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가을, 37년 만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귀국했으나 해방후 최대 거물간첩으로 몰려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다.
2004년 7월의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 독일로 다시 돌아갔으며 2008년 7월 대법원의 판결에서 한국 국적일 때의 평양방문을 제외하고는 무죄로 확정되었다.
이 사건은 한국이란 시공간 속에 여전히 광기와 야만이 존재하며 이를 유지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 사건 중의 하나였다. <필자>
확장의 단서(端緖)로 '경계'
김상수 - 오늘 선생님을 만나 뵈러 오는데 오랜만에 햇살이 화창합니다. 베를린의 겨울에서 이런 날은 아주 드물더군요. 저는 이제 곧 베를린 체재가 3개월째로 들어서는데 유럽의 겨울 날씨 특성이야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이곳에서 겨울을 지내자니 제겐 혹독하군요.
제가 오늘 선생님과 나누고 싶은 얘기는 오랫동안 독일에 사시면서 현재 뮌스터 대학에서 사회철학과 사회학을 강의하고 계신 입장에서의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싶군요.
선생님의 책 <경계인의 사색>(한겨레출판사, 2003년 간행)에 쓰신 서문을 보자면, 40여년 이상을 외국 땅에서 사시면서 외국생활에 대한 소회를 말씀하고 계신데, "보통 외국생활이라고 하면 자기 땅에 언젠가는 돌아오기 이전에 있었던 시간과 그 속에서 이루어진 삶의 체험을 주로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그러나 내 경우는 이미 끝난 과거나 적어도 머지않아 반드시 끝나는 미래완료형으로서의 해외생활이 아니라 미래진행형의 의미를 더 담을 수밖에 없는 해외생활이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솔직하게는 막막한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한 편으로 생각하자면, 안과 밖, 밖에서 보는 안, 그리고 그 '경계'에 있는, 또는 있을 수밖에 없는 체험이나 입장이란, 역설이기도 합니다마는 어떤 의미로는 시각의 확장이랄까 입장의 다면성, '경계'에 있지만 '경계'를 넘어서는 '위치'같은 건 아닐까요? '경계인'이라는 의미를 어떤 라인이나 선상(線上)에 서있는 등으로, 비좁게 해석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확장해서 보는 제 시각인데요.
▲ ⓒ김상수 |
송두율 - 금년 1월 초 독일 서남부의 주요도시인 슈트트가르트에서 열린 바르셀로나 출신 설치예술가 다니엘 가르시아 안듀자르의 '자본 이후'(Post-Capital)라는 전시회를 기해서 저는 '피할 수 없는 제 3 '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습니다.
5년 전, 37년 만에 서울을 찾았다가 상상할 수 없는 곤욕을 치를 때를 생각하며 특히 '경계인'의 뜻도 모르면서 무조건 시비를 걸고, 심지어는 이 단어를 앞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서약까지 요구하는, 당시의 그 천박스런 사회 분위기를 떠올리며 제 3이 오늘의 문명사적 시점에서 어떤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힘을 제시하고 있는지를 짚어보는 강연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선과 악, 안과 밖, 문명과 야만, 자신과 타자, 육체와 영혼 등,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 살아오면서도 바로 이 둘로 가르는 '경계'의 의미를 무시해왔지요. 바로 경계가 제 3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지나쳤기 때문에 '경계'나, 또 이런 맥락에서 쓴 '경계인'을 흔히들 기회주의자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남북으로 갈라져 혈전과 냉전으로 줄곧 이어온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리는 아니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이분법적 세계파악이 날이 갈수록 도처에서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이른바 세계화와 더불어 우리는 오늘 날 '이주민의 시대'에 살고 있지요. 한국은 사정이 다르지만 서유럽에서는 현재 대략 인구의 10% 이상이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주민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다른 문화가 만나면서 새로운 경계를, 즉 호미 바바(H. Bhabha)가 말하는 '제 3의 공간'을 형성하는데, 이는 기존에 지켜온 자기문화를 뒤로하면서도 다른 새로운 문화와는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 일종의 혼합적 문화를 갖게 됩니다.
저는 20대초에 이곳 독일로 유학을 와서 이미 삶의 3분의 2를 보내는 한 '경계인'으로서 저의 학문적 관심은 따라서 동서양의 철학과 사상 그리고 문화의 비교연구가 주된 영역일 수밖에 없지요.
제가 말하는 또 다른 의미의 '경계인'은 두말할 나위 없이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비극적 정치가 빚어낸 '경계인'이지요. 한반도를 가로지른 경계는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우선 서로 배척하게 만들었어요. 그러면서도 분단이라는 불안정한 상태를 정상화로 되돌리려는 본능적인 움직임도 촉발시킵니다. 이른바 '배제하며 동시에 통합하는 제3의 공간'을 요구하게 마련입니다.
