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직업도 알고 보면 특정 생산 형태에 결부되어 있다. 기자처럼 오랜 세월 동안 고정된 범주처럼 보이던 것이 알고 보니 출판 비용 때문에 우연히 생긴 희소성과 결부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소셜 네트워크 기반의 온라인 뉴스 사이트인 <위키트리>의 발행인 공훈의 '소셜뉴스' 대표가 최근 펴낸 <소셜 미디어 시대, 보고 듣고 뉴스하라>(한스미디어 펴냄)의 한 줄이다. 좀 더 분명한 어조로 다시 들어보자.
"기자는 더 이상 전문직이 아니다!"
▲ <소셜 미디어 시대 보고 듣고 뉴스하라>(공훈의 지음, 한스미디어 펴냄). ⓒ한스미디어 |
그러나 보통의 기자를 상상한다면 '노(No)'다. 그가 갑자기 이런 말을 던진 배경엔 '쓰는 사람'이란 정의에 다 담기 어려운 독특한 이력이 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뉴스 생산의 물리적 환경이 변화하는 변곡점마다 중심에 서 있었다.
공훈의 대표는 핀셋으로 활자를 뽑아 활판을 만들던 시절인 1990년, 당시 생활과학부 차장으로 근무하던 <광주일보>에서 전산부 개발부장과 함께 16비트 퍼스널컴퓨터를 이용한 간이 '컴퓨터 조판 시스템(CTS)'을 개발했다. 2000년에는 지금의 온라인 매체와 같은 실시간 미디어를 표방하며 등장한 <머니투데이>의 온라인 기획·운영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2010년, 그는 트위터 상에서 가장 많이 링크되는 뉴스 사이트 <위키트리>를 꾸려나가고 있다. 이 행보라면 어떤 시점에서든 '낯설다'는 소리를 듣기 딱 좋다. 하지만 그는 요즘 언론 매체나 기업 앞에서, 이 낯선 것들을 설명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성들여 책까지 펴냈다.
이렇게 책까지 낸 이유는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1990년엔 컴퓨터가, 2000년엔 인터넷이, 2010년엔 소셜 네트워크가 뉴스 미디어의 판을 바꾸고 있다. 그런데 이번 판은 10년 전, 20년 전에 비해 충격의 강도가 다르다."
심지어 그는 종이 신문이 2012년쯤 종말 할 거라고 내다본다. 이쯤 되면 듣는 기자들 열 받을 텐데?
미디어 환경 변화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쌓아온 신문의 아성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도대체 140자 단문 서비스가 어떤 충격을 주기에, 그토록 쉽게 신문이 무너진다는 말인가? 삐딱한 눈길에도 아랑곳없이 "부디 내 책이 많은 기자들에게 읽히길 바란다"고 말하는 공훈의 대표를 18일 직접 만났다.
▲ 공훈의 <위키트리> 발행인. ⓒ프레시안(김하영) |
"패러다임 시프트! 언론-독자 위상이 바뀌었다"
프레시안 : 책에서 주로 쓰이는 소셜 네트워크, 소셜 미디어, 소셜 뉴스, 소셜 모바일 등의 개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리한다면?
공훈의 : '소셜'은 참여와 공유를 핵심으로 하는 개념이다. 누구든 참여해서 콘텐츠를 만들고 만들어진 콘텐츠를 누구나 공유하는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는 그 기반이 되는 인프라다. 대표적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있다.
소셜 뉴스는 뉴스를 중심으로 특화된 소셜 네트워크다.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들의 행위 가운데 기존 뉴스에 맞는 행위들도 소셜 뉴스에 포함된다. 또 그런 행위를 미디어로 확산해주는 게 소셜 미디어다.
소셜 모바일은 소셜 네트워크가 모바일 기기와 합쳐진 환경을 말한다. 앞으로 스마트폰 1000만 대 시대가 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뉴스를 스마트폰으로 접할 텐데, 그러면 소셜 모바일이 뉴스 유통의 주 환경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 : 소셜 미디어/뉴스가 기존의 미디어/뉴스와 어떻게 다른가?
