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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의 운명은 하늘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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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의 운명은 하늘이 결정한다"

[신음하는 아이티]<5> 강한 자만 살아 남는 '절망의 땅' 포토스토리

아이티는 세상이 힘의 논리에 의해 돌아간다는 걸 새삼 확인시켜주는 나라다.

힘센 자와 가진 자는 약한 자와 못 가진 자가 있음으로 해서 존재하지만 그 사실은 종종 은폐되고 잊혀진다. 아이티는 그렇게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다.

국제기구가 지진 피해 지역에 공중 투하 방식으로 구호 식량을 뿌리면 총칼을 든 갱단이 몰려와 식량을 독차지해 간다. 무정부 상태이기 때문에 강한 자만 살아남는 것이다.

지진이 발생했다고 해서 특별히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이티에서 힘의 논리는 긴 세월 동안 여러 차원에서 작동되어 왔다. 미국과의 관계, 국내 지배 세력과 대다수 빈민의 관계, 기득권층과 개혁 세력의 관계 등에서 노골적으로, 그리고 중첩적으로 적용됐다.

그 역사적인 과정과 결과를 상징하는 장면과, 거기에 지진이라는 대자연의 힘이 합해져 아이티가 어떻게 파괴됐는지를 보여주는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 ⓒ프레시안

포르토프랭스는 지진으로 전기가 끊어져 밤이 되면 암흑 도시가 된다. 그렇지만 미국 대사관만은 불야성을 이룬다. 미국은 아이티에 어떤 의미인가?

- 1915~35년 식민 지배
- 1956~86년 두발리에 부자 통치 시절 쿠바 봉쇄를 이유로 독재 용인
- 1986년 수입쌀 관세 폐지로 쌀 소비량의 75%가 미국산으로 대체
- 1990년 민주 선거로 아리스티드 대통령 당선. 임금 인상 정책으로 기득권과 불화
- 1991년 미 CIA가 개입된 쿠데타로 아리스티드 축출
- 1993년 클린턴 행정부에 의해 아리스티드 복권. 그 과정에서 군부에 압력 넣기 위해 무역 제한(엠바고) 가함으로써 아이티 중소기업들이 대부분 파산
- 2000년 아리스티드 정부가 세계은행과 IMF의 요구 거절하자 미국이 나서서 국제구호금 5억 달러 지급 봉쇄
- 2004년 기득권-舊군부 연합세력이 아리스티드를 축출하자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이 묵인하고 지지함

민주주의와 원조라는 명분을 내건 미국의 개입 뒤에는 전략적 필요성과 시장 장악, 저가상품 생산기지화라는 목적이 숨어 있었다. 그 와중에 절대 다수의 인구가 빈민으로 내몰려 판자촌에 살게 됐고, 그러다 보니 자연재해에도 취약해졌다. 오바마 행정부가 지진 구호를 위해 모든 걸 퍼줄 듯 하는 것에 대해 곱잖은 시선이 존재하는 건 이 때문이다.

▲ ⓒ프레시안

미 대사관 주변은 아침 6시 이전부터 미국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비자를 받아 가는 합법적인 방법이건 나무판자 하나에 목숨을 맡기고 바다를 건너는 방법이건 아이티인들이 오매불망 가고 싶어 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이번 지진을 감안해 미 국토안보부는 아이티 출신 불법 체류자들에 대한 강제 추방을 한시적으로 중단한다고 14일 밝혔다. 한편으로 미국은 아이티인들의 대량 유입을 차단하겠다는 메시지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최근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해 미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미국 주재 아이티 대사가 라디오에 나와 경고 방송을 하는 방식이 동원된다.

▲ ⓒ프레시안

무너진 대통령궁 앞에서 한 청년이 성조기를 몸에 두르고 있다. 그는 매일 이곳에서 이렇게 '친미시위'를 한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티인들은 미국을 좋아하는 한편으로 무서워한다고 한다.

▲ ⓒ프레시안

아이티의 최대 부촌으로 알려진 벨빌(BelVil)의 한 저택. 미국의 도움으로 아리스티드를 몰아냈던 극소수 기득권 계층은 이런 곳에 모여 산다. 무장한 사설 경비대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대기업 경영진, 전·현직 고위 공직자 및 군부 인사 등이 지배층을 형성한다.

