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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여, 카터의 방북을 활용하라

[정욱식의 '오, 평화'] 카터 방북의 의미와 MB의 선택

1994년 한반도 전쟁 위기 해소의 주역,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5일 방북길에 올랐다. 그의 1차적인 임무는 미국 국적의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의 석방에 맞춰져 있지만, 한반도 정세의 극적인 전환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94년에 이어 카터의 방북을 주선한 박한식 조지아대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곰즈씨의 석방은 부차적인 이유이고 보다 본질적인 목적은 대화 재개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카터 전 대통령 역시 오래 전부터 한반도 문제 해결에 강한 집착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이번 방북을 통해 극적인 돌파구를 열려고 할 것이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전쟁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94년 6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갖고 극적인 '반전 드라마'를 연출한 바 있다.

대통령 재임 시절이었던 1978년에는 비무장지대(DMZ)에서 자신과 박정희, 김일성의 3자 대화를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DMZ 정상회담 구상은 미소간 데탕트가 와해되고 미국 내 강경론이 득세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94년 카터가 제안한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도 합의에 이르렀지만, 김일성의 사망으로 없었던 일이 되었다.

▲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5일 평양 만수대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카터와 김정일, 비핵화 공감대 이룰 듯

이러한 전례와 오늘날 한반도 상황에 비춰볼 때, 카터의 방북은 천안함 침몰로 야기된 '악몽의 나비 효과'를 '환상의 나비 효과'로 전환할 수 있는 극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카터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그의 아버지인 김일성과의 회담 내용을 상기시키면서 북한의 핵포기를 강하게 설득할 것이다. 또한 94년과 흡사하게 남북정상회담을 중재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미국 정계의 거물인 카터의 방북을 희망한 데에도 김정일 위원장이 오바마 행정부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의지를 강력히 피력하면서 북미대화와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하자는 것이 될 것이다. 특히 미국의 초미의 관심사인 핵포기와 관련해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화답하면서 미국 내에 팽배한 '북한 핵포기 불가론'을 불식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는 최근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중국의 적극적인 행보 및 대북정책 재검토를 저울질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끈다. 중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우다웨이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는 이미 북한을 방문해 6자회담 재개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이뤘고, 한국 등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도 연쇄 방문할 예정이다.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도 미묘한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천안함 침몰 이후 대북 제재와 압박에 몰두했던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변화를 꾀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카터의 방북을 승인한 것이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지난 8월초 앤메리 슬로터 국무부 정책실장에게 대북정책 검토 회의를 지시해 민간 전문가들과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정책 토론회를 가진 것 등은 이러한 변화의 기류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들을 묶어 대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정책 변화를 위한 안팎의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뿐만이 아니다. 이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대북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적인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고, 여당 내에서조차 쌀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쌀 지원과 6자회담 재개를

지금 시점에서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남아도는 쌀을 하루빨리 북한에 보내는 것이다. 이는 만성적인 식량난에 수재까지 겹쳐 고통 받고 있는 북한 주민은 물론이고 쌀 재고량 폭등과 쌀값 폭락으로 시름이 늘고 있는 남한 농민 모두를 돕는 길이다. 이미 여당과 보수 언론 일각에서 쌀 지원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인도적 지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그만큼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MB 정부로서는 망설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하나는 조속히 6자회담을 재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북-중-러 3국은 회담 재개에 동의한 상태이다. 한국이 6자회담 재개에 동의한다면, 미국과 일본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때마침 26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우다웨이가 서울에 온다. 한중 양국이 6자회담 재개에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우다웨이는 발걸음도 가볍게 도쿄, 워싱턴, 모스크바를 차례로 방문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서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는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 주도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교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진 한중 관계도 복원할 수 있는 유력한 카드이다. 동시에 동북아 상공을 다시 배회하고 있는 냉전의 망령을 물리칠 수 있는 '퇴마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명박 정부는 카터의 방북을 대북 제재와 압박의 초점을 흐릴 수 있다는 '자해적 관점'이 아니라, 한반도 정세의 극적인 전환을 가져올 '절호의 기회'라는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 기회를 잘 잡는다면, MB 정부 후반기는 진정으로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한국에게는 이러한 힘이 있고, 또 길도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 필자 정욱식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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