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특히 정치와 관련해 한국 언론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현 캐나다 총리(마크 카니)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 캐나다 사회 분위기가 대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역설적이게도, 미국 트럼프 정부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가 이웃나라 캐나다와 멕시코에 말도 안 되는 협박을 계속하는 탓에 두 나라 국민들이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또한 트럼프 정부가 스스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렵사리 구축한 질서를 깨고 있는 상황이어서, '미국이 이를 버린다면 캐나다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재건에 나서야 한다'는 카니 총리의 발언이 세계인의 박수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소식을 전하는 한국 언론은 카니 총리가 이끄는 현 자유당(Liberal Party) 정부를 흔히 '진보'라 소개한다. 오랫동안 더불어민주당을 '진보'라 불러온 한국식 관행을 다른 나라들의 보다 보편적인 정치 지형에 별 고민 없이 적용한 결과다. 하지만 이런 관성은 많은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우선 20세기 후반 내내 캐나다 우파를 대표한 정당의 이름부터가 '진보보수당(Progresive Conservative Party)'이었다(현재는 '보수당'으로 개명). 그야말로 21세기 한국인의 정치적 상식을 '조롱'하는 듯한 작명이다.
이 정도는 웃고 넘어갈 만한 문제라 하더라도 또 다른,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자유당 왼쪽에 실은 캐나다의 진짜 '진보' 세력들의 지지를 받는 주요 정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민주당(New Democratic Party, NDP)'이 그 당이다. 이 당도 이름이 묘하게 이웃나라의 민주당을 연상시키지만, 엄연히 미국 민주당보다는 유럽 사회민주당들에 더 가까운 정당이다. 비록 최근 연방 하원(343석) 의석이 7석으로 쪼그라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캐나다 노총의 지지를 받으며 매니토바 주에서 주정부를 이끄는 저력 있는 정당이다.
의석이 급감한 작년 4월 총선 이후 위기에 빠져 있던 신민주당은 3월 29일 위니펙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아비 루이스(1967년생)를 새 대표로 선출했다. 신민주당은 대표 선거에서 즉석결선투표제(Instant-Runoff Voting, 유권자가 각 후보에 대해 선호 순위를 매기고, 이를 바탕으로 결선투표를 따로 치를 필요 없이 과반 득표 당선자를 정하는 투표제도)를 실시한다. 하지만 루이스는 굳이 2차 집계를 할 필요 없이 1차 집계에서 56.02% 득표를 기록하며 나머지 네 명의 후보를 커다란 표차로 따돌렸다.
그런데 이러한 압도적 지지만큼이나 많은 이목을 끈 것은 루이스의 정강, 정책이었다. 루이스는 2015년에 발표된 생태사회주의 성향의 정책문서 '도약 선언(Leap Manifesto)'의 공동 제안자 중 한 사람이고, 이번 대표 경선에서도 도약 선언의 내용을 당의 새 노선으로 제시했다. 즉, 루이스가 10년 넘게 외쳐온 생태사회주의 노선이 신민주당 10만 당원(대표 선거 투표율은 70.55%) 중 과반의 지지를 받으며 채택된 것이다.
'도약 선언'
캐나다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나오미 클라인의 2019년 저작 <미래가 불타고 있다: 기후 재앙 대 그린 뉴딜>(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2021)을 읽은 이라면, 도약 선언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밝히듯이, 클라인은 도약 선언의 공저자까지는 아니어도 이 문서의 탄생에 기여한 산파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신민주당의 새 대표 루이스는 다름 아닌 클라인의 배우자다. 두 사람이 함께 도약 선언을 기획했고, 이 문서가 신민주당의 공식 노선이 되도록 압박하는 캠페인에도 함께 나섰다.
도약 선언이 나오게 된 직접적 배경은 2010년대 중반 앨버타 주의 오일샌드 채굴 피해 급증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격화였다. 앨버타 주에서는 이미 1950년대부터 프래킹(수압) 공법을 통해 모래와 뒤섞여 있는 원유를 추출해왔다. 그런데 2010년대부터 미국이 점토층에서 추출한 셰일오일 산유량을 늘리자 캐나다의 오일샌드 산유량도 나란히 증가했다. 고비용으로 천덕꾸러기 취급 당하던 오일샌드 채굴이 화석 연료 자본주의의 장기지속 덕분에 수지맞는 장사로 떠올랐다.