외국 땅에서 오래 살고 있어서 바로 그러한 '제3의 공간'을 효과적으로 확충할 수 있기에 저는 그 역할을 오랫동안 맡아 왔지요.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지속되었던 '남북해외학자통일회의'도 그러한 예이지요.
남 속에 북이 들어있고 북 속에 남이 들어 있으며 또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인식의 전환이 바로 통일의 전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법정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때의 '경계인'은 시인 김지하가 말하는 '틈'을 여는 사람이지요. 남북 간의 장벽을 허무는 틈을 만들어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는 '제3의 공간'은 굳어진 기존의 권력체계를 허물며 다중심적이고 비동시적인인 그물망의 민주적인 인간과 사회관계를 형성해준다는 뜻에서 틈(interstics)이지요. 바로 이러한 적극적의 의미의 '경계인'을 기회주의자 정도로 폄하하는 한국 일부의 지적 풍토는 자나 깨나 세계화와 선진조국을 이야기하는 그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김상수 - 남과 북의 냉전적인 사고의 틀에서 낡은 국가보안법이란 '덫'을 씌워서 흑백의 단순논리로 갈등을 유발합니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도 폐지시키지 못한 국가보안법은 아직까지 한국사회의 원죄가 되고 있고요.
세계화는 이전인 김영삼 시대 때부터 세계화를 얘기했지만 이는 근거 없는 허세나 자가당착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좀 더 시야를 돌려서, 저는 '경계인'에 대해서 해석하기를 남과 북의 경우에는 그 둘을 잇는 촉매제, 또는 갇히고 틀에 박힌 한정적인 시각을 뛰어넘는 역할, 이는 비단 남북한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방금 말씀하신 '굳어진 기존의 권력체계를 허물며 다중심적이고 비동시적인인 그물망의 민주적인 인간과 사회관계를 형성해준다' 는 해석의 측면에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남북관계 또한 이제 개별 국가의 독자적이고 국지적인 해결능력의 범위를 이미 넘어서고 있고, 국가 간 역내 간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지요. 이는 세계정치의 시대적 흐름이 협력 지향적 추세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경계인'을 세계성의 추세로도 이해하는 시각입니다. 이는 지역 내의 갈등구조를 혁파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는 측면이지요. 물론 갈등을 유발하면서 얕은 이익을 꾀하겠다는 세력은 남과 북에 다 존재합니다. 갈등을 생산하는 조건이란 그것을 유발하는 생각들, 즉 '관념'도 있겠고 고립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법'이나 '제도'도 남아있으며 그로 인한 반시대적인 '행위'들도 다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 사회가 뒷걸음치는 현상을 보이면서 지체를 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를 신장시키고 세계 일원의 국가 공동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각이나 사고는 더 개방될 수밖에 없으며 더 적극적으로 '경계인'의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는 방법으로도 실존적으로도 커뮤니케이션의 능력과 역할을 배제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경계인'으로 선생님은 21세기 동북아시아 국제정치 무대에서 한국의 전략과 선택은 무엇이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한반도의 통일은 동북아시아의 통합의 관건
송두율 - '경계'는 가령 국경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나라와 나라 사이를 갈라 국경분쟁과 같은 갈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동안 유럽에서는 국가단위로 설정된 경계선의 개념이 많은 변화를 겪었어요. 독일통일과 유럽통합의 진척과 함께 국경 통과 때 있었던 여권검사도 없어졌고, 또 환전(換錢)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유럽에서는 여러 차원의 통합과정을 겪으면서 그만큼 기존의 경계개념이 약화되었어요. 이에 비하면 동북아시아의 현실은 이런 변화와는 거리가 아직도 멉니다. 여기에는 유럽과 다른 역사적 맥락이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럽대륙 안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여러 종족과 문화가 섞이면서 오늘의 유럽을 형성한 데 반해, 동북아시아는 침략과 정복이 있었지만 기본단위가 한족 중심의 중국과 한국, 일본이 아닙니까. 또 오늘 날 유럽은 20여개의 국가가 서로 얽혀 복잡한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동북아시아와는 이와 달리 중국이나 일본과 같이 비교적 큰 단위의 국가의 이해관계가 서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지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한반도는 흡사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서 끊임없이 시달린 폴란드와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두말할 것 없이 이렇게 시달리면서 아직도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반도의 통일은 동북아시아의 통합이라는 관점이 우선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한반도를 가르는 휴전선도, 압록강이나 두만강이라는 국경선도 하나가 된 동북아시아에서는 국경선이 아니라, 우리가 다가서면 또 다시 나타나는 지평선이나 수평선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요. 이는 경계선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세계체제로써 보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동북아시아에서는 이러한 시각정립은 아직 멀었습니다. 유럽연합의 통일주화(鑄貨) 유로(Euro)를 보면 발행국가의 상징이 독일은 떡갈나무, 프랑스는 개선문, 이탈리아는 다빈치의 인체해부도 등을 주화의 한 면에 각인하고 있지요. 계산단위 1유로는 공통이지만 이를 발행한 나라를 각자 밝히고 있는 겁니다. 전자는 국경이 없는 세계체제를 지향하지만 후자는 국가의 정체성을 밝히고 있지요. 통합이 되었다고 다 똑같이 되는 것은 아니고 여러 개체국가들이 그 자신의 정체성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지요. 이는 어떤 의미에서 하나 속에 여럿이 들어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들어 있다는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이라는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통합의 정신이 한반도로부터 시작해서 대륙과 해양으로 뻗칠 때 동북아시아통합이라는 희망의 싹을 키울 것입니다.
