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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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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90>

손문과 중국 혁명

근ㆍ현대의 중국에 있어 나아갈 바 방향을 제시한 이는 손문(孫文), 중국발음으로 쑨원이었다. 그가 주창한 삼민주의(三民主義)는 민족(民族)과 민권(民權), 민생(民生)을 말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비단 중국만이 아니라, 제2차 대전 전의 식민지상태에서 독립한 신생 국가들이 지향해야 할 보편적인 방향을 가장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는 사상이라 하겠다.

손문은 이처럼 위대한 사상가일 뿐 아니라, 행동가였으니 진정한 의미에서의 혁명가라고 할 것이다. 그런 그의 사주를 일단 보기로 하자. 1866년생이다.

연 을축(乙丑)
월 정해(丁亥)
일 정유(丁酉)
시 임인(壬寅)

연간(年干)에 을목 편인(偏印)이 있으니 사유의 천재성을 말해주고 있으며, 월간(月干)에 정화가 있으니 사람을 다루는 친화성과 포용력을 말해준다. 하지만 동짓달에 난 정화(丁火)이고 용신(用神)이 약하니 이런 사주를 청고지상(淸枯之象)이라 한다. 맑고 절개를 지키지만, 부유한 인생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다만, 출생지가 중국 남부의 광동성, 아열대 지방이니 겨울 불이라 해도 그 기개가 결코 약한 것이 아니다. 만일 이런 운명을 지닌 사람이 한습한 곳에서 태어났다면 반드시 범용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운명은 사주팔자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곳의 풍토와도 깊은 연관이 주어지는 것이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중국이 날로 피폐해지고 힘을 잃어가는 세월이었다. 어린 나이에 친형이 있는 하와이로 건너가 서양 문화와 학문을 익혔고, 18세에 귀국하여 세례를 받고 광동성의 성도인 광쭤우에서 의학교를 다니면서 혁명 외에는 더 이상 중국을 구할 수 없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그 때가 1887년 정해(丁亥)년이었다.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 누누이 강조한 바가 있다. 사람은 자신의 일간(日干)과 같은 기운이 오는 해에 일을 시작하거나 뜻을 세우면 가장 정확하다고 말이다. 손문 역시 일간이 정화(丁火)인 데 정해(丁亥)년에 혁명에 뜻을 두었으니 오래가는 흐름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혁명가로서의 손문의 삶은 실로 고난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일개 평민이 청(淸)이라는 거대한 정부 권력을 타도 전복하겠다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손문은 자신의 신념에 흔들림이 없었고, 가는 곳마다 역설하다 보니 붙여진 별명이 ‘손 대포’였다. 늘 혁명과 같은 큰소리만을 쳐대니 그렇게 부른 것인데, 지금 식으로는 ‘손 뻥’이 되겠다.

국내 무장봉기를 직접 지휘하기도 했지만, 주로 일본과 미국, 여타 세계를 떠돌면서 끊임없이 사람을 규합하고 자금을 모아서 중국으로 보내는 일을 했고, 마침내 청 제국이 의화단 사건으로 녹초가 되자 1911년 신해(辛亥)년에 가서 청을 무너뜨리고 중화민국 정부를 세우는 데 성공을 한다. 정해(丁亥)년에 혁명의 뜻을 품은 지 정확하게 24년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새로 건립된 중화민국은 연이은 내분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협력했던 청의 대장군 원세개는 또 다시 황제가 되려 했으며, 각지의 군벌(軍閥)들은 주판알을 튕기며 이합집산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손문은 1925년 을축(乙丑)년 3월 기묘(己卯)월, 편인(偏印) 을목(乙木)이 식신(食神) 기토(己土)를 상극(相剋)하는 운에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만다. “혁명은 아직도 이룩되지 않았다.”는 것이 마지막 남긴 말이었다.

그러면 이쯤에서 중국 혁명의 전체 얼개를 살펴보기로 하자. 중국은 신해(辛亥)라는 코드를 만날 때, 변화의 결정적인 전기(轉機)를 맞이한다. 지금부터 소개되는 연도들은 모두 60년마다 찾아오는 신해(辛亥)년이다.

1851년 -태평천국으로 시작된 혁명의 여명기
1911년 -신해혁명에 의한 중화민국 건립으로 민족 혁명 시작 (제1차 혁명)
1971년 -임표 사건으로 모택동 체제의 종말과 민생혁명의 시작 (제2차 혁명)
2031년 -공산당 지배체제의 해체와 민권혁명의 시작 (제3차 혁명)

이것이 중국 혁명의 전체 모습이다. 손문이 말한 삼민주의의 세 가지 요소들은 그 하나가 달성되는 데 60년이 걸리는 대변혁이다. 결국 삼민주의는 그 본격 시작부터 180년이 소요되어 2091년에 완료되며, 그 여명기인 태평천국부터 따지면 무려 240년의 세월을 필요로 한다.