기업이 생산하거나 수입해 파는 상품은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아 부르는 게 값이다. 철저한 공급자 중심의 경제다. 그렇게 해서 확대된 빈부 격차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 현지 교민은 "1%의 갑부와 99%의 극빈자가 사는 나라"라고 표현했다.

▲ ⓒ프레시안

독과점 체제를 무너뜨리는 이들은 철저히 배척된다. 아이티에서 기반을 잡은 한인들도 그 대상이었다. 타이어와 차량용 배터리를 수입해 팔던 한국인 사업가 송모 씨는 1996년 현지 괴한들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그의 사업 확장에 위기감을 느낀 세력의 사주에 따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포르토프랭스에 있는 그의 묘역은 다행히 지진 피해를 받지 않았다.

송 씨와 유사한 한인 살해 사건은 또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한 기업이 아이티에 발전소를 건설하면서 현지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이유는 바로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이티는 전력 시스템이 낙후해 자가발전기를 돌리는 집이 많다. 따라서 발전소 건설은 발전기 공급 업체의 시장지배력을 위협할 것이다.

▲ ⓒ프레시안

2004년 아리스티드 축출 후에는 유엔 평화유지군(PKO)이 사실상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르네 프레발 대통령이 아리스티드의 뒤를 이었지만 있으나 마나한 존재다. 이번 지진은 미약하게나마 작동했던 아이티 정부의 기능을 완전히 정지시켰다.

아이티인들의 자부심이 서린 대통령궁이 폭삭 무너진 장면은 프레발 정부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궁 주변에는 수천 명의 이재민들이 노숙을 하고 있다.

▲ ⓒ프레시안

대통령궁은 이제 빨래나 너는 곳으로 전락했다. 대통령궁 앞에서는 중국 구조대가 베이스캠프를 치고 구호 작전을 벌이고 있다. 주변의 국회의사당과 각종 행정 부처 건물들도 거의 다 무너졌다.

▲ ⓒ프레시안

해방신학자 출신의 아리스티드는 70%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에 당선될 정도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상주의자일지언정 현실 정치인으로서는 실패했다. 뜻은 좋지만 실현되기 어려운 정책을 밀어 붙이다가 국내외의 견제를 당했고 스스로도 모순에 빠졌다.

경찰과 군대를 없앴다가 치안이 불안해지자 갱단에 무기를 넘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갱단이 아직도 활개를 치고 있다. 아리스티드가 대통령궁 옆에 세운 용도 미상의 건물은 그의 이상주의를 상징하는 듯하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없었다.

▲ ⓒ프레시안

인도에서 파견된 평화유지군 병사들. 유엔 평화유지군이 아이티를 통치하고 있지만 유엔도 무기력하긴 마찬가지이다. 각국에서 온 구호품들이 곳곳에 쌓여 가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시스템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배고픔이 계속되어 폭동이 일어나거나 갱단의 저항이 있을 경우 유엔 평화유지군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 ⓒ프레시안

쿠바도 자그마한 건물을 빌려 의료지원센터를 만들고 깃발을 내다 걸었다. 아이티는 미국의 쿠바 봉쇄를 위한 전진기지였다.

▲ ⓒ프레시안
포르토프랭스 항구 근처에 있는 화력발전소. 정문에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국기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두 나라의 지원으로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낡았지만 중요한 국가 자산이지만 지진 후로는 가동되지 않는다. 포르토프랭스에는 지진이 나기 전에도 전체 필요 전력량의 20%만이 공급됐다. 아이티의 미래는 국가 기반시설의 복구와 정비에 달려 있다.


▲ ⓒ프레시안
▲ ⓒ프레시안

아이티인들에게 신이란 무엇일까? 포르토프랭스 거리 곳곳에는 '예수 찬양' 구호가 쉽게 눈에 띈다. 특히 아이티 특유의 이동수단인 '탑탑'에는 거의 다 붙어 있다.(사진 위) 아래는 이재민촌에서 확성기를 들고 선교하는 장면.

