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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주의자 위축시킨 남북, 아둔한 정치게임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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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주의자 위축시킨 남북, 아둔한 정치게임을 멈춰라

[한반도 브리핑] '풍전등화' 개성공단은 왜 있어야 하나

남북한 경색국면이 심상치 않다. 남북대화의 마지막 창구인 개성공단 문제를 두고 양측은 아슬아슬한 위기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5일 그간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측에 특혜적으로 적용했던 개성공업지구의 토지임대값과 토지사용료, 노임, 각종 세금 등 관련 법규들과 계약들의 무효를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남측 기업들과 관계자들이 북한측 통지 사항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개성공업지구에서 나가도 무방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초강수를 날렸다.

우리 측에서는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현대아산 직원 문제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삼아 북한을 강압했으나 북한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지난 1년 반 동안 남북은 일촉즉발의 대결구도로 향해 브레이크 없는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는 듯하다. 불신의 신호음들이 하나 둘 씩 관측되었던 초기 국면은 어느덧 대립과 증오, 난폭한 비방의 언사들로 바뀌어 가고 있다.

남북한 양측 모두 불신구도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말은 말대로, 행동은 행동대로 위기증폭의 전형적 메커니즘을 보여 왔다. 냉전시대의 패턴으로 되돌아 간 듯하다. 극도의 증오심과 상호불신이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펼쳐야 할 국가전략과 행보를 가리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남북한 대화와 화해협력을 주도해 왔던 협상주의자들을 처벌했다고 알려졌다. 당분간 대남전략의 경화(硬化)는 불을 보듯 뻔하다.

남북한 대결구도가 심각해지면 한국 사회 내부에서도 화해협력의 시대적 필요성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입은 서서히 닫혀 갈 것이고 오로지 광기어린 대결을 부추기는 세력들의 목소리만 남게 될 것이다. 참으로 비극적 상상이며 참담한 전망이다.

▲ 남한의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의 대남사업을 사실상 총괄했던 최승철 전 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 수석 부부장이 작년에 처형당했다는 보도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7년 청와대를 방문한 최 전 부부장이 노무현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가운데는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 ⓒ연합뉴스

개성공단이란 최소한의 접촉선 유지돼야

주지하다시피 한반도의 상황은 국제정치 영역의 동력과 남북한 간의 정치적 동력이 만나는 접점에서 결정되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한반도 문제의 국제정치적 영역과 남북한적 영역이다. 전자가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라면 후자는 한반도 문제의 민족화 (Koreanization)다.

그 둘 사이의 접점에서 한반도 문제가 결정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50:50이라는 숫자적 균형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문제는 그 두 축 사이의 관계가 화해협력의 선순환적 구도를 가지느냐, 또는 대립증폭의 악순환적 구도를 가지느냐다.

냉전시기 동안 한반도 위의 대립 구도는 주로 국제적 영역의 동력에서 주어졌다. 분단, 전쟁, 대립의 남북한 관계에서 남북한 스스로 그것을 풀어낼 능력과 의지가 없었다. 오히려 한반도 위의 적대적 균형을 매개로 동북아 대립질서를 구축하고 강화해 왔던 것은 열강들의 계산법이었다. 남북한 적대적 관계는 그러한 국제정치적 축을 재생산해 왔던 타율적 영역이었다.

탈냉전기 지역질서에서는 대립적 성격이 완화되고 있는 것에 비해 남북한은 그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이래 잠시 순환적 구도로의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했으나 다시 대립적 관성으로 모멘텀이 돌아서고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북한의 무리수에 가까운 핵개발 전략에 원인이 있다. 그것이 풀리지 않는 가운데 남북한 모두 대립으로 치닫는 논리적 자폐증에 빠져 버렸다.

남북한 간의 민족축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면 한반도 상황과 운명은 또 다시 국제정치적 계산법에 의해 요리될 것이다. 접촉 채널조차 갖지 않는 남북한 대립구도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열강들의 논의구도가 더욱 활발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것 또한 참으로 서글픈 상상의 단면이다.

남북한간 영역이 국제정치적 동력과 선순환적 관계에 놓일 때 한반도 운명은 일방적 타율성의 역사를 벗어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한 간 자율적 영역을 일정정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의 접촉선이라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제 개성공단에서 그 마지막 촛불마저 위태롭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 현재의 국면이다.

심리적 피난처에 들지 마라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의 석방협상 문제는 별도의 채널에서 협상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리고 개성공단 운영 방침과 관련된 협상은 지금이라도 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협상은 길고도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북미협상의 개시와 진전, 중국의 협상중재와 6자회담의 재개 등의 국제정치적 상황이 새로운 유화적 국면으로 진전되는 시점까지는 남북한은 협상을 통한 대화채널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선순환적 구도로의 복원과정에 남북한 모두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북한 당국 모두 긴 역사의 안목으로 한반도 문제를 보기를 주문한다. 단기적 정치적 목적이라는 근거리에서만 보지 말고 동북아 질서라는 원거리에서도 한반도 문제를 보기를 주문한다.

전쟁을 치렀던 관계에서 증오와 불신은 참으로 오랜 인식적 관성으로 남아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그러한 감정적 요소들이 인간의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 유혹처럼 도사리고 있는 심리적 피난처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주어진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정치적 현실주의 담론이 국가전략의 장기적 비전을 구상하려는 혜안조차 가려서는 안 된다.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단기적 처방은 어떤 형태든 방향성의 상실과 비용증가라는 후과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21세기 초반의 남북한 관계를 평가할 때 남북한 정책결정자들 모두 이다지도 아둔한 정치적 이익에만 목매달고 있었는가라는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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