 해오면서 진실과 거짓이란 법의 잣대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부풀린 이야기를 바로잡고 싶었다"며 "한번쯤은 신정아의 이야기도 들어달라고 조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들은 이들은 '환호' 혹은 '저주'로 답하고 있다.

흥행의 증거, '말'

이 쇼는 현재 절찬 흥행중이다. 1일 한국출판인회의가 교보문과와 예스24 등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 9곳에서 조사한 3월 다섯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4001>은 8주 연속 1위를 지켰던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 펴냄)를 밀어내고 1위 자리에 올랐다. 출판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1쇄를 5만 부나 찍었으며 출간 열흘 만에 10만 부 이상이 시장에 깔렸다.

▲ <4001>(신정아 지음, 사월의책 펴냄). ⓒ사월의책

그러나 '책이 잘 팔린다'는 것은 흥행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신정아 쇼의 파급력은 책을 둘러싼 격렬한 반응에 있다. 언론과 코멘테이터들, 인터넷 댓글이 신정아 쇼를 부추기는 진짜 원동력이다. 문화평론가 진중권, 작가 공지영 등 명사들은 물론이고 각 언론사 논설위원들이 신정아에 대해 한 번 씩 얘기했으며, 이와 관련한 기사들은 수백 건에 이른다.

이러한 가운데 '프레시안 books'가 <4001>을 둘러 싼 논란의 '막차'에 올라 탄 이유는 신정아에 대한 평가를 '종결'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어느 한 쪽 편에 서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신정아가 이미 검찰이 조사를 끝내 놓은 사건을 '신정아 버전'으로 다시 썼듯, 저마다 다른 입장에서 신정아란 인물과 <4001>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래서 문제적 인물의 폭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몇 가지 시선들을 추적해 보았다. 출간 열흘, 사람들은 신정아를 어떻게 말했나.

시선 1 : '뻔뻔한' 작태 뒤에 '음모'가 있다!

대부분의 언론 보도에선 신정아에 대한 적대감이 드러난다. 이미 4년 전 학력 위조 건으로 세간을 속인 경력이 있는 만큼, 이제 와 무슨 말을 하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정운찬 전 총리와 전 <조선일보> C 기자 등을 자신에게 치근댄 남성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은, 당사자들과 가족들에게 명예 훼손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무엇보다 명백한 잘못으로 드러난 학력 위조 건에 대해 반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됐다. 이 부분에 대해 <4001>에서 신 씨는 "박사 학위 논문을 대필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지만, 자신은 진짜 예일 대학의 학위인 줄 알았다"며 "자신 역시 피해자"라는 입장으로 일관한다. 이렇듯 떳떳하지 못한 입장에 서 있는 그가 사건을 다시 들고 나오자 '뻔뻔하다'는 평가와 함께, 정치적 음모설도 제기됐다.

한 언론의 정치부는 신정아 씨가 정운찬 전 총리를 비롯해 정치권 안팎의 인사들을 실명·이니셜로 등장시킨 것을 놓고 배후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바탕으로 취재를 한 모양이다. <4001>을 낸 출판사 대표가 이광재 전 강원도 지사 등 야권 인사와 친분이 있으며, 4·27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야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책을 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사월의책 안희곤 대표는 "이광재 전 지사와는 사적으로 알지 못한다"며 황당해 했다. 이 언론의 시나리오는 굳이 그의 해명을 곁들이지 않더라도 다소 '황당해' 보인다. 사실 야권이나 전 정권의 유력 인사는 오히려 '신정아'와 엮이지 않으려는 몸짓을 보였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23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신 씨가 책 속에서 소개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부인했다. 신 씨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기자회견 때마다 의견을 물었으며, "대변인을 해 봐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썼다. 이에 양 전 비서관은 "터무니없는 얘기", "소설 같은 얘기"라 일침을 놨다.

이런 정치적 음모론은 한국 사회의 대부분의 사안에 대한 의견이 '보수/진보나 '여/야'로 뚜렷이 갈리는 관행의 틀을 그대로 답습한 결과다. 그러나 최근의 지난 열흘간의 신정아의 '폭로'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성향이나 당적과는 무관한 듯 보인다. 오히려 정치권, 언론 전체가 신 씨에 대해서는 드물게 합심했다.

