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한 일간지 사회부장이 사내 게시판에 기자의 광고수주 행위 등을 비판하는 글을 게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지역 언론계에 잔잔한 파문이 일고 있다.
K모 부장은 이 글에서 "언론개혁을 기치로 창간했던 신문이 어느 사이엔가 '독립언론을 지켜나간다'는 명목 아래 기자들을 광고 일선으로 내몰고 있다"며 "이제는 더 이상 '앵벌이' 기자로 사는 것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K모 부장은 이 글을 게재한 직후 해고됐으며, 현재 회사측을 상대로 해고무효소송을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은 K모 부장의 고민이 단지 소규모 지역언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판단에 따라 글 전문을 독자들에게 공개한다. 신문제호 등은 K모 부장과 회사 사이에 법적인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관계로 익명 처리했다. <편집자>
***<어느 지방 일간지 기자의 고백 : 앵벌이로 살 수 없었다>**
신앙고백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요즘 먼 산을 바라 볼 때가 많습니다. 이 때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주로 회사의 미래와 동료 간의 관계에 상상의 초점이 모아집니다. 월급 밀리지 않고, 경영이 잘 될 것인지, 신문의 영향력은 제대로 키울 수 있을 것인지. 또 독자들이 원하는 뉴스와 정보는 제대로 공급할 수 있을 것인지….
하지만 모든 것이 불투명해 보인다는 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경영진들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사원들이 아직도 경영에 대한 불신감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회사 빚이 늘어가고 있지만, 이를 보전할 별 뾰족한 대책은 없고, 미래가 불확실한 데 대한 불안감 때문입니다.
저는 회사의 어려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년 전 창간 당시로 마음을 되돌려 봅니다. 창간작업을 하는 동안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능력도 없이, 오만에 가득 찬 사주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언론풍토 속에서 정론을 펼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포만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젠 표 팔고, 책 파는 '앵벌이' 노릇은 그만해도 된다는 안도감이 행복을 더해 주었습니다. 알량한 자본금 몇 푼 내놓고, 신문지면에 '감 놔라, 대추 놔라' 상관하고, 기자를 자기 종 부리듯 하는 자본주의 횡포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편집권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창간작업을 했던 사람들은 (지금은 거의 떠났지만) 이러한 꿈과 희망을 선후배 기자, 동료 사원들에게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동참을 호소했습니다.
***창간정신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그 결과 우리 지역에는 내로라는 인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신문 하나 만들어 함께 정론을 펴고, 이를 통해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해 보자고 결의했습니다.
우리 신문은 창간과 함께 다른 신문사와 차별화를 위한 '사풍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가슴에 신분증 달고 근무하며 걸려오는 전화 공손히 받기를 실천했습니다. 촌지 거부와 시민단체와 연합해 계도지 철폐운동도 전개했습니다. 서민들의 진솔한 삶이 담긴 훈훈한 미담을 주요지면에 전진 배치했습니다. 지방의 토호세력과 권력을 가진 관료들의 남용행위는 가차 없이 나무라고, 꾸짖었습니다. 지역 토호들의 비리와 부패 행위는 대형 와이드 기획을 통해 성역 없이 해부했습니다. 도청과 경찰청, 시청 등 주요 출입처 기자들이 우리가 만든 신문을 보지 않고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항시 주목의 대상이었습니다. 참으로 행복하고, 가슴 뿌듯한 세월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러한 것들은 기자들이 마음 놓고 출입처를 헤집고 돌아다닐 수 있도록 애써주신 경영진들의 안정된 뒷받침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창간 후 ○년이 지난 지금 저는 행복했던 세월의 꿈에서 문득 깨어나 현재의 모습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곤 합니다. 현재 내가 몸 담고 있는 신문의 모습이 과거 그토록 분노케 만들었던 타도대상 신문들의 경영 행태와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독립경영이라는 미명 아래 간부사원들과 일부 기자들이 돈벌이 현장으로 내몰립니다. 간부들과 주재기자들은 평소에도 광고 일선에 나서야 합니다. '자율'이라는 허울이 씌워져 있긴 하지만 공연 티켓도 팔아야 합니다. 행사가 열리는 달이면 관공서와 업체 등에서 협찬도 받아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사원 스스로가 벌어서 운영해야 하는 '독립언론'이라는 거대한 스펀지 안에 흔적 없이 스며들고 맙니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논리 속에 기자로서의 최소한의 도덕적 부끄러움도 없어진 듯 합니다.
저는 여기서 광고와 기사 작성, 즉 기자들의 돈벌이와 정론의 함수관계를 생각해 봅니다. 관공서와 업체를 돌아다니며 광고와 공연티켓을 (사실상) 강매하고 행사 협찬을 받아내면서 그네들의 허물을 꾸짖고 나무랄 수 있는지. 솔직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어제는 광고협조 구하고, 오늘은 그네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기사를 쓰는, 어쩌면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따라 변모하는 강한 마음을 갖지 못한 때문입니다.
더욱이 언제 어느 때 다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고, 돈벌이를 생각해야 하는 간부사원들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글을 쓸 수 있는지,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역시 자신이 없습니다. 혹자는 광고는 광고고, 기사는 기사라며 야물지 못한 저를 나무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논리에 찬동할 만큼, 또 실천할 만큼 강한 심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는 제가 동료와 후배들에게 죄스러울 뿐입니다.