프래킹 공법의 남용은 즉각적으로 재난을 초래했다.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났고, 수질 오염도 심해졌다. 지층이 약해져 인공 지진이 빈발했다. 더구나 산유량이 늘어나자 대아시아 수출을 위해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 원유 수송 파이프라인이 새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이 파이프라인은 선주민 거주지를 통과했고, 이에 맞서 선주민 공동체의 저항운동이 시작됐다.
캐나다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백인 이주민들(영국계든 프랑스계든)이 아메리카 선주민의 삶의 터전을 짓밟으며 건설한 나라다. 20세기에 들어서 뒤늦게나마 이런 식민주의의 역사를 반성하고 선주민의 인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시작됐고, 이는 캐나다 진보-좌파의 핵심 과제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2010년대에 불거진 파이프라인 건설 논란은 이 노력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원점을 맴돌고 있음을 증명했다. 화석 연료 자본주의라는 지상명령 앞에서 선주민 인권은 다시 한 번 짓밟혔다.
도약 선언은 선주민 공동체가 시작한 파이프라인 건설 반대운동에 공감한 다양한 인물들, 단체들이 함께 모여 나눈 토론의 결과였다. 루이스와 클라인 부부 그리고 이들의 동지인 언론인 마틴 루카스가 토론 결과를 문서로 정리하여 신민주당을 비롯한 정당들을 압박하자고 처음 제안하기는 했으나, 도약 선언 자체는 선주민운동가, 노동운동가, 기후정의운동가 등의 공동 저작이었다.
'지구와 서로에 대한 돌봄에 바탕을 둔 캐나다를 만들자는 요청'이라는 부제를 단 도약 선언은 선주민이 겪는 난개발 문제가 결국 화석 연료 자본주의에 속박돼 있는 모든 캐나다 시민의 절박한 현안임을 확인하며 시작한다. 도약 선언은 난마처럼 얽힌 이 문제가 어중간한 타협책으로는 풀릴 수 없으며, 오직 기후급변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체제로 과감히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사회 체제 전반을 바꿔나가는 '도약'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도약'의 구체적인 방향은 최근 생태사회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전환'의 내용과 일치한다. 2050년까지 '100% 청정에너지 경제'로 전환한다는 목표 아래, 화석 연료 인프라, 그러니까 오일샌드 증산이나 파이프라인 증설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대신 지역사회가 소유와 운영의 주체가 되는 재생에너지 중심 체제를 구축하고, 대중교통 체계를 발전시켜 승용차 중심 교통양식을 바꿔야 한다. 기존 탄소집약산업 종사자들이 안정적으로 새 일자리로 이동하도록 국가가 재교육과 일자리 보장, 공공 투자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업들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법인세와 부유세를 강화하고, 누진적 탄소세를 실시하며, 국방비를 삭감해야 한다. 또한 이에 반발할 기득권 세력에 맞서기 위해 각 지역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타운미팅을 개최해 여론을 모아야 하며, 승자독식선거제도 혁파를 포함한 정치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도약 선언의 이런 내용은 당연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보수당은 반발했고, 자유당은 무시했으며, 신민주당 안에서는 논쟁이 벌어졌다. 신민주당이 무시하지 못할 진보-좌파의 숱한 저명인사들, 가령 철학자 찰스 테일러, 영화배우 도널드 서덜랜드, 레이첼 맥아담스, 엘리엇 페이지, 음악가 닐 영, 레너드 코헨, 앨라니스 모리셋 등이 선언문의 공동 서명자로 합류했지만, 신민주당의 앨버타 주 당조직은 격렬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캐나다의 텍사스'라 불리는 앨버타 주민들의 오일샌드 개발 찬성 여론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2015~16년에 도약 선언을 신민주당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시키려던 노력은 끝내 실패했다. 그러고 나서 10년만에 루이스는 같은 입장을 내세우는 후보로서 신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섰다. 그 동안 루이스는 보수당과 자유당의 당세가 강력한 지역구('험지')에 연거푸 도전하고 고배를 마시면서(득표율은 20%를 넘었으나 양대 정당 후보들에 이은 3위를 기록) 당내 입지를 다졌다. 이렇게 어느덧 언론인, 사회운동가에서 전업 정치가가 된 루이스는 도약 선언을 그대로 이은 그린뉴딜 계획, 공공서비스 확대, 공공주택 100만 호 공급, 팔레스타인과의 연대, AI 데이터센터 건설 유예, 1% 초부자세 등을 공약하며 대표 선거에 뛰어들었다.