공훈의 : 언론과 독자 간의 구조가 바뀌었다.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난 것이다. 지금까지는 언론 매체에서 독점적으로 뉴스를 생산하고 소비자가 그것을 받아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독자들이 스스로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에도 직접 개입하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기존의 언론 환경에서 독자들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뉴스에 대한 피드백은 매체 안에서만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독자들끼리 매체를 통하지 않고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뉴스 접근 면에서 일어난 큰 변화는 각 언론사 제호의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신문을 직접 사서 기사를 읽던 시절엔 <조선일보>, <한겨레> 이런 선택이 굉장히 중요했다. 그런데 지금은 기사를 제호로 접근하지 않는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많은 추천을 받은 기사, 자신이 구독하는 전문가가 추천해 준 기사를 읽는다. 기사에 접근하는 유통 경로가 달라진 거다.
<조선일보>가 자사의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앱)을 잘 만들었다고 홍보하던데, 별 의미 없다. 소셜 네트워크 세계에서는 제호 따져가면서 기사를 보는 게 아니니까.
기존 언론 매체들에 있어서 더욱 심각한 상황은 또 있다. 독자 자신들이 뉴스를 생산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고 일상적으로 대화를 할 뿐이다. 실제 관계에서 서로 만나서 하는 대화를 그대로 인터넷에 옮겨놓은 것이 소셜 네트워크다. 화재 현장을 찍어 소셜 네트워크에 올린 사용자가 있다고 치자. 그는 뉴스를 생산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를 한다는 느낌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프레시안 : 지금의 소셜 붐은 10년 전 일어났던 인터넷 신문 붐과 무엇이 다른가.
공훈의 : 지금은 뉴스 생산자마저 다수가 된 상황이라는 점과 뉴스 생산에 돈이 전혀 안 든다는 점에서 다르다. 기존 매체든 인터넷 신문이든 뉴스를 생산하는 플랫폼, 동영상이나 사진을 담을 서버가 각 사마다 있는데 소셜 미디어에서는 그게 필요 없다. 공짜로 제공되는 단일 플랫폼들이 있지 않나.
사진은 플리커(flicker)로, 동영상은 유튜브(Youtube)로, 기사는 블로그를 이용하면 된다. 비싼 취재 도구들도 필요 없어졌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된다. 아이폰4는 HD 영상도 기막히게 찍는다.
"추석 폭우 사태, 6·2 지방선거는 '트위터 기념일'"
프레시안 : 독자가 뉴스를 생산하는 구조는 <오마이뉴스>가 시민기자 제도를 통해 이미 운영한 바 있다. 그것과 현재의 구조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공훈의 : <오마이뉴스>의 경우도 스스로 기반 역할을 하는 포털 구조다. 기사 소스를 그 홈페이지에 모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독자들끼리 직접 반응을 주고받는다. 특정 매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내 친구들에게 정보를 알려줄 수 있다. 그게 기존 뉴스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프레시안 : 왜 강력한가?
공훈의 : 참여자가 많다. 각사 기자들, 아무리 많아봤자 300명 정도다. 그들이 커버할 수 있는 범위는 굉장히 좁다. 그런데 트위터는 사용자들이 모두 잠재적 기자들이다. 어마어마한 범위를 커버할 수 있다.
지난달 1일 부산 해운대 초고층 빌딩 화재 사건 때, 기존의 기자들도 포착하지 못한 화염 사진을 트위터 사용자가 세 장이나 찍었다. <부산일보>조차 못 찍은 사진이었다. 기존 언론들은 기껏해야 불꽃이 사라진 뒤에 연기만 찍을 수 있었다. 결국 많은 주류 매체들이 계정을 밝히고 트위터 사용자의 사진을 썼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 : 소셜 네트워크의 강력한 영향력을 입증한 사례로 지난 추석 연휴 첫날의 폭우 사태를 들기도 한다. 트위터가 소식을 가장 먼저 전했다고 하던데.
공훈의 : 그렇다. 당시 휴일이라 언론도 폭우 보도를 하지 않았다. <위키트리>는 트위터 모니터를 늘 하고 있으니까 오후 1시가 되기 전부터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사용자(@ytnetwork)가 "신월동 일대 전체가 홍수 피해 중입니다. 긴급 사태입니다" 이렇게 트윗을 날린 것이 시작이었다.