***"'독립언론'은 온통 모순덩어리"**
저에게는 어쩌면 답이 없는 또 하나의 걱정이 있습니다. 우리 신문이 진 빚은 사원들이 스스로 갚아야 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우리 사주로 새 출발을 시작한 우리 신문은 사원들이 주주이자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문제는 지금까지 진 채무를 탕감하고 경영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안타깝게도 전 회장께서 주고 간 돈이 소진되면서부터 적자가 누적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특별한 돈벌이가 마련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제 사원들은 회사의 진퇴를 결정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영이 호전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적자가 누적돼 빚을 얻어 경영하면 결국 사원들의 부담만 늘어갈 수 있습니다. 신문발행 비용과 인건비가 모자라 빚을 얻어 처리하면 이는 '윗돌 빼서 밑돌을 괴는 격'이 될 것입니다. 결국 이 돈은 사원들이 갚아야 할 테니까요.
회사의 경영 상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사원들이 진퇴 여부를 결정하고,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현재 우리 신문의 사원 주주제도를 바탕으로 한 독립경영 체제가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립경영 체제를 고수하는 한 기자들이 돈벌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독립언론은 말 그대로 자본 논리에서 벗어나 사원 스스로 벌어서 경영하는 것입니다. 이론은 좋습니다. 제대로만 된다면 언론사 경영이론으로는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경영은 제가 위에서 지적한, 모순 덩어리를 안고 가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기자들이 '앵벌이'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을 타개해줄 대안이 나오질 않습니다. 혹자들은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의 독립언론 성공 사례(완전치는 않지만)를 들기도 합니다. 우리 신문도 잘 하면 경향과 한겨레 같은 모범적인 독립경영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들과 우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여건이 다릅니다.
우선 시장규모가 다릅니다. 한겨레와 경향은 서울과 수도권이라는 무궁무진한 시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국 경제의 2%에 불과한 전북의 현실 속에서 일간지 8개사가 '거지 보자기 찢기 식' 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력구조도 다릅니다. 그들은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경영파트와 광고, 판매 등 마케팅부서 인원이 기자직보다 훨씬 많습니다. 돈을 버는 부서가 따로 있습니다. 즉 돈벌이 과정에서 경영과 편집을 독립시켜 광고와 기사가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국민들에게 손 벌릴 텐가"**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돈벌이를 하는 경영기획실과 광고, 판매인력이 얼마나 되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회사는 편집국 기자들이 직접 돈벌이에 나설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한 정론이 살아 있는 제대로 된 신문을 만드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5일 밤 우리 신문 독립언론 선언 ○주년 기념행사가 편집국 사무실에서 조촐하게 열렸습니다. 역시 기자들답게 화려한 말잔치가 이어졌습니다. 구조조정의 성공 사례와 경영개선 효과를 자랑했습니다. 깎인 월급과 수당에 따른 직원과 그 가족들의 아픔에 대한 위로는 물론 없었습니다. 그리고 슬그머니 경영악화 타개책의 일환으로 도민주주 공모제를 제안했습니다.
도민주주 공모제는 실현 가능성 여부를 따져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도민주 공모가 실현 가능성 있는 계획이라기보다는 졸속으로 발표된 계획이라는 의구심이 더 강합니다. 왜 언론지원법 우선지원 대상자 지정이 무산된 가운데 도민주주 공모제가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혹여 국면전환용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저는 분명히 기억합니다. 지난해 8월 대표이사 사장 취임시, 취임 6개월 이내에 흑자와 적자의 양을 같게 해 경영의 정상화를 이룩하겠다던 대표이사의 약속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 뒤 시도한 것이 회사의 경영진단이었습니다. 회사구조가 잘못됐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1500만 원을 들여 (아직 갚지도 못했지만) 시도한 경영안정 진단은 애꿎은 윤전부 정리와 타블로이드 판 시도 후 실패라는 최악의 상황을 불러 왔습니다. 결국 윤전부 정리는 인원 한 명만 더 늘리는 졸작으로 끝나고, 말 많고 탈 많았던 타블로이드판은 사원들의 단결력만 흐트러뜨린 채 중도하차 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 내세운 것이 지방언론 지원법이었습니다. 마치 우선지원 대상자로만 결정되면 천지가 개벽하는 것처럼 호도하더니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실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실패 책임을 해당업무를 진행했던 사우의 잘못으로 똘똘 몰아붙이지만 경영진들이 최종 책임을 면치는 못할 것입니다.
이에 때맞춰 나온 것이 바로 도민주주 공모제 도입입니다. 하지만 도민주 공모를 아무리 순수하게 받아들이려 해도 국면 전환용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성공 가능성이 많지 않은 대형 프로젝트 발표를 통해 실패한 정책에 대한 책임도 면하고, 사원들의 시선을 돌리는 고도의 전략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날 세미나 주제발표를 통해 기자 한 분은 '그저 목숨만 부지하는 신문이 아니라 깡치 있는,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정론을 펼치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여기에는 기자들이 책 팔고, 표 파는 '앵벌이' 신세가 더 이상 지속돼서는 안 된다는 절실함이 함께 녹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옳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몸 담고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만들어 왔던 우리 신문의 창간정신입니다.
창간 때 동참기자들은 언론관이 뚜렷한, 제대로 된 주인 만나 촌철살인의 글을 써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창간 구성원들은 무릎 꿇고, 고개 숙이며 사는 것보다는 서서, 고개 빳빳이 쳐들고 죽기를 각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독립언론'이라는 허울 속에서 기자들이 어쩔 수 없이 광고 현장으로 내몰리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더 이상 방치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 '좋으냐 싫으냐'보다는 '옳으냐 그르냐'의 시각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온도계의 삶을 버릴 수 없다고 마음 다져 봅니다.
'앵벌이' 기자가 되기를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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