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북한 당국이 사회주의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한 지 4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물가 인상, 공급 부족 등 국가의 계획 경제 통제 이완에 따른 잠재된 문제점이 표면화되는 부정적 현상과 기관, 기업소의 독립채산제 실시, 실리가 경제활동에 주된 지표로 부각되면서 효율성이 제고되는 등 긍정적 현상이 교차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역시 경제관리 시스템에서 정치와 경제의 조정 역할 비중에서 정치 부분이 축소되고 경제원리의 적용이 확대된다는 점이다. 당이 가지고 있던 상당한 부분의 경제정책 결정 및 수행 권한이 내각의 경제부서에게 이전하는 조정 현상도 중요한 변화다. 중앙에서 지방경제기관으로 권한을 이양하고 연합기업소 체제를 축소하고 기관별 독립채산제를 강화하는 점은 대안의 사업체계에서 주장했던 정치와 경제의 혼합관리체계에서 경제관리의 비중이 증대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물론 북한 당국은 여전히 당비서, 지배인 및 기사장의 3위 일체 방식이며 당의 통일적 집단지도 체제인 대안의 사업체계가 중요한 기업관리체계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실리를 바탕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점이 과거의 경직적인 대안의 사업체계와는 다른 점이다.
7·1 조치이후 온정주의가 사라지고 경제 각 부분에 실리주의가 팽배함으로써 돈이 경제활동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이제 경제관리개선조치 실시 4년을 맞고 있는 시점에서 주민들의 관심은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부를 창출하는 '장사' 다. 판매한 만큼의 실적이 수입으로 분배됨으로써 판매에 열과 성을 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주민들은 가격에 대한 국가의 형식적인 규제가 장사에는 직접 적용되지 않음으로써 이윤 극대화 달성에 주력하고 있다.
7·1 조치 이후 가장 주목된 현상은 물가인상이다. 국가가 종합시장에서 무조건 규제를 하기보다는 상한선을 정해놓고 인상폭을 조정하기 때문에 물가상승은 구매자의 가장 큰 관심사항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인플레이션은 긍정적인 측면을 갖는 동시에 부정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측면은 국가의 통제가 정말로 이완되었다는 증거이고 부정적인 현상은 물가 불안에 따른 소비자 불안심리의 확산 등이다. 완만한 물가 상승이 생산 의욕을 고취시키고 경제활동에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부각되기 위해서는 원자재 공급을 통한 생산 활동이 증가되어야 한다.
경제정책 추진과 관련하여 특징적인 사항은 당국이 사회주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실리가 날 수 있게 기업소들이 사업을 탄력적으로 추진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7·1 경제관리개선조치 발표 이후 각 기업소들이 사업 추진과정에서 실리와 사회주의 원칙의 고수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북한 정권이 기업들에게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을 것을 지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북한 당국은 7·1 조치가 발표되면서 지본주의 풍조 만연에 따른 각종 부작용을 우려하여 이 조치가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체제전환적 조치가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 내부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7·1 조치의 내부적 범위를 강조하다 보면 경제주체에 대한 개혁적인 파급영향이 축소됨에 따라 고육지책으로 사회주의 원칙의 고수와 실리의 동시달성이라는 다소 모순적인 지침을 내리고 있다.
또한 내각의 역할이 강조되었는데 이는 경제행정 일꾼들의 비중이 확대되었음을 시사한다. 당과 행정의 일치를 강조한 것은 당 책임비서·지배인·기사장의 3위 1체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경제정책에서 이념적 측면보다는 실용적인 측면이 부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관별 실리 확대 등 경제단위의 자율성 확대
독립채산제는 구 소련이 '계획의 한도 내에서 일정한 자주성 있는 경영을 허용함으로써 능률의 향상'을 위해 공기업 운영방식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에서 자본주의적 경쟁원리를 도입한 것으로 1962년 중앙의 국영기업소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1973년 9월 독립채산제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여 지방산업공장을 포함한 농업 공업 및 유통 부문까지 확대되었다. 1980년 이후에는 소규모의 지방산업공장으로 확대되었다. 1984년 12월 정무원 규정으로 사무기관을 제외한 비생산부문까지 시행 범위가 확대되었다. 지난 98년 헌법에서는 독립채산제를 규정하고 공장 기업소의 의사 결정 권한 확대와 자율성을 신장하고자 하였다.
북한 당국은 독립채산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함으로써 물질적 인센티브와 자율성의 확대를 통해 근로자의 의욕을 고취해 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특히 최근 독립채산제의 강화는 기관, 기업소의 경영계획 수립 및 자율성의 확대와 맞물려 있다.
당국은 공장·기업소의 경영자율권을 확대하였다. 일방적인 성격의 지령성 계획지표를 축소하고 지방과 공장·기업소, 농장 등 하부단위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있다. 공장·기업소에 금액상 목표만 제시하고 계획을 초과하는 생산물의 처분을 허용하였으며 합의가격에 의한 기업간 물자거래를 허용하였고, 자체 구조조정권을 부여하였다. 지배인에게 20% 범위내에서 인원운영의 자율권을 부여하였고, 재료구입 권한을 부여하였으며 기업의 경영방식과 분배방식을 수익 중심으로 전환하였다.
