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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과로 변별력 강화? 말장난 아닌가?"

[난상토론] 교육주체들이 서울대에 반발하는 까닭

서울대가 이 뜨거운 여름에 '여론'의 뜨거운 불판 위에 올랐다.

사실 이번 논쟁은 서울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서울대는 학생, 학부모, 교사 등 교육주체들이 바라는 입시고통 해소에 응답하는 대신 대학 자율성을 높이고 변별력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통합교과'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다가 정운찬 총장은 국내 최고경영자들이 모였다는 곳에서 "고교 평준화를 제고해 봐야 한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겠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 서울대, 정운찬 총장, 서울대 교수들, 나아가 국·공립대 교수들의 행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일단은 더 큰 것 같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불가' 입장을 향해서도, 또 눈치 보는 태도가 역력하지만 역시 '3불 원칙 고수'를 표방하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에게도 사실상 정면 도전장을 제출한 서울대의 움직임에 대해 실제 학교 현장은 지금 무얼 고민하고 있을까. <프레시안>은 교육정책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항상 외면되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난상토론회를 기획했다.

이번 난상토론은 지난해 4월 교육주체들의 소통공간을 표방하며 만들어진 '향'(www.hyang.or.kr)이 주관했다. '향'은 지난 99년 서울 성동고에서 평교사로 퇴직한 윤한탁 선생이 대표를 맡고 있으며, 많은 퇴직·현장교사와 예비교사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토론회에는 윤 선생과 유동걸 서울 영동일고 국어교사, 이철호 서울 서문고 국어교사(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박성준 성균관대 사범대 학생회장, 윤모 서울 B고 1학년 학생 등이 참여했다. 윤 군은 얼마 전 한 방송사 심야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학교측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바 있어 특별히 익명처리했다. 각 교육주체들의 목소리를 개별 토론자 중심으로 요약·정리한다. <편집자>

***윤한탁 "우수인재 선점하겠다는 서울대, 그게 '마피아' 기질"**

지금도 우리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교문화를 들여다보면 '입신양명'(立身揚名)이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 교육은 예로부터 '몸을 세워(출세해) 이름을 드높이는 것'을 바로 '효'(孝)로 봤다. 우리 부모들도 자식이 잘되면 스스로가 높아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소학(小學)에 보면 "먼저 사람이 되고 나서 공부(지식)를 쌓는 것이 으뜸"이라고 했다. 그런 것이 무시되고 기능만 강조되고 있는 게 바로 지금의 교육 현실이다.

개인적인 예를 통해 얘기를 풀어 보자. 50년대 중반 본고사를 보고 고려대 국문과에 들어갔을 때다. 나름대로 지방에서는 명문으로 불리는 진주고를 나왔지만 서울대에 들어갈 실력은 못됐다. 당시 우리에게 있어 서울대는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는 통로였다. 진주고를 나와 서울대에 들어갔던 동기들은 나중에 청와대, 중앙정보부, 교육계에 널리 포진됐다. 교육계를 한동안 떠들썩하게 했던 '진주 마피아'는 그렇게 생겨났다. 머리 하나로 계층 이동을 했던 이들은 또다시 새로운 권력층을 만들었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서울대에 우수 인재를 뽑겠다는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서울대는 사실 경성제국대학으로 출발할 때부터 잘못된 대학이다. 일제 때는 황국신민으로 봉사할 지식층을 키워낼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해방 이후에도 그런 기조는 그대로 유지돼 왔다. 결국 혁명적인 변화가 없는 한 서울대는 권력과 기득권층의 전유물로 기능할 것이다.

자식 중에 하나는 성균관대를 나와 모 대기업의 차장으로 있고, 하나는 대학을 나오지는 못했지만 모회사의 과장으로 그런대로 잘 살고 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학벌주의로 인해 곪아 있다. 서울대를 나오지 못해, 또 대학을 나오지 못해 생기는 병폐다. 다른 학부모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게다. 일부 국민들에게 정 총장의 주장이 먹혀드는 이유도 여기 있다. 제도도 변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의식의 변화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부모가 먼저 변해야 한다. 아닌 말로 교사들이 학벌을 중요시 하지 않고, 또 부모들이 학벌을 괘념치 않는다면 정 총장이 무슨 소리를 한들 흔들리겠는가.

정 총장에 이어 서울대 교수들, 그리고 국·공립대 교수들이 대학 자율성을 부르짖고 나섰다. 전면에 내세운 것은 우리 학생들의 학력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그래서 논술을 보겠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논술은 종합 사고력의 측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단시간에 키워지는 것인가. 지금의 현실은 서울대를 가기 위해, 또 대학입시를 위한 논술에 불과하다.

이를 평가하는 대학교수들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 교수가 그러더라. 한 학생의 논술 답안지를 보니 전반적인 내용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마지막 글귀가 마음에 와 닿아 높은 점수를 줬다고 말이다. 대학이 정말 아이들의 학력을 높여주고 싶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창의적이고 다양한 사고력을 키울 수 있도록 초·중등교육을 도와줘야 한다. 그것이 먼저다.

***유동걸 "변별력이란 기득권 유지 차원의 독점을 의미"**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은 대체로 권력층의 기득권 유지 차원에서 수립되고 활용돼 온 것이 사실이다. 대학들이 강조하는 변별력이란 곧 기득권 독점을 말하는 것이다.

