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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자란 관료는 '세계 시민'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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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서 자란 관료는 '세계 시민'이 될 수 있을까

[기고]반기문 UN사무총장의 "후세인 사형 옹호" 발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공식 업무를 시작한 지난 2일 사담 후세인 전이라크 대통령 사형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서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반 총장은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 처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처형은 각국이 법에 따라 정하는 문제"라고 대답했다.
  
  이런 발언이 알려지자 대부분의 서구 언론은 반 총장의 발언을 주요 뉴스로 다루면서 그의 사형 옹호 입장이 인권에 기초해 사형을 반대해 온 유엔의 기본 입장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대부분 반 총장을 비판하기보다 그를 감싸는 분위기였다. "외국 기자들의 '함정 질문'에 반 총장이 당했다"는 것이다. 과연 반 총장은 노련한 기자들 앞에서 가벼운 실수를 저지른 것에 불과한 것일까.
  
  반 총장은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엘리트 그룹 출신이다. 그래서 그의 발언은 사형제 존폐에 관한 인권 차원의 논의가 부족했던 한국 사회의 토양을 되짚어보게 한다.
  
  물론 이런 지적은 '개인의 인권에 민감한 서양, 집단을 중시하는 동양'이라는 구도에 묻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 작용할 가능성 때문이다. 실제로 스웨덴의 한 방송은 "사형 제도가 존치된 국가 출신의 사무총장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형옹호"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반 총장 개인의 문제를 한국 사회 전체의 정서로 확대하는 시각이다. 물론 위험한 시각이다.
  
  그러나 이런 위험 때문에 반 총장의 발언을 그냥 덮어두는 것은 더 큰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 비교문학 협동과정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박정준 씨도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이들 중 하나다.
  
  박 씨는 반 사무총장의 발언이 사형에 대한 몰인권적인 관점을 반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몰인권적 태도를 한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정서와 일치시키는 서구 언론의 시각을 경계하면서도 "사형제도에 대한 입장을 각 국민국가에 일임할 정도로 인권감수성이 희박한 사무총장을 두둔하기는 힘들다"고 못박았다.
  
  이처럼 희박한 인권 감수성으로 "여성 폭력이나 난민, 궁핍, 국제적인 규모로 이루어지는 인신매매와 자원의 불균형이 초래하는 '스캔들'을 조율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느낀다는 것이다.
  
  박 씨는 "한국과 세계가 만나는 한 단면"에 서 있는 반 총장에게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의 비판이 보다 치열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비판을 통해 한국이 키운 엘리트 관료가 비로소 '세계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런 생각을 담은 박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캐럴 부르며 시작한 반기문 총장, 끝날 때도 웃을 수 있을까
  
  가나 출신의 유엔사무총장 코피 아난이 1996년 당선될 즈음, 그를 친미파로 분류하며 미국이 요리해먹기에 좋은 사무총장이 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재직 기간 동안 나름대로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에게 할 말을 하는 사무총장으로서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평판을 들으며 비교적 성공적인 결과를 나타냈다.
  
  온갖 어려운 싸움이 도사리고 있는 유엔을 넘겨 받은 반기문 사무총장은 경쾌한 노래를 불렀다. 반 총장은 지난달 8일 유엔에서 크리스마스 캐럴 '산타클로스 이즈 커밍 투 타운(Santa Claus is coming to town)'을 '반기문 이즈 커밍 투 타운(Ban Ki Moon is coming to town)'으로 개사해 부르며 경쾌한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그가 유엔을 떠날 때도 웃을 수 있을지는 좀 의문스럽다.
  
  미국은 오늘날 초강대국으로서 유엔 분담금의 막중한 책임을 쥐고 있으면서도,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번번이 분담금을 내지 않음으로써 유엔의 발전에 악영향을 끼쳐 왔다. 미국의 이기적인 작태를 보면서, 전 세계 시민사회는 국제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진정하게 담당할 수 있는 세력을 희구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곳곳은 과거에 비해 추호도 진보됐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참혹한 만행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종족 간의 갈등으로 수만 명이 난민으로 전락해 학살과 집단성폭행, 기아로 신음하고 있는 수단의 다푸르 지역은 좋은 예다.
  
  가까운 북한은 또 어떤가. 핵 미사일 위협을 핑계로 핵이 협상수단으로 악용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라크는 섣부른 미국의 전쟁도발에 뒤이은 종족 간의 국지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테러리즘으로 인해 만성적인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밖에도 민간인들의 희생을 분노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는 테러리즘은 미국부터 스페인, 태국, 영국, 스리랑카까지 널리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에이즈의 창궐과 여전히 근절되지 않은 궁핍과 기아 등 인간이 최소한의 존엄성과 안전을 향유하지 못하게끔 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전 세계의 각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적인 국제사회의 힘이 요구된다.
  
  세계인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위치에서 나온 첫 발언이 '사형 옹호'?
  
  이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게 어디일까. 우선 꼽을 수 있는 게 유엔이다. 그리고 유엔 신임 사무총장으로 한국인 반기문 씨가 당선됐다. 유엔 사무총장은 그동안 '종이호랑이'로서 역할이 유명무실하다고 끊임없이 비판받으며 존립근거마저 위협 당했던 자리다.
  