사실 루이스는 신민주당 안에서는 '금수저'라 할만하다. 할아버지 데이비드 루이스는 토미 더글러스와 함께 1961년에 신민주당을 창당한 주역 중 한 사람이고 1971~75년에는 당 대표를 역임했다. 아버지 스티븐 루이스 또한 신민주당의 주된 기반 중 한 곳인 온타리오 주에서 주당 대표를 맡았던 인물이다. 급진적 이념, 정책에도 불구하고 루이스가 처음부터 유력 후보로 인정받은 데는 이런 가족적 배경이 한몫했다. 그러나 당내 일각의 극심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압승을 거둔 것은 이런 요인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10년 동안 끈질기게 지속된 '도약' 운동의 성과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진보정당운동과 동병상련인 신민주당은 과연 '도약'할 수 있을까?
신민주당이 1961년에 창당했다고 하지만, 전신인 '협동공화연맹(Co-operative Commonwealth Federation, CCF)'의 창당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32년이다. 미국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민주당 정부가 사회당(SPA)의 정책을 뉴딜로 대폭 수용하고 노동조합들의 지지를 독차지함으로써 독자 좌파정당의 성장이 차단된 바로 그 시점에 캐나다에서는 CCF가 출범하고 원내에 진출함으로써 좌파대중정당이 존립할 여지가 마련됐다. 이웃한 두 나라의 이후 역사와 사회 성격이 갈라지는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하지만 좌파대중정당이 존속할 최소한의 기반이 마련됐다 뿐이지, 성장하기 좋은 환경까지는 아니었다. 영국 하원처럼 100% 소선거구제를 지금까지 유지하는 캐나다에서는 협동공화연맹-신민주당이 기성 양대 정당, 즉 자유당과 보수당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집권가능정당으로 인정받을 만큼 의석을 불리기 쉽지 않았다. 이 점에서 캐나다의 정치 지형은, 노동당이 일찍부터 발전한 오스트레일리아나 노동당이 자유당의 지위를 대체한 영국, 뉴질랜드보다는 오랫동안 양대 우파정당 사이에 노동당이 끼어 있던 아일랜드에 더 가까웠다.
다만, 신민주당은 연방 하원에서는 만년 소수정당이더라도 주정부 수준에서는 빈번히 집권하는 등 풀뿌리 토대가 탄탄했다. 무엇보다 캐나다 노동조합운동의 지지가 큰 힘이 되었고, 여기에 일부 주에서 상당수 농민들의 지지가 더해진 결과였다. 그런데 지금 신민주당에서는 이러한 지역 토대의 일부가 대표 선거에서 확인된 전국적 당심(黨心)과 충돌하고 있다. 한때 신민주당 주정부를 탄생시켰던 앨버타 주, 새스캐처원 주의 당조직이 루이스의 노선을 따르지 못하겠다고 공언한다.
이런 점에서 루이스 대표가 이끌 신민주당의 미래는 장밋빛과는 거리가 멀다. 트럼프가 촉발한 카니 돌풍 때문에 평소 총선에서 거두던 의석 수준(20-30석)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7석)을 받고 그래서 원내 공식정당 지위(우리로 치면, 원내교섭단체)를 잃어버린 당을 추스르는 것부터가 엄청난 도전 과제다. 더 현실적으로는, 이 과정에서 쌓인 막대한 부채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게다가 가까운 시일 안에 소선거구제가 개혁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조건에서 일부 지역조직의 반발은 절대 다수 당원의 지지를 받은(다른 대표 후보들을 1순위로 지지한 당원들도 2순위 지지 후보로는 대부분 루이스를 선택했다) 신임 대표에게조차 넘기 힘든 장애물이 될 것이다.
진퇴양난이다. 그러나 탈출구는 어쩌면 루이스가 강조해온 '도약'이라는 키워드에 있을지 모른다. 아직 비례대표제를 갖추지 못했다고 하여 정치 개혁부터 성사시킨 뒤에 다음 과제에 나서겠다고 할 수도 없고, 자유당의 꽁무니만 밟다가 선거에서 자유당의 대체재로 선택해달라고 할 수도 없다. 가장 미래적인 과제를 앞장서서 제기함으로써 오래도록 쌓이고 쌓인 숙제들도 동시에 풀어나가는 접근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대응, 돌봄사회 전환, 디지털 광풍에 대한 개입 등과 복지 확대, 정치 개혁을 마치 동전의 양쪽 면인 것처럼 함께 추진해야 한다. 말하자면 ‘도약’이다.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정치 제도나 정치 지형 등에서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은 캐나다 신민주당과 동병상련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더 아비 루이스의 '새로운' 신민주당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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