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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땅, 지하철 '독가스'…소설보다 잔인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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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땅, 지하철 '독가스'…소설보다 잔인한 현실!

[김용언의 '잠 도둑']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

1995년에 대학생이 되었다. 내가 살던 곳에는 3호선 지하철이 다녔지만, 고등학생 때는 지하철을 탈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가 집에서 꽤 멀었지만, 고등학교 바로 앞에 건설 중이던 5호선 지하철은 몇 년 후에나 개통 예정이었다. 그래서 늘 30분씩 걸리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매일매일 지하철을 이용하게 됐고, 무료하게 기다리는 시간에는 역이나 차량 안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읽었다. 그중 '독가스 살포시 주의 사항'에 관한 안내문도 있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대학교 신입생 대부분이 그렇듯 전혀 새로운 삶에 들뜨고 압도당해 여타의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신문도 거의 읽지 않았다. '일본', '옴진리교', '지하철 테러 사건' 등의 단어를 어렴풋하게 들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01년 말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펴냄)를 읽기 전까진 그랬다.

▲ <언더그라운드>(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아침, "자칫하면 늑골을 다칠 정도"로 붐비는 러시아워의 지하철은 회사에 늦지 않으려는 수많은 사람들로 꽉꽉 들어찼다. 옴진리교의 신도 다섯 명도 사린(유기인화합물)이 든 비닐 봉투를 들고 치요다 선, 마루노우치 선, 히비야 선을 운행하는 지하철을 탔다.

그들은 미리 뾰족하게 갈아놓은 우산 끝으로 비닐 봉투를 찔렀다. 그로부터 조금 후, 지하철 승객들은 '미증유의 사건'을 겪게 된다. 동공이 줄어들기 때문에 주변이 컴컴하게 느껴지고, 근육이 수축되거나 늘어난 상태로 멈춰지는 마비 현상이 일어나며, 콧물과 눈물 혹은 구토 현상을 제어할 수 없게 되고, 호흡이 심각하게 곤란해지고….

"신오즈카, 묘가다니, 고라쿠엔으로 나아가는데 묘가다니에서부터 기침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선 사람도 앉은 사람도. 물론 나도 기침을 했습니다. 모두들 손수건을 꺼내 입과 코를 막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광경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기침을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고마다 신다로의 증언)

"사람들이 냄새가 심하다고 창문을 열자고 해서 모두들 창문을 열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기보다는 동시에 일제히 웅성거리며 떠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추운데 이 정도의 냄새를 가지고 창문을 열 것까지는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심한 냄새가 아니라고 말이죠." (스가사키 히로시게의 증언)

"전차가 그렇게 롯본기를 떠나 가미야초에 도착하기 직전에 옆 사람이 갑자기 '눈이 안 보여'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 왼쪽에 서 있던 사람이, 즉 진행 방향의 뒤쪽에 서 있던 사람들이 비틀거리면서 쓰러지는 겁니다. 그때부터 전차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남자가 외쳤습니다. '여러분! 위험해요, 창문을 여세요, 열지 않으면 죽어요!'하고. 그래서 모두 창문을 열었습니다." (이즈카 요코의 증언)

"열차가 핫초보리를 지난 후에 방송이 흘러나오더군요. 환자가 발생해서 츠키지 역에 잠시 정차하겠다고 말입니다. 츠키지에 정차한 후에 '환자가 한 사람…아니, 두 사람 쓰러졌습니다'라는 이상한 방송이 나오더군요. 그러다 금방 '세 사람 쓰러졌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차장도 당황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승객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내용이었지만 방송하는 본인도 점점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야!'라는 절규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이치바 다카노리의 증언)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6년 1월 초부터 같은 해 12월 말에 걸쳐, 정확히 1년 동안 61명의 사린 테러 사건 피해자를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약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동안 '1995년 3월 20일 아침 당신은 무슨 일을 겪었는가?'를 질문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인터뷰이의 개인적인 배경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졌다.

그는 "한 인간을 '얼굴 없는 많은 피해자 중의 한 사람'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라고 했다. "'가해자=옴 관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프로필이 매스컴에 의해 세부까지 밝혀져 사생활 폭로에 가까운" 정보들은 수없이 유포되는 반면, 영문도 모른 채 재앙을 겪은 수많은 피해자들의 얼굴은 사라져버림으로써 그들의 삶에 대한 관심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5년 1월 17일 발생한 고베 대지진, 같은 해 3월 20일에 발생한 지하철 사린 사건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음을 고백했다. "일본의 전후 역사를 구획 짓는 지극히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두 개의 비극"으로서, "그것을 통과하기 전과 통과한 후, 일본인의 의식의 존재 양태는 크게 다르다."

