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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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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75>

역사복기(歷史復棋) I - 일본의 진주만 기습 작전

사람들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 하고 또 예측하려 한다.
  
  필자의 연구 역시 음양오행이라는 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방법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좀 더 이해하고 예측의 정확성을 높여보려는 노력이라 하겠다.
  
  음양오행을 통한 예측을 연습하는 방안으로 과거의 역사적인 일들을 살펴보는 일, 이른바 복기(復棋)를 해보는 것은 상당히 유익하고 즐거운 일이라 하겠다.
  
  복기를 하다보면 너무나도 신기해서 오싹하고 소름이 돋을 때도 많다. 혼자 즐기는 것이 아까울 때가 있어 이런 글을 마련하게 되었다. 올해 들어 국운의 겨울이 다가온다는 등등의 어두운 얘기를 많이 했으니 분위기를 좀 바꿔보자는 생각이기도 하다.
  
  이번 소재는 과거 태평양전쟁의 서막에 해당되는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작전이다.
  
  음양오행을 통한 복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당시의 상황을 먼저 얘기함으로써 이해를 돕고자 한다.
  
  일본의 1931년 신미(辛未)년 만주 무력 점령은 또 다시 6년 뒤인 1937년 정축(丁丑)년에 가서 중일 전쟁을 부르게 된다. 한 번의 무리가 또 다른 무리를 불러일으키니 바로 이런 경우이다. 필자가 자주 언급하는 충운(衝運)이다.
  
  중일전쟁은 또 다시 일본에게 진흙수렁이었고, 만주 북쪽에는 소련이라는 적대세력이 있어 그 대비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장기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동남아시아 일대의 석유나 고무, 기타 금속류 등의 자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그 곳은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였다.
  
  하지만 영국을 위시하여 프랑스, 네델란드 등은 유럽에서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 탓에 동남아 식민지 쪽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유일하게 남은 미국마저 동맹국인 영국이 독일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던 터라, 태평양보다는 대서양 방위가 우선이었다. 이것이 일본의 도박심리를 가져다주었다.
  
  일본의 계산은 초장에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격멸시키거나 무력화시킨 후 재빨리 견고한 방어태세를 갖추면 미국은 유럽에서의 전쟁 탓에 어쩔 수 없이 평화교섭에 응할 것이고 그를 통해 서부 태평양에서 일본의 패권확립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일본은 동남아에서 자원 확보로 중일전쟁에서 성공하고 북쪽에 존재하는 소련의 위협을 능히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일본의 의도는 무척 무모했다고 여겨지지만 당시 상황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일본의 생각은 나름의 충분한 타당성이 있었다.
  
  산업력에서 일본이 밀린다는 것은 일본 정부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서부 태평양이라는 국지적인 조건에서 당장의 전력과 준비 태세는 일본이 미국을 능가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헐(Hull) 국무장관은 일본을 상대로 외교적 압력만을 펼치면서 전쟁 가능성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루스벨트는 다른 대륙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먼로주의적 국민정서를 감안하여 최대한 어느 전쟁에도 끼어들 마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점을 일본도 감지하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선방을 세게 날려 얼을 뺀 후 바로 화해의 손을 내밀어 싸움을 마무리하자는 것이 일본의 기대였고 의도였다.
  
  그러면 지금부터 음양오행을 통한 복기에 들어가 보자.
  
  1941년은 신사(辛巳)년이었다. 신사(辛巳)의 의미는 을목(乙木)인 일본에게 있어 내적 힘이 고갈되고 외부에서는 강력한 압박이 들어오는 해이며 일본의 국운(國運)상 겨울의 문턱에 해당되는 해였다.
  
  이 해 7월 8일 을미(乙未)월 정사(丁巳)일에 일본 내각과 군부는 미국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원칙적인 결론을 내린다.
  
  같은 달 미국을 비롯한 영국, 네델란드, 중국으로 구성된 이른바 ABCD 라인은 일본의 자산을 동결하고 석유를 포함한 물자의 금수조치를 단행했다.
  
  겨우 2년분의 석유비축밖에 없었던 일본에게 석유수출금지는 치명적인 목조르기였다. 이에 일본은 또다시 9월 6일, 병신(丙申)월 정사(丁巳)일 부로 10월초까지 외교적 타결이 없으면 전쟁을 한다는 최종 결정을 하게 된다. 이전의 정사일로부터 60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여기서 벌써 정사(丁巳)라는 코드가 두 번 반복되고 있음을 주목하기 바란다.
  
