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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차베스를 구한 것은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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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차베스를 구한 것은 바로 나였다"

[카스트로 전기] 베네수엘라 反차베스 쿠데타의 막전막후

"카스트로 의장 각하, 저는 차베스 대통령의 딸 가브리엘라입니다. 지금 방금 아버지한테 전화를 받았는데요, 아버지는 절대로 사임하지 않았답니다. 반란자들의 말은 거짓이에요, 세상에 이 소식을 전해야 해요."

2002년 4월 12일 밤,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딸 마리아 가브리엘라는 그날 벌어진 쿠데타로 행방이 묘연해진 아버지가 가까스로 전화를 걸어왔다며 차베스를 구해야 한다고 애원했다.

카스트로는 당장 쿠바의 TV 프로그램 사회자로 국제적인 발언력을 인정받는 란디 알론소를 불렀다. 알론소는 가브리엘라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아버지 차베스와의 통화 내용을 다시 말해보라고 한 뒤 자신들의 대화를 녹음했다. 동시에 카스트로는 수도 아바나에 파견된 각국의 외신 기자들을 대통령궁으로 불러 모았고 그들이 모두 도착하자 녹음테이프를 들려줬다.

특명, 차베스를 구출하라

친미적인 기업가와 보수언론의 후원을 받은 일부 군부 세력이 일으킨 베네수엘라 쿠데타 사태의 진실이 전세계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외신들은 이 소식을 긴급 타전했고 베네수엘라에도 삽시간에 퍼져 차베스에게는 결코 사임 의사가 없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차베스를 다시 데려오라는 시위에 더욱 불을 붙였고, 친(親)차베스 측 군부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차베스를 쿠바로 데려와 목숨만이라도 보전시키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던 카스트로는 생각을 바꿔 군에 의한 구출작전을 계획했다. 카스트로는 차베스 쪽 군부 고위 장성들에게 전화을 걸어 '당신들이 베네수엘라의 법과 질서를 지키는 군인이라면 목숨을 걸고 대통령을 구출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카스트로의 말에 감화된 군부는 차베스가 구금돼 있는 라 오칠라 섬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비상 구출작전에 돌입했다. '차베스 사임'이 거짓이라는 소식에 차베스에 대한 총살형을 집행해야 할 군인들이 오히려 그를 보호하고 있는 상황에서 작전은 순조로웠다.

4월 14일 새벽, 헬기에 몸을 실은 차베스가 오칠라 섬을 떠나 수도 카라카스의 대통령궁으로 복귀하면서 쿠데타는 '3일 천하'로 막을 내렸다.

남미 지역 반미 국가 연대의 수장격인 피델 카스트로. 그는 그간 한번도 알려지지 않았던 2002년 베네수엘라 쿠데타 사태의 긴박했던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차베스의 극적인 복귀에는 그의 재능과 사상을 아꼈던 카스트로의 적극적인 막후 활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쿠데타 기간동안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는 카스트로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민중들과 애국적인 군인들이 어떻게 법을 지켜내는지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50년간 수없이 많은 강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과는 단 4차례밖에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카스트로는 프랑스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장 이냐시오 라모네와의 생애 최장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이야기 했다.

이 인터뷰는 2003년 1월에서 지난해 12월까지 총 100시간에 걸쳐 진행됐으며, <피델 카스트로, 두 목소리의 전기(Fidel Casto, a two-voiced biography)>라는 제목으로 디베이트출판사(Debate Publishing House)에 의해 출판될 예정이다.

<프로그레소 위클리>는 조만간 책으로 출간될 이 인터뷰 중 2002년 베네수엘라 쿠데타 사태에 대한 카스트로의 증언을 발췌해 최근 소개했다. 다음은 이 대목에 대한 전문 번역이다. 원문은 http://www.zmag.org/content/showarticle.cfm?SectionID=60&ItemID=10136 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좌)과 그를 아끼는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우) ⓒ EPA

"차베스는 진정한 볼리바르주의자"

이냐시오 라모네 :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깊은 존경심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다.

피델 카스트로 : 그렇다. 우고 차베스는 스스로 말하듯 "인디언 혼혈"인 메스티조에 백인의 피가 섞인 새로운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이다. 그러나 차베스는 순수한 베네수엘라의 아들이다. 혼합 그 자체인 베네수엘라의 아들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훌륭한 특징을 다 가지고 있고 비범한, 정말로 비범한 재능을 갖고 있다.

