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소는 안전하게 통제되고 있는가? 이는 원자력이 지속 가능한 미래의 대체에너지인가라는 물음과는 별개로, 원자력 시설이 일본의 경우처럼 예측을 초월하는 자연재해로부터와 테러분자 등 외부세력의 침입 및 약탈에도 과연 안전지대인가 하는 점이다.
폭풍, 지진, 홍수, 쓰나미 등 자연재해가 인간 영역 밖이라는 점에서 논외로 하더라도,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는 위협요소들에 대해서는 완벽한 대비책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3일 오전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 해상에서 반핵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
법적으로 보면 정부는 안전조치에 관한 사항으로 핵물질, 비핵물질 및 장비 등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정기적으로 보고를 하며 원자력통제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수출입통제와 관련해서는 전략물자 중 원자력전용품목은 과학기술부가, 원자력이중용도품목은 산업자원부가 주관하고 있다. 미국의 9.11 테러 이후 원자력 시설에 대한 위협의 증대로 원자력시설과 핵물질의 물리적 방호는 범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판단에 근거하면 국내에 가동 중인 21기의 원자력 발전소들은 안전하며 제대로 방호가 되어 있다. 발전소 주변에 무장한 경비 인력도 배치가 되어 있고, 최상의 방호복과 첨단 장비들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정부는 나아가 이번 기회에 침입자를 찾아내는 탐지 능력, 울타리, 벽, 출입문, 잠금장치 등 침입자의 침입속도를 줄이는 지연 능력과 침입자의 최종목표를 저지하는 무장 대응능력도 재점검할 것이다. 점점 고위험 사회로 접어드는 시대에 살면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원자로와 관련한 위기대응은 그러나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준비되어야 하고 실전처럼 훈련이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매년 여기 저기 산재해 있는 원자로에 대해 정부 차원의 가상 테러군을 구성해 개별 시설들에 대한 강도 높은 사보타주를 집행하는 일이다. 시쳇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닌 사전에 보안이 철저히 유지되어야함은 필수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1년에 대략 8개 원자력 시설에 대해 군사훈련에 버금가는 점검을 한 결과 대상의 절반이 뚫렸다는 보고를 낸 적이 있다. 만약 훈련이 실제 상황이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온정주의 정서가 유난히 강한 한국의 경우 그 결과가 어떠했을지는 물어보나마나다. 원자력 진흥 활동에서 안전 규제 부문을 독립시켜야 하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정부의 원자력 종합 기술정책은 정부-과학계-시민사회의 소통, 신뢰, 책임이라는 삼각형 위에 구축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렸으니 주민들은 이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테크노크라시(기술관료주의)적 발상은 구시대적이다. 이를 고치지 않는 한 님비(not-in-my-backyard)를 핌비(put-in-my-backyard)로 바꿀 수 없다. 원자력 안전 규제를 담당하는 책임자로 '안티 원자력' 성향을 지닌 전문가를 임명하는 것도 님비에서 핌비로 가는 한 방법이다.
정치인이 누가 좋은 정치학 교수이고 누가 나쁜 정치학 교수인지를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감시의 대상이 이를 감시하는 책임자 임명을 결정한다면 이는 위험한 선택이다.
동시에 원자력 학계, 산업계, 정부 산하 연구소들로 이루어진 삼각의 카르텔이 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원자력이라는 전문성을 빌미로 이른바 동종교배의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내용들이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 보다 투명해진다. 지금까지 국내 원자로 발전소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고들이 가감 없이 공개되고 있지 않거나 대충 얼버무려 넘어간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방사능 위험에 대한 전문가와 일반인들간 신뢰가 없는 한 '원자력 불패 신화'는 허구이다. 지역주민, 나아가 국민들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채 전문가들과 정부가 밀실 행정을 통해 정해진 정책들만으로 원자력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원자력이 현 상황에서 최적의 대안이라고 인정해도 원자로 사고로 인한 피해 방지책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사례들에서 입증이 되었다. 복잡한 기술 시스템과 관료제가 교묘하게 결합해서 나온 것이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정리한 '위험사회'다. 원자력 발전, 환경오염에서 보듯 과학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인류의 종말을 낳을 수 있다고 사람들은 믿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금의 위험은 방사능 물질이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오듯이 지구적이다.
이제 원자력과 원자로 안전에 대한 맹신 내지 기술에 대한 낙관주의는 수정되어야 한다. 원전 안전에 관해서는 핵과학자 어느 누구도 최종 판결을 내릴 수 없다.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의 개정과 관련하여 한국의 사용후 연료의 재처리 방침에 대해 핵무기 전용 가능성을 이유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핵물리학자 프랭크 폰 히펠 교수는 3월 23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위험한 원자력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필자는 쌓여가는 사용후 핵연료의 안전 관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핵폐기물처리장 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등 선진국들의 문제가 되고 있어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특수 강철 용기에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드라이 캐스크' 방식이 거론되나 비용 문제로 산업계가 꺼리고 있어 상용화 단계에서 멈춰져 있다.
과학이 지니고 있는 맹점에,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성의 교활함'에 겸허해야 한다. 미-소간 냉전 시절 가공할만한 핵전략을 세웠던 미국의 한 과학자가 20여 년이 지난 후 모스크바 붉은광장을 가보니 미국의 여느 도시처럼 수많은 젊은이들이 노는 도시임을 알고 울음을 터뜨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연구소 작업실에서 본 모스크바는 언제라도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도표 상의 한 점에 불과했지만 그 곳에도 사람이 사는 도시임을 알고 그 과학자는 모스크바에서 돌아와서는 하던 연구를 중단하고 반핵 운동가로 돌아섰다. 핵무기와 원자력이라는 다소 빗나간 예를 들었지만 둘 다 과학에 윤리를 입혀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나아가 후쿠시마 재앙을 목격하고서도 원자력의 위험을 확률 문제로만 인식하고 원자력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교만이자 위선이다. 사회의 모든 가치를 경제 원리로만 생각하고 성장과 개발만을 탐닉하고 쫓아가는 무리들에게 그 끝이 공동체의 공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과학계 내부에서 먼저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많은 핵관련 전문가들이 나중에라도 일본 원자력 사고 현장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얼굴도 함께 보고 오기를 희망한다. 2012년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2차 핵안보 정상회의 의제의 하나로 원자력 안전 문제가 반드시 포함됨과 동시에 원자력에 휴머니즘을 넣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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