  계속 사태가 악화되자, 육군 장관 출신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은 12월에 가서 전쟁을 개시한다는 결론을 11월 5일에 내린다. 무술(戊戌)월 정사(丁巳)일이며 또 다시 60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왜 이렇게 정사(丁巳)라는 코드가 반복되는 것일까? 정사라는 의미가 무엇이 길래 일본이 그런 결심을 내리는 것일까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그것은 을목(乙木)인 일본에게 있어 용기를 내어 국면을 타개하고자 하는 운세인 것이다.
  
  이제부터 전쟁은 초읽기에 들어섰으니 좀 더 정밀하게 추적해보자.
  
  11월 5일에서 10일 지난 15일 정묘(丁卯)일에 일본은 항공모함 함대에 의한 진주만 기습 작전을 최종 승인한다.
  
  그리고 상황이 더욱 악화되자 10일 뒤인 11월 25일, 정축(丁丑)일에 6척의 항공모함과 335 대의 항공기로 구성된 일본의 기동함대는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면서 무선통신을 침묵시키고 탐지를 피해 북쪽으로 타원을 그리면서 나아갔다. 북태평양의 거센 겨울 파도를 헤치면서 말이다.
  
  기동함대는 진주만 기습 전 언제라도 협상이 타결되면 즉각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인 11월 26일 무인(戊寅)일에 헐 국무장관은 중국에서 일본의 즉각적 병력 철수가 양보할 수 없는 미국의 입장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낸다. 이 시점이 사실상의 태평양전쟁 개시일이라 할 수 있다.
  
  일본 함대는 출항 뒤 10일이 지난 12월 5일 정해(丁亥)일에 하와이 진주만 북서쪽 수백 킬로미터 지점에서 외교적 타결 소식을 기다리며 공격 준비태세에 들어갔다.
  
  아무런 소식이 없자 기동함대는 진주만을 향한 최종 공격 코스로 진입했고 만 하루가 조금 지난 기축(己丑)일 새벽 미명(未明), 일본의 항공기들은 진주만 공습을 위해 항공모함 갑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개시된 것이다.
  
  이제 정리해보자.
  
  7월 8일 정사(丁巳)일 -- 미국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원칙적인 결론
  9월 6일 정사(丁巳)일 -- 10 월초까지 외교적 타결이 없으면 전쟁을 한다는 결정
  11월 5일 정사(丁巳)일 -- 12월에 전쟁을 개시한다는 결론
  
  정사일로부터 다음 정사일은 60일 간격이니 당초의 결정에서 최종적 전쟁 결심까지 120일이 걸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10 일 간격으로 전쟁을 향한 발걸음이 진행된다.
  
  11월 15일 정묘(丁卯)일 -- 항공모함 함대에 의한 진주만 기습 최종 승인
  11월 25일 정축(丁丑)일 -- 기동함대, 비밀리에 출항
  12월 5일 정해(丁亥)일 -- 기동함대, 진주만 북서쪽에서 기습태세 완료
  
  12월 5일 정해일은 11월 5일 정사(丁巳)일로부터 30일 간격이니 최초의 전쟁 불가피 결론부터 150일 만에 전쟁에 돌입한 셈이다.
  
  음모론도 있지만 일본의 진주만 기습은 미국으로서는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기습이었고, 사실상 태평양 함대는 전멸하고 말았다. 기지에 있지 않았던 항공모함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왜 전쟁이라는 인간의 필사적인 행위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철저하게 음양오행에 맞추어 이루어지는 것일까? 일본은 어쩌면 그렇게 정(丁)이라는 글자가 붙는 날에 진도가 나가는 것일까?
  
  이는 역으로 우리가 음양오행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경우 상대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과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결론이 얻어진다. 전쟁에서 의도를 감추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인데 음양오행은 그 시간표를 소상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또 이런 의문도 생긴다. 지난 1941년 9월 6일 정사(丁巳)일에 일본은 전쟁을 한다는 최종 결정을 내렸는데, 그로부터 60년 한 갑자가 지난 2001년 9월 11일 정축(丁丑)일에는 그 유명한 9.11 테러사건이 터졌다. 왜 미국에게는 신사년 가을 무렵, 그것도 정(丁)의 날에 그런 재앙이 닥치는 것일까?
  
  이것 말고도 많은 의문이 들지만 이런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음양오행이라는 틀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김태규의 명리학 카페 : cafe.daum.net/8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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