기상청은 뒷북이었다. 서울 지역에 호우주의보를 내린 게 트위터 상에서 이미 경보가 나온 뒤인 오후 1시 20분께였으니까. 그러고 얼마 안 돼 2호선 홍대입구역 앞에서 찍은, 허리까지 빗물에 찬 사람의 사진이 올라왔다. 그러더니 곳곳에서 어마어마한 폭우 사진들이 올라왔다.
그 때까지 국가 기간 통신사라는 <연합뉴스>조차 폭우 보도를 제대로 안 하고 있었고, 방송 뉴스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편성은커녕 자막 방송도 없었다. 트위터에는 "지금 재난 방송하는 채널, 하나도 없네요" 이런 항의가 빗발쳤다. 재난 방송은 오후 4시 20분께나 되어서야 겨우 시작됐다.
<위키트리>는 그보다 먼저 트위터에 올라온 정보들을 리캡(정리·요약)해서 다시 뉴스로 올렸다(☞바로 보기). 난리가 났었다. 그날 사이트가 두 번 다운됐다.
프레시안 : 지난 6·2 지방선거에서는 트위터의 영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났나?
공훈의 : 선거 하루 전, <위키트리> 회원 중 한 명이 '인증 샷 놀이'를 제안했다.
투표를 할 때 스틱에 인주를 묻혀 팔이나 팔뚝에도 한 번 더 찍어서, 그 사진으로 투표 인증을 하자는 것이다. 젊은 층의 투표율이 관건이었으니 재미있는 제안이었다. 경품을 내건 사람도 있었다. 화가 임옥상 씨는 인증 샷을 올린 젊은이 중 추첨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정말 인증 샷이 하나 둘 올라오더라.
그날 오전 투표율만 해도 그 전 지방선거 투표율과 비교했을 때 10포인트 정도 낮았다. 그런데 오전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만삭의 임산부가 신랑과 투표를 하고 나서 인증 샷을 찍어 날렸는데, 잠시 뒤 트위터에 다시 등장해서 투표 직후 병원에 가서 산통 끝에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출산 인증 샷'과 함께 말이다.
그러자 이 트윗에 대한 리트윗(RT)과 함께 "이런데도 투표를 안 하면 사람도 아니다" 이런 코멘트가 돌아다녔다. <위키트리>가 그걸 기사화해서 다시 트위터로 던졌더니, 이번에는 그게 또 온 타임라인을 뒤덮었다. RT 수가 어마어마했다. 거기서 탤런트 박진희 씨가 투표 인증 샷을 올리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김제동, 이외수, 슈퍼주니어 김희철 씨 등 유명인들의 인증 샷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런 놀이 속에서 오후 투표율은 전 지방선거 투표율을 상회하기 시작했고, 오후 4~5시쯤엔 이미 10포인트 이상 높아진 상태였다. 투표소 현장 소식이 트윗으로 전해졌다. '투표소에 젊은이들이 몰리고 있다'고. 그 때 느꼈다. '이거, 완전히 판이 달라졌구나.'
프레시안 : 그런 소셜 네트워크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은 현재 몇 명 정도인가.
공훈의 : 국내 트위터 사용자는 200만 명이다. 6·2 지방선거 때 50만 명이었는데 반 년도 안 돼 4배로 치솟았으니 다음 선거 때는 얼마나 되겠나.
트위터 사용자 수는 스마트폰 보급 대수의 폭발적 증가와 관련이 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의 패러디인 '아이폰 놓고 트위터 모른다'라는 신종 속담이 있을 정도로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 사용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소셜 네트워크는 보통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 안에서, 점심시간에 밥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 짬짬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이 필요하고.
"소셜 생태계는 자정력이 강하다"
프레시안 :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다수 대 다수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런데 <위키트리>라는 또 다른 새로운 매체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역할을 하나?
공훈의 :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수많은 정보가 오간다. 뉴스 스펙트럼이 상상도 못할 만큼 넓다. 그 정보들은 전부 조각나 있는데, 정보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하려면 관련 트위터를 전부 찾아봐야 하는 수고가 생긴다.
<위키트리>는 관련 트위터를 찾아 전후 맥락을 정리해서, 그걸 다시 트위터의 바다 속에 던지는 역할을 한다. 기존 매체들이 어떤 이슈들을 수집해서 가공한 뒤 정리해서 보도하듯, 우리도 트위터 상에서 불거진 이슈들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알려준다고 보면 된다.
