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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바닥불사론', 헛발질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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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바닥불사론', 헛발질을 멈춰라

[한반도 브리핑]<110> MB식 불개입 정책의 결정적 오류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넘어 가파른 대치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북쪽은 10.4 선언 이행을 요구하며 대남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고 이명박 정부는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의연하게 버티겠다고 '화답'했다.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협력에 매달리기보다는 남북관계 중단까지도 감수하겠다는 결연한 정책 의지를 보인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기존의 포용(개입) 정책을 포기하고 고립화(불개입) 정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기 한국의 대북정책은 북한과의 관계 확대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이른바 개입(engagement) 정책이었다. 교류와 접촉, 화해와 협력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도모하는 정책은 사실 그 연원이 노태우 정부의 7.7 선언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10년만의 정권교체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 퍼주기와 끌려 다니기로 귀결되고 말았다는 정치적 판단에 토대하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의 중단을 불사하고서라도 퍼주기와 끌려다니기를 결코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입장에 서 있고, 오히려 남북관계 중단이 북한의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의연함'과 차제에 바닥까지 가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바닥 불사론'이 그 대표적인 모습들이다.

▲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이명박 대통령과 남북 경색 국면에서 잘 보이지 않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교류를 통한 변화냐 교류 중단을 통한 변화냐

남북관계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도모하는 개입의 '방식이' 시행착오를 겪었다면 그 방식을 수정하고 변화시키면 되지만, 개입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면 개입정책을 폐기해야 할 것이다. 개입정책이 북을 변화시키는 데 부족했다면 보다 효율적 방법으로 개입을 하면 되지만, 개입정책이 애초부터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불가능한 것이었다면 그 정책을 거둬들여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개입의 방식을 '개선'하기보다는 개입 자체를 '철회'하는 방향으로 가고 말았다. 사실상 북한과의 모든 관계를 중단하는 이른바 고립화(isolation) 및 불개입 정책(disengagement)으로 정리된 것이다.

한국의 대북정책이 개입정책일 수도 있고 고립화정책일 수도 있다. 항상 어느 정책이 옳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지금껏 대북 개입정책을 해 온 것을 비판하고 이제 고립화정책으로 가겠다는 이명박 정부를 탓할 필요도 없다. 자신의 대북 철학에 기초해 개입이 아닌 고립화를 선택한 것 자체를 탓해서도 안 된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선택한 대북 고립화정책이 과연 성공할 수 있는가이다. 홧김에 고립화를 택한 것이 아니라면, 지금 시기 이명박 정부의 고립화정책이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면 분명 재고해야 한다. 개입정책 대신 고립화정책을 택한 것이 오히려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게 된다면 훗날 국가적으로 지불해야 할 코스트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공들여 쌓아왔던 남북관계를 무너뜨리며 고립화정책을 추진했다가 실패할 경우, 다시 개입정책으로 돌아서야 한다면 그 때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은 결국 이명박 정부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이명박 정부의 대북 고립화정책은 필경 실패하게 되어 있다.

왜 헛발질인가 1. 北, 美와 통하면 '상황 끝'

우선 미국이 북한에 강력한 개입정책을 추진할 경우 한국 정부의 불개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내년 초 출범하는 오바마 신정부는 일찍이 북한과의 양자협상과 '강인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강조해왔다. 독재 국가의 지도자와도 조건 없이 만날 수 있다는 오바마의 입장은 당선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당선 직후 공개된 '오바마-바이든 플랜'에서도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 양자협상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고, 오바마 당선자의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CAP)의 제안서에는 취임 100일 이내에 고위급 특사를 북에 파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북 포용정책의 오랜 신봉자인 조 바이든 부통령과 방북 경험 및 북한과의 인적 채널을 갖고 있는 프랭크 자누지 한반도팀장의 라인업에 더해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국무장관 임명은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북한과의 진지하고 적극적인 외교에 나설 인적 자원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 말에 성사되었던 북미 고위급 상호 방문과, 비록 끝내 불발됐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마저 충분하다. 북한 역시 미국의 적극적 협상 의지에 응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지난 2000년의 실패의 경험을 뼈저리게 실감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오랜만에 도래한 민주당 정부와의 진지한 대타협을 무조건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 건강이상과 후계구도에 신경 써야 할 대내적 상황과 2012년 강성대국의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할 정치적 환경도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게 할 주요한 요인들이다.

결국 한국의 대북 고립정책에 반해서 미국의 적극적인 대북 개입정책이 진행되고 실제 성과를 낼 경우 이명박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중단을 통해 굴복을 받아내고 변화를 얻어 낼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대 국가를 고립시킴으로써 그로부터 정치적 양보를 얻기 위해선 그 국가에 대한 전면적인 혹은 물샐틈없는 고립화가 이뤄져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와 김정일 위원장의 협상이 지속되고 북미관계가 진전된다면 한국의 고립화정책은 처음부터 효용성이 상실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북한의 통미봉남에 걸려 한국의 외교적 고립만 커질 가능성마저 존재한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오바마 행정부와의 한미공조를 자신하며 북미 관계가 쉽게 진전되지 못할 거라고 미리 예단하는 것도 사실은 북미관계 진전을 부담스러워 하는 반증이기도 하다.

