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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악법도 '불법 통과'시키면 무효가 아니다"

[김영호의 사자후]<8>헌재 미디어법 결정을 한마디로 줄이면…

지난 7월 22일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장석 주변을 점거한 가운데 언론관련법이 날치기 처리됐다. 난장판 같은 상황을 지켜본 다수 국민의 눈에는 그것은 의당 무효로 비쳤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4당이 헌법재판소에 국회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것도 그 때문이다. 법안표결-가결과정의 위법성을 가려 달라는 요구다.

헌법재판소가 날치기 처리과정에서 발생한 무수한 위법성을 인정했다. 제안설명-심의절차-질의토론의 생략, 일사부재의 위반, 재투표, 대리투표는 국회의원의 표결권을 침해함으로써 위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문법-방송법 개정안의 가결이 무효라는 야4당의 주장은 기각됐다. 법률안 가결의 효력에 대해서는 국회의 자율권에 맡겨야 한다는 기피성 결정을 내린 것이다.

국회의 헌법 파괴적 행위는 누가 재단할 것인가

원인이 무효이면 결과도 무효이다, 절차가 위법이면 결과도 위법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모순논리를 통해 절차는 위법하지만 국회의 자율권을 핑계로 결과는 무효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뒤집어 말하면 유효라는 뜻이나 다름없어 정국을 더욱 혼미상태로 내몰고 있다. 여기서 헌법재판소의 존립근거를 묻는다. 정치적-헌법적 분쟁에 대해 누가 법적 판단을 통해 해결하느냐는 질문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헌법 파괴적 행위를 했다면 헌법재판소만이 그 행위를 재단할 수 있는 것이다.

정족수 미달상태에서 표결을 강행했으니 그것이 무효라는 사실은 초등학생들도 잘 안다. 부결된 사안을 재투표를 통해 가결했으니 이 또한 무효라는 사실도 잘 안다. 투표장에 가서 대리투표하면 형사처벌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단체-집단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제안설명-심의절차-질의토론을 생략하면 결과가 무효라는 사실은 일반상식이다. 절차상의 위법성은 일반인들도 잘 알만큼 명백하니 헌법재판소가 꼼짝없이 야당의 손을 들어준 것 같다.

하지만 해괴하고 애매한 논리를 내세워 가결은 무효가 아니라는 심판을 내렸다. 노회하게도 절차상의 위법성은 인정하여 야당 편에 서고 사안의 본질인 가결은 사실상 적법성을 인정하여 여당 편을 든 정치적 결정이다. 법적 논리의 불일치성은 헌법재판소의 존재가치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동영상이 보여주듯이 그 사안은 아주 단순하다. 그런데 심판을 질질 끌다가 결정일을 10월 29일로 정한 것도 정치적이다. 10월 28일로 예정된 재보선을 피해 결정일을 그 이튿날로 정했다. 한나라당이 입을 정치적 타격을 고려했을 것이다. 또 방송법 시행일 11월1일에 앞서 결정함으로써 법시행의 차질을 없도록 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환호'와 '탄식' 사이-헌법재판소가 국민을 헛갈리게 하는 법

10월 29일 오후 2시 결정에 앞서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는 100여명의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 정당인사들이 모여들었다. 그 자리에서 숨을 죽이고 DMB를 통해 중계방송을 지켜보는 동안 숱한 희비가 엇갈렸다. 전반부에는 야당의 손을 들어주는 듯하여 환호가, 후반부에는 여당의 손을 들어주어 탄식이 쏟아졌다. 절차는 위법하나 그것에 근거한 결과는 적법하다는 해석을 가능케 하는 법적 논리의 불일치성이 많은 국민을 헛갈리게 하는 순간순간이었다.

이어서 3시 규탄기자회견이 있었다. 그 해괴한 논리로 포장된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를 비판하는 촌철살인이 쏟아졌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 민주당 의원은 애를 낳았지만 내 아이가 아니라는 심판이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위조화폐이나 통화가치가 있다는 소리다, 이수호 민조노동당 최고위원은 대리시험, 재시험은 인정되지만 합격이라는 결정과 다름 아니다 등등 말이다.

일반의 상식을 뒤엎는 결정이 나자 인터넷과 시중에는 국민을 조롱한 난해한 궤변에 대해 헌법재판소를 질타하는 풍자적 희문(戱文)이 넘쳐난다. 절도는 인정되지만 장물은 아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처녀라고 말하면 처녀다, 강간했어도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면 성폭행이 아니다, 술 마신 사실은 인정하지만 음주운행이 아니다, 주심이 파울이라고 레드카드를 꺼내고도 선수를 퇴장시키지 않은 꼴이다 따위가 말이다.

수단과 방법이 정당하지 않으면 목적이 정당하지 않다고 학교시절 귀가 닳도록 배웠다. 꼭 윤리시간에서만 아니다. 이 가치관을 뒤집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분노의 소리가 쏟아진다. 이런 대한민국에 사는 내가 부끄럽다, 과연 정의가 살아 있나, 법이 살아 있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상대로 직무정지가처분 신청을 내자, 법과 양심을 버린 헌법재판소를 없애자 등등 이어진다.

"어떤 악법도 '불법 통과'되면 무효는 아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떤 악법도 국회가 불법적으로 통과시키면 무효는 아니다."이다. 앞으로 다수당이 법을 만들더라도 대화를 통해 소수당을 설득하거나 여론을 수렴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법이라도 그냥 날치기로 밀어붙이면 그만이라는 뜻이다. 이미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이 재개정을 협상하자는 야당의 요구를 거부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후속조치를 강행하는 것이 그것이다.

신문법-방송법에 비해 경미한 사안이나 과거에도 비슷한 전례가 있다. 1996년 12월 노동관계법 신한국당 단독처리, 2005년 12월 사학법 질의-토론생략 처리가 그것이다. 결국 국회가 협상을 통해 재개정했다. 이번 한나라당의 협상거부는 헌재가 법적 논리의 불일치성으로 힘을 실어 주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니 국회의장은 당연히 사퇴해야 옳다. 그런데 책임지지 않겠다는 자세로 나가고 있다. 이 또한 마찬가지다. 다수의 국민은 헌재가 헌법 수호자로서 존재가치가 있는지 묻고 있다. 절차는 민주주의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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