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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에 역행하는 반기문의 '유엔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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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에 역행하는 반기문의 '유엔 개혁'"

'군축국 축소 계획', 거센 저항에 직면해

후세인 사형 옹호 발언으로 취임 첫날부터 호된 신고식을 치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의 핵심 조직인 군축국(局)의 위상을 축소하려는 시도로 인해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민간 국제통신사인 <IPS>는 17일 유엔 군축국을 정무국 산하로 흡수·통합시키고 책임자를 사무차장에서 사무차장보로 격하시키겠다는 반기문 총장의 제안이 회원국과 평화운동가 및 비정부기구(엔지오)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군축국을 흡수할 정무국의 책임자가 군비통제와 핵군축의 요구에 역행하고 있는 조지 부시 미 행정부에 의해 지명된 미국 출신 인사일 것으로 예상돼 '고양이에게 생선전을 맡긴 꼴'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 기자회견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로이터=뉴시스

유엔 창설때부터 설치된 군축국은 군축과 핵 비확산 논의를 진행하고 집행하는 조직으로 국제분쟁 해결과 군비축소라는 유엔의 목표를 직접 실천하는 기구다. 1992~96년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부트로스 갈리는 군축국을 사무차장보 산하로 격하시켰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같은 결정은 국제사회의 반발을 불러왔고, 후임 코피 아난 총장은 군비축소와 핵군축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으로 애초의 사무차장 책임 체제로 원위치시켰다.

유엔 비동맹회의 국가들 앞장서 비판

반 총장이 군축국을 갈리 총장 시절의 시행착오적 체제로 바꾸겠다는 제안을 하자 가장 거세게 반발한 측은 116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비동맹회의(NAM)다.

비동맹회의의 전임·현임·후임 의장국인 말레이시아, 쿠바, 카타르 등 소위 '트로이카' 국가의 대표들은 지난 주 회의를 열고 반 총장의 제안을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트로이카 회의에 참석했던 한 외교관은 <IPS>와의 인터뷰에서 군축국이 정무국 산하로 들어가고 정무국의 대표를 미국인이 맡을 것이라는 말을 전하며 "여우에게 닭장을 맡기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 5대 핵보유국 출신 인사에게는 군축국을 맡기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깰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에 비동맹회의는 총장 비서실장인 비자이 남비아르를 만나 반 총장의 구체적인 구상을 들은 뒤 항의서한 발송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아시아 출신의 한 외교관은 "군축국이 정무국 산하로 들어가 국(局)으로서의 위상이 없어지면 정무국을 미국인이 실제 맡느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이미 후퇴하는 것"이라며 "(반 총장이) 갈리 사무총장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외교관은 2005년 유엔 정상회의의 실패, 2005년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회의의 결렬, 2006년 유엔 소형무기 대책회의의 교착 등을 거론하며 군축 및 핵확산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 고위직 여성 기용에 대한 찬사를 물거품으로

반 총장의 결정에 대한 국제 엔지오들의 반대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다.

뉴욕에 본부를 둔 '핵정책변호사위원회'의 존 부로우 소장은 "반 총장이 잘못하는 일이며 사무총장으로서 불행한 출발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군축 운동을 하는 단체들은 이미 반 총장의 구상에 대한 반대운동을 시작했다며 사무총장 면담 신청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국제평화국의 유엔 대표이자 헤이그 평화회의 의장인 코라 바이스는 "신임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갈리 총장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군축국이 사무차장 휘하에 있지 않으면 사무총장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바이스는 반 총장의 이같은 제안이 핵무기 제거, 소형무기의 불법 교역 저지, 미국이 지지하다가 지금에 와서는 무시해버리는 수많은 국제 군축조약의 이행 등을 위해 일하는 군축국의 독립성을 빼앗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반 총장이 취임 직후 유엔 고위직에 여성들을 등용해 여성단체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사실을 거론하며 "그같은 결정이 훌륭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군축국 격하라는 최악의 결정을 상쇄하지 못한다. 그것은 재앙이다"고 말했다.

'평화와 자유를 위한 국제 여성연맹'은 홈페이지에 게재한 성명서를 통해 "군축국은 유엔의 역사이며 국제 군축 전문가들의 요람"이라며 "군축에 대한 부끄러운 기록을 갖고 있는 나라들은 군축국의 위상이 축소되는 것을 즐길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중대한 실수이자 시대역행적 조치"

국제사회의 이같은 움직임에 한국의 시민단체도 거들고 나섰다. 참여연대는 18일 성명서를 내고 "반기문 총장이 유엔 개혁의 일환으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제안을 한 것이라면 그 첫 단추부터 잘못 꿰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핵보유국은 핵국축에 나서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도리어 첨단 핵기술을 통해 핵전력을 강화하고 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북한과 이란 등 핵보유를 주장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군축국의 위상 축소를 우려했다.

참여연대는 또 "다른 국가들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고 군축에 나설 것을 압박하면서도 실제 자국의 군축에는 매우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군비증강을 추구해 온 국가가 미국"이라며 "미국이 주도하게 될 유엔 정무국 산하에 있게 된다면 군축국의 역할은 결정적으로 약화되거나 왜곡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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