이러한 희망이 불행하게도 최근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실망스런 현실을 여기 독일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조되어야 할 것은 동북아시아의 통합은 한반도의 통일이 관건이라는 점을 또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동북아시아의 통합의 운명을 좌우하며 동북아시아의 통합은 또 한반도의 통일이 어떻게 성취되느냐에 달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원대한 꿈이 없이 겨우 남북갈등 남남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쟁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분단현실이란 멀리서 보기에는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이명박이라는 반면교사
김상수 - 세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방식은 이미 큰 결함을 보여준 정도가 아니라 자본주의까지 새롭게 해석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들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여기 독일은 유럽 국가들 중에서 영국이나 이태리, 스페인 등과 비교할 때 비교적 경제적인 위기를 덜 겪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한 때 통일 이후 독일경제의 어려움을 얘기하면서 독일식 자본주의인 '사회적 시장경제'는 좌파적 인식의 산물이며 심지어 독일통일의 경제적 어려움을 빗대어 한국도 통일은 신중해야 한다는 식의 담론이 한국에서 성행하기까지 했습니다. '분배'와 '참여'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독일식 자본주의는 '성장', '자유', 그리고 '경쟁'을 중시하는 영국과 미국식 자본주의와 비교할 때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적이며 민주주의 정신에 역행한다는 주장까지 공공연하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 결과적으로 보자면 유럽 국가들 중에서 그나마 경제위기를 견뎌내고 있는 국가가 독일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송두율 - 오늘날 전 세계적 범위에서 요동치는 경제위기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위기가 몰고 온 사회적 불공평과 부정의가 문제입니다. 재정위기와 경제위기를 발생시킨 지구적 범위에서 활약해온 대기업의 사장과 임원들은 기업이 파산이 나도 수억 달러의 퇴직금을 챙기는데 일자리를 잃은 직원이나 노동자들은 내일의 운명을 모른 체 길가로 내몰리는 것이 오늘의 현실 아닙니까?
그래도 독일이나 스웨덴같이 사회복지제도가 나름대로 오래 유지되어 온 나라에 사는 빈곤층들의 처지는 그렇지 못한 나라보다는 낫지만 경제위기가 앞으로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따라 사정은 역시 나빠지리라 생각합니다.
위기를 불러온 당사자들은 계속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데, 이들이 남긴 무거운 짐을 이제 서민들이 떠맡게 되는 현실이 갖는 문제를 언론매체는 매일 성토하고 있지요. 서민의 세금으로 또 다시 사회적 불공평을 땜질하는 식이 된 거죠. 이른바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신자유주의는 가령 사회적 연금체제도 사적 금융기관의 증권이나 채권 또는 부동산투기로 대체시켰는데, 이런 경향은 특히 미국이 심했지요. 부동산위기로부터 시작해서 재정위기를 가져왔고 경제위기가 바로 그런 사실을 밑받침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약육강식의 시장만능주의는 단순히 사회정책에만 머물지 않고 이라크전쟁과 같은 야만적인 대외정책으로까지 몰고 갔지요.