트위터 사용자들 사이에서 이미 우리의 브랜드 가치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가공해 정리한 이슈를 던져주면 금방 확산된다. 중요한 기능이 바로 이거다. 이슈를 정리해서 확산시키고, 논쟁의 장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 기능은 기존 언론과 같다고 보면 된다. 다만 다루는 범위가 훨씬 넓은 거고, 트위터 사용자들이 제기하는 이슈이기 때문에 이슈 메이킹이 작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위키트리>에 게재되는 기사들은 누가 쓰는 것인가?
공훈의 : 네 가지 소스가 있다. 첫 번째가 크라우드소스(crowed-sourced) 콘텐츠, 불특정 다수가 쓰는 기사다. <위키트리>는 현존하는 인터넷 뉴스 사이트 중 가장 개방적인 구조를 가진 플랫폼이다. 누구나 <위키트리> 기자가 될 수 있고 활동 실적에 따라 점수를 받는다.
기자가 쓴 뉴스가 트위터에서 RT된 횟수, 페이스북에서 '좋아요(Like)' 클릭을 받은 횟수 등 소셜 네트워크에서 사용자들의 추천 빈도를 기준으로 '열매'(점수)가 쌓여나간다. 기사의 품질에 대한 평가를 사용자들의 손에 맡기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소셜 콘텐츠, 트위터나 페이스북 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주는 기사다. 세 번째는 <위키트리>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원(original) 콘텐츠, 네 번째는 제휴를 맺은 다른 언론사로부터 얻어지는 제휴 콘텐츠다.
제휴 콘텐츠라고 뉴스를 전재하는 계약은 맺지 않는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뉴스를 그대로 갖다 쓰는 건 의미가 없다. 동영상도 잘라 붙여주고 QR코드도 달아주는 등 다양한 채널, 다양한 디바이스를 통해 최대한 가공한다. 제휴 콘텐츠를 아이패드나 스마트폰과 같은 각각의 포맷으로 바꿔주는 서비스가 제3의 뉴스 서비스가 될 수 있는데 미국 미저리 주(州) 컬럼비아에 본사를 두고 있는 '뉴시'가 대표적이다.
프레시안 : 아무나 기사를 쓴다면 표절이나 명예 훼손이 일어날 소지가 있을 텐데. 기사의 품질이 떨어질 수도 있다.
공훈의 :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일이 고치거나 다시 작성하지 않고 최소한의 관리만 한다. '콘텐츠 매니지먼트'라고 해서 명예 훼손이나 저작권 위배의 소지가 있는 부분만 걸러주는 역할이다.
기사의 완성도는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한 기사일수록, 다른 사람의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더 가치 있다. A가 쓴 기사를 B가 고칠 수 있는 위키 기반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와 다르다. <오마이뉴스>는 완성도 높은 기사를 기다리는 건데 우리들은 이미 나온 기사를 상호작용을 통해 여럿이 발전시키는 시스템이다.
그러다보니 참여의 진입 장벽이 낮다. 현재 2000명 정도의 회원이 있고, 하루 80~100건의 기사가 올라온다. 이런 상호작용 속에서 기사의 잘못된 부분은 결국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들이 걸러내게 된다. 이견 반영이나 평가도 마찬가지다. 모든 피드백이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이른바 '스마트 리더'들끼리의 자정 작용이다.
소셜 네트워크의 자정력은 오보의 개념도 바꾼다. 17일 박태환 선수가 광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100m 자유형 결승에서 1위를 하지 않았나. 그런데 우리가 경기도 하기 전에 '박태환 선수 1위 했다'는 기사를 올렸다. 우리 편집국장이 예선 영상을 다시 틀어주는 걸 잘못 보고 오해한 거다. 이건 명백한 오보다.
그런데 확인이 되자마자 '죄송합니다. 예선 영상을 보고 착각했습니다'라고 솔직담백하게 사과했더니 놀랍게도 괜찮다는 반응이 오는 거다. '얼마나 빨리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으면 그랬냐', '응원한다'는 사람부터 '이제는 예언까지 한다'며 가볍게 농을 던지는 사람까지. 모두 우호적이었다.
