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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국가자본주의가 속살을 드러냈다"

촘스키 "미국은 기업 이익을 대표하는 1당 체제"

금융위기의 폭풍이 몰아친 미국의 자본주의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세계의 주요 언론들은 미 연방정부가 금융기관에 대규모 구제금융을 투입하면서 시장이 국가의 규제를 받고 기업은 보호를 받는 시대가 왔다며 각종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이 사회주의가 됐냐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명예교수는 정부의 도움, 즉 국민들의 세금으로 기업들이 사적인 이윤을 창출하는 체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모습을 통해 그같은 속성이 드러났을 뿐 국가가 기업들의 손실을 '사회화'함으로써 기업들이 연명하는 체제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고 말했다.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촘스키 교수는 지난 10일 아일랜드에서 발행되는 <아이리시 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고 미국을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 체제로 규정했다.

투자자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해주지 않을 경우 투자금을 회수하거나 통화를 공격하는 방법으로 정부를 응징한다. 그같은 체제는 금융자유화 수준이 가장 높았던 19세기에 성립됐으나, 대공황과 2차대전을 겪으며 자본 이동을 제약하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구축되면서 약화된다. 그러나 촘스키는 1970년대 전후 체제가 무너지고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불면서 금융자유화가 다시 유행한 결과 최근과 같은 금융위기의 씨를 뿌렸다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이 그들만의 '가상 의회'를 만들어 정부 정책에 찬반투표를 던지는 것은 곧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촘스키는 "정치란 대기업들이 사회에 던진 그림자"라는 미국의 사회철학자 존 듀이의 말을 인용, 미국의 정당들은 모두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진보적인 법안이 통과되고 사회복지가 향상되는 것은 정당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다음은 촘스키가 <아이리시 타임스>에 보낸 기고문의 주요 내용이다.
▲ '나를 구제하라.' 미국 정부의 금융구제안에 반대하는 시위 ⓒ로이터=뉴시스

미국 자본주의의 반민주주의적 속성이 드러나다

미 대선의 전개 양상과 금융위기가 풀려가는 모습은 정치와 경제 시스템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위기 해결을 위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처음으로 내놨던 방안은 전체주의적 측면이 강했다. 따라서 즉각 수정됐다. 1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에 대한 구제금융을 두고 정부와 협상한 경험이 있는 제임스 리카즈는 이번에 나온 구제금융안이 로비스트들의 엄청난 로비에 의해 수정됐다면서, "초대형 금융기관들은 부실 자산을 떨어버리며 확실한 승리를 챙겼다"고 설명했다.

이번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앨런 그린스펀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시절 조장했던 집값 거품이 터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은 부시 시대의 경제를 지탱해 왔는데, 미국 경제는 해외 차입과 빚을 기반으로 한 소비 지출에 의해 유지됐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원인은 더 근본적인 곳에서 찾아질 수 있다. 지난 30년간 진행된 금융자유화가 그것이다. 금융자율화는 한 마디로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를 최대한 없앤 것이다.

그같은 조치들은 심각한 역풍을 보다 자주, 그리고 보다 심각하게 맞게 될 것이라 예상되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인 현재의 상황이 그러하다.

금융자유화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렸던 소수의 세력들은 무너져가는 금융기관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국가 개입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고, 그 역시 예상된 것이었다.

그같은 국가개입주의는 국가자본주의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윈프라이드 뤼그록과 롭 반 튤더라는 국제경제학자들은 15년 전 연구에서 <포춘>지 선정 100대 기업 중 최소 20개는 정부로부터 보호받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고, 나머지 다른 기업들도 자신들의 영업 손실을 '사회화'해 달라고 정부를 향해 요구함으로써 엄청난 이득을 얻는다고 분석했다. 납세자들의 돈으로 이뤄진 최근의 금융구제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그들은 정부의 개입이 지난 2세기 동안 하나의 법(rule)이 되어 왔다고 결론내렸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라면, 선거에 나온 후보들은 그같은 문제를 쟁점으로 삼아 위기의 근본 원인과 해결책을 찾고, 위기로 인해 고통 받는 민중들이 (문제의 원인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권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할 것이다.