전통적으로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를 강조해 온 독일 등 서유럽형의 복지국가는 그래도 국가가 시장을 통제해 왔고 정치적으로도 유럽통합을 배경으로 그간 미국의 일방주의에 제동을 걸어 왔어요. 다행히 미국에서 오바마가 들어서면서 그간의 잘못된 정책을 교정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데 보수적 정치세력이 얼마나 이에 동의할지는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제가 연초에 미국에 잠깐 들렸을 때 받은 인상은 사회전체가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강한 갈망을 표출하는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을 위해서도 또 세계를 위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중차대한 시기에, 이러한 흐름과는 정반대로 한국에서는 왜 이명박 정권을 선택했는지 저는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대안이 없어서,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등, 여러 이유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보다는 나는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한국인의 현재의 심성 또는 가치관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는 말이 이의 핵심을 드러낸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얼마 전 사회적 약자들이 더 이명박 정권을 더 지지한다는 한국의 여론조사결과를 본 적도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적 불공평을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체제를 보다 더 선호하는 배경에는 집단적 노력에 의한 사회정의 실현보다는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개인적으로는 빈곤에서 탈출을 해보겠다는 욕망이 강하게 지배하는 사회임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실에 대하여 '그렇게 좋아서 선택했으니, 잘 해 보세요'라는 식의 빈정거리는 소리도 없지 않고, 사실 후회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물론 기대에 대한 배신과 실망이 4년 후에 또 다른 선거결과를 가져다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필요한 선택은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삶의 세계를 시장의 절대적 명령에 복종하게 만든 신자유주의의 정체를 철저하게 밝히며 대안을 차분하게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은 이명박대통령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김상수 - 이명박을 선택한 건 여러 가지 요소가 맞물려서 나타난 결과로 저는 이해합니다. 선택을 하고나서 보이는 여러 파행적인 질주에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지만 기실 저는 이런 사태를 내다봤고요. 따지자면, 김대중 노무현의 실정과 그로 인한 지난 10년간 민주주의 착근의 실패가 가장 큰 근인입니다. 아울러 신자유주의의 일방적인 추세에 저항할만한 철학이나 저변 사고가 김대중 노무현 세력에겐 부재했고, 당연히 박정희 식의 개발과 성장의 프레임에 갇혀서 '더 잘 살게 해 주겠다' 는 식의 같은 얘기만 계속 반복했는데, 국민 대중이 느끼기에는 효과는 안보이고 더 잘 살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나날의 경제적 현실과 삶이 더 어려워지니까, 대기업 CEO출신이 뭔가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를 한 것이죠. 이는 무엇보다도 대중들에게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보다 나은 가치를 설득하고 보여줄 만한 내용이나 근거가 지난 10년간 아주 희박한 것에서 연유하기도 합니다마는 근본적인 문제는 지난 정권들이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광범위한 실천이 뒤따라주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저는 봅니다. 이런 현실에서 당장에 눈에 잘 드러나고, 뭔가 화끈하게 청계천을 갈아엎듯이, 잘 보이고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들이 마치 자신에게도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란 국민 대중의 착각의 일반화, 그 정점에서 이명박은 '박정희 짝퉁'으로 등장한 거지요.
▲ ⓒ김상수 |
그렇습니다. '위기란 기회다'가 이명박이 입에서 나올 얘기는 아니지요.
거꾸로 가는 세계인식
송두율 - 미국에서 독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부시의 실정 때문에 미국인은 오바마를 선택했고 노무현의 실정 때문에 한국인은 이명박을 선택했다, 그런데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는 게 문제지요. 미국은 미래를 선택했지만 한국은 과거를 선택한 것이지요. 세계가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려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이 중차대한 시기에, 한국은 이와 반대되는 길을 선택하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이른바 '뉴 라이트'가 퇴조하는데 한국에서는 이와 반대로 '뉴 라이트'가 득세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든 불행한 선택이지요. 이 결과는 이제 경제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교육, 언론,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큰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거라는 점입니다.
지난 10년간 한국사회가 나름대로 이룩한 민주화, 그리고 남북관계에 있어서 긴장완화가 불과 일 년 만에 급격히 무너진 현실의 이면에는 분명히 애초 사회 변혁을 시도했던 세력들의 취약성이 문제라는데 이견은 없을 테고 차라리 무능은 도외시 하더라도 심지어 도덕성에서도 정당성마저 보여주지 못했다는 질타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 과거에만 집착하고 모든 것이 네 탓이라고 티격태격하면서 반목과 분열을 재생산할 수는 없지요. 물론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주적인 정치문화를 앞으로 어떻게 뿌리내리게 할 것인가에 논의의 초점을 모으고 힘을 모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연고주의와 금권만능주의가 판치는 와중에서 정책정당에 뿌리를 둔 정당 민주의나 의회민주주의가 단기간에 활성화되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꾸준히 이 길을 착실하게 닦을 때 정치에 대한 환멸감도 서서히 사라지리라 믿습니다. 이를 위해서 시민사회운동의 여러 부문도 더욱 활성화되어야만 합니다. 경제위기는 과거 어느 때 보다 더 공공의 삶을 위한 정치의 신속한 개입과 결단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시민사회운동의 개입과 압력의 폭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제해결은 이미 비난받고 있는 '시민 없는 시민운동'으로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이명박이라는 반면교사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더 다지기 위한 기회라고도 크게 볼 수 있지요.