이것은 <4001>이 한 개인의 사생활을 폭로하고 있지만, 더 큰 효과는 그들이 속한 세계 즉 '엘리트 집단'을 묘사하는 데서 오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판사 대표는 "공직자, 기자, 큐레이터 등 잘 나가는 사람들, 말 깨나 한다는 사람들의 세계도 '아랫도리는 똑같다'고 드러내는 데 이 책의 대중적 활력이 있다"고 평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시선 2 : 근엄한 세태 비평, '너희들의' 관음증

지난 열흘 간 언론의 사설, 칼럼 란은 <4001>을 단골 메뉴로 다뤘다. 물론 우호적이지 않다. 특히 <4001> 속에 자사 기자가 거론된 언론이라면 적대감이 더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다수의 논설위원은 '실명을 거론한 신정아의 비난이 사회적으로 아무런 가치도 없고, 단지 개인적인 보복일 따름'이라고 근엄하게 판정했다.

언론이 주로 우려하는 행위는 매력 있는 여성이 사회적 명사들에게 접근해 성적 관계를 가진 뒤 배신을 때리고 황색 신문에 폭로하거나 책으로 출판해 수익금을 챙기는 행태인 '키스 앤드 텔'(<동아일보>)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신 씨의 행태가 부도덕하며, 이것이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도 "신정아 사건의 최대 피해자일 젊은 20~30대들이 지금 보복용 일기 쓰는 법과 신정아 마케팅을 학습하고 있다"고 썼다.

그러나 과연 <4001>의 히트가 우리 사회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미칠까. 익명의 대중들은 그의 '폭로 수법'을 학습할까. 언론의 비평 속에서 도덕적 평가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이러한 논설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신정아의 책이 사회에 끼칠 악영향은 크지만, '나'는 그 영향권 바깥에 있다'고 전제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들의 논설 속에서 <4001>은 그것에 대해 쓰는 사람 본인(기자·논설위원)을 제외한 모든 이를 바보로 만든다"고 덧붙였다. 언론 지면에 실린 근심 어린 칼럼 속에서, 이미 그 책에 대해서 평가할 자격이 있는 필자(기자·논설위원)를 제외한 '잠재 독자'들은 책에서 드러난 명사들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어 하는 '가련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압축하는 열쇳말은 '관음증'이다. <중앙일보>의 칼럼은 "화제의 책은 할 수 없이 봐야 하는 게 기자의 숙명이다"라고 자신을 일반적인 독자와 구분시키고 나서, "신 씨의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잠재적 관음증은 충분히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 속에서는 신 씨나 이 책의 잠재 독자들은 은밀한 부분을 '내걸고', '낚이는' 짝패다.

이렇게 신정아 현상을 규정하는 순간 언론은 '어떤 사태에서 초월해 있는 위치'로 자신을 자리매김한다. 저술가 김영종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선민의식'이라는 말로 이를 설명했다. (☞관련 기사 : 신정아='고급 창녀'…<조선일보>가 그런 말할 자격 있나?)

그러나 신정아와 공직자·기자들이 얽힌 이야기를 엿보고 싶은 욕망을 생산한 것은 바로 4년 전 언론의 과열 보도였다는 점에서 이 '관음증' 지적의 역설이 있다. 신 씨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어 하는 대중의 욕구를 부추기는 데 가장 공이 큰 쪽은, 예컨대 '신정아가 병실로 새우깡과 짱구를 갖다 달라고 했다'는 내용을 한 면 전체에 실을 정도로 그를 '정치적 셀러브리티'로 띄웠던 언론(<중앙일보>)일 터이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신정아 현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그 이름이 포털 사이트에서 가져다주는 짭짤한 수익을 외면하지 못하고 있다. <4001>에 지면을 할애할 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기자·논설위원이 신정아를 소재로 칼럼을 쓰면서, 신정아의 책에 끌리는 대중을 비판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신정아 역시 마찬가지로 4년 전 당시 자신을 "꽃뱀", "명품 중독녀"로 묘사했던 '적수' 언론에 또 한 번 기대고 있다. 책을 홍보하기 위해 여러 언론사를 불러 모아 놓고 기자 간담회를 열었고, "(언론 보도가) 내 진심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곤혹스럽다"면서 다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가졌다.

신정아와 언론의 공생 관계에 대해 한 언론계 인사는 "신정아 논란의 핵심은 인정 투쟁이다"라고 설명했다. 4년 전 검찰은 조서 상으로 신정아의 죄와 형량을 판단했고, 언론은 거기에 불륜을 저지른 사실과 평소 행실에 대한 평가 등 도덕적인 판단을 덧붙여 '신정아 사건'과 '개인 신정아'를 규정했다.