나는 그의 연설을 꼭 챙겨 듣는다. 그는 자신의 하찮은 출신 성분과 여러 인종이 혼합된 자신의 배경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에게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예들의 피를 비롯해 모든 인종의 피가 조금씩 흐르고 있다. 아마도 그는 백인 유전자도 일부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 역시 나쁘지 않다. 혼합은 언제나 좋은 거다. 인종간의 결합은 인류를 풍부하게 만든다.

라모네 : 의장께서는 베네수엘라의 상황, 특히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 과정을 주의깊게 지켜본 것으로 알고 있다.

카스트로 : 우리는 그동안 베네수엘라 사태의 추이를 주의 깊게 지켜봤다. 차베스는 1998년 선거가 있기 전에 감옥에서 석방되어 쿠바를 방문했다. 쿠바 방문 자체가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그것은 매우 용감한 행동이었다. 우리는 그가 교양있고 총명하며, 매우 진보적이고, 진정한 볼리바르(19세기 초 대(對)스페인 독립전쟁을 주도해 베네수엘라뿐 아니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등을 독립시킨 영웅-옮긴이)주의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그 후 몇차례의 선거에서 승리했고 베네수엘라의 헌법을 개정했다. 그는 베네수엘라 국민들, 특히 빈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반대파들은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곤경에 빠뜨려 그를 질식시키려 했다.

차베스 집권 이전 이른바 40년의 "민주주의" 기간동안 2000억 달러의 돈이 베네수엘라를 빠져나갔다. 만약 베네수엘라에 분배를 중시하는 민주주의가 들어서고 그 메커니즘이 작동했다면 베네수엘라는 스웨덴 이상의 산업화와 교육 수준을 향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차베스가 대통령이 됐을 때부터 2003년 1월 외환규제 체제가 확립될 때까지 약 300억 달러의 돈이 베네수엘라를 빠져 나갔다. 우리가 주장하듯이 그 모든 현상들은 남미의 질서를 지속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차베스의 딸에게서 걸려온 전화

라모네 : 2002년 4월 11일 차베스를 축출하려던 쿠데타가 있었다. 그 사건도 지켜보지 않았나?

카스트로 : 당시 반(反)차베스 시위대가 진로를 바꿔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위와 발포, 그리고 피해자가 나왔고, 일부 고위 관리들은 차베스에 항명하고 공개적으로 대통령과 대립했으며, 대통령 수비대는 철수하고 군대가 그를 체포하러 간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나는 차베스가 무방비 상태였지만 원칙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우고, 절대로 자살은 안 돼! 아옌데 처럼 해서는 안 돼! 아옌데는 군인 한 명도 지켜주지 않는 외로운 처지였지만 자네는 그렇지 않아. 군부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잖아. 절대 그만두지 마! 사임은 절대 안 돼!"

라모네 : 총을 가지고 저항하라고 했다는 말인가.

카스트로 : 아니 그 반대다. 그건 아옌데의 경우다. 그는 장렬히 목숨을 바쳤다. 차베스에게는 미라플로레스궁에 잠복해 죽음을 피하거나, 민중들을 선동해 반란과 내전을 일으키거나, 사임은 하지 않은 채 항복하는 세 가지 길이 있었다. 우리는 세 번째를 권했고 차베스 역시 그렇게 했다.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지도자가 그런 상황에서 물러나게 됐을 때 그가 죽임만 당하지 않는다면 민중들은 그를 다시 요구하게 되고 머잖아 다시 권력을 잡게 된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라모네 : 차베스를 도우려는 노력을 했나?

카스트로 : 우리는 외교 자원을 활용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 한밤중에 우리는 아바나에 파견된 쿠바 주재 외국 대사들을 불러 모아 쿠바 외교장관인 펠리페 페레즈 로크와 함께 베네수엘라의 합법적인 대통령인 차베스를 구하러 카라카스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우리는 쿠데타 주동자들이 차베스의 국외 추방을 결정한다면 쿠바로 데려오기 위해 비행기 두 대를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차베스는 군부 반란자들에 의해 투옥됐고 그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TV는 그의 지지자들인 민중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그의 "사임" 소식을 계속 내보냈다. 그런데 반란자들은 차베스에게 전화를 걸 수 있도록 허용했고 차베스는 딸 마리아 가브리엘라에게 겨우 전화를 걸어 자신은 사임하지 않았고 그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말했다.

가브리엘라는 그 즉시 나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차베스가 사임하지 않았음을 나에게 확인해줬다. 우리는 미국과 스페인-민주주의에 대해 수없이 말하면서도 쿠바를 수없이 비난했던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가 총리로 있었다- 같은 나라들이 그 쿠데타를 지원하고 있다는 증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야겠다고 결정했다.