국가공동체의 기본 원리
김상수 - 독일 통일 20년이 가까워 오고 있는 오늘, 독일은 정치 경제적인 사회통합은 빠르게 이루고 있지만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통일 이후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가장 큰 과제로 동서독 주민간의 심리적이며 내적인 통합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경제적인 삶의 조건에 못지않게 정서적인 삶의 조건이 차지하는 국가 공동체 기본 원리에 대한 당연한 질문이자 숙제라고 생각하는데요. 이곳에 사시면서 송 선생님께서는 독일통일 20년의 현실을 어떻게 보시고 계시는지요?
송두율 -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년이 되는 금년 가을, 많은 축제와 행사들이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외형적으로 본다면 그간 동독지역의 건물이나 도로도 또 생활수준도 그간 서독의 수준과 많이 비슷해졌지요. 물론 높은 실업률은 아직도 사회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이긴 하지요. 지난 여름, 처음으로 옛 동독과 폴란드의 접경해변에서 휴가를 보냈는데 베를린에도 있는 대형마트가 그 곳에도 줄줄이 들어섰더군요. 옛 동독지역의 모든 경제구조가 결국 서독 중심으로 그간 철저하게 재편되었어요.
통일의 과정이 결국 '흡수통일'이었으니 결과도 그렇게 나타났고 따라서 이런 결과에 대한 후회와 불만의 소리도 높을 수밖에 없지요. 동독의 집권당의 전통을 깡그리 부정하지는 않는 '좌익당'이 구동독지역에서 매 선거마다 20% 전후의 득표를 올리는 것도 이런 정서의 반영이지요.
물론 하버마스 교수나 작가 퀸터 그라스의 주장처럼, 동독의 생활세계, 그 역사와 정체성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헌법에 기초한 점진적 통일론이 통일되던 그 무렵인 20년 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정치의 현실적 힘에 의하여 압도된 셈이지요. 통일 전후 13개월의 일기를 담은 '독일에서 독일로의 도정(道程)' (Unterwegs von Deutschland zu Deutschland)이라는 최근 출간된 책에서도 그라스는 여전히 그러한 아쉬운 생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질적 통일보다 마음의 통일로 가는 길이 더 어렵지만 이 문제를 절대로 피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경고이기도 하지요.
요즈음 저는 동독의 드레스덴 출신의 의사이자 젊은 작가 우베 텔캄프(Uwe Tellkamp)가 동독의 몰락 전에 펼쳐진 주로 인텔리를 포함한 동독 상층부사회의 내적 갈등의 여러 모습을 그린 작품 '탑'(Der Turm)을 읽고 있습니다. 돈보다는 교육과 교양 그리고 문화수준을 부르죠아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 19세기말부터 형성된 이른바 '교육받은 시민'(Bildungsbuergertum)" 이라는 특이한 시민사회문화를 이미 경험한 독일과 다른 문화권에 속한 북한사회에서도 그와 비슷한 현상이 있는지... 이 작품은 작년에 <독일문학상>도 받았지요. 나름대로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김상수 - 20여년 전, 점진적인 독일통일의 여론이 일기도 했었지만 미약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독 주민들의 화급함, 또는 성급함이라고 할까요? 불안했을 겁니다. 내친김에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다시 구동독의 체제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초조함이 일시에 '집단탈출'로 이어졌는데요.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동독주민들의 자유에 대한 의지를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고요. 당시 서독의 정치인들이나 동독의 정치인들은 동, 서독 주민들의 의지에 떠밀려서 통일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던 경황도 있고요. 어떻습니까? 남과 북의 관계를 옛 동독의 사회가치에 비쳐볼 때, 북의 사회가치에서도 지키고 가꾸어야 할만한 것이 있다면, 또는 독일통일의 과정에서 간과한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의 현재 사회 가치 중에서 지키고 가꾸면서 남쪽이 받아들일 만한 것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공존의 양식(樣式)
송두율 - 물론 하루라도 빨리 행복이 약속되었던 서독체제에 합류되기를 바랐던 동독사람들의 조급성이 문제였지요. 이러한 상황변화를 통일로 몰고 간 서독의 정치력이 없었으면 독일통일은 불가능했다는 점도 인정해야만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버리기에 아까운 유산들이 있었지만 이를 빨리 폐기처분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동독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여성의 직업생활을 위한 육아와 탁아, 그리고 보육시설이나 폐기물의 수거와 재활용제도에 대한 아쉬움 등을 이야기하더군요.