논술을 두고 일부에서는 다양화의 측면이라고 정의한다.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최근 한 고교의 원탁토론회를 견학한 적이 있다. 그 학교에서는 교사 누구나 논술지도를 할 수 있도록 교사 동아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이에 대해 무관심하다. 일부는 사교육으로 해결해주길 바라는 이들도 있었다.

대학들이 논술 내지 통합교과를 활용해 변별력을 높이고자 한다면 가치관이나 인생관, 그리고 개개 학생의 전문성을 볼 수 있는 논술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현실의 논술은 본고사이자 국·영·수 평가에 불과하다. 또다른 서열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를 김진표 부총리는 "학교에서 지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본질에 어긋나 있는 지금의 논술을 지원하겠다는 발언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최근 서울대가 내놓은 '통합교과' 입시안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는 국·영·수 과목의 교사들이 연합해 우수학생들을 특별 지도해야만 한다.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이철호 "서울대 파동의 배후는 사실 교육부"**

정 총장은 서울대 입시안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교육당국의 2008학년도 입시안 취지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말로 이를 얼버무렸다. 그렇다면 교육부 안은 제대로 돼 있었던 것인가. 지난해 교육·시민단체들은 교육부가 2008학년도 입시안을 내놓기 전부터 크게 반발했었다. 그 이유는 교육부 안이 명문대 인기학과를 위한 대학 서열화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대학입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듦으로써 학생들의 고통을 더 늘리고 부모들의 사교육 의존도를 더 높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공교육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은 뻔하지 않은가.

대학은 입시안을 바꿀 때마다 학력을 들이댄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력은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이미 상위권에 올라 있다. 분명 우수한 학생들이 초·중등교육을 통해 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학은 그 순서를 바꾸지 않으려고 한다. 현재 학생들이 머리 속에 넣어 두은 지식만 갖고 이를 순위대로 뽑겠다는 것은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행위이자 교묘한 통제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대가 말하는 변별력이란 바로 그런 저의가 담겨 있다.

지식정보화 사회라고 한다. 지식은 이제 사람의 머리 속에만 저장돼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손쉽게 인터넷에 연결만 해도 지식이 쏟아져 나온다. 따라서 이를 종합적으로 해석해 내는 게 현대인들의 능력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학생 평가방법은 가장 구시대적이다. 개인적으로 논술을 찬성하지만 진정 논술이 학생 개인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방법이 되려면 객관식 서열화 방법을 없애야 한다. 또 대학이 논술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일선 학교를 대학 진학의 예비학원으로 만들지 말고 학교에서 논술을 실시해 내신화하도록 해줘야 한다.

***박성준 "기득권 강화 수단이 된 교육의 목적 되돌릴 때"**

예비교사로서 요즘 논란을 보면서 느꼈던 생각을 말해 보겠다.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배우는 관계다. 그럼에도 우리 교육현실은 여전히 상명하복 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늘 가슴이 아프다.

가장 근본적인 교육의 문제는 철학의 부재에서 온다고 본다. 특히 기득권층이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서열화를 통해 자신의 힘을 유지하는 것에만 골몰하고 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먼저 변화해야할 것인가, 아니면 교육이 먼저 변화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이제 교육도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 자체가 이미 기득권 강화의 목적으로 활용돼 왔기에 구조적 변화를 위해서는 반대급부의 활동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교사를 키워내는 사범대도 상당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사범대마저 경쟁의 틀 속에 갇혀 있다. 요즘 사범대생들의 고민은 공부를 열심히 해 한 번에 임용고사를 통과하는 일이 되고 있다.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이 바뀌지 않는 한 학교현장의 변화를 기대하기란 더욱 어려워지지 않겠나.

***윤모 군 "애들 잡는 교육, 학생 중심 교육으로 거듭나길"**

지금의 교육현실은 누구 말처럼 "애들 잡는 교육"이다. 소수의 우수 인재를 뽑겠다고 해마다 2만여명이 넘는 학생들한테 죽으라고 한다. 모든 것이 어른들 중심이다. 고민 속에 학생들은 없다.

요즘은 서울대 나와 외국 유학까지 갔다 온 사람들도 실업자를 면치 못한다고 한다. 서울대를 나오면 취직도 잘 되고, 잘 살 것이라는 말은 이미 신화가 된 옛날 얘기가 아닌가. 그런데도 부모들은 공부만 하라고 한다. 자식들을 대리만족의 수단으로 여기는 듯 하다. 오죽하면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는 급훈까지 나왔겠나.

얼마 전 한 친구가 중간고사를 못 봤다며 죽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문제는 자살이 아니라 그 친구가 1등이나 2등을 하는 친구들을 죽이고 싶다고 한 대목이었다. 이미 살해도구까지 준비해 놨다고 했다. 간신히 진정시키기는 했지만 학생들의 인성을 파괴하고 있는 교육 시스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학생은 배우는 사람이지 군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중학교 때 사설학원에서 논술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그때는 무척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논술이 싫다. 적성과는 상관없이 온통 입시준비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발전을 위해 경쟁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지나치다. 결국 논술도 처음 도입됐을 때의 본령을 잃은 것이 아닌가. 지금은 서울대가 통합교과를 두고 본고사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

교육을 받는 것은 엄연히 학생이다. 따라서 학생들의 의견이 교육정책에 반영돼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를 어른들이 항상 잊고 있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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