우리는 가브리엘라에게 쿠바 TV 프로그램의 사회자이자 국제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란디 알론소에게 아버지 차베스의 소식을 다시 얘기하라고 말하면서 그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 그때가 새벽 4시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곧바로 쿠바에 파견된 모든 외신 기자들을 불러 차베스 그 녹음 내용을 들려 줬다. 기자들은 즉시 그 소식을 타전했고 베네수엘라 전역에도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라모네 : 그리고 어떻게 됐나

카스트로 : 그 소식은 차베스를 추종하지만 그가 사임했다는 거짓말에 속아 왔던 군부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나는 차베스측 군 장성 한 명과 접촉할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차베스의 딸이 말한 내용은 사실이고 차베스가 사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세계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장성과 오랜 시간 통화를 했다. 그는 나에게 군부의 상황, 군부 고위 인사 중 누가 차베스와 같이 하고 누가 같이 하지 않는지에 대해 말해줬다. 나는 최정예의 군부대들이 차베스 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잃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차베스가 어디에 구금되어 있는지를 알아내고 그곳에 충성스러운 부대를 파견해 차베스를 구해내는 일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 상관을 바꿔주며 나에게 얘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차베스의 딸이 말한 사실을 또한번 말했고 차베스는 여전히 합법적인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그에게 지금은 충성심이 필요할 때라고 설득했고 볼리바르와 베네수엘라의 역사에 대해 말했다. 그는 애국심과 헌법 수호를 명분으로, 차베스가 사임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자신은 여전히 구금중인 대통령을 따른다고 분명히 밝혔다.

베네수엘라 사태 내내 뜬 눈으로 보낸 카스트로

▲ 오칠라 섬에 구금됐던 차베스가 2002년 4월 14일 새벽 카라카스 대통령궁에 도착하며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라모네 : 그렇지만 당시 차베스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 않았나.

카스트로 : 차베스는 라 오칠라 섬에 구금되어 있었고 외부와 철저히 단절돼 있었다. 카라카스의 대주교는 그에게 가서 "내전을 피하기 위해" 사임을 결심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처럼 인도주의의 외피를 쓴 협박을 했던 대주교는 차베스에게 사임을 알리는 편지를 쓰라고 했다.

당시 차베스는 카라카스와 그밖의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쿠데타 세력은 그를 처형하려고 했지만 총살을 담당한 부대는 형의 집행을 거부하며 항명하겠다고 위협했다. 차베스를 지키고 있던 많은 군인들은 그를 방어하고 암살을 막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차베스는 대주교와 함께 있으며 시간을 버는 시도를 했다. 그는 성명 초안을 작성했다. 그는 그것을 다 쓴다면 쿠데타 세력이 자신을 제거하려 할 것이란 것을 우려했다. 그는 사임할 의사가 없었다. 자신을 죽이지 않는 한 합법적인 해결책은 없다는 것을 차베스는 알고 있었다.

라모네 : 하지만 비행기를 보내 차베스를 구해오고 망명시킬 의사가 여전히 있지 않았나?

카스트 :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군 장성들과 통화한 후 우리는 계획을 변경했다. 우리는 대사들과 함께 카라카스로 가겠다는 필리페 장관의 제안을 보류했다. 또 그 직후 우리는 쿠데타 세력이 차베스를 쿠바로 추방할 것을 타진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즉시 우리는 그들이 차베스를 쿠바로 보낸다면 곧바로 베네수엘라로 다시 보내겠다고 선언했다.

라모네 : 그후 차베스는 어떻게 다시 대통령에 복귀했나?

카스트로 : 나는 맨 처음 통화했던 장성과 다시 접촉했고 그는 차베스가 라 오칠라 섬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를 구출하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신중하고, 효과적이어야 하며, 압도적인 군사력이 있어야 한다는 세 가지 기본 원칙을 말해줬다. 마라카이 군 기지에 있는 베네수엘라군 최정예 부대의 공수부대원들이 그 구출작전을 수행했다.

한편 카라카스에서는 민중들이 결집해 차베스의 복귀를 요구했다. 대통령 수비대는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을 다시 장악하고 반란자들을 축출하며 대통령의 복귀를 요구했다. 베네수엘라 상공인연합회장으로 임시 대통령 자리에 있었던 페드로 카르모나는 대통령궁 바로 그곳에서 사실상 체포됐다.

군인들에 의해 구출된 차베스는 결국 2002년 4월 14일 새벽 대중들의 찬양 속에 미라플로레스궁에 도착했다. 나는 쿠데타가 있었던 이틀을 거의 뜬 눈으로 지냈지만 민중들과 애국적인 군인들이 어떻게 법을 지켜내는가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1973년 칠레의 비극이 베네수엘라에서는 재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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