앞서 말한 텔캄프의 소설에도 동독에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 사는 여러 가족들이 함께 모여 파티를 하면서 오가는 대화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족중심으로 치르는 서독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집단생활이 강조된 생활세계였지요. 이러한 분위기는 북한에서 보다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옆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사는 도시의 대단위 아파트단지의 삭막한 생활을 떠 올리면 비교가 될 겁니다. 물론 개인의 생활세계는 중요하고 또 보호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개인이 다른 개인과 소통함이 없이 닫힌 삶을 영위한다면 이는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큰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이른바 북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인 '새터민' 사람들도 많이 지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생활세계의 경험은 완전히 틀렸고 다른 생활세계의 경험은 모두 옳다고 보는 태도는 공존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찾는데 있어서 가장 파괴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능력과 경쟁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공동체적 삶의 가치도 인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밑으로부터의 연대
김상수 - 오늘 날의 경제체제에서 경제생산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마치 생산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팽창과 확장으로 내달려온 경제체제는 계속해서 문제를 야기할 뿐 답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만 이런 경제체제를 바꿀 수 있을까요? 공존하고 상생하며 화해하는 체제 말입니다.
송두율 -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경제위기의 심화와 더불어 우선 현재 많이 논의되는 문제는 이러한 위기를 불러온 기업에 대한 국가의 규제라는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이 논의가 현재 너무 도덕적인 질타의 차원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즉 최대의 이윤추구를 위해 모험을 했다가 실패한 그 책임을 지는 대신에, 심지어는 수천만 불의 퇴직금을 챙기는 최고 경영자들의 도덕적 불감증문제에 논의가 너무 집중되고 있습니다. 하버마스도 이 문제를 지적하면서 공동체의 안녕과 복지를 지켜주는 것이 바로 정치의 몫이지 자본주의 몫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반문합니다.
어떻든 시장의 자율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오늘의 문제를 다시 시장의 자율에 맡길 수는 없다는 뜻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이제는 은행의 국유화라는 말이 나돌 정도가 되었지요. 영국에서 활동했던 폴란드 출신의 정치경제학자 오스카 랑게(Oskar Lange)가 60년대에 모순 없는 완전한 시장경제를 믿는 것은 완전한 계획경제를 믿는 것과 같다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둘 다 모두 '보이지 않는 손'을 믿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에서 그는 그렇게 지적했습니다.
시장만능주의가 남긴 폐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경제와 사회질서를 세우는 정치의 역할이 나라마다 조금 다른 양식으로 나타나기 마련이겠지요. 국가의 역할이 전통적으로 제한된 영미식 자본주의와 복지국가형의 서유럽자본주의와 그리고 강한 국가주도의 경제체제를 경험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또 달리 나타나겠지요. 미국에서는 오바마가 등장했고 유럽연합에서는 유럽통화를 바탕으로 한 경제시스템(regime)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오바마가 그러나 월가 출신의 엘리트의 손아귀로 부터 과연 벗어날 수 있을지, 또 이러한 유럽적 구상은 가령 기존의 자국민 우선의 고용정책이나 산업정책으로부터 자유로울지, 모든 상황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지요.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지 변화는 필수적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었고 이른바 미국주도의 세계은행이 내건 워싱턴 합의에 대한 회의와 비판의 소리가 그 동안 커졌지요. 특히 중국의 비중과 역할이 커지면서 냉전이후의 미국중심의 일극체제가 다극화되는 중요한 변화가 일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긍정적 변화도 그러나 세계적 범위에서 '밑으로부터의 연대'가 없다면 위기와 더불어 지금 태동하는 새로운 세계질서에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위기이전의 그것과는 다르지 않는 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겁니다. 한국의 진보역량도 이러한 연대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동참해야할 것입니다.
김상수 - '세계적 범위에서 밑으로부터의 연대'를 말씀하셨습니다. 동시에 이런 요청은 소비와 성장을 미덕으로 여기는 현재의 경제시스템이 반인간화, 환경 파괴, 자원의 고갈, 전쟁 등 각종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겪으면서 보다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인류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가능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연대는 억압적인 체제를 유지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항상 위협받고 있습니다. 중심부의 일방적 지배에 대한 주변부의 저항이나 획일성에 대한 다양성의 추구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떻게 '연대'가 가능할까요?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연대'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세계의 동시성(同時性)이 어떤 바람직한 변화를 모색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마는.