그런데 4년 뒤, 출판이라는 독자적인 언로를 획득한 신정아가 사건을 자신의 위치에서 재규정하려는 시도를 벌였고, 이에 화살을 맞은 신문사들이 다시 말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4001>을 띄워주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을 문제 삼기 위해 반드시 언급해야만 하는 중요한 딜레마가 여기서 발생한다.

시선 3 : 폭로?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의도와는 달리 <4001>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해, 가장 곤혹을 치른 이는 작가 공지영일 것이다. 그는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난 취재 대신 비문학인의 수필을 거의 다 읽는다"며 "신정아의 책을 읽는데 생각보다 지루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냥 기자들이 호들갑 떨며 전해주는 이슈들만 찾아보는 것이 더 나을 듯"이라면서 대필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책은 물론이고 이러한 공지영의 반응까지 연예 뉴스 면에 연일 도배됐다. 신정아와 공지영이 나란히 연관 검색어에 올랐다. 공지영은 불쾌감을 토로했고, 그마저도 기사감이 됐다. 첫 날은 정운찬과 전 <조선일보> C 기자의 스캔들에 관심이 쏠리고, 다음 날은 공지영의 코멘트가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명사의 영락없는 '엔터테인먼트 쇼'였다.

무엇보다 <4001> 자체를 진위 여부보다 '재미'로 소비하는 독자들이 늘었다. 지난 27일 책을 읽었다는 30대 여성 심지연(가명) 씨는 "이 책의 흥행 요소는 100% 믿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즉 오히려 '부담 없는' 자세에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신 씨를 평가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다른 소설을 읽는 것처럼 일단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구입했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관계자에 따르면 <4001>을 가장 많이 구입하는 독자층은 30~40대 여성이다. 이들이 무려 43%를 차지한다. 출간 초기 일시적으로 40~50대 남성의 구매 비율이 높았으나 서서히 '30~40대 여성'이 주 구매층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들은 사적인 이슈들을 다루는 여성지에 익숙한 독자들이다.

이 독자는 "<4001>이 여성지처럼 읽히는 이유는 이미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해당 사건의 '신정아 버전'으로 받아들일 뿐 그 이상의 무게를 두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앞서 문화평론가 진중권도 트위터에 "그 책에 실린 내용들이 실체적 부분에서는 대체로 '사실'일 거라고 믿는다. 다만, 거기엔 신정아 자신의 '해석'이 들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같은 일을 다르게 기억하고 재구성하는 '라쇼몽 효과'를 지적한 것이다.

시사평론가 민동기 역시 이 점에 주목했다. "신 씨의 주장은 100% 검증되지는 않은 것이겠지만, 4년 전 신정아 파문이 발생하고 나서 우리가 지금까지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사건의 일부분으로서 그의 수필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민동기는 "다만 이런 관점은 '신 씨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동정표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경희대학교 교수 이택광은 이러한 경향 때문에 신정아의 폭로 행위가 정치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26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이제 신정아 씨의 '고백'은 진실의 문제를 떠나서 엔터테인먼트 차원으로 넘어갔다"면서 "그 퍼포먼스를 목도하는 대중들은 일시적으로 재미있을 수 있겠지만, 그 행위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은 원천적으로 봉쇄당한다"고 말했다.

<4001>이 신정아가 파워엘리트의 세계를 '내부 고발'하는 형식을 띄지만, "미지의 '파워엘리트 집단'이 대다수 '국민'을 억압하고 있다는 가설"만을 충족시킬 뿐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로는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정아의 폭로가 결국 저자에게는 명예가 아닌 '멍에'로 남는다는 지적도 있다. <4001>이 아무리 많은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선정주의와 결합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 것은 저자이기 때문이다. <한겨레21>에 '오마이섹스'를 연재했던 칼럼니스트 김소희는 "저자 본인이 세간에 비판받은 생존 방식을 파괴하는 방식이 아니라, 또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분명 더 많은 내용이 있었을 텐데 왜 정운찬 전 총리나 현직 의원 등 유력자를 가장 크게 언급했겠나"라면서 "'이 정도의 급이 되는 남자들이 내게 치근댔다'는 것으로 제 몸값을 환기시키려는 시도로 보여 연민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큐레이터 시절 화장실에 못 갈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던데, 정말 그런 여성이었다면 조금 더 나은 방식으로 전의 프레임을 걷어버리고 폭로에 나설 수 있지 않았겠느냐"라고 덧붙였다.