기존 매체가 이런 오보를 냈다고 생각해 보라. 아찔하다. 오보 개념까지 바꾸는 것이 바로 소셜 네트워크의 자정력이다.
"소셜 네트워크는 이른바 사이버 인격을 걸고 소통하는 플랫폼이다. 페이스북의 경우는 상당한 정도의 개인 정보를 내걸어야 그만큼 친구 관계가 넓어지는 특성을 갖는다. 트위터 역시 본인의 위치나 주요 관심사, 상당수의 경우 실명을 내건다. 본인 정보가 많을수록 더 신뢰를 받고 보다 많은 사람과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트위터에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 욕설이나 저속한 표현을 쓰는 예를 본 적 있는가? 답은 '없다'가 맞다. 실명 확인조차 하지 않고 한 사람이 몇 개의 계정을 열 수도 있으며, 심지어 남의 이름으로 계정을 열 수도 있는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악플 행위는 여간해서는 벌어지지 않는다.
바로 '다수 대 다수'가 실시간으로 엮어있는 구조 덕분이다. 그 구조가 발휘하는 강력한 자정력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 인터넷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생태계다." (<소셜 미디어 시대 보고 듣고 뉴스하라> 118, 119쪽)
소셜 네트워크 혁명과 사회적 순기능
프레시안 : 소셜 미디어의 수익 모델이 궁금하다. 기업들은 어떻게 참여하나?
공훈의 : 기업으로서는 광고를 만들어서 신문이나 방송에 배포하면 그게 끝이니까 누가 그걸 보는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별개의 조사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소셜 네트워크에선 효과를 알 수 있다. 소비자들의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오니까.
만약에 제품이나 광고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크다 해도 지금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라면 바로 대응하고 개선할 수 있다. 거기다 광고 단가도 훨씬 낮다. 그래서 기업들이나 광고주들이 소셜 네트워크 활용에 대단한 관심을 보인다.
일례로 삼성이 'SMNR(Social media news release)'이라는 획기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S가 삼성(Samsung)이 아니라 소셜(Social)인 점에 주목해 보라. N은 뉴스(News)다. 굳이 언론매체에 맡기지 않고 소셜 네트워크에 직접 홍보와 광고 내용을 담은 뉴스 콘텐츠를 게재하고 그 흐름을 직접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과거엔 신제품이 나왔거나 보도할 내용이 있으면 보도 자료를 만들어 각 언론에 배포하고 보도 요청을 했다. 언론이 보도해주지 않으면 거액의 광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SMNR을 활용하면 언론 지면에 오르든 말든 상관이 없다. 기존 매체를 우회하는 방법이다. 이런 시도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프레시안 : 기사마저 기업이 직접 작성한다면 상업성이 더 커지는 것 아닌가. 자칫하면 기사와 광고의 경계가 애매해지고, 기업 제품에 대한 비판 여론은 축출될 여지가 있다.
ⓒ프레시안(김하영) |
아이폰4가 출시됐을 때 모든 언론이 최대 광고주인 삼성 눈치를 보면서 아이폰 비난 기사를 냈다. 그러나 아이폰 사용 후기가 삼성 눈치 볼 필요 없는 소비자들의 참여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퍼졌다. 이런 사용 후기는 아이폰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졌다.
기사나 광고의 평판은 '진정성'이 가른다. 일단은 제품이 좋아야 하고, 광고나 기사에도 과장이나 소비자를 현혹할 소지가 없어야 한다. 소셜 광고는 다짜고짜 '우리 상품 좋다'고 내밀면 백전백패다. 그 상품을 만든 이유와 가치를 성실히 알려줘야 인정받는다. 이렇듯 사용자의 진정성이 그 사람 말을 받아들일지 말지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 소셜 네트워크의 순기능이다.
프레시안 : 광고뿐 아니라 뉴스 유통에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될 것 같은데….