왜 헛발질인가 2. 내핍과 고립에 익숙한 北

둘째, 한국 정부의 불개입으로 인해 북한이 입을 피해가 크지 않다면 이 정책은 또한 성공하지 못한다. 그동안 대북 개입정책으로 북한과의 협력 사업을 계속하고 대북 지원을 지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를 전면 중단하고 있는 지금 북이 겪을 피해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이번 '12.1 조치'에서 보듯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의 중단에도 북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의 경우 북한은 3만5000명 정도의 임금 수입이 끊기는 피해를 입지만 남측은 88개 기업이 문을 닫아야 하는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관계 중단으로 인해 북이 입게 되는 피해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내핍과 고립에 익숙해온 북한에게 일시적인 경제적 손실은 사실 그들이 내세운 정치적 명분과 요구를 위해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1990년대 중반 참혹한 식량난을 겪고도 북은 체제유지를 위해 고난의 행군을 강행했고 체제인정과 안전보장을 위해 미국과의 전면대결도 불사했다. 진행되던 남북협력 사업이 중단되고 매년 주던 식량지원이 끊긴다고 해서 북이 당장 그 손실 때문에 무릎 꿇고 나올 거라는 기대는 사실 주관적 희망사항일 뿐이다.

오히려 전면중단으로까지 치닫는 남북관계는 한반도의 긴장고조와 대외신인도 감소로 인해 한국의 경제적 환경이 악화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남북관계가 전면 차단된 채 한반도의 군사적 충돌 위험까지 거론되며 위기 상황이 지속될 경우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라는 대내적 요구 역시 북한 보다는 남쪽에서 더 크게 대두될 것이다.

남북관계 중단을 감내할 만한 정치적 의지 측면에서도 북한보다는 남한이 훨씬 더 취약한 게 사실이고 보면 대북 고립화 정책으로 오히려 정치적 부담이 증대되는 것은 북이 아니라 남쪽이 된다. 이처럼 관계중단을 불사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고립화정책은 기실 북쪽보다 남쪽에 더 큰 경제적 손실과 정치환경적 부담을 주고 있을 뿐이다.

▲ 1년만에 멈춰선 경의선 화물열차 ⓒ연합뉴스
왜 헛발질인가 3. '아무 것도 할 게 없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의 불개입정책은 북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개입정책이 북을 변화시키는 수단과 방법에서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면, 지금의 고립화정책은 북을 변화시킬 뚜렷한 수단과 지렛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언급한 '기다림'은 사실 북이 변하기 전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고집과 함께 그 이면에는 '아무 것도 할 게 없다'는 속수무책의 반영이기도 하다. 북이 개성공단 폐쇄까지 거론하면서 압박을 한다 해도 이명박 정부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소극적 버티기 외에 상황을 변화시킬 별다른 수단과 지렛대가 없다.

애초부터 한반도에서 한국 정부는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기 힘들다. 전쟁은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열외의 정책 옵션이기 때문이다. 북을 혼내줘야 한다는 정당성과 변화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이 아무리 높다 해도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드는 전쟁 용인의 수준까지 이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처럼 최후의 카드 사용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한반도 현실에서 불개입은 결국 문을 걸어 닫는 것 외에 다른 정책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결국 이명박 정부가 은근히 기대할 것은 북한 내부의 정치적 변동 가능성뿐이다.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주목하고 '급변사태'나 작전계획 5029를 운운하는 것, 대북 전단 문제에 소극적인 것, 그리고 북한 인권에 '열과 성을 다해' 노력하는 것에서 우리는 북한 내부의 전변을 기대하는 이명박 정부의 무의식이 작동하고 있음을 본다.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문을 닫고 관계를 중단하는 것 외에 마땅히 할 게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통령과 참모진은 기다리면 저절로 북이 변화할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을 아예 신념으로 신봉하고 있는 듯하다.

경쟁의 승자가 보이는 패자의 자세…이 무슨 '겸손'?

이명박 정부의 대북 고립화정책을 보고 있노라면 냉전 시기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연상하게 된다. 북한이 경제성장을 앞서가고 국력에서도 우월했던 당시 상황에서 이승만 정부와 장면 정부 그리고 1960년대까지 박정희 정부는 북한의 대남 교류 협력 제안을 거부하고 부인하기에 급급했다. 체제경쟁에서 열세에 놓였던 까닭에 소극적으로 문을 걸어 잠글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체제경쟁이 남쪽의 승리로 확정되고 북의 체제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21세기 탈냉전 시기에 북한의 10.4 선언 이행 요구와 개성공단 확대 제의에 선뜻 나서지 않고 변화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남북관계 중단을 감수하려는 불개입정책은 우리가 과거 체제경쟁의 열세 상황에 있는 게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게 한다.

우리가 자신 있는 만큼 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북을 대화와 협력의 장으로 끌어내야 할 판에, 끌려가지 않겠다며 문을 닫고 기다리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고 시대착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오바마처럼 대북정책의 목표는 단호하되 그것을 이루기 위한 접근방식은 자신감만큼 유연하고 실용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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