천재지변과 인재(人災)라는 차이점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 갑작스러움이나 인지로 인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폭력이라는 공통항으로 묶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폭력이 과연 어디서 온 것인지 아직도 정확한 '출처'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사회는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당돌하기 짝이 없는 그 폭력 앞에서 현실적으로 너무도 무력하고 무방비 상태였다. 우리는 그 폭력의 도래를 예측할 수가 없었기에 미리 준비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명백히 드러난 것은 우리들이 속하는 '이쪽'의 시스템의 구조적 패배라는 사실이었다."

2001년에 처음 <언더그라운드>를 읽었을 때 나를 압도했던 감정은 공포였다. <언더그라운드>는 그 어떤 소설보다도 더 소름끼치는 논픽션이었다. 61명의 인터뷰이가 상술하는 거의 비슷비슷한 경험을 내리 읽었을 때 그 반복이 안겨주는 무시무시한 느낌의 상승곡선은 점점 높아졌다.

사드의 소설을 읽었을 때 혹은 '영원불멸의 형상'을 한 똑같이 생긴 7명의 노인을 마주친 뒤 질겁하며 '지옥의 행렬'을 보았다고 부르짖었던 보들레르의 시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이의 객관적인 공포였다. 남들의 고통을 건너다보며 '나는 안전하다'는 안도감, 앞으로 나 역시 저런 일을 겪게 되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불안감. 옴진리교라는 알 수 없는 악의 실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모르는 채로 살고 싶다는 강력한 소망의 투영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현재 진행형의 지진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언더그라운드>를 읽었을 때에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피해자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3월 20일의 경험을 애써서 문자화하려고 애쓰고, 그 일이 있고 나서 주변의 무관심과 몰이해에 상처받으면서도 끝까지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자세에 더 눈길이 갔다.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려 하지 않는 일본 내부의 환부, 무언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반복되고 지연되는 오류의 비극.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라!'라는 명제 앞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을 추스리는 (비록 덧없을지 몰라도) 노력이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감동적이었다.

어쩌면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심경의 변화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더그라운드> 1년 뒤에 옴진리교 신자 8명을 만나 '옴진리교란 도대체 무엇이었나'에 관해 인터뷰한 <약속된 장소에서>(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를 아울러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번에야말로 좌절과 경악과 공포가 뒤섞인 심경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부분 어떻게든 몸과 정신을 구겨 넣듯 적응하고 마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튕겨져 나온 이들이 "현세에서는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순수한 가치"를 옴진리교로부터 찾았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옴진리교 이후 얼마든지 옴진리교적인 무언가가 재삼재사 출현 가능하다는 걸 입증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애써 눈을 돌리며 계속해서 '언더그라운드' 속으로 파묻었던 우리 안의 불안과 분노가 어느 순간 '펑!' 하고 터져 나와, 우리가 속해있는 '이쪽 세계'의 약점을 순식간에 만천하에 드러냈을 때 우리는 과연 누구에게 구원의 손길을 요청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들'과 완벽히 다른 존재라고, 폭력에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옴진리교를 선택하지 않았을 뿐, 아주 조금 더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살아왔을 뿐이 아닌가. 결국은 우리가 속해있는 '시스템'이 우리의 고통을 결코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혼자 살아나가고 싸울 수 있을 만큼 의식적으로 단련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2011년 3월 24일 일본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23일 오후 11시 현재 사망자는 9523명으로, 실종자는 1만6094명"이다. 여기에는 원자력 발전소 복구 작업에 참여하는 인력의 피폭 피해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물리적으로든 은유적으로든 '언더그라운드'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지구 곳곳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비극의 소식에, 현실의 잔인한 무게 앞에 정신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대단한가. 그런 자기위안밖에 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2007년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와 가졌던 인터뷰 도중 인상적이었던 답변을 여기 옮겨둔다.

"옴진리교의 아사하라 쇼코 교주는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신화를 만들었어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그런 걸 믿고 그토록 큰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사하라 쇼코가 만든 신화라는 게 여러 군데에서 베껴온 게 많아요. SF나 만화, 신화에서 이것저것 빌려와 짜깁기를 했거든요.

자체의 완성도는 조잡했지만 그래도 그토록 많은 젊은이들이 따라가고 말았다는 점이 SF 작가이자 애독자로서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지금도 억울해요. 그러니까 왠지 아사하라라는 인간에 대해 무척 큰 빚을 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이야기'가 그렇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젊은 독자들에게 알리려면 어떤 작품을 써야 좋을까, 지금도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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