송두율 - 이른바 세계화와 정보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세계는 더욱 더 동시화 되었지요. 하이네가 파리에서 기차를 처음 보고 이제 공간은 기차에 의해서 살해되었다고 했는데 만약 오늘날 그가 살아있다면 인터넷에 의해서 공간이 살해되었다고 말하겠지요. 어떻든 실시간의 속도로 지구를 하나로 만드는 힘은 이제 지상에 어떤 변방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세계화가 과연 중심부와 주변부의 차이를 극복하게 만들었나요? 오히려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를 더 심화시켜왔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지요. 또 세계화의 덕을 보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다고 볼 수 있고요. 에이즈와 결핵퇴치를 위해 자주 아프리카대륙을 찾는 제 둘째 아들이 아프리카 현지에서 유럽수준의 일류 호텔의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가 살아왔던 세계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빈곤에 너무 많은 충격을 받는다고 실토합니다.
세계적 부의 분배에 나타나는 불공평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구적 범위에서 많은 개인과 집단이 10여 년 전부터 '다른 세계도 가능하다'는 구호 밑에 연대해서 '세계사회포럼'을 구성하고 반세계화운동을 지피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비정부기구의 진열장이니 제3세계의 적극적 참여가 아직 미진하다는 비판이 있고, 현재 진행되는 세계화를 전통적인 제국주의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느냐, 아니면 탈중심, 탈영토적인 '제국'이냐에 따라 대응전략도 물론 다르지요. 어떻든 모든 것을 동시화하고 하나로 만드는 세계화의 횡포에 저항하는 크고 작은 힘을 연결하고 연대를 강화하는 네트워크는 이미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이러한 연대에 우리도 과연 얼마나 절박하게 동참하고 있는지 반성할 필요가 요청되지요.
김상수 - 문제는 끊임없이 우리 내부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하며 들여다 볼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남북의 문제도 그렇고요. 아직 한국은 근대성 내지는 현대성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어느 부분들은 유럽이 이미 100년 전에 겪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오늘 날 21세기에도 진행하고 있는 형편이기도 합니다.
송두율 - 인터넷을 보니 미국의 아이비 리그 중의 하나인 다트마우스 대학총장으로 한국계 김용 교수가 선임됐다는 뉴스를 읽었습니다. 당연히 기쁜 소식이지요. 그러나 기사의 초점은 주로 한국인의 일원이 미국의 유수한 대학의 총장자리에까지 올랐다는 데 있지, 개인의 학문적 업적 또는 사회적 공헌에 기사의 비중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미국의 명문대학은 어떻게 보면 한국적 근대 또는 현대가 지향하는 최고의 표상과 같은 존재였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지금은 그런 경향이 더 심해졌다고 보아야겠지요. 한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유학생을 보내고 있는 나라가 아닙니까.
근세의 길목에 들어서면서 조선은 중화권으로 부터 벗어나긴 했으나 곧 일본의 식민지에 강제 편입되었고 전후에는 냉전체제 속에 포섭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근대나 현대는 일본이나 미국의 여과를 거친 근대나 현대였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근대의 길을 식민지 근대화로 정당화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견해에 대한 비판을 좌경이나 심지어는 친북적인 자학사관이라고까지 비난하는 논의를 지켜보면서 정말 역사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됩니다.
그러나 분단의 역사는 어디까지나 고통과 비극의 역사지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분단 덕택에, 철저한 반공과 친미가 오늘의 한국을 가능케 했다는 위험한 논리는 '친북보다는 친일이 낫다'는 식으로까지 비약하더군요. 쉽게 말해서 힘 있는 자에게 빌붙어야 떡고물이 생긴다는 이러한 논리가 오히려 자학사관이 아닐까요.