  취임 초기지만 그에게 거는 기대가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단순한 바람을 뛰어넘어, 절박한 행동을 요구하는 수준이다. 왜냐하면 지구 곳곳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각종 악재들은 신속한 국제사회의 개입과 연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가 취임하자마자 파란만장한 사무총장 임기를 예고하는 전주곡처럼, 후세인은 이라크 법정이 언도한 사형선고를 받은 지 한 달도 안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후세인의 전성기(?) 시절 미국과 영국 정부가 그의 독재와 인권유린을 조직적으로 지원했다는 온갖 음모설도, 쿠르드 민족을 학살한 그의 반인륜적인 죄악도 속성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어두움 속에 봉인됐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서, 비록 이라크 법정이 재판을 진행했다고 하지만 표면적으로만 그럴 뿐, 실제적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이러한 의혹으로 인해 국제사면위원회는 후세인의 처형을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재판의 결과라고 평가하며 비판하고 있다.
  
  사형제도는 국제사회 인권 수준의 바로미터
  
  후세인이 제 아무리 극악무도한 학살자이자 독재자일지언정, 전 세계의 여론이 사형 폐지로 기우는 가운데 국제사회가 초미의 관심사로 지켜보고 있는 재판에서 그가 처형당한 것은 문제가 있다.
  
  사형폐지론자들은, ①사형이 범죄를 감소시킨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으며, ②사형제도는 오랫동안 정치적인 반대자나 사회적 약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고, ③사형은 법에 의한 살인으로서 인간이 누군가를 살해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으며, ④인간의 존엄성을 법이 스스로 부정하는 이율배반적인 작태이자, ⑤일시적이고 감정적인 인과응보에 치우친 복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반대여론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국은 사형제도를 폐지했다. 유럽연합은 동유럽 국가들이 가입을 원할 때 사형제도 폐지를 기본조건으로 요구할 만큼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선진국 중에서 사형제도가 아직껏 존속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과 호주 정도다.
  
  이처럼 여러 국가들이 사형제도를 앞 다투어 폐지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중국은 심지어 호랑이를 잡은 밀렵꾼에 대해서까지 사형을 집행할 만큼 사형을 비일비재하게 남발하고 있다. 또한 이란의 동성애자 사형집행이나 미국의 미성년자 사형집행은 아직도 국제사회의 인권수준을 향상하기 위해 과제가 많이 남아 있음을 잘 보여준다.
  
  어느 누구보다도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야 할 반기문 사무총장은 사형에 대해 어떤 시각을 견지하고 있을까? 그는 후세인을 독재자로 재단하며 사형집행을 가치중립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사형제도 존치한 국가' 출신이라서?…세계에 노출된 한국 엘리트의 시각
  
  이러한 그의 발언에 대해 국제사회의 진보적 시민운동세력은 즉각 반대의견을 발표했다. 국제사면위원회 스웨덴지부 관계자는 스웨덴의 국영라디오(Radio Sweden)에 출연해서, 사형제도가 존치된 나라 출신의 사무총장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형옹호라고 일축했다.
  
  물론 반기문 사무총장의 사형에 대한 몰인권적인 관점을 한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정서와 일치시키는 시각은 논쟁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사형제도에 대한 입장을 각 국민국가에 일임할 정도로 인권감수성이 희박한 사무총장을 두둔하기는 힘들 듯하다. 과연 그가 여성폭력이나 난민, 궁핍, 국제적인 규모로 이루어지는 인신매매와 자원의 불균형이 초래하는 '스캔들'을 조율할 수 있을지 심각한 우려를 느끼게 된다.
  
  일각에서는 반 총장이 굳이 이번 해프닝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국제사회의 인권감수성과 세계시민정서에 걸맞지 않은 행보를 숱하게 보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물론 그에 관한 비판에는 으레 한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수준과 감수성이 따를 것이다. 우리가 그런 반대 의견들에 대해 "동양 출신의 사무총장을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으로 반대한다"고 일축해 버린다면 옳은 일일까.
  
  성공한 친미 관료 출신으로서 '한국적인 세계화'과정을 통해 다듬어진 그의 모순적인 시각은 한국 사회의 관료 엘리트의 관점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각이 국제 사회에 노출됐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주목된다.
  
  인권 차원의 비판은 한국 관료가 '세계시민'으로 거듭나는 과정
  
  그가 혼란스러운 행보를 취할 수록 국제사회 역시 난항을 겪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국내외를 아우르는 보편적 시각에 바탕한 엄격한 비판이 반 총장에게 줄기차게 가해져야 한다. 그렇게 될 경우 한국과 미국에서 길러진 관료는 그런 비판을 통해 비로소 세계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역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실패한 유엔 사무총장'은 '실패한 세계'를 초래할 수 있다. 반 총장은 이미 초국가적인 인물이 돼 있다. 한국과 세계가 만나는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측면을 제외하면 문제는 더 이상 그의 한국 국적이 아니다. 국적을 넘어선 인물이 된 반 총장에게 폭력과 빈곤에 시달리는 세계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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