현지인 취재 가이드는 엄청난 난폭·곡예 운전을 하는 사람이었다. 살살 좀 하라고 하면 그는 똑 같은 답을 했다. "운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한다." 그러던 그가 지진 피해상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언덕에 오르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허리케인? 지진? 상관없다. 아이티의 운명은 하나님이 결정한다."

▲ ⓒ프레시안

가톨릭 전통이 강해 산아제한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많이 낳는다. 부인을 둘 이상 둔 남자들이 많지만, 자식들에 대해선 거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모계사회가 형성되어 있다.

▲ ⓒ프레시안

자매로 보이는 이들이 길거리 오물 옆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런 길가에서 대소변을 보고, 씻고, 빨래를 한다.

▲ ⓒ프레시안

이재민촌에서 한 남자가 각종 먹을거리를 팔고 있다. 일주일 가까이 굶은 사람이 태반이고 치안도 엉망인 곳에서 무방비 상태로 물건을 팔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 ⓒ프레시안

주민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탑탑을 타고 어디론가 간다. 하루짜리 일자리라도 구하러 떠나는 경우가 많고, 지진 후에는 구호품을 나눠준다는 소문이 들리는 곳을 찾아 간다.

▲ ⓒ프레시안

지진 피해가 난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쓸만한 물건을 줍거나 고철을 수집하고 있다. 이를 두고 '약탈'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현지인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배고픔이 계속되면 약탈과 폭동으로 번질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재민들의 인내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안정으로 가느냐 폭동으로 가느냐는 향후 며칠 사이에 갈릴 것으로 보인다.

▲ ⓒ프레시안

외국에서 온 구조대나 기자가 나타나면 청년들이 순식간에 에워싼다. 구호 식량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티에서는 안전을 확보하지 않은 채 구호 식량을 나눠주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폭력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거리에서 무료급식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권위와 강제력을 갖춘 분배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현재로서는 구호 식량을 나눠주면 결국 힘센 자들이 독차지한다. 그걸 우려해 식량을 풀지 못하다 보니 구호 식량의 양과 굶주리는 날짜가 동시에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 ⓒ프레시안

섬유 공장들이 모여 있는 소나피 공단 앞에는 하루 종일 구름 인파가 모인다. 구호 식량을 보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끔씩 누군가 무슨 소리를 지르고 달려가면 이유도 모르고 쫓아가는 장면이 연출된다.

소나피 공단에는 종업원이 1만 명가량 있다. 한국에서 진출한 섬유업체들의 공장이 대부분이다. 식량 배분이 늦어지고 비효율적으로 될 경우 아이티의 유일한 성장동력인 소나피 공단도 위험해 질 수 있다. 지진 이후 가동이 중단되고 현재는 출입이 봉쇄된 상태다.




▲ ⓒ프레시안
▲ ⓒ프레시안
▲ ⓒ프레시안

위에서부터 차례로 이재민촌, 시장, 도로의 전경이다. 지진 피해를 입은 포르토프랭스의 풍경은 거의 이런 모습이다.

▲ ⓒ프레시안

아이티국립병원 내에 방치된 시신들. 뭐라도 덮어 놓은 시신은 소수이고 대부분이 수십여 구 씩 뒤엉켜 그냥 방치되어 있다.

▲ ⓒ프레시안

아이티국립병원에서 병실에 들어가지 못한 어린이 환자의 모습. 주차장을 알리는 철제 입간판에 링거액이 매달려 있다.

▲ ⓒ프레시안

한국의 발전(發電) 회사가 현지인과 함께 투자해 짓고 있는 발전소 부지. 정부 구조단의 숙영지로 쓰이고 있다. 미군들도 이곳을 빌려 쓰는 대신 빨간 철대문 앞에서 치안을 맡아 준다. 문 밖에는 구호 식량이나 일자리를 바라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붐빈다.

이곳에는 30MW의 전력을 생산하는 화력발전소가 지어지고 있다. 이 발전소 건설을 시작으로 한국이 아이티의 전력 부문에 전면적으로 진출한다면 의미가 클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프레시안

공중에서 본 포르토프랭스의 모습. 구호와 재건을 외치며 아이티로 향하는 국제사회의 손길이 진정한 결실을 맺으려면 이 나라를 장악하려고 하기보다 자생력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티는 그 '국제사회'로 인해 파괴됐던 잿빛 역사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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