존 이트웰과 랜스 테일러라는 경제학자들은 10년 전 금융자유화의 극단적인 위험을 경고하는 글에서 금융시장은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낮게 평가하고) 시스템적으로도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거래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이 치러야 할 대가가 엄청나게 큼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은 그걸 제대로 계산하지 않는다.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효율적인 경제체제에서 이뤄지는 것 보다 높은 위험을 무릅쓰게 한다는 것이다.

금융기관들이 하는 일이란 리스크를 잘 관리해서 자신들에게 손실이 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들에게'라는 말이다. 국가자본주의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의 영업 방식 때문에 금융위기가 닥쳐도 그렇게 한다.

전후 체제의 붕괴는 민주주의의 붕괴

금융자유화는 경제영역이 아닌 곳에서 더 큰 효과를 보고 있다. 금융자율화는 민주주의를 겨냥하고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투자자와 대부자(기관)들로 구성된 '가상 의회'를 만든다. 투자자들은 정부의 각종 정책을 면밀히 감시하고 그 프로그램들이 수익을 올리는데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면 '반대투표'를 한다.

투자자와 대부자들은 투자금을 회수(capital flight)하거나 통화를 공격하는 등 금융자유화로 가능해진 각종 방법들을 동원해 (자신들의 수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투표'할 수 있다.

2차 대전 후 미국과 영국이 자본과 통화를 통제하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구축한 것은 그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은 반파시즘 저항운동에서부터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이르기까지 매우 강력하고 급진적인 민주주의적 조류를 형성케 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정부가 대중의 의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했다.

영국 협상단에 있었던 존 메이나드 케인즈는 정부가 자본의 이동을 제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도록 한 것이 브레튼우즈의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70년대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하고 신자유주의 시대가 오면서 미 재무부는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을 '태초의 권리'로 여기고 있다.

경제사학자인 베리 아이켄그린에 따르면, 남성들의 보통선거권이 없고 노동조합주의도 등장하지 않았으며 노동당의 의회 진출도 없었던 19세기에는 정부가 '정치화'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자본이 치러야 하는 비용은 일반인들에게 쉽게 전가될 수 있었다. 투자자들로 이뤄진 가상 의회는 그걸 가능케 했다.

그러나 대공황을 거치며 대중들이 급진화하고 반파시즘 전쟁을 겪은 뒤 귀족들은 더 이상 사적인 부와 권력을 휘두를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브레튼우즈 시스템은 민주주의에 대한 제약을 자본이동에 대한 제약으로 대체시켰다.

하지만 전후 체제가 무너지자 민주주의는 다시 제약을 받고 있다. 일반 대중들은 통제당하고 주변화한다. 그같은 양상은 미국과 같이 기업들의 주도력이 강한 사회에서 더욱 뚜렷하다. 선거에서 홍보 대행 산업이 활개를 치는 것은 대중을 통제하고 주변화하는 하나의 사례다.
▲ 노엄 촘스키 MIT 명예교수 ⓒ프레시안

20세기 최고의 사회철학자 존 듀이는 "정치란 대기업들이 사회에 던진 그림자"라며 그런 상황은 "언론 등 정치 선동의 수단을 지휘하면서 은행과 부동산, 산업을 사적으로 통제함으로서 사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에 권력이 있는 한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나눠진 미국의 정당 체제는 기업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측면에서 사실 1당 체제다.

물론 두 당에는 차이점이 있다. 래리 바텔스는 그의 저서 <불평등한 민주주의>에서 지난 60년간 민주당 집권 기간 동안 중산층의 실질 소득은 공화당 집권 시절 보다 2배 빨리 성장했고, 빈곤층(working poor)의 실질 소득은 6배 빨리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양당의 차이는 발견된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진보적인 법안이나 사회복지는 위에서 선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언제나 대중들의 투쟁으로 쟁취되어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당들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그러한 차이들을 구분해 내야 한다.

대중들의 투쟁은 성공할 때도 있지만 실패할 때도 있다. (따라서) 대중들의 정치적 요구에 제대로 반응하는 민주주의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거가 열리는 4년마다가 아니라 매일 같이 그런 투쟁을 해야 한다. 투표소에서 일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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