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피가 거꾸로 솟아 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어제 이명박은 경찰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자리에서 "선진일류국가를 만들기 위해 공권력이 확립되고 사회질서가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시위대에게 경찰이 폭행을 당하는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또 총리 한승수는 "선진국 어느 나라에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관이 이렇게 폭행당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격노'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기사에서 봤다.
자, 말이면 다 말인가?
같은 말도 누구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인가에 따라서 전혀 말로써 성립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한 나라의 최고 공직자가 말 같지 않은 궤변을 다수의 공중을 향해서 계속 유포한다는 사실은, 특히 이명박이나 한승수가 얘기하는 소위 "선진일류 국가"나 "선진국 어느 나라"에서든, 최고 공직자가 일방적으로 궤변을 유포하는 일이란 있을 수가 없다.
최고 공직자의 말이란 무서운 책임이 따르고 책임지지 못하는 말이란 퇴출과 파직, 탄핵에 내몰리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말 또는 언어란 사용하는 자가 정확성과 객관성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정확성과 객관성이란 말의 바른 쓰임을 의식하는 태도다.
말의 바른 사용과 목적은 곧 '진실'을 이야기하는 데 있다.
말이란 대상의 사실이나 사태를 바르게 보고자 하는 의지에서 출발하는 태도이며 모호함과 낯선 것들로부터, 심지어는 거짓으로부터 사실과 진실을 제대로 가리거나 정확하게 보겠다는 인식의 표현이다. 하물며 최고 공직자의 말이란.
더구나 최고위급의 공직의 위치에서 말을 한다는 건, 무엇을 판단하고 해석하고 규명하는 태도에서 보이는 대상의 모호성을 판독하는 능력과 아울러 말을 사용하는 정직함과 말하는 내용에서 과도한 자기만의 이익과 불편부당을 내세우려는 의지를 여하히 자제할 수 있는가가 큰 관건이 된다.
특히 정치적 말일수록 그 말은 일차적으로 사실을 담는 형식으로 반듯해야 한다.
이 형식은 정치 문화 체제가 잘 정리되고 축적된 "선진일류 국가"나 "선진국 어느 나라" 사회들에서의 최고 공직자의 말이란, 한 사회의 신뢰를 기초로 하기 때문에 말을 비틀거나 사태를 왜곡해서 말을 하는 경우란 극히 드물거나 거의 없다.
그럴 경우엔 최고 공직자의 지위는 곧 자기파멸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이나 한승수는 툭하면 끌어오는 "선진일류 국가"나 "선진국 어느 나라"란 도대체 지구 어디에 붙어있는 어느 나라 '선진국'들을 말함인가?
이명박이 며칠 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수행기자단과 밥 먹는 자리에서 함부로 비하한 그 아프리카 나라들인가?
어느 "선진일류 국가"나 "선진국 어느 나라"가 집회와 시위를 폭력경찰을 동원하여 강제로 틀어막고 군화발로 비무장의 여학생의 머리를 뭉개고, 경찰이 평화적으로 행진을 하려던 시민들을 무조건 가로막은채 무차별적으로 연행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진짜 동감이다.
그래, 어느 "선진일류 국가"나 "선진국 어느 나라"가 정당한 사법적 절차 없이 시민을 상대로 테러진압 특수경찰부대인 특공대를 동원하여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국민을 죽인다 말인가. 이게 어디 어떤 '선진국'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국민을 함부로 죽인다는 것이 도대체 말 자체가 성립이나 되는가 말이다.
정말 나는 피가 솟구친다.
이제 드디어는 공권력이 자국의 국민들을 죽이는 권력 살인과 국가살인이 태연자약한 현실에까지 이르렀다.
헌법을 유린하고 헌법을 공공연하게 파괴하는 이명박이 헌법의 울타리에서 대통령직을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오늘의 현실에서 경찰과 검찰을 동원하여 밥의 이름을 들먹이고 공동체의 상식과 법정신까지 여지없이 파괴하는 오늘이란 곧 국가 공동체 파행의 극명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제 이명박은 또 "경찰관이나 전경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승수는 "법질서 확립을 위해선 공권력 집행을 방해하거나 훼손하는 세력과 행동에 대해서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법과 원칙에 따라 엄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신임 경찰청장은 "불법과 폭력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며 "공권력이 경시당하는 풍조를 반드시 바로잡아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단다.