이를 위해 △재투자, 근로자 복지, 성과급 등에 사용되는 기업이익 유보분의 확대 △계획의 생산·판매 허용 등을 추진하였다. 생산부문의 개혁을 위한 여건 조성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회계법 제정('03.3) △전면적인 기업재무조사 △기업소 지배인의 30~40대로 세대교체 △계획의 생산·판매 허용 등을 시행하였다.
2005년 5월 28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인터넷판은 기관, 기업소가 자기 단위에서 필요한 기능공을 자율적으로 길러내게 됐다고 보도했다. 종전까지는 국가가 기능공 양성을 전담했으나 기관, 기업소가 재정을 부담해 양성소와 계약을 통해 기능공을 수급하게 되어 인력을 효율적으로 충원받게 됐다. 비록 시범적인 실시이지만 인력 양성체계를 기업소의 현실적 요구에 맞게 합리화시킨 것이다.
경제이론을 소개하는 잡지인 <경제연구>(2005년 1월호)에는 '자체충당금을 기업소의 실정에 맞게 쓸 수 있도록 실제적인 권한을 주어야 한다' 는 주장까지 소개되었다. 자체충당금을 기업소 범위의 생산 확대와 소비적 수요에 이용하는 것은 기업소들이 자체의 실정에 맞게 경영활동을 능동적으로 벌려 나갈 수 있게 하며 기업관리를 보다 신축성 있게 해나간다는 의미이다. 자체충당금은 경영활동 과정에 조성한 화폐의 일부를 기업소 자체에 분배해 생산 확대와 기술발전, 종업원의 문화후생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한 자금으로 이전에는 국가가 이용 권한을 갖고 있었다. 독립채산제를 시행하는 기업소의 재정분야의 권한이 과거에 비해 확대되어 가고 있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당국자들은 외형적으로는 독립채산제의 확대가 사회주의 경제에서 계획의 이완이나 중앙집권적 통제를 벗어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한다. 예를 들어 '경영상 독자성을 절대적으로 강화하면 사회주의 원칙을 일관되게 구현할 수 없게 되며 나아가서 국가적 이익을 옳게 보장할 수 없게 된다' 는 논리와 반대로 '국가적 이익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면 기업소와 생산자들의 창발성을 옳게 발양시킬 수 없게 된다'는 논리가 충돌하게 된다. 결국 독립채산제는 국가의 규제완화와 권한 이양 방침에 따라 적용 비율이 확대되고 있으며, 향후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는 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물자공급위원회의 역할 조정(중간재 및 도매시장의 변화)
북한에서 시장이 공식화된 것은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이다. 물론 북한은 1958년 9월 '농민시장 개설에 관하여' 라는 내각 결정(140호)에 의거, 농촌시장을 폐쇄하고 대신 농민시장(일명 장마당)을 공식화하여 민간거래의 공간을 양성화 하였다. 쌀, 보리 등 곡물류와 공산품에 대해서는 거래가 금지되었다. 채소류와 빗자루 등 가내수공업이 거래품목이며 1개군 단위에 1-2개소를 지정해 매월 3월 개장토록 하였다.
북한 당국은 2003년 3월말부터 농민시장 명칭을 '시장'으로 개칭하고 시장 기능의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2003년 3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직접 '시장을 인민생활에 편리하고 나라의 경제관리에 유리한 경제적 공간으로 리용할 데 대한' 방침을 제시했다. 지난 1995년 김 위원장이 '장마당이 자본주의 싹을 키워 사회주의를 망하게 한다' 며 농민사장을 단속하던 일과는 판이하게 다른 관점이다.
시장이 합법화되고 국가의 공식적인 경제현장이 되었다. 시장의 운영관리 방침을 담은 2003년 내각결정 제27호는 시장의 폐장 시간까지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북한 국가계획위원회 최홍규 국장은 농민시장의 명칭 변경은 농산물뿐만 아니라 각종 공업제품도 거래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현재 평양에는 통일거리시장, 중구시장 등 각 구역마다 종합시장이 개설되었고, 지방 도시에도 규모에 맞게 시장이 개설되었다. 물가 상승의 폭을 조절하기 위해 시장의 가격은 전적으로 수요-공급 원칙에 의존하기보다는 가격의 등락 폭을 제한해 두었다.