시선 4 : 폭로의 효과, 분명히 있다

이와는 반대로 <4001>이 정치적인 의미와 활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앞서 언급한 출판사 대표는 <4001>이 소위 '엘리트 계층'의 결코 근엄하지 않은 사생활을 까발리면서, 폭로보다는 '풍자'와 '야유'라는 효과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혁명 당시에도 진지하고 무게 있는 책이 아니라, 지배 계급을 야유하는 책이 대중에게 활력을 주지 않았는가. 그와 비슷한 맥락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명의 여성이 자신이 겪은 남자들과 그들이 속한 세계를 얘기했다면 책이 팔리지 않았겠지만, 소위 고소득층·지식인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색다른 포르노그래피 같은 전복적인 쾌감을 주는 것 같다"고 <4001>의 소비 행태를 분석했다.

온라인 <이프> 편집위원 정박미경은 언론에 부정적으로만 평가됐던 '여성'이 적극적으로 자기변호를 한다는 데 방점을 찍고 신정아의 <4001>을 옹호했다. 그는 "지금까지 언론에 '마녀사냥' 당하고 낙인찍히고 사라졌던 여성이 돌아와서 지도층 인사에 치명타를 가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사회의) 대단한 변화"라고 말했다.

한편, 시사평론가 민동기는 폭로라는 형태 자체에 주목했다. "(저급으로 여겨졌던) 폭로 수기가 불티나게 팔리는 현상이 다른 출판인을 힘 빠지게 만들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필요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폭로라는 형식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부각됐지만, 공적인 측면이 담보되었다면 그렇게 나쁘게 바라볼 문제만은 아니며, 나아가 진실에 다가가는 통로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작년 이맘때 출판가의 화제였던 변호사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 역시 일종의 폭로라는 형식을 빌린 사회 고발서 아니었던가?

서구, 특히 미국 출판계에서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폭로 수기'가 터져 나온다. 따라서 독자들도 이런 형태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다. 정치권이든 연예계든 유명세를 타면 책을 내는 풍경은 흔하다. 대표적인 예가 백악관 스캔들의 주인공 모니카 르윈스키다. 그는 <모니카의 이야기>로 수십 만 달러 수익을 올린 바 있다.

신정아의 폭로로 인해 미국 사회의 선정성을 닮아 갈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선이 위에서 언급한 세태비평가·언론의 입장이라면, 일부는 이 책을 공적인 울림을 가진 내부고발인 <삼성을 생각한다>와 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4001> 폭로의 질이 르윈스키에 가깝냐 김용철에 가깝냐 하는 문제라기보다, <4001>이 결국 어떤 방향으로 언론·출판계에 물팔매 효과를 남길지, 어떤 무늬를 남길지와 더 깊은 연관을 갖는다.

신정아의 기록을 '쓰레기'나 질 낮은 무엇으로 보고, 그의 등장을 '노이즈 마케팅'으로 보는 사람에게 이번 신드롬은 출판 질 저하의 신호탄이지만,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데 가치가 있다고 보는 사람에게는 '틈새 시장'의 발견이다. 이것은 <4001>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받은 이들의 즉각적인 반응에서도 드러난다.

한 출판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는 "그런 쓰레기 같은 것에 대해 말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 지면 낭비하지 말라"고 꾸짖었지만, 성공회대학교 교수 김민웅은 "파워엘리트들이 어떻게 만나고 연결되는지 알 수 있는 자료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관점의 대비를 정확히 보여주는 풍경이다.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감상을 들려주는 책은 흔치 않다. 게다가 그 시선들은 저마다 달라 하나의 다발로 묶어내기 어렵다. 인터뷰이 가운데서는 이 책을 들춰보지 않고도 이야기를 보탤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미 이 책에 대한 엄청나게 많은 시선이 고백됐기 때문이다.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조르고 싶었다"는 <4001>의 서문은 저자 자신이 다시 스펙터클의 중심에 놓여도 좋다는 각오이기도 하다. 이제 그에게도 400여 쪽에 이르는 말의 통로 속에서 사건을 규정한 '권력'이 생긴 만큼, 또 다른 시선들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다만 시선을 던지는 이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 시선을 말로 포착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책임은 특히 더 무거울 것이다.

"나는 시선이다. 나는 교차하는 시선이며, 시선의 교차점이다. 나는 나의 시선이다. 내 시선은 나를 대상에 투사한다. 시선의 투사는 어떤 정도로든 대상에 대한 폭력이다. 시선은 그것이 가 닿는 부분을 분리하여 해석하고 전유함으로써 대상/타자의 꿈틀거림을 누르고 온전함을 부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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