도대체 이들은 어떤 공권력을 말하고 있으며 어떤 '국민'들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나?
똑 같은 소리를 지겹도록 되풀이 하면서 시민들을 겁박하고 있다.
결국 이들이 얘기하는 '법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계속해서 시민들을 무차별로 죽일 수도 있다 그 말 아닌가?
권력을 잡았으니 마음대로 한다?
그렇게 당당한 권력인가? 전혀 아니지 않는가?
내심 불안하고 쫒기고 있지 않는가?
오직 권력을 통해 자기들의 사욕을 챙기는데 일조하는 것들을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내세워 마구 남발하면서 지금 마냥 허둥거리고 있지 않는가?
나는 지난 1월 6일 여기 프레시안에 쓴 칼럼 <새해, 명확한 관점과 입장에서 나는 말한다-민주주의 사수를 위한 시민들의 역할과 몫->에서 말하기를,
"이명박 집단은 정권을 빼앗겨서는 물러설 데도 없다는 절박한 위기감을 자기들끼리는 의식하기 때문에 전 방위적으로 교묘하게 나라를 계속 교란시키려 들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들은 이들의 사적 욕망 추구의 대상으로 나라를 낱낱이 사욕화(私慾化) 하려 들 것이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때의 갖가지 억압의 장치들과 방법을 익히 알고 있는 집단이기에, 시민 일반을 탄압하는 방법에서도 한술 더 떠 소위 일본 식민지 시대 때 수법인 '문화적'인 방법 등으로 교묘하게 억압할 것이다."고 했으며 "텔레비전 등 여론매체의 찬탈(簒奪)과 전용(專用)으로 여론의 호도와 왜곡, 반대세력의 분리와 격리, 국민 일반에 대한 교묘한 아첨과 감언이설, 회유와 협박, 때로는 무자비하고 공공연한 폭력행사 등이 골고루 동원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불과 보름도 안 지난 1월 20일, 돈의 힘만 믿는 자들이 용역깡패를 동원됐고 '제복 입은 깡패'들은 뒤에서 핑계거리를 찾다가 결국은 철거시민들을 사지로 내몰면서 일제히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왔다. 철거시민들은 마지막까지 결사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끝내는 죽고 싶진 않았지만, 죽음으로 내몰려야만 했다. 참담한 현실이었다. 딱 보름 전에 칼럼에서 예상한 그대로 "무자비하고 공공연한 폭력행사"는 현실이 됐다.
도대체 망상 아닌가?
언론을 자신들의 계속적인 권력 유지를 위한 거짓말과 속임수를 위한 홍보의 수단쯤으로 이해하면서 경찰과 검찰, 심지어는 사법권까지 자신들의 잘못된 권력행사에 반대하거나 비판하거나 도전하는 세력을 억압하며 위협하는 장치나 수단으로 여기는 처지에서는, 공권력은 공공의 권력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공권력을 운운할 수 있는가.
최근 동아일보 기자가 쓴 기사에 보면 한나라당 전여옥의원이 말하기를 "국회 안에서 이렇게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수준이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 이건 나라도 아니다"라고 했단다.
이명박의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 와 한승수의 "선진국 어느 나라에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관이 이렇게 폭행당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와 "이건 나라도 아니다"라는 전여옥의 말은, 이미 말이 아니다.
그들의 말에 도리어 시민들은 반문한다. 그래, 그런 나라가 어디에 있고, 무엇 때문에 있느냐고? 과연 누가 이 '나라'를 오늘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어디 감히 '나라'를 들먹이기까지 하느냐고.
오늘 우리 사회의 경험은 불행하게도 말의 질서와 내용이 깨진 지 이미 오래다.
사회를 구축하는 근본이 무너지고 공권력으로 가장한 폭력이 다반사고 그 폭력 양상이 일사불란하고 거침이 없을 때, 최고위 공직자의 말의 기능이 전도(顚倒)되고 타락했으며 그 도착(倒錯)이 일상화됐을 때 나라는 깊은 수렁에 빠진 것이다.
진짜 '격노'는 한승수가 할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야말로 '격노'하고 있음을 똑바로 알아차려야 한다.
지금 시민들은 무섭게 '격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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