공훈의 : 뉴스 콘텐츠든 광고든 핵심은, 과거엔 어떻게 생산하느냐의 문제였다면 지금은 어떻게 흘려보내느냐가 문제다. 예전엔 기사를 잘 만들어 발행하면 끝이었다. 그러나 현재 소셜 미디어에서는 발행하는 순간부터가 시작이다. 기사가 나오면 피드백을 통해 또 다른 이슈를 확산시키거나 부정적 반응에 대응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기업이나 뉴스 제공자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유통이 중심에 오면서 기존 매체들로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앞으로 벌어질 거다. 편집국과 광고국의 기능이 똑같아진다. 지금까진 편집국이 뉴스 생산까지만 담당했지만 이제 절반은 유통 기능을 맡아야 한다. 포맷에 따라 뉴스를 보내는 방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전부 다시 설계를 해야 한다.
포맷마다 차이가 있음을 모르고 뉴스를 아무 데나 한꺼번에 던지는 매체는 살아남을 수 없다. 요즘 언론사들 인턴 앉혀놓고 아무 기사나 트위터로 날리지 않나.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에서 '벌크'는 곧 '스팸'이다. 마구잡이로 날려대면 '블락', '언팔' 당한다. 유통은 아주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프레시안 : 이런 상황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공훈의 : 사회 전체적으로 대단한 순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냉철하게 돌아보면 언론에 의한 여론 왜곡이나 조작이 적지 않았다. 거기에 따른 사회적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소셜 네트워크처럼 자정력이 강한 환경에서는 어느 언론 하나가 여론을 한 쪽으로 끌고 가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기업의 상품 판매에서도 마찬가지다. 과장 광고로 소비자를 현혹하기 어려워진다. 정치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소문이 다 나 버리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헛소리' 하기 어려워진다. 최대한의 다수가 만나 서로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결국은 선(善)이 살아남는다.
"뉴스 룸을 열어라"
프레시안 : 미디어 환경이 이런 식으로 변하면 기존 종이 신문이나 방송은 전멸할까? 공생은 불가능한가?
공훈의 :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앞으로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플레이어가 나올 것이다. 10년 전 <머니투데이> 같은 새로운 플레이어가 나타나 '실시간 뉴스'라는 환경을 이끌었듯이,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는 그에 맞는 플레이어가 등장할 거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기존의 매체들 살아남지 못한다.
살아남기 위해선 내부 혁신을 통해 그런 환경에 문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기존 매체들로선 어렵다고 본다. 관습화된 틀과 그동안 누렸던 기득권을 깨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트위터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자신들이 쓴 기사가 정론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트위터를 미디어로 인정하지도 않는 태도 때문이 아닐까.
트위터에서는 다르다. <조선일보>보다 '독설(@dogsul·<시사IN> 고재열 기자)'이나 '미디어몽구(@mediamongu·1인 블로거 김정환 씨)'가 더 영향력이 있다.
프레시안 : 그럼 언론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공훈의 : 첫 번째로 뉴스 콘텐츠를 재정의해야 한다.
역 피라미드 형식의 정제된 스트레이트 기사들, 이 형식은 누가 정했나. 독자들이 좋아해서가 아니라 공급자가 편하도록 만들어서 굳어진 거다. 제한된 지면에 엑기스만 잘라 전달하는 것에 독자들은 이미 염증이 나 있다. 여론조사, 동영상, 지도, 증강현실까지 공짜로 제공되는 옵션들을 끼워 넣어서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다음으로 뉴스 생산 과정을 열어라. 다시 말해 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독자들을 참여시키는 거다. 뉴스 룸처럼 폐쇄된 곳이 없다. 뉴스 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세상의 지극히 작은 샘플이며, 거기서 세상을 재단하는 느낌도 착각에 불과하다. 뉴스 룸의 문을 활짝 열고 콘텐츠가 아닌 콘텍스트를 창조해 내야 한다.
그래도 체계적 탐사 보도는 여전히 전통적 저널리즘의 영역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탐사 보도 역시 뉴스 룸 안에서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의 미디어연구소 '폴리스'의 찰리 베켓 소장이 저서 <슈퍼미디어>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일반 시민이 저널리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라."
그가 말하는 '네트워크 저널리즘'이란 뉴스 생산에 일반 시민과 각계 전문가, 기자가 서로 협력하는 체제를 말한다. 베켓은 시민 참여가 부가 서비스가 아니라 핵심적 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 참여, 여론 중시한다는 우리 언론은 과연 그 '핵심적 부분'까지 이양하거나 공유했는가? 자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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