이와 더불어 앞서의 일들이 있기 약 10년 전인 경자(庚子)년에는 언제나 그 10년 뒤의 혁명을 예고하는 혼란이 찾아들었으니 그 또한 정리해보자.

1840년 -아편전쟁으로 중국 체제의 무력함 노출
1900년 -의화단 사건으로 청조의 파탄
1960년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
2020년 -??? (공산당 독재 체제의 당위성 상실로 예측된다)

그러니 손문의 유언, “혁명은 아직도 이룩되지 않았다”는 말은 진실로 옳은 말이라 하겠다.

1911년에 시작된 신해혁명으로 민족 국가, 외세에 휘둘리지 않는 정체성을 지닌 국가를 건립하는 데 무려 60년이 소요되었다. 먼저 장개석에 의해 중국 각지에 할거하는 군벌의 정리 작업이 있어야 했고 그를 이어 모택동에 의해 인민의 지지를 받는 중국 사회주의의 장정(長征)이 있어야 했다.

이어서 모택동이 대약진과 문화혁명을 통해 한계를 드러내자, 임표 사건을 계기로 1980년 경신(庚申)년에 등소평이 등장했다. 미국과 수교하고 경제 우선 정책이 시작되었으니 바로 민생(民生)혁명의 출발이다. 참고로 등소평의 일간(日干) 또한 경금(庚金)임을 밝혀둔다.

등소평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으면 된다는 주장으로 결국 민생이 중국식 사회주의의 커다란 목표임을 밝히면서 개방(開放)으로 나섰던 것이고, 그를 통한 경제발전은 2000년 경진(庚辰)년에 와서 ‘승천하는 아시아의 붉은 용’이라는 멋진 찬사까지 듣도록 만든 것이다.

현재 중국은 민생 혁명을 향한 여정의 정점(頂点)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과거의 소박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그 힘을 외부로 투사(投射)하려는 팽창적 민족주의의 모습도 보여주기 시작했다. 사물의 이치가 그런 법이지만, 그 또한 모순과 갈등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은 공산당 일당의 지배체제 하에 놓여있으니, 이는 과거의 왕조 체제와 그 본질에 있어 큰 차이가 없는 나라이다. 물론 일당 독재가 가지는 장점 또한 크지만, 인간의 본성과는 근원적인 면에서 갈등 요인을 지니고 있다. 정치권력이라는 것 역시 하나의 재화(財貨)인 이상, 그것을 향유하고 소비하려는 사람들의 욕구를 영원히 막고 있을 순 없는 법이다.

그 정치적 자유 또는 정치적 권력에 대한 욕구가 구체화되는 시점은 북경 올림픽이 끝나는 시기일 것이며, 그로부터 중국 내에는 무수한 운동권 세력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2020년 경자(庚子)년에 가면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할 것이며, 그로부터 대략 10년 뒤인 2030년 경이면 공산당 체제의 권력 독점이 와해될 것이다.

체제가 와해되면 혼란이 올 것이며 그 혼란으로부터 사회 제 세력간의 치열한 갈등과 협상을 통해 민주주의, 더 정확하게는 중국식 민권(民權)주의가 형성되어질 것이다.

2030년에 민권 혁명이 일어나 30년 뒤인 2060년 무렵이 되면 중국은 명실 공히 소프트 파워까지 갖춘 강대국이 될 것이니 그런 중국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긴 안목에서의 대응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이로서 근ㆍ현대 중국 혁명에 대한 그간의 글들을 끝마치기로 한다.

좀 엉뚱한 얘기 하나 하고자 한다.

최근 성인 질환의 하나인 고혈압으로 혈압강하제를 상복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필자는 이 점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데, 혈압강하제는 장기간 복용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사실 고혈압은 침술로 상당히 용이하게 치유할 수 있는 증세인데, 그러고 있으니 답답한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혈압을 내릴 수 있는 간단한 침(鍼)법을 밝히니, 이 방면에 조예가 다소 있거나 인연 있는 사람들은 널리 사용하여 주변 사람들을 치유시켜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필자는 이 침법으로 어머니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을 죄다 고쳐주었다.

대추혈 좌우 2촌 지점, 현종, 인영, 태충, 합곡에 직자(直刺)한 후, 10분 정도 유침한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시침(施鍼)으로 한 달에서 두 달이면 완치된다.

한의사 자격이 없는 필자가 이런 의학 정보를 글로 쓴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기에 여러 번 생각만으로 그치다가 이번에 용기를 내어 밝히게 되었으니 부디 오해 없으시기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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