어떻든 유럽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한국은 너무 미국이나 일본을 복사하는 데 정신을 쏟고 있지 않는가 하는 느낌을 갖지요. 세계에는 이 두 나라만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이른바 지구화나 세계화가 현재 미국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최근의 경제 위기를 통해서 보지 않습니까. 피해망상이나 과대망상으로 끝나지 않는 정당한 자기비판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시점에 우리 모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조적 위상으로의 '경계'
김상수 - 저는 이번 선생님과의 대화의 시작에서 '경계' 또는 '경계인'의 해석을 확장시키고자 했습니다. 지구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동시에 '경계'는 존재하며 도리어 '경계'야말로 지구공동체, 다른 말로 세계 공동체의 자기의미나 입장을 선명하게 하면서 세계에 동참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송두율 - 결국 '경계'는 선이지만 안과 밖을 동시에 아우르는 제 3의 위치라는 창조적인 위상을 지닐 수도 있지요. 오늘과 같이 복잡한 세계에서 '경계'는 수 없이 많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곳에 사는 2세들이 얼마 전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조직한 어떤 세미나에서 저는 한국과 독일이라는 경계에 대해서만 고민하지 말고, 한국계 2세 독일인이지만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남미에서 활동할 수도 있기에 앞으로는 한국-독일-미국-남미 등의 중첩적인 여러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 수도 있다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경계'를 고정적인 어떤 것으로 보지 말고,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우리가 다가서면 또 다시 만나게 되는 무한한 지평선이나 수평선으로 볼 때 우리는 '세계 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총체적 관점으로의 인간과 자연
김상수 - 선생님의 책 '경계인의 사색'에서 오늘 날 '자연'을 볼 때 미학과 윤리학, 그리고 경제학 사이에서 보는 시각을 말씀하고 계시더군요. 오래전부터 상상력의 윤리학이란 말도 물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경제와 자연 생태에 대한 물음도 날카롭게 대두됐습니다.
송두율 -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오랫동안 우리의 사고체계를 지배해왔던 이분법은 무엇보다도 주체와 객체의 구별이지요. 즉 살아 있는 정신과 대상으로서의 물(物)이었지요. 데카르트나 칸트철학, 뉴톤의 물리학에 기초한 근세과학이 그런 전통 위에 서 있지요. 이러한 입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과학사회학자이자 과학사가인 프랑스의 브루노 라투르는 '판도라의 희망'이라는 책에서 주관과 객관 대신에 '인간적인 것'과 '인간적이 아닌 것'으로 구별하자는 제안을 했지요. 지금까지 사용하는 '물'이라는 개념이 본래 '인간적인 것'과 '인간적이 아닌 것'이 서로 혼재하며 상호작용하는 어떤 종합적인 성격을 띄운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어요. 이렇게 인간과 자연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보려는 움직임은 최근 지리학과 생태학, 경제학 등에서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문제를 노장의 상생(相生)이나 불교의 연기(緣起)사상과 관련해서, 또 인간이 남긴 고성(古城)이나 폐허(廢墟)가 주는 멜랑콜리한 감정, 또는 알프스와 같은 자연이 주는 장엄성의 감정이 인간에게 던지는 강한 윤리적 호소력에 관심을 갖고 이를 상상력의 미학과 윤리학의 주제로 삼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김상수 - '경계인'으로 선생님은 한편으로는 동서양 사상의 새로운 접점들을 찾는 것에 경주해 왔습니다.
송두율 - 동서양의 여러 사상의 크고 작은 물줄기를 쫓다보면 그 많은 줄기들이 어떤 식으로든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이 중에는 직접적으로 서로 영향을 준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결국 만나서 같이 흐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전자의 예로서는 가령 쇼펜하우어와 니체, 화이트헤드와 불교사상을 들 수 있겠지요.
후자의 경우로는 2004년 3월, 1심에서 펼친 나의 최후진술에서 '경계인'을 설명하기 위해 원용된 흰 소와 검은 소를 묶고 있는 제 3으로서의 '끈'을 이야기한 '쌍윳따 니까야(阿含經)'의 설법과 신인가 악마인가를 묻는 가치체계에 대해서 진리는 끈이자 연속이며 이것이 바로 배제하고 통합하는 제 3이라고 주장하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미쎌 쎄르의 철학은 간접적이지만 시공을 넘어서 만나고 있지요.
화엄(華嚴)사상이 가르치는 것처럼, 나는 동서양의 관계를 상즉(相卽)과 상입(相入)의 세계라고 봅니다. 동양은 서양이 아니기 때문에, 또 서양은 동양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즉의 세계지요. 이 때문에 서양은 동양으로, 동양은 서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입의 세계를 성립시키고 있지요.
그러나 서양의 동양화(東洋化)보다는 동양의 서양화(西洋化)가 훨씬 쉽다는 미셀 푸코의 고백처럼 이 관계는 대칭적인 것은 아니었지요. 그간 사정은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서양이 먼저 동양을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구성하고 이를 결국 파괴하고 식민화시킬 수 있었던 힘으로서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비대칭적 조건에 놓여있는 상즉과 상립의 세계를 비교철학적 관점에서, 또 제3세계의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이런 비대칭적인 조건을 재생산해온 여러 조건들에 대해서 비판적 연구를 계속 해오고 있지만 역시 지난한 작업입니다. 금년 여름학기로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면 이 작업을 보다 본격적으로 진행시킬 계획입니다.
김상수 -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2009년 3월 4일 베를린에서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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