공장·기업소 역시 시장을 통해 물자를 거래하고 있다. 공장 기업소, 협동단체가 시장에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된 것도 과거와는 다른 점이다. 공장에서는 국가계획 초과분을 시장에서 판매한다. 조총련 발행지 <조국> 2004년 1월호는 시장에 대해 "현재 우리나라의 시장은 인민들의 생활상 편의는 물론 경제관리에도 도움을 주고 있으며 지방예산 수입도 높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장 기업소들이 이용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시장은 사회주의물자교류시장이다. 물자교류시장은 종합시장보다 앞서 2001년 10월 지침을 통해 도입되었다. 본격적인 활성화는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이다. 자재공급사업에 있어 계획을 기본으로 하되 보충적으로 물자교류시장을 조직, 운영하도록 하였다. 생산물의 일정 비율을 자재용 물자교류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교류물자의 종류와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북한에서 물자교류 시장은 '자재의 계획적 공급에서 보조적 의의를 갖는 물자보장 방도'로 규정하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경제계획에서 예견할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결하는 보조 장치로 활용하는 것으로 한계를 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최근 들어 물자교류 시장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하는 시도가 조심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당국이 자재공급기관이 밀접된 지역들에서 물자교류 전시장을 마련하고 견본이나 팜플렛 등을 비치토록 한 것은 당국의 육성 의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또한 2005년 6월부터는 중국 기업과 합작한 수입물자교류 시장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공장의 개건 현대화가 가속화되며 외국에서 설비를 수입해야 하는 경우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보통강 구역에 조성된 '보통강수입물자교류시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에서 공장, 기업소 관계자들은 건축자재, 강재, 도색재 등 다양한 원자재와 기계부속을 구매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무현금 유통뿐만 아니라 물자 대 물자의 결제, 현금 유통도 허용되어 있어 물자교류 시장과는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 거래 방식이 적용되고 있지만 총론에서는 '물자교류 시장도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일부분' 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물자교류 시장만 계획경제 밖에 존재하는 사실을 공식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실리'를 목표로 경제운용 방식에 유연성이 확대되고 있음을 추론케 한다.
지금 북한은 '가격개혁'의 초기 단계
현재 북한에서 시장경제로의 대규모 경제개혁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기엔 아직 미흡하다. 현재는 가격개혁(Price Reform) → 소유제(Ownership) 개혁 → 정치개혁(Political Reform)이라는 전형적인 사회주의 개혁과정에서 가격개혁의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변화의 징후가 포착되기 시작했으며 시장경제 메커니즘 일부가 주민들의 경제생활 속에 파고들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한 시장경제 메커니즘이 국가 기관은 물론 기업, 기업소 및 개인에게 확산되면서 경제관리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변화가 미세하나마 나타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당보다는 행정부서를 통해, 그리고 과거 중앙정부 일변도에서 도와 군 단위의 경제활동 강화, 기관 기업소의 독립채산 강화를 통해 재정적자를 축소하려는 노력은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나타난 변화의 대표적인 화두다. 다만, 이같은 경제관리 시스템의 변화가 경제체제 전반을 뒤흔들 근본적인(fundamental)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북한 경제관리방식의 변화>
구 분 | 2002년 7.1 조치 | 2004년 개혁 조치 |
계획 측면 | ○ 중앙 계획 대상 축소 - 중요 지표에 한해 국가 계획 하달 ○ 세부계획, 지방·기업소·협동농장에 위임 | ○ 현물지표 축소-중요지표만 현물지표로 하달, 나머지는 현금지표 ○ 국가자재조달이 없는 계획생산 기업소 자체구입에 의해 생산 |
재정 측면 | ○ 번수입지표 도입-국가납부금외 이윤 자체사용, 상한선내 성과급으로서의 더 많은 임금지불 허용 ○ 독립채산제 전체 기업으로 확산 | ○ 국가납부금외 번수입 사용권한 확대 -임금상한선 폐지 ○ 국가납부금 정액제로 전환 ○ 경제단위의 현금보유 한도 확대 |
생산 측면 | ○ 계획의생산품 30% 시장판매 허용 ○ 물자교류시장을 통한 원자재거래 허용(물적 청산) ○ 국가가격제정국 지도하 가격결정 권한 일부이양 ○ 유일생활비등급제폐지 | ○ 자체 생산품, 가격 승인제 폐지, 가격의 자율적 결정 권한 확대 ○ 물자교류시장내에서 원자재의 현금 거래 허용, 생산을 위한 원자재의 자율 수입 허용 ○ 상금, 장려금 지불 승인제 폐지 ○ 인력운용 권한 부여 |
농업 관리 | ○ 작업반우대제폐지, 분조관리제 전면 확대 : 분조규모 축소, 책임영농제 도입 ○ 이중곡가제 폐지, 식량배급제 구입제로 전환 ○ 초과생산물 자율처분 허용 ○ 작물선택권 확대, 세부계획지표 권한 부여 | ○ 포전담당제 시범실시-분조를 2~5가구로 편성, 협동농장에 분조 규모 축소권한 부여 ○ 개인경작지 30평에서 400평으로 확대 ○ 국가납부량 축소 ○ 분조단위 분배권한 확대 ○ 현물분배에서 현금분배로 전환 |
▲ 출처 : "북한의 최근 경제개혁 동향", 권영경, <수은북한경제> 2005 겨울호.
* '2006 북한은 어디로?' 시리즈는 <프레시안>과 <북한연